| 하나님이 나를 써주시고 계시는가?

내가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써줘야 지도자가 되고 하나님이 나를 써주셨고 도와주셨다는 것을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아야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써주시고 계시는가?’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를 쓰시고 계신가에 대해서 항상 목숨 걸어야 되고 하나님이 버리시면 포지션이 지도자라 할지라도 의미 없게 된다는 것을 알고 끝까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 특별한 열심이 있어야합니다.

지도자의 첫 번째 자질은 하나님의 뜻을 향한 특별한 열심이고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삶은 훈련을 통해서 되기 때문에 지도자는 훈련의 시간을 광범위하게 보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건져주실 때 까지 기다려야합니다.

하나님이 새운 지도자라 할지라도 오늘 본문의 다윗처럼 멤버들에게 충분히 인정받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이럴 때 자기 힘으로 지도력을 확보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다시 높여 줄 때까지 기다려야겠죠.

사람들이 다윗을 지도자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돌로 치려고 할 때 그때 다윗이 한 행동은 뭐냐면 하나님 안에서 강해진 것이고 결국 하나님이 다윗을 높여 주신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 힘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 안에서 그 어렵고 위급한 상황을 벗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도자는 이런 일을 얼마나 많이 겪겠습니까? 어려움 가운데 빠질 수 있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비난할 수 있고 가장 자기를 신뢰하고 따라왔던 사람이 자기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은 격렬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 고통 가운데서 벗어나게 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자기 스스로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조급한 마음으로 행동하면 문제가 더 어려워 질 수 도 있겠습니다.

지도자는 하나님이 건저주실 때 까지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 지도자는 내면의 안정감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격렬할 때는 하나님 앞에 가서 만짐 받는 것이 필요한 겁니다. 사울이 그냥 사울이 된 것이 아니에요. 마음이 너무 격렬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원수가 싫어하는 일을 하면 마음이 격렬해 질 수가 있어요.

가정의 경우도 같아요. 마음이 너무 격렬할 때 한마디만 실수하면 아이들이 상처받고 아내와 남편이 상처 받아요. 그래서 이 격렬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법에 대해서 훈련해야 합니다.

지금 다윗이 격렬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가장 측근들이 돌로 치려고 죽이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이런 격렬한 심적 고통가운데 있을 때가 있죠. 관계도 어렵고 원수가 너무 괴롭히고 한마디 말만 하면 불처럼 어려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격렬한 상황 가운데 놓일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런 때가 오기 때문에 내면의 안정감이 아주 중요한 거예요.

격렬한 상황에서 내면을 지키는 안정감과 과거의 그 격렬한 상황에서 실수했던 경험들, 잘 통과했던 경험들 그리고 그 경험들이 의미 있게 되는 신실한 관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 다윗이 사람을 얻는 과정

삶의 격렬한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그 상황을 벗어남으로 사람을 얻는 거예요.

다윗이 철저히 하나님 의지해서 이 상황에서 건짐 받았기 때문에 다윗을 돌로 치려고 했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이 상황에서 다윗을 건져 내셨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사람을 얻으려면 하나님이 그 상황에서 건져 내줘야 합니다.

압살롬처럼 사람의 마음을 훔쳐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면 사람의 마음을 훔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세밀하게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 내용은 김길목사님의 말씀요약입니다. 영상은 갓피플TV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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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테스트

지도자 자질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특별한 마음이 있는가? 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대한 철저한 존중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각별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지도자의 조건과 자질로 보십니다.

본문의 사울은 테스트 가운데 있는 겁니다. 지도자들은 계속 하나님의 뜻을 선택을 해야 하거든요. 지금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세워놓고 보시는 겁니다.

사무엘이 약속한 날에 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테스트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자 하실 때는 정상적인 상황으로 일이 팍팍 돌아 갈 때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약간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여있을 때 내 마음이 복잡해지고 내 속마음이 나올 때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사무엘이 왜 안 올까? 백성들이 흩어지고 전쟁이 곧 날려고 하는데 마음이 격렬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인지 모르고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데로 반응을 합니다.

사울처럼 반응을 하거든요. 마음이 격렬하니까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을 취해요. 제사를 혼자 지내버린단 말이 예요. 그것이 더 안정된 것 같으니까

수많은 선택들에 있어서 대부분이 이렇게 많이 하는데 그런 선택을 하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늘 자기 자신을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 테스트에 통과 못했을 때

사무엘이 사울에게 ‘당신은 쓰임 받지 못합니다’ 그럴 때 사울이 당신이 안 왔잖아요. 당신에게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할 수 있거든요. 대부분 우리가 그렇게 하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선 그 사람 못 씁니다.

엄정하게 알아야 해요. 내가 하나님 뜻대로 했는가 안했는가? 내가 하나님 뜻대로 안했으면 나와 하나님 사이에 문제 있는 거예요. 테스트 통과 못한 거예요.

사울에게 진실함이 없는 거예요. 제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회개하면 버림 받지 않아요. 하나님이 용서하시거든요. 물런 대가는 있겠지만요.

| 진실과 순종이 필요해요.

항상 하나님 뜻 한가운데 올바른 선택이 있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할 수 있거든요 그 때 진실과 순종이 필요해요.

잘못 할 수 있거든요. 진실하면 용서 받고 다시 관계가 회복되고 기회가 있는 거죠.

또 하나는 순종 이예요. 내가 뭔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일이 잘 되다가 최근에 좀 은혜가 없고 빡빡하다 그러면 둘 중에 하나예요. 훈련 받고 있던가 불순종 했던가

특별히 지도자로 훈련 받는 중에는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는 불순종 보다는 하라는 것을 안 한 불순종이 훨씬 더 중요해 지거든요.

그래서 기름부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의 삶에 많은 부분에 순종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름부음 있는 지도자 되는 것이 쉽지 않아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사람들이 알아보든 못 알아보든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오랜 순종의 결과로 은혜와 쓰임 받는 것이 나타난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항상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진실하고 순종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 쓰실 만 한 사람인가 날마다 그런 투쟁이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본 내용은 김길목사님의 말씀요약입니다. 영상은 갓피플TV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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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고독하고, 침묵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독하고 침묵해야 거짓 자아가 탈을 벗고 참 자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세상이 줄 수 없는 행복과 고요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독’, ‘침묵’,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홍해 앞에 있을지라도, 여리고 성 앞에 있을지라도, 어떤 위협과 급박한 것이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3세기 말부터 5세기에 주로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의 사막으로 들어가 생활한 수도자를 가리켜 사막의 교부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사막으로 들어간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전까지 기독교는 로마의 박해 아래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여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이후에는 더 이상 싸움이 필요 없었습니다. 이제 세상은 교회의 적이 아니며 세상은 교회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친해지기 시작했고, 세상 문화를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박해 시절과 다른, 아니 더 심하게 죄에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타락한 문화 속에 살면서 믿음을 지키는 일이 더 어려워진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막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막은 세상 죄와 유혹의 문화에서 벗어나는 장소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을 멈추는 일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읽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 안에서 흘러나오는 많은 생각을 해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침묵과 고독이 필요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점이 큐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큐티가 잘 안 되는 이유는 큐티Quiet Time with God라는 단어의 뜻처럼 하나님과만 함께하는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독이 필요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큐티할 때 TV를 켜놓거나 음악을 듣지는 않습니까? 전화를 받거나 다른 일을 함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큐티 시간을 자투리 시간이 날 때 하고 있지 않습니까?

큐티는 언제나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하는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내려놓고 고독과 침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 하정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큐티

† 말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로마서 12장2절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 고린도후서 10장3절~5절

† 기도
주님, 내 안에 들어있는 온갖 문제와 생각들을 내려놓길 원합니다. 주님만을 잠잠히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만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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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주신 마음은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할 수 있는 담대한 마음입니다 

죄에 두려워 하지 않고 
율법에 대해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서 모든 것을 이루는 줄 내가 확신을 합니다 

세상은 나를 치려 하고 
꺼꾸려 뜨리려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주장 하셔서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을 이기셔서 내가 또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리스도 편지에서...


MR: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집 : 축복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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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정의는 세상에서 말하는 죄의 정의와 너무 다르다.

세상에 있는 모든 죄, 그 많은 죄가 어떤 뿌리에서 가지를 내리고 뻗어 나오는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롬 1:28

이것이 바로 죄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데서 모든 죄가 뿌리를 내린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니까 하나님 대신 그 빈자리에 자기 자신을 두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2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니까 하나님이 계셔야 할 곳을 자아가 차지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나’를 사랑한다.

◈ 모든 죄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숭배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 마음의 주인 자리는 비어 있는 법이 없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주인 노릇 못하고 계신다면 나 자신이 주인 노릇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고 나 자신이 주인 노릇, 왕 노릇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경적인 죄의 정의이다.

당신도 자신의 인생 경영에 하나님이 한 군데도 없는 자기 숭배주의자는 아닌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은 쌓아두면서 하나님께 대해서는 부요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당신의 인생 포트폴리오를 자아 중심으로 작성하고 있지 않은가?

◈ 하나님을 두어야 할 자리에 “나! 나! 나! 나!” 하면서 자신만 위하고 있지는 않은가?

신자라고 하는 우리의 인생 구석구석에 하나님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 없는 자리에 ‘내가’ 왕 노릇 하며 ‘내’ 인생을 경영하고 있다.

보디발의 아내가 몸의 실루엣이 다 드러나는 자태로 유혹하는 그 순간에도 요셉은 자기 좋을 대로 하지 않고 즉시 하나님을 개입시켰다. 창 39:9

유혹의 순간에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두기를 환영했다.

죄의 문제, 자아의 문제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해결해야만 당신에게 요셉과 같은 능력이 생길 것이다.

유혹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마음에 두는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 본질적인 죄의 문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근원적인 죄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연코 변화되지 않는다.

“나는 형법상의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내가 무슨 죄인입니까? 왜 죄, 죄 하면서 사람 야코를 죽입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당신이 뭔데 죄로 나를 협박합니까?”

하지만 틀렸다. 우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기독교에 입문할 수 있고 유혹을 이기는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다.

◈ 죄가 무엇인가? 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성경은 우리가 죄 없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무슨 소리인가? 당신과 나에게 죄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과 나를 위해 죽였겠느냐는 말이다.

그 엄중한 사실 앞에 어디 죄를 회피하여 도망가려고 하는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 싫어하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빈 왕좌에 자신이 왕 노릇 하려 하는 이 죄는 여타의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 죄의 뿌리는 자아의 문제이며 옛 사람의 문제이다. 탐욕으로 이글거리고 자기 사랑으로 이글거리는 마음, 내가 왕 노릇 하는 죄, 이 죄의 옛 사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지금 당신 마음엔 하나님이 계신가? 탐욕의 자아가 있는가?

김응국, 십자가

† 말씀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롬 1:28~32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행 22:16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골3:5~6

† 기도

주님, 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 죄, 하나님이 계셔야 할 내 마음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고 나 자신이 주인 노룻 한 죄를 이 시간 회개합니다.

나의 자아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옵소서. 이제 내 마음에 하나님만이 왕 되시옵소서. 예수님만이 나의 주인이 되어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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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대사

설교문 2010. 2. 8. 16:48

◈ 하나님께 묻고 말씀을 듣고 순종했더니...

저는 주중대사로 나갈 때 결심을 했습니다. 나는 나라의 대사이기도 하지만, 중국에 주재하는 하나님의 대사이다.

앞으로 나는 중국과의 우호협력관계를 해나가면서 다른 한 귀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지시하시는지 하나님의 뜻을 찾고 묻고 들어서 순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주중대사로 있는 동안에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구현되기를 기도하고 순종했습니다.

저는 제 자리가 저나 가족의 유익을 위한 자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덕을 나타내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매 순간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행동하고 처신했습니다.

무엇을 할 때 마다 하나님께 묻고 말씀을 듣고 순종했더니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수 없이 일어나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기도할 때 모든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이러한 은혜는 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 당신도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열방에 대사로 파송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우리의 일터에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대사로 일해야 합니다.

회사 다니는 사람은 회사에서, 가정주부는 가정에서 교사는 학교에서 공무원은 자기 부처에서 하나님의 대사로써 일해야 합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를 통해서 자기가 왕비가 된 것이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왕의 총애를 받은 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기 위해서임을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대사는 각자들이 하나님께서 어디서 무엇을 시키시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고 그 백성을 섬기기 위해서 전력해야 하는 것이 본분입니다. 그리고 이 본분을 수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

자기 혼자 일방적으로 하는 기도, 자기의 유익과 정욕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과 쌍방으로 교통하면서 응답받는 영적기도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확인해서 하나님 뜻에 맞추어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구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제는 항상 하나님께 여쭈어봐야 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도 여쭈어 봐야 합니다.

처음에는 어려우실 것입니다. 계속 하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셔야 계속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삶을 살 때 어떤 경우에도 걱정하지 않고, 담대하고 누구라도 용서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성령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앞으로 자신의 일터에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대사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는 그런 자리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본 내용은 전주중대사, 전통일부장관 김하중(온누리교회 장로)의 말씀요약입니다. 영상은 갓피플TV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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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모습은 분명 세상 사람들과 달랐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백성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이 있었다. 하나님 백성은 세상 사람과는 다른 어떤 강점을 가지고 일하는가?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께서 도우신다.
대제사장이 사도들을 죽여버리겠다는 태도로 나왔을 때, 갑자기 가말리엘이라는 교법사가 나타나 논리적인 설득으로 말렸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그분께 헌신하는 백성에게 그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도울 자를 보내주시고 피할 길을 열어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난 가운데 빠져 핍박받고 있는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당신이 상상하지도 못한 방법을 통해서 도움을 주실 것이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꾸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악한 자의 악함까지도 활용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모든 믿는 자들을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강점이다.

그 하나님께 기도하자. 기도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원수의 마음까지도 활용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 백성은 날마다 어디서든 복음을 전한다.
가말리엘의 설득으로 풀려난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다”(행 5:42).

여기서 ‘날마다’에 주목하라. 당신은 ‘일상의 영성’이 있는가?‘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복음을 전했는가? 그들은 ‘예수는 그리스도다’라는 사실을 증거했다.

예수 믿고 난 다음에 복 받았다, 병 나았다, 출세했다와 같은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우리가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사실을 전했다.

당신은 불신자를 만났을 때 우리 믿음의 도리를 전할 메시지가 준비되었는가?

가르칠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은 확실하게 전할 수 있도록 무장해야 한다.

◈하나님 백성은 조급하게 중단하지 않는다.
하나님 백성의 강점은 또한 핍박과 환란이 있더라도 맡은 일을 조급하게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성벽을 재건하는 것을 중단시키려고 산발랏과 도비야, 게셈 등이 온갖 방해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백성을 선동해 바사 왕을 모반하려 한다고 모함하고 헛소문을 퍼뜨리고 난리를 쳤다.

그 행동에 대해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했다.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느 6:9).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힘을 받아 사역을 계속했다.

마귀는 우리의 사역을 중단시키려고 한다. 이때 쓰는 방법이 바로 ‘낙심’이다. 어떤 형태의 낙심이든 간에 그 낙심을 준 것은 마귀이다. 마귀는 우리가 낙심하게 만들어서 일을 중단시킨다.

낙심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계속 사역해야 한다. 이 땅의 싸움은 결국 내가 낙심하느냐, 아니면 마귀가 낙심하느냐의 문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갈 6:9). 사도 바울은 명확하게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낙심하지 말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낙심의 위험이 있지만,“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낙심을 극복해 열매를 거두는 하나님 백성이 되자!

-전병욱목사(삼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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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왜 성경이 필요한가?

Ⅰ. 인류에게 왜 성경이 필요한가?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실존이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종교심을 주셨고 지으신 만물을 통해서 당신을 충분히 이해하고 섬길 수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롬 1:19, 20에,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범죄함으로 마음이 둔해져서 지으신 만물을 보고도 하나님을 몰라보며 죄 아래 사는 비참한 인간이 되고 만 것이었다. 롬 3:10~18에 보니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이태리의 어느 변호사는 목사가 봉독한 여기의 성구를 들어 인권 모독죄로 법정에 고발했지만 담임 목사는 저자가 아니며 저자인 바울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고소사건은 기각판결이 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도리어 조물주 하나님이 배은망덕한 인간을 고발하고 있다. 사 1:2~4에 보니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라고 탄식하셨다.

이렇게 인간의 타락한 종교심 또는 도덕적인 양심으로는 천지만물이 보아도 하나님을 알 수 없는 미련한 인간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러므로 고전 1:21에,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자연계시만으로는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 섬길 수 없게 되었다. 이 말은 자연계시가 불충분하다는 말이 아니고 자연계시 자체는 완전하지만 인간의 죄 때문에 영안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못 보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고 당신을 바로 섬기게 하시려고 예로부터 당신을 나타내 보이신 것을 영감으로 수록한 완전무결한 성경을 주신 것이었다. 히 1:1, 2에,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말은 하나님의 발전적인 게시방법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곧 옛날엔 사람에게 직접 음성을 들려주시기도 하시고 또는 꿈으로, 환상으로 투시하는 방법으로, 상징적인 것으로, 특히 예언 등등으로 당신을 계시해 오시다가 마지막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씀 하셨기 때문에 기록한 성경은 하나님의 최종계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엡 3:5에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다”고 했다. 임 라은 선지 사도들의 이적 특히 성경기록은 단회적이며 또 그들의 기록인 신구약 66권은 절대 가감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란 뜻이다(계 22:18, 9).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들은 옛날과 같이 직접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성경 없이는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과 그 뜻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계시의 기록만이 아니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성경을 볼 때에 구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지금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고 계신다고 믿어야겠다”(김준삼 著 신앙고백서 강해 성경의 필요성에서).

그러므로 이 성경은 확실한 것이며(눅 1:3, 4)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시는 것이고(딤후 3:15) 후대의 신자들을 교훈하기 위함이고(롬 15:4) 특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기 위해 절대 필요한 말씀인 것이다.(딤후 3:16, 7).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 당신이 필요하셔서 영감으로 쓰게 하고 편집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었다.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귀하고 중하신 말씀일세 반갑고 기쁘신 말 많은 중 날 사랑하신 단 말 좋도다 주 예수 날 사랑하시니 즐겁고도 즐겁도다 주 예수 날 사랑하시니 나는 참 기쁘다.


Ⅱ. 왜 인류에게 성경을 주셨는가?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에게는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이것이 짐승과 구별되는 특이중의 하나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독 인간대표인 아담과 행위계약을 맺었다. 이것은 소극적으로는 에덴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것과 적극적으로 생명나무 실과를 먹음으로 영생하는 약속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만이 이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해야할 사람이 사탄의 말을 들으므로 이 행복을 스스로 포기하고 만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해야할 사람이 사탄의 말을 들으므로 이 행복을 스스로 포기하고 만 것이었다.

이 시험의 과정은 사탄의 거짓말을 통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사상을 빼어 버리고 악한 사상을 부식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탄과 인간의 첫 대화에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충동을 일으킨대 대해 하와의 대답은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셨느니라”고 했다. 사탄이 또 여자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했다. 이것이 사탄과 하와의 대화였고 그 후 그들은 타락의 길을 택하고 만 것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타락은 언어를 통한사상의 타락이었다. 이 범죄로 말미암아 행위계약은 파기되고 말았지만 하나님의 본래의 목적은 대표자 아담을 세워 그와 후손들에게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은 실패해도 당신은 그럴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과의 계약을 경신하기를 여인의 후손 중에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허락하시고 그에게 인간이 파기한 행위계약을 준행케 할 뿐 아니라 아담이 어긴 죗값으로 죽는 전 인류의 영원한 형벌을 대신하여 죽으며 살아난 그분을 누구든지 마음에 믿기만 하면 영생을 회복한다는 약속을 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은혜계약인 것이었다. 이 은혜계약 곧 하나님의 구원사상을 인류에게 전달하기 위해 하나님이 말과 글을 사용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성경이란 것이다.


Ⅲ. 왜 특정한 사람들을 통해 성경이 쓰여졌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 곧 인류구원의 사상을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책 중의 책이다. 사상의 전달은 반드시 말과 글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것을 사용하지 않고는 온전한 사상의 표현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주신 말씀을 받아 수록하여 후대에 전할 사람들을 택하셨으니 그들이 바로 선지자와 사도들이었다. 성경의 기자는 약 40명이나 되는데 그들은 왕, 제사장, 학자, 농부, 어부, 세리 등의 직업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실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말씀의 바른 전달을 위해 성령님께서 특별간섭을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성경의 기록은 성령님의 감동 간섭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한마디의 실수도 없는 것이었다.
벧후 1:21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대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고 사 34:16은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고 했고 마 5:18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고, 특히 계22:18,9에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사상을 전담함에 있어서 개인 개인에게 매번 하늘로부터 음성을 들려주시지 않고 왜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시고 기록하게 했는가? 이는 불공평한 일이 아닌가?”라고 하기 쉽다.

우리 이 대목을 바로 깨달아야 하겠다. 그것은 하나님은 실수함이 없이 만민에게 꼭 같이 말씀할 수 있지만 말씀을 받은 인간은 어둡고 둔하고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각양 각색으로 가감하는 과오를 범한다는 것이다.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택하사 영감으로 실수함이 없이 기록하게 하여 후대에 전달케 한 것이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Ⅳ. 왜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할 필요가 있었는가?


왜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할 필요가 있었는가? 성경의 많은 기자 중 베드로 사도를 들어 살펴보자.
그는 행 4:13을 보면, “본래 학문 없는 범인”이었다. 아마 배우고 싶었으나 가난한 환경 때문에 배우지 못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어부노릇을 하는데 학문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고 포기했을 것이다. 아무튼 학문이 없는 사람임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동생 안드레의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믿은 뒤부터는 그의 탁월한 감화력이 있는 말씀으로 참 지식을 배울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늦게나마 그는 선생을 잘 만난 행운아였다. 무엇보다 주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시고 승천하신 뒤부터는 이 모든 것이 구약성경대로 된 줄 믿고 성경연구에 열중했으며 나중엔 글을 통해 복음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나이가 들었지만 말하는 것과 글 쓰는 은사를 받은 것을 깨닫고 복음을 글로 표현했는데 그것이 베드로 전후서였다. 역사가들은 본서의 저작 년대를 64년~68년이요 순교한 해를 68년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 시대는 로마황제 네로의 대 박해 때였다. 그러니 그의 저서활동은 환경이 좋은 때가 아니요 더욱이 연로한 때요 죽음이 임박한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이 정리되면 주의 일을 힘쓰겠다!” “글을 쓰겠다!" 등등으로 말하기만 그 때 가면 ”이젠 늙었어!“하고 체념하고 만다.

주의 종 베드로는 그리스도께 받은 복음의 말씀이 후대에 바로 전달되는 것이 일편단심 소원이었다. 그래서 복음을 말로 전하고 듣는 것이 은혜로운 일이긴 하지만 청중은 제한되어 있고 또 세월이 지니면 잊어버리기 쉬우므로 복음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빼기도 하고 더하기도 하는 염려를 없애기 위해 변하지 않는 글로 전할 필요성을 깨달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작업에 열중한 것이었다. 그것이 벧후 1:15의 말씀이었다. 곧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고 했다.

우리는 다시 한번 기독교 복음이 말로만 전달된 것이 아니라 완전한 기록계시로 전달되었음을 깨달아야 하겠다. 만일 기독교 복음이 말로만 전달이 되었다면 지금쯤은 해괴망측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성경기록은 당대의 신자를 위함이 아니요 후대에 믿는 자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롬 15:4에,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또 후대에 바로 전하기 위해 문서전도에 적극 협조해야 하겠다.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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