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8.12.29 정유년 남원성싸움
  2. 2018.11.22 이민사박물관
  3. 2018.11.08 철도 사진전
  4. 2018.11.02 주인공원
  5. 2018.11.01 강화고려궁지 1
  6. 2008.12.03 고대점토판

정유년 남원성싸움

여행 2018. 12. 29. 09:57

창극 <정유년 남원성싸움>은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전투에서남원성 순국한 의사들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풀어낸 창작창극이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정유년 남원의 이야기를 신분을 초월한 정금과 홍도의 사랑, 남원 군사들과 명나라 총병 양원의 갈등, 일본으로 끌려간 남원 도공들의 아픔으로 풀어내 극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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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사박물관

공원 2018. 11. 22. 12:01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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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머니께서 입원해 계시는 병원에 병문안을 하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오기위해 대전역에 들어섰더니 사진으로
보는 철도 역사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어요
지나간 철도의 역사 기록과 앞으로 도래할
철도의 비젼등이 담긴  사진들 이었어요

철도 기공식이 열렸던 인천 우각현

해방호 열차

철마는 달리고 싶다

정상회담을 통한 남북 철도 연결 논의

손을 맞잡은 남과북의 기관사

달리고 싶은 철도의 미래..
앞으로 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철도의 바램이 꼭 이루어져서
모스크바까지 철도를 타고 크램린 궁도
구경하고 시베리아 설원도 달려보고
바이칼 호수도 가봤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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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원

공원 2018. 11. 2. 12:16

재물포역앞 맞은편 경인로를 따라 도화역 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주인공원이라는 작은공원이 나온다.
주인공원이라 이름이 붙은 이유는 주안-인천사이에 있던 주인선 철도를 폐선하고
철도 부지를 따라 공원을 조성한것이다

선로를 따라 긴 산책로가..ㅋ

옛 철로 받침목을 계단으로 이용한 센스는
참 탁월한듯..

이제는 도심 속의 작은 공원으로 주민들의
소중한 휴식의 공간이 되었네요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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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건물이다.
정궁 이외에도 행궁·이궁·가궐을 비롯하여 많은 궁궐이 있었다. 정문은 승평문이었고 양쪽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이 있었다. 39년동안 사용되었고 1270년 강화조약이 맺어져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했다.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다. 그후 다시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이 남아있다.
이 곳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곳이다.

승평문

고려궁지에서 바라본 강화읍내와
낙조 단풍 눈이 즐거웠습니다ㅋ

외규장각은 조선시대 정조가 왕실관련서적들을 보관하기 위해
강화도에 설치하였지요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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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Nippur점토판/(2600-2350 BC)

Nippur ? 니프르 점토판
니푸르 [Nippur]
고대 수메르 시대부터 BC 2000년 중엽까지 번영하였던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시신() 엔릴은 도시나 국가의 범위를 넘어 주신()으로서 널리 숭앙되었기 때문에 각국의 왕은 엔릴신()의 승인이라는 의식상의 절차를 밟아 왕의 지위와 권위에 대한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원시적 신앙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국왕들은 신전 건립을 서둘렀으며, 이를 증축 ·수복()하고 토지나 물품을 기증함으로써 도시는 더욱 번영하였다. 1889년 이래 미국의 고고학 조사단이 발굴하였다. 주로 수메르어()의 종교 ·문학 ·과학 ·법률 ·문법 등에 관련된 5만 매 이상의 점토판()을 발견하였다. 유적이 발굴된 곳은 바그다드 남동쪽 120마일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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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Akkadian (ca. 2350-2200 BC)

아카디어 쐐기문자

아카드어 [Akkadian language/Assyro-Babylonian/Accadian]
BC 3000~1000년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쓰였던 셈어의 일파.

BC 2334~2279년경 집권한 아카드의 사르곤 왕 시대에 지중해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지역에 걸쳐 널리 쓰였던 북부변방어군에 속하는 셈어의 일파이다.

수메르설형문자에서 발전하여 설형문자 형태로 표기하는 아카드어는 약 600개 낱말과 음절 기호가 있다. 음운 체계에는 20개 자음과 8개의 모음이 있으며 명사에는 주격·소유격·대격이 있고 단수·양수·복수의 3가지 수가 있다. 또 여성은 어간에 접미사 ‘-t ’또는 ‘-at ’를 붙여 남성형과 구별하였다. 동사의 시제는 현재·과거형과 미래형의 2가지 시제가 있다.
BC 2000년경까지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는 아카드어를 구어로 썼고 종교문헌에 기록되는 문어로는 수메르어를 사용했다. 같은 시기에 아카드어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는 아시리아 방언으로,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는 바빌로니아 방언으로 나뉘었다. 처음에는 아시리아 방언이 더 많이 쓰였지만 차츰 바빌로니아 방언이 널리 쓰이기 시작하여 BC 9세기 무렵 바빌로니아 방언이 중동의 링구아 프랑카(국제 혼성어)가 되었다. 그러나 BC 7~6세기부터 바빌로니아 방언을 대신하여 아람어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바빌로니아 방언은 쇠퇴하기 시작하여 수학·천문학을 비롯한 학문을 위한 문어로만 쓰이게 되었다.
BC 1세기 무렵 아카드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19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아카드어를 판독하게 되었다. 1920년대에 들어
시카고 대학 동양학연구소에서 아카드어 표준사전을 편찬·출간하였다


Girsu


Lagash II (ca. 2200-2100 BC)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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