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고독하고, 침묵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독하고 침묵해야 거짓 자아가 탈을 벗고 참 자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세상이 줄 수 없는 행복과 고요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독’, ‘침묵’,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홍해 앞에 있을지라도, 여리고 성 앞에 있을지라도, 어떤 위협과 급박한 것이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3세기 말부터 5세기에 주로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의 사막으로 들어가 생활한 수도자를 가리켜 사막의 교부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사막으로 들어간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전까지 기독교는 로마의 박해 아래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여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이후에는 더 이상 싸움이 필요 없었습니다. 이제 세상은 교회의 적이 아니며 세상은 교회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친해지기 시작했고, 세상 문화를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박해 시절과 다른, 아니 더 심하게 죄에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타락한 문화 속에 살면서 믿음을 지키는 일이 더 어려워진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막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막은 세상 죄와 유혹의 문화에서 벗어나는 장소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을 멈추는 일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읽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 안에서 흘러나오는 많은 생각을 해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침묵과 고독이 필요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점이 큐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큐티가 잘 안 되는 이유는 큐티Quiet Time with God라는 단어의 뜻처럼 하나님과만 함께하는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독이 필요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큐티할 때 TV를 켜놓거나 음악을 듣지는 않습니까? 전화를 받거나 다른 일을 함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큐티 시간을 자투리 시간이 날 때 하고 있지 않습니까?

큐티는 언제나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하는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내려놓고 고독과 침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 하정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큐티

† 말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로마서 12장2절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 고린도후서 10장3절~5절

† 기도
주님, 내 안에 들어있는 온갖 문제와 생각들을 내려놓길 원합니다. 주님만을 잠잠히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만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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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명화로 보는 성경 - 아브라함과 이삭의 희생(1636)

아브라함이 믿음의 아버지인 만큼이나 그의 생애에는 일어난 일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100세의 아브라함과 99세의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는 사연은 웃음을 넘어 신의 은총의 힘을 다시 생각게 한다. 이는 즐겁고 신나는 일이지만 이어 일어나는 이삭의 희생을 요구 당하는 사정에 이르면 우선은 당혹스러워진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과단성 있게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기로 한다(창 22:1-8). 이 장면에서 나는 두 가지 상반되는 심리적 흐름이 마음에 지나가고 있음을 숨기기 어렵다. 첫째는 아브라함의 깊은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깊은 경외감을 느끼는 부분이다. 두 번째 떠오르는 것은 정말 그 같은 요구를  받았을 때 그는 아무런 불평이나 주저함이 없었을까하는 인간적이며 좀 더 현실적인 생각을 갖게 된 점이다.

 아브라함이 살아온 생애와 신앙경력을 보면 그가 하나님의 요청에 즉각 순종하는 경위를 어느 정도 이해할 것도 같다. 내가 읽기로는 깊은 신앙행적에도 불구하고 그가 믿음에서 왕왕 실패한 적이 있는 것도 감지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감히 그의 여러 번의 실패가 오히려 굳은 믿음을 만들어 냈다고 말하고 싶다. 아브라함이 아들의 희생 요구에 즉시 순종하는 믿음의 태도야 말로 놀랍고 감동적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큰 감화를 주는 것은 야훼의 준비 야훼 이레이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훼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 22:12-14)

 나는  신앙 체험에서 내 삶의 앞길을 여호와께서 늘 준비하여 주셨음을 근래에 더욱 절감한다. 우리는 늘 앞날을 걱정하고 염려한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나의 삶을 인도하여 주셨음을 알게 된다. 그것도 내가 생각하고 기대한 것 이상으로 그보다 더 좋은 방향과 결실로 말이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므로 그 분은 우리를 최상의 길로 인도하심을 믿는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시키려고 하는 그 순간 정확하게 그것을 막았다. 한순간만 놓쳤어도 이삭의 생명을 건질 수 없지 않았던가. 그만큼 섬세하고 치밀하고 정확하다. 기실 아브라함이 그 산에 오르기도 전에 이미 그 곳에 수양 한 마리를 예비하셨을 터인데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었듯이 말이다.

 렘브란트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희생’을 대작으로 두 점 그렸다. 하나는 1635년에 그린 것으로 뻬쩨르부르그에 있는 아르미타쥬 미술관에 있다. 다른 하나는 일 년 뒤 1636년의 작품인데 독일 뮌헨의 알테피나코텍 미술관에 볼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하늘의 천사가 앞의 것은 화면 좌측에서 날아오고 있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중앙에서 등장하고 있는 점이다. 전체 톤으로 보면 전자가 좀 더 회색조 어둠이 깔려 있다면 후자는 보다 밝다.
 공통점은 아브라함이 왼손으로 이삭의 얼굴을 움켜쥐고 있어서 이삭의 그 순간의 얼굴 표정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렘브란트라 하더라도 그 순간의 얼굴 표정을 상상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렘브란트의 명화 (1) - 아브라함과 세 천사들

하나님의 약속은 실현된다는 성경의 가르침 표현
렘브란트의 상상력과 신앙적 영감 느껴지는 작품


렘브란트는 신구약 성경을 소재로 한 수많은 유화 ,동판화, 드로잉 작업을 했다. 이들 작품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탁월해서 그들을 대면하노라면 풍성한 예술적 상상력과 깊은 신앙적 영감을 느끼게 한다. 렘브란트가 그린 <아브라함과 세 천사들>(1646)은 아브라함이 세 천사들을 맞이하는 장면을 다루고 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얼마나 반가운 마음으로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지극정성 손님을 대접하고 있는지를 눈으로 보듯 자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야훼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좋은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창 18:1-8)  

 이렇게 환대를 받고 떠나면서 이들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상황과 형편으로는 도저히 임신을 할 수 없는 처지였으므로 아내 사라 조차도 속으로 웃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약속 받은 대로 놀랍게도 이삭을 얻게 된다.

 렘브란트는 우선 그림의 배경으로 그림 상단 중앙에 용트림하듯 우람하게 서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를 세웠다. 우측에는 텐트 대신에 그가 살던 시기의 탄탄한 집 건물을 그려 넣었다. 이는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화가들이 가끔 도입하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중앙에 날개 단 천사가 황금빛을 환하게 발하며 다리를 내밀고 편안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우리의 시선을 끈다. 그가 천사의 외양으로 나타났지만 그가 하나님 여호와이심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렘브란트는 물감을 붓에 듬뿍 묻혀 두껍게 바르는 세심함을 보인다. 다른 두 천사에 비해 여호와를 단연 크게 그렸는데 그는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빛 자체로 어떤 빛보다 밝다. 다른 두 천사는 등을 돌리고 있거나 반쯤 옆으로 앉았다. 우측 한 계단 낮은 자리에 아브라함이 한손에 그릇을 들고 왼손에 뚜껑달린 물주전자를 땅위에 세우면서 공손히 섬길 자세로 앉아 있다. 아브라함의 이런 태도는 하나님을 절대 신앙하듯이 인간을 존중하는 그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의 뒤편 계단 위에는 나이든 사라가 살짝 문을 열고 아브라함과 세 천사를 섬기기 위해 무엇이나 하겠다는 자세로 서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사라의 태도는 기쁘면서도 이들의 정체를 아직 모르는 상황에서 조금은 머뭇거려 졌을 터이다. 그럼에도 그녀에게서 불신앙의 표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그가 하나님임을 안후에는 두려워하며 끝까지 인종하여 기다리는 착한 여인이었다. 야훼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그에 대한 신뢰와 신앙이 없이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극진한 이웃사랑과 하나님의 약속은 어김없이 실현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드러내고자하는 렘브란트의 작품제작 의도를 읽을 수 있어서 즐겁다. 

이석우 (경희대 명예교수, 역사 문화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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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왜 성경이 필요한가?

Ⅰ. 인류에게 왜 성경이 필요한가?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실존이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종교심을 주셨고 지으신 만물을 통해서 당신을 충분히 이해하고 섬길 수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롬 1:19, 20에,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범죄함으로 마음이 둔해져서 지으신 만물을 보고도 하나님을 몰라보며 죄 아래 사는 비참한 인간이 되고 만 것이었다. 롬 3:10~18에 보니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이태리의 어느 변호사는 목사가 봉독한 여기의 성구를 들어 인권 모독죄로 법정에 고발했지만 담임 목사는 저자가 아니며 저자인 바울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고소사건은 기각판결이 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도리어 조물주 하나님이 배은망덕한 인간을 고발하고 있다. 사 1:2~4에 보니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라고 탄식하셨다.

이렇게 인간의 타락한 종교심 또는 도덕적인 양심으로는 천지만물이 보아도 하나님을 알 수 없는 미련한 인간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러므로 고전 1:21에,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자연계시만으로는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 섬길 수 없게 되었다. 이 말은 자연계시가 불충분하다는 말이 아니고 자연계시 자체는 완전하지만 인간의 죄 때문에 영안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못 보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고 당신을 바로 섬기게 하시려고 예로부터 당신을 나타내 보이신 것을 영감으로 수록한 완전무결한 성경을 주신 것이었다. 히 1:1, 2에,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말은 하나님의 발전적인 게시방법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곧 옛날엔 사람에게 직접 음성을 들려주시기도 하시고 또는 꿈으로, 환상으로 투시하는 방법으로, 상징적인 것으로, 특히 예언 등등으로 당신을 계시해 오시다가 마지막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씀 하셨기 때문에 기록한 성경은 하나님의 최종계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엡 3:5에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다”고 했다. 임 라은 선지 사도들의 이적 특히 성경기록은 단회적이며 또 그들의 기록인 신구약 66권은 절대 가감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란 뜻이다(계 22:18, 9).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들은 옛날과 같이 직접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성경 없이는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과 그 뜻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계시의 기록만이 아니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성경을 볼 때에 구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지금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고 계신다고 믿어야겠다”(김준삼 著 신앙고백서 강해 성경의 필요성에서).

그러므로 이 성경은 확실한 것이며(눅 1:3, 4)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시는 것이고(딤후 3:15) 후대의 신자들을 교훈하기 위함이고(롬 15:4) 특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기 위해 절대 필요한 말씀인 것이다.(딤후 3:16, 7).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 당신이 필요하셔서 영감으로 쓰게 하고 편집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었다.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귀하고 중하신 말씀일세 반갑고 기쁘신 말 많은 중 날 사랑하신 단 말 좋도다 주 예수 날 사랑하시니 즐겁고도 즐겁도다 주 예수 날 사랑하시니 나는 참 기쁘다.


Ⅱ. 왜 인류에게 성경을 주셨는가?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에게는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이것이 짐승과 구별되는 특이중의 하나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독 인간대표인 아담과 행위계약을 맺었다. 이것은 소극적으로는 에덴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것과 적극적으로 생명나무 실과를 먹음으로 영생하는 약속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만이 이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해야할 사람이 사탄의 말을 들으므로 이 행복을 스스로 포기하고 만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해야할 사람이 사탄의 말을 들으므로 이 행복을 스스로 포기하고 만 것이었다.

이 시험의 과정은 사탄의 거짓말을 통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사상을 빼어 버리고 악한 사상을 부식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탄과 인간의 첫 대화에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충동을 일으킨대 대해 하와의 대답은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셨느니라”고 했다. 사탄이 또 여자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했다. 이것이 사탄과 하와의 대화였고 그 후 그들은 타락의 길을 택하고 만 것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타락은 언어를 통한사상의 타락이었다. 이 범죄로 말미암아 행위계약은 파기되고 말았지만 하나님의 본래의 목적은 대표자 아담을 세워 그와 후손들에게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은 실패해도 당신은 그럴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과의 계약을 경신하기를 여인의 후손 중에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허락하시고 그에게 인간이 파기한 행위계약을 준행케 할 뿐 아니라 아담이 어긴 죗값으로 죽는 전 인류의 영원한 형벌을 대신하여 죽으며 살아난 그분을 누구든지 마음에 믿기만 하면 영생을 회복한다는 약속을 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은혜계약인 것이었다. 이 은혜계약 곧 하나님의 구원사상을 인류에게 전달하기 위해 하나님이 말과 글을 사용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성경이란 것이다.


Ⅲ. 왜 특정한 사람들을 통해 성경이 쓰여졌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 곧 인류구원의 사상을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책 중의 책이다. 사상의 전달은 반드시 말과 글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것을 사용하지 않고는 온전한 사상의 표현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주신 말씀을 받아 수록하여 후대에 전할 사람들을 택하셨으니 그들이 바로 선지자와 사도들이었다. 성경의 기자는 약 40명이나 되는데 그들은 왕, 제사장, 학자, 농부, 어부, 세리 등의 직업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실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말씀의 바른 전달을 위해 성령님께서 특별간섭을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성경의 기록은 성령님의 감동 간섭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한마디의 실수도 없는 것이었다.
벧후 1:21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대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고 사 34:16은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고 했고 마 5:18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고, 특히 계22:18,9에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사상을 전담함에 있어서 개인 개인에게 매번 하늘로부터 음성을 들려주시지 않고 왜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시고 기록하게 했는가? 이는 불공평한 일이 아닌가?”라고 하기 쉽다.

우리 이 대목을 바로 깨달아야 하겠다. 그것은 하나님은 실수함이 없이 만민에게 꼭 같이 말씀할 수 있지만 말씀을 받은 인간은 어둡고 둔하고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각양 각색으로 가감하는 과오를 범한다는 것이다.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택하사 영감으로 실수함이 없이 기록하게 하여 후대에 전달케 한 것이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Ⅳ. 왜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할 필요가 있었는가?


왜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할 필요가 있었는가? 성경의 많은 기자 중 베드로 사도를 들어 살펴보자.
그는 행 4:13을 보면, “본래 학문 없는 범인”이었다. 아마 배우고 싶었으나 가난한 환경 때문에 배우지 못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어부노릇을 하는데 학문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고 포기했을 것이다. 아무튼 학문이 없는 사람임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동생 안드레의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믿은 뒤부터는 그의 탁월한 감화력이 있는 말씀으로 참 지식을 배울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늦게나마 그는 선생을 잘 만난 행운아였다. 무엇보다 주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시고 승천하신 뒤부터는 이 모든 것이 구약성경대로 된 줄 믿고 성경연구에 열중했으며 나중엔 글을 통해 복음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나이가 들었지만 말하는 것과 글 쓰는 은사를 받은 것을 깨닫고 복음을 글로 표현했는데 그것이 베드로 전후서였다. 역사가들은 본서의 저작 년대를 64년~68년이요 순교한 해를 68년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 시대는 로마황제 네로의 대 박해 때였다. 그러니 그의 저서활동은 환경이 좋은 때가 아니요 더욱이 연로한 때요 죽음이 임박한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이 정리되면 주의 일을 힘쓰겠다!” “글을 쓰겠다!" 등등으로 말하기만 그 때 가면 ”이젠 늙었어!“하고 체념하고 만다.

주의 종 베드로는 그리스도께 받은 복음의 말씀이 후대에 바로 전달되는 것이 일편단심 소원이었다. 그래서 복음을 말로 전하고 듣는 것이 은혜로운 일이긴 하지만 청중은 제한되어 있고 또 세월이 지니면 잊어버리기 쉬우므로 복음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빼기도 하고 더하기도 하는 염려를 없애기 위해 변하지 않는 글로 전할 필요성을 깨달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작업에 열중한 것이었다. 그것이 벧후 1:15의 말씀이었다. 곧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고 했다.

우리는 다시 한번 기독교 복음이 말로만 전달된 것이 아니라 완전한 기록계시로 전달되었음을 깨달아야 하겠다. 만일 기독교 복음이 말로만 전달이 되었다면 지금쯤은 해괴망측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성경기록은 당대의 신자를 위함이 아니요 후대에 믿는 자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롬 15:4에,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또 후대에 바로 전하기 위해 문서전도에 적극 협조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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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유래

성경 2009. 3. 29. 09:42

1. 성경의 유래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신비스러운 책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것은 흔히 "책"(the Book)이라고도 불립니다. 이같이 칭하는 이유는 그 책 자체가 벌써 하나의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영어로 "바이블"(Bible)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원래 "책"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 성경은 여러 곳에 산재해 있던 40여명의 저자들이 1600여 년 동안에 걸쳐 저술한 것으로서 66권의 책을 편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각 부분의 내용이 서로 모순됨이 없이 오히려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오늘 우리가 이 책을 갖게 된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실지로 우리가 이것을 더욱 깊이 연구해 가면 그것이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올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성경이 기록된 방법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알려진 두개의 큰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구약은 신약에 비해 3배나 분량이 많으며 기록도 그리스도의 탄생 400여 년 전에 완성된 것입니다. 성경의 원본은 동물의 가죽(양피지)이나 파피루스 초목으로 만들어진 종이 위에 손으로 써 놓았다 합니다. 그 당시에는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매 장마다 손으로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되었습 니다. 그러므로 사본들이 드물었고 매우 귀중했습니다.


구약의 39권은 아람어로 된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39 권 중 처음 5권은 주전 1500 년경에 모세가 쓴 것이고, 나머지 책들은 그 후 약 천년동안에 저술된 것인데 주전 400년경 서기관 에스라가 그 책들을 편집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습니다(느헤미야 8:5). 최초의 훌륭한 구약의 번역서는 기원전 3세기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한 것으로 셉투아진트(70이 라는 뜻)라고 불립니다. 그 까닭은 아마 70명의 학자들에 의해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을 희랍어로 번역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가르치실 때 이 번역서를 자주 인용하셨습니다.


신약 27권은 여덟 사람이 희랍어로 원본을 쓴 것인데 그 대부분의 저자가 그리스도의 사도들이었으며, 주후 1세기에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 당시에 일어났던 획기적인 일들과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진 일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 다. 성경 각 권의 원본은 모두 분실되었거나 파손되어 버렸지만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원본의 내용과 동일합니다. 이 원본들의 사본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3개의 사본은 로마의 바티칸에 보존되어 있는 주후 4세기에 기록한 바티칸 사본과, 런던 대영 제국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주후 5세기에 기록된 알렉산드리아 사본, 그리고 역시 대영 제국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주후 4세기에 기록한 시내 사본 등입니다. 이외에도 이만큼 중요하지는 않아도 수많은 사본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사해사본은 1947년에 사해근처의 동굴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주전 1세기나 2세기경에 기 록된 것으로 최근의 구약의 번역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사해사본 보다 먼저 기록 된 사본들과의 원문 대조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구약성경의 저자들의 본래의 메시지를 갖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신약 원본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신약이 저술된 직후에 만들어진 번역서 들인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라틴어로 기록한 불가타(Vulgate)라고 부르는 것으로 주후 405년에 제롬에 의해 완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초대교회 교부들이 만든 수많은 성경 인용문들이 있습니다. 희랍어 원본과 초기 번역서들 그리고 교부들의 인용문들을 학자들은 서로 비교해 가며 신약저자들이 쓴 내용을 거의 정확하게 단정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최 초에 준 그것과 동일한 것으로 필사할 때 다소 애로가 있었 더라도 성경의 뜻과 내용에는 변화가 가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 번역본

처음으로 성경이 영어로 번역된 것은 죤 위클리프가 22년 동 안의 힘든 노력으로 1382년에 완성한 것입니다. 1456년에는 요한 구텐베르그에 의해 인쇄술이 발명됨으로써 성경의 출판 을 훨씬 빠르게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인쇄상의 애로도 거의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구텐베르그가 처음으로 인쇄한 책은 라틴어 성경이었습니다. 윌리암 틴데일이라는 사람은 천주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약을 번역하여 1525년에 인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인쇄한 사본이 대부분 런던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 불태워져 버렸고, 그 자신도 백성에게 성경을 나누어주었다는 이유로 사형대에 올라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는 최후에 "주님 이시여, 영국 왕의 눈을 뜨게 하옵소서"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처음으로 성경전서를 영어로 인쇄하는 일은 역시 영국의 마일스 커버데일이라는 사람이 수행 했습니다. 다른 번역서도 뒤따라 나오게 되었고, 1604년에는 영국 왕의 눈도 띄어져 드디어 당시의 저명한 학자들에게 킹 제임스판(King James Version) 성경전서의 번역을 하게 하였습니 다. 그리하여 54명의 학자들이 이 일을 1611년에 완성시켰습니다. 그것이 수 백년 전에 번역되 었지만 아직도 가장 많이 애독되는 영어 번역본 중의 하나입니다. 1982년에는 뉴 킹제임스판 (New King James Version)이 출판되었습니다.


킹 제임스판(KJV)이 나온 후에 다른 몇 가지 역본들이 나왔습니다. 1885년에는 84명의 영국 과 미국의 학자들이 킹 제임스판을 발간할 당시 발견되지 않았던 사본들을 참조하여 영어개정 판(English Revised Version)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번역판은 1901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이를 미국 표준판(American Standard Version)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개정한 개정 표준판(Revised Standard Version)이 1952년에, 그리고 New American Standard는 1970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번역본들은 고어체를 이해하기 쉬운 현대어로 고치고 최근에 발견된 사본들을 통해 원문의 정확성을 높이려는 의도를 갖고 번역된 것들입니다. 또, 1978년에는 NIV(New International Version) 등 그 후에도 여러 번역본들이 출판되었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도 독 자적인 번역본들을 갖고 있습니다. 라임즈 듀아이 카톨릭판(Rheims Douai Catholic Version)의 역본은 1582년에 출판되었는데 그것은 1970년에 New American Bible로 대체되었습니다. 카톨릭에서 사용하는 성경은 다른 번역판 신약의 책과 똑같고 구약도 같으나 구약에 14권의 책들이 더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여분의 책을 가리켜 외경(Apocrypha)이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근원이 의심스럽다"는 뜻입니다. 이 의심스러운 책들은 희랍어로 쓰여졌는데 구약 히브리어 정경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카톨릭판 이외의 성경에서는 제외 되고 있습니다.


성경의 한글 번역은 스코틀랜드부터 만주에 와서 선교하던 J. 로스가당시 만주에서 몇 명의 한국인과 협력하여 1882년 누가복음을 시작으로 일부분씩 번역하다가 1887년에 이르러 "예수셩교전셔"라는 이름으로 신약이 완역되어 간행했는데 이것을 "로스 번역(Ross Version)"이라고도 합니다. 국내에서의 성경 번역은 1893년 에 공선 성서번역위원회가 조직되어 1900년에 신약이 완역되었으나, 미흡한 점이 많아 1904년에 개역이 완료되었고, 1906년에 재수정하여 공인역으로 출판하였습니다. 그 후 1910년에 구약까지 완역되었고, 1911년에 신약을 포함하여 "셩경젼셔"로 합본, 간행되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애독되는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은 공선 성서번역위원회가 펴낸 위의 번역본을 대한성서공회가 여러번 편집 및 번역을 고쳐 1956년에 펴낸 것입 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성령의 감화로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하였습니다. 성령이 성경을 쓴 사람들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이 가르친 것으로 하니...(고전 2:13)" 이 때문에 성경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 이는 구절도 자세히 살피고 연구해 보면 곧 사라져 버립니다. 성경이 진리라는 것은 그것이 갖고 있는 몇 가지의 특색으로 밝힐 수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과학서적은 아니지만 과학적으로 정확한 책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정확하며 역사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모든 시도가 실패했습니다. 성경이 예언적으로도 정확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성취된 그 많은 예언들에 의하여 증명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공평하며, 모든 사람의 선과 악을 가려주며, 하나님 자신 의 "마음에 합한 자"라도 그의 죄를 묵과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높은 도덕의 표준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의 적들은 이것을 없애 버리려고 수없이 많은 시도를 했지만 결국 불멸의 책으로 남아 있습니다.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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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입었으나 추방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 3:21-24).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금단의 열매를 먹음으로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에 의해 저주를 선고 받았고,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그들은 오직 “작은” 죄로 여기는 현대인들의 마음에 가혹한 처벌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눅 12:48).

아담에게는 많이 주어졌습니다. 그는 집으로 완벽한 낙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에덴동산의 나무들로부터 그가 필요한 모든 음식들이 주어졌습니다. 그에게 생명 나무도 주어졌습니다 ? 그것은 그가 먹었던 것이며 땅에서 그에게 끝없는 생명을 줄 것입니다. 그가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그리고 금단의 열매의 나무 열매를 먹었을 때에 이 위대한 유익들은 그에 의하여 옆으로 던저졌습니다.

아담의 경우는 어린이가 크리스천의 가정에 태어난 것과 같으며 그리고 교회의 보호 속에서 유년기부터 성장하였으며 ? 그는 그 모든 것을 내어 던졌으며 ? 그리고 그의 크리스천 가족과, 그의 교회, 그리고 은혜의 의미들을 떠났으며, 은혜의 설교로부터 떠났고 그의 부모들의 기도로부터 그리고 교회 가족들안에서 좋은 성도들에게서 떠나갔습니다.

우리들은 여론 조사자인 죠지 바나에 의해 말하여 주는데, 그 88%의 복음주의적인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자라난 그들이 동일하게 하는데 ? 그들 중 팔십 팔 퍼센트가 그들의 교회를 떠난다고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죠지 바너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 “복음주의적인” 젊은이들이 아담이 동산에서 했던 것처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같은 것을 행하고, 그리고 그들 자신들에게 엄청난 비극을 가져오고 있으며, 바로 그들의 조상 아담이 했던 것처럼 하고 있습니다. 그 비유는 주목하지 않는 것이 너무 비슷한 것입니다.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눅 12:48).

아담과 같이, 많이 요구되는 것이 그의 타락은 의로움에서 죄속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그리고 비참하고 비천한 타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끝없는 자비로 아직도 아담과 이브를 향한 은혜를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타락한 죄인들을 향해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것이 오늘 밤 저의 설교의 주제입니다. 아담의 무서운 죄에서 불구하고,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2:4-5).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하심이며 그것을 우리들이 본문에서 보는 것입니다.

I. 첫째, 하나님께서 가죽 옷으로 그들을 입히셨다. 일어서서 21절을 큰 소리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21).

여러분 앉으시기 바랍니다.
그들 자신들이 무화과 잎으로 만든 앞치마는 부적당하였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가죽 옷을 그들에게 입히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죄는 피 흘림이 없이는 덮어질 수 없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처음 그들이 배운 것입니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대속”이라고 번역된 히브리말은 그 요절이 “카프하”입니다. 그것은 “덮다”는 의미입니다(스트롱 3722번). 그래서 그들은 덮어졌고, 하나님의 의로, 대속의 피의 지불로 덮여졌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그들에게 선명한 그림인데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 이 가죽옷들을 만드는 데에 피를 흘림은 한 모형이고 예언으로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1:5). 가죽옷은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것은 피를 흘림으로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옷들은 또한 죄의 “덮어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로마서에서,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7).

그것은 또한 주목되는 것으로 히브리 단어는 가죽은 단수이고, 킹제임스 버전처럼 복수가 아닙니다. 히브리 단어는 “가죽”으로 “가죽들”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게 번역된 “가죽”으로 케일과 델리취에 의하여 그리고 루폴드에 의해 번역되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혼자 희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말하기를,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 9:25-26). 히브리서에서 이 요절들을 말하는 것을, 길 박사는 그들이 로마 카토릭들이 대답한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매일 제물로 드림을 예표하고 있는데…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그리스도는 모두를 위하여 단번에 천국에 들어가셨고, 그가 앉아 계시는 곳에서 계속적으로, 그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 길 박사., 신약 성경 주석, 침례교 표준 출판사, 1989 재판, 제 3권, 441면).

그러므로, 단 하나의 가죽은 아담과 이브를 입히는데 사용되었고 우리들의 죄를 위해 대속의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가 혼자 행하신 것의 모형입니다. 그리고 단수의 가죽은 또한 구원의 한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가죽들이 사용되지 않았으며 그러나 오직 하나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 4:12).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딤전 2:5-6).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21).

하나님이 그들을 입히신 가죽은 계속적으로 기억되는 것으로 피는 반듯이 대신하여 흘려야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되자 그리스도가 그 모형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고, 그리고 우리 대신하여 죽으셨으며, 우리 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그리고 우리 죄를 덮으시기 위하여 그의 보혈을 흘리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면전에서 그것을 씻었습니다. 구원을 얻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로 나오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의 보혈로 반듯이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의로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에이. 더블유. 핑크는 말하기를,

어떻게 아름답고 그리고 완변한 것은 모형입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이 가죽을 제공하신 것으로, 우리의 처음 부모들을 입히고 가죽을 그들에게 입히셨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전부하셨습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수동적이었습니다. 동일한 축복의 진리는 탕자의 비유에서 예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방랑자가 [그 자신을 죄인으로 보았을 때에], 아버지의 마음의 은혜는 보여졌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의 종들에게 말하기를, “최고 좋은 옷을 가져오고 그에게 입혀라 하셨습니다” (눅 15:22). 그 탕자는 그 겉옷을 준비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자신이 입지 않았고 모든 것은 그를 위하여 진행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구원을 받는] 모든 죄인에게 일어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우리들이 노래할 것은,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할 것은 내 영혼의 나의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리라; 그분이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셨네, 그분은 의의 옷으로 나를 덮으셨네.” 이사야 61:10 (에이. 더불유. 핑크, 창세기에서 이삭 줍기, 무디 출판사, 1981 재판, 44-45면).

II. 둘째로, 하나님께서 동산에서 그들을 내어 보냈습니다.

일어서서 이십 이절을 큰 소리로 읽으십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 3:22).

여러분 앉으시기 바랍니다. 루터는 말하기를,

읽는 것으로부터 우리들은 해야 하는데 …결론으로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한 다수 (사람들) 이다, 바로 우리들이 1:26절을 읽은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이런 요절들은 신적 근본이 하나이고…그리고 인격으로 복수이시고, 또는 우리가 말하듯이 (거룩한) 삼위일체이심의 둘 다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신비는 (삼위일체) 신약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그래서, 한 신적 근본속에 삼위가 계시고, 그리고 신비는…세상의 바로 시작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것은 선지자들에 의하여 (더욱 자세히) 설명되었고,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 (신약성경에) 으로 완벽하게 밝혀진 것이며…그러므로 이 메시지는 분명하게 성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의 (크리스천) 기사를 지지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한분이시고 그리고 삼위이십니다 (말틴 루터 박사., 루터의 창세기 주석, 젠더밴 출판사, 1958 재판, 제 1권, 87면).

저는 이 요점에서 완벽하게 개혁주의를 찬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삼위일체의 삼위가 서로 인간의 타락에 대하여 서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장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 번역 주석은 이십이절은 콜론으로 이것의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것은 만약에 삼위일체의 사람들이 타락한 인간의 눈앞에 슬픔에 의한 것을 극복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들은 계속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레우폴드는 “그 단어 ‘슬픔’을 마치 하나님의 마음가지심으로 표현합니다” (에이취. 씨. 레우폴드 박사., 창세기 주석, 베이커 출판사, 1984 재판, 제 1권, 180면).

그래서 슬픔으로,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동산으로부터 내어보내셨습니다.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 3:22).

자, 타락후에, 만약에 인간이 생명의 나무로부터 먹었다면 그는 죄로 저주 받은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씨.에프. 케일은 말하기를, “죄의 상태에서 영원한 생명은 영혼의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러나 끝없는 슬픔이고…낙원으로부터 추방되고, 그러므로, 인간의 선에서 심판을 가하는 것이었으며, 계획 되었고, 일시적인 죽음이 그에게 경험하는 동안,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그를 보존하는 것입니다” (씨. 에프. 케일 박사., 구약 성경 주석, 윌리암 비. 에드맨스 출판사, 1973 재판, 제 1권, 107면). 그리고 레우폴드 박사는 말하기를,

그의 타락에서 인간을 위하고 그리고 슬프게 변질된 상태에서 이 죄의 눈물로 영원한 본질의 습득과 죄로 물들어진 몸은 비통한 재난이 될 것입니다. 그는 이 죽어야할 고리를 절대 “끊을 수 없어 끌려 갈 것”입니다. 복구[부활된 몸]됨의 그리스도의 사역은 방해를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에이취. 씨. 레우폴드 박사., 같은 책 181-182면).

만약에 아담이 그의 타락한 상태에서 생명의 나무 과일을 먹었다면, 그는 “죄로 더렵혀진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 마치 드라큘라 몬스터처럼, “죄로 더렵혀진 몸”이 절대 죽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자 이십 삼절의 처음 말씀들의 주석은,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그를 에덴동산으로부터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 말씀은 여기서, “그를 내어 보내셨다.” 그리고 이십 사절을 보세요, “그래서 그는 사람을 이끄셨습니다.” 엉거 박사는 말하기를, “그 처음 히브리 단어는 ‘떠나게 하다…또는 거절하다.’ 두번째 동사는, 그것은 더욱 인상적인 것으로 ‘쫓아 내시고 또는 추방하다’” (메릴 에프. 엉거 박사., 구약 엉거 주석, 무디 프레스, 1981, 제 1권, 21면). 이것은 아담과 이브는 마지못해하는 것을 보여 주며, 힘든 세상 밖으로 동산의 낙원을 떠나는 것을 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동산에서 내어 보내졌고, 그리고 케루빔들은 그들을 오지 못하도록 지키게 되었고, 생명의 나무를 그들로 부터 지켰습니다. 에덴동산은 대홍수가 그것을 파괴하지까지 존재하였는데, 그러나 그때 인간은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청교도 주석가인 요한 트랲은 말하기를,

그리스도는…그의 자원하는 추방에 의해 믿는 자들을 그들의 천국의 본향으로 데려 가시기 위해…그리고 “[그들에게] 생명 나무과를 먹을 수 있도록,” 그것은 하나님의 낙원의 중앙에 있는 것인데, 먹을 수 있도록 하신것입니다 (계 2:7). 우리의 모든 생명이 추방되는 것보다 못한 것으로 아무것도 아닙니다…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그분은 우리들이 있을 장소를 준비하러 가셨고, 돌아오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날에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요한 트랲, 신구약 성경 주석, 트렌스키 출판사, 1997 재판, 제 1권, 22면).

그리스도는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6:33).

크리스천들로서, 우리들은 죄의 세상과 결혼하고 계속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은 불완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마치 아담과 이브처럼, 우리들은 옷 (그리스도의 의로)을 입었는데 그러나 우리들은 쫓겨난 상태에서 살고 있고, 타락한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저 위의 완벽한 낙원으로 데리고 가실 때까지입니다. 그것은 왜 우리들이 예수님이 오실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리고 예수님은 천국에 계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 3:1-2).

그리스도께로 나오십시오. 그의 보혈로 씻음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애착이 위에 있는 것을 찾고, 땅위에 있는 것을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 3:21-24).

(눅 12:48; 엡 2:4-5)

I.   첫째, 하나님께서 가죽 옷으로 그들을 입히셨다,
창 3:21; 레 17:11; 히 9:22; 계 1:5; 롬 4:7; 히 9:25-26;
행 4:12; 딤전 2:5-6; 눅 15:22; 엡 2:8; 사 61:10.

II.  둘째로, 하나님께서 동산에서 그들을 내어 보냈습니다,
창 3:22; 창 1:26; 3:23-24; 계 2:7; 요 16:33; 골 3:1-2.


나뭇잎 앞치마인가 가죽 외투인가?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 3:7).

사탄은 우리의 첫 조상들을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금지된 과일을 먹게하여 죄를 짓도록 유혹하였습니다. 그들이 먹었을 때에, 그리고 하나님을 불 순종하였을 때에, 그리고 사탄이 또 다른 방법으로, 루터는 말하기를, “절망으로 그들을 파괴하는” 것을 시도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눈아 밝아졌습니다.” 이것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을 참조합니다. 깨달음으로 죄인은 그의 죄와 그것을 미워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죄의 자각 아래로 오며, 아담과 이브가 그렇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의 죄를 보게 될 때, 그의 죄의 무서운 것을 깨닫게 되며, 그는 그리고 마귀에 의하여 끌려 내려가게 되며, 마귀는 그에게 그가 지금은 소망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리고 추구하는 것은, 루터는 “실망으로 그들을 파괴 시킨다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이 유다에게 일어났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배반한 악함을 보았을 때에 그는 구원의 감각으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경적인 회개로 그의 마음을 바꾸지 않았는데 그것은 헬라어로 “메타노이아” 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그는 회개하였는데, 그러나 또 다른 헬라어는 “메타메로마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것은 “후회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경우 후회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그리고 그를 다른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유다가 하였던 같은 종류의 “후회”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죄를 슬퍼하였으나, 그러나 그들의 마음들은 새로운 방향으로 가려고 바꾸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처음 부모들의 슬픔 (과 유다) 는 잘못된 “종류의 슬픔”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 7:10).

죄인에게 양심의 가책이 올 때, 그것은 처음에는 자주 세상의 근심[그것]은 사망입니다” 그의 죄에 의해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슬픔의 감정을 느끼는 대신에 죄인이 깨달은 것은 자주 “세상 근심[그것]은 사망입니다.” 그는 영혼의 큰 고통을 느낄 것인데, 그러나 그것은 자신 중심적인 고통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 자신에 대하여 유감스럽게 느낄 것이고, “신적인 유감이 아니며” 그는 그의 법을 깨뜨리고 그리고 그의 마음에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처음의 것과 같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 자신 중심적인 고통 –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담실에서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 중심의 슬픔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죄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소위 말하는 “회개”는 그들 자신들을 위해 슬픔 외에 더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고, 슬픔은 그들이 이처럼 무서운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의 슬픔을 느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그들 자신에 대하여 슬퍼합니다. 상담실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것에 대한 “신적인 슬픔”과 자신의 슬픔 사이에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죄악된 상태를 깨워주실 때에, 그는 자주 그 자신으로부터 슬픔 속으로 끌어 당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를 아무것도 좋은 것이 없는 것이고, “세상의 슬픔은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처음 부모님들의 마음들이 그들의 눈이 밝아지고 그리고 그들이 무엇인가 깨닫게 되기 이전에 사탄은 자기 자신의 슬픔을 가져다 주었던 것입니다. 그 마귀는 그들의 마음 앞으로 자신의 슬픔을 가져왔고, 말틴 루터는 말하기를 “그들을 파괴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의 슬픔은 바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파괴로 인도하는 것이고, 그처럼 그것은 유다가 한 것이고, 그는 죄송하게 여기고 밖으로 나갔고 그 자신을 목메었고, 영원한 죽음의 아들이 되었으며 지옥의 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근심은 사망에 이르느니라.” 여러분의 자신을 위한 불쌍함을 느끼는 대신, 여러분은 반드시 미안함을 느끼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리고 그의 법을 깨뜨리는 것이고, 이처럼 그들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그들의 죄악된 상태를 깨달았는데,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불순종함에 대한 고통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것은 죄의 천박한 죄의 자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반드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은 아주 슬픔을 느낄 것이고, 여러분은 큰 고통을 느낄 수 있는데, 그리고 아직도 경성하지 않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고, 그리고 그의 사랑을 저버려 그의 얼굴로 되돌리고 그럼으로 그것을 가치 없는 것으로 칩니다. 죄인이 깨어있는 이런 표면상의 상태에서 하나님이 그를 도우실 수 없습니다.

아인 에이취. 므레이는 말하기를,

죄의 자각 아래서 개인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행동을 바꾸려고 시도하는데…회심을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부분적인 변화가 아니며, 죄송함의 일시적인 느낌이 아닙니다, 그러나 삶의 전체의 변화입니다 (아이 에이취. 무레이, 옛 복음주의: 새로운 각성을 위하여 오래된 진리들, 진리와 진실의 바너, 2005, 9-10면).

죄인이 마지막에 보는 것은 그가 그 자신으로서 이처럼 완전하게 변화되는 능력이 없는 것을 볼 때에 삶의 “전체적인” 변화는 오는 것입니다. 옛날 찬송이 알기 쉽게 말해주는 것은,


나의 일들이 아니오
나를 깨끗케 할 수 있는 것은,
나병환자가 깊은 병으로 누운 것과 같네.

여러분이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더 노력하여도, 그것이 더욱 더 불가능하게 만드네. 죄는 다시 힘을 얻고 그리고 (희망적으로 여러분은 죽네, 사도 바울처럼 그것을 로마서 7:8-9에 기록하였네, 본문은 저는 내일 밤에 설교 할 계획인데, 설교 제목으로, “위기의 회심과 하나님의 법”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그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두 눈은 어떻게 열렸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죄인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인 에이취. 무레이는 말하기를, “죄의식 아래서 개인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행동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같은 책., 9면). 아담과 이브는 행동의 변화는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 3:7).

그들은 그들 자신들이 일을 함으로 그들의 죄의 결과를 덮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이 만든 앞치마는 한 모형으로, 잃어버린 사람의 사진으로 그의 죄를 숨기려고 그 자신이 무엇인가 시도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일을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말하는 것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 3:5).

무화과 잎의 그 앞치마들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보혈이 없이 그의 죄를 덮으려고 사람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것이 어떤 좋은 것이라도, 여러분이 어떤 결심을 하였을지라도, 여러분이 아무리 열심히 크리스천이 되려고 노력하여도 – 모든 이 인류의 일들은 오직 “무화과 잎”에 불과합니다 – 인간의 종교는 보혈이 없이 구원의 거짓 관점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보혈로, “창세 이후로부터 죽임 당하신 어린양” (계 13:8) 하나님의 목적과 마음속에서. 하나님은 거짓 안전을 벗기시고 그들이 피가 없는 무화과 잎 뒤에 숨어서 그들이 느꼈던 것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이 없는 사람들의 종교의 그림입니다.

우리들은 다음번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들 자신이 구원하려는 그들의 거짓 희망을 어떻게 벗기시는지, 어떻게 하나님이 그들에게 선행의 “무화과 잎들”로는 구원이 없는 것을 보게 하시고, 어떻게 그들이 죄인이고 그리고 그들 죄속에 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숨길 수 없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에 그들의 모든 변명이 사라지고, 그리고 그들은 완전하게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 자신을 그들의 죄를 씻기시고 그리고 가죽옷으로 그들을 입혀 주십니다. 창세기 3:21을 펼치시기 바랍니다. 일어서서 그것을 큰 소리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21).

여러분 앉으시기 바랍니다.

이 겉옷들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그 자신의 의로움으로 그들을 입히시는 것입니다. 티모디 린 박사는, 구약의 권위자인데, 자주 지적하기를 히브리 단어는 단수이고, 가죽이 아니고, 그러나 가죽입니다. 겉옷들은 하나님이 한 동물로부터 그들을 덮도록 만들었습니다 – 상징하는 사실들은 거기에 오직 그리스도가 죄들을 덮을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보혈은 가죽을 벗긴 짐승이 흘린 것입니다. 이것은 죄의 대속하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능력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로부터 씻어내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부여 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그 자신의 의로 죄인을 덮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의 의로움 홀로 옷을 입히시네,

보좌 앞에 흠도 없이 서게 하시네.

   (“굳건한 반석” 에드워드 모테 작, 1797-1874).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의 짐으로 피곤할 때에, 여러분이 “무화과 잎”으로 여러분의 죄를 덮으려고 시도하고 “선행”을 하고 개선함으로 여러분 자신을 구원하려고 시도하는 게임을 통하여 할 때에, 여러분이 하는 것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았을 때에, 또는 미래의 희망을 가질 때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를 씻을 수 있고 덮을 수 있는 것이며, 그리고 나면 여러분은 엘비나 엠. 홀의 유명한 복음송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좋은 것이 하나도 없네
무엇을 당신의 은혜를 선포하나 – 나는 나의 겉옷을 희게 씻으리   갈보리 어린양의 보혈로. (“예수님이 그것을 모든 갚았네” 엘비나 엠. 홀 작, 1820-1899).


그러나 거기에 창세기 3:21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일어서서 그것을 큰 소리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21).

여러분 앉으시기 바랍니다.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입히기 위하여 그들을 위해 피를 흘려야 하였습니다. 지금 출애굽기 17:11을 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절을 큰 소리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보혈입니다…”로 시작되는 말을 읽읍시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대속”이라는 단어에 줄을 그으세요. 가장 자리 다음에 “덮음”이라고 쓰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히브리 말로 “카파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덮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레위기 17:11을 번역할 수 있습니다,

“피가 영혼을 덮어 죄를 속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영원한 과거로부터, 그를 신뢰하는 사람들의 죄를 덮어 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들은 덮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들을 보실 수 없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그 책”이 열려질 때에,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의 기록을 보실 때에, 그는 기록 된 죄를 보지 못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악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여졌기 때문입니다!

한 친구가 한번은 말하기를 그 “덮어짐”은 구약성경의 개념이라고 하면서 신약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아마도 제가 배운 것보다 강력한 분배의 관점의 영향력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육 칠주 동안 때때로 말하였던 것에 대하여 기억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저는 크루덴의 사전을 뽑아서 “덮었다”는 단어를 찾아 보았습니다. 충분하게 그것은 신약에 있었습니다! 로마서 4:7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처음 말을 지나서 “복이 있도다” 부터 시작합시다. 그것을 크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7).

예, 저는 이것이 시편 32:1에서 인용한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성령께서 히브리어 구역으로부터 신약의 헬라어로 인용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헬라어 단어들은 성령에 의하여 히브리어 대신에 가져왔습니다 –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으며” – 구약과 신약 성경 둘다입니다(딤후 3:16). 또한 우리들은 성령께서 말씀하신 헬라어 신약을 봅니다, 그것은 “죄가 가리움을 받은 자가 복이 있도다.” 헬라어 단어는 “덮어짐”으로 번역된 것은 “에피카룹토”이고 그것은 “숨기는 것, 또는 덮는 것” (스트롱).

당신은 구약과 신약 성경 둘 다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는 여러분의 죄를 덮는 것입니다 (레 17:11).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7). 그리고 그 “가리움”은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입힌 것으로 가죽 겉옷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 받는 것은, 여러분이 반드시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덮여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죄들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여야 하며, 그리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보지 않으실 것입니다. 일어서서 “그대 속에 숨기네” 여러분의 노래곡 5장 찬양의 후렴을 부르겠습니다. 이 노래는 그리스도와 그리고 그의 보혈과 의로 연합됨으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숨겨지는 것에 대한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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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인물 : 믿음의 조상들편 □ 제자화를 위한 훈련 교재□

제 1 과 고귀하게 창조된 아담

성경본문 : 창세기 1 : 26 ∼ 28
외울말씀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 하시고(창 1 : 27)
부를 찬송 : 40장, 78장, 28장

하나님의 창조는 질서가 있었고 목적이 있었다. 생물들을 위하여 먼저 무생물들을 창조하시고, 생물은 고등 생물을 위하여 열등생물을 먼저 창조하셨으며 그리고 맨 나중에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 첫 사람이 아담인데 히브리어로 ( 아담)의 뜻은 '붉은 흙' '사람'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는 최초의 사람이였기 때문에 가족적 배경은 없다. 그의 아내는 하와였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 1 : 16),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어 지음을 받았다(창 2 : 7).

첫째 엄숙한 계획에 의한 창조이다

아담은 맨 처음 사람이요, 하나님의 대표적인 창조되었는데 하나님의 엄숙한 계획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이 계획을 하나님의 작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는 말씀은 삼위일체대신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 성 삼위 사이에 행하여진 작정이었다. 특히 사람의 창조는 다른 피조물들의 경우보다도 훨씬 더 엄숙히 행하여졌다는 것이다.
☞ 창 1 : 26

둘째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심이다

사람이 특별히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이 가장 고귀하게 나타난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어떤 것일까? 하나님의 형상이란 외모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에는 거룩, 의로움, 선하심 영원한 것 등의 영성이 동일하다는 뜻이며 지, 정, 의를 갖춘 인격성이 동일하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의 옷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데 그 육체마저 인간의 형상과 동일하게 되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처음의 인간은 무죄하며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게 지어졌다.
☞ 엡 2 : 10

셋째 영과 육으로 창조됨이다

인간 창조의 원료는 두 가지이다. 창 2 : 7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는 말씀은 우리 인간은 신체와 영혼의 기원에 분명히 구별한다. 육체는 땅의 흙으로 조성하셨고 영혼도 하나님의 새로 지으신 실체로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는 물질적 대상이요, 영혼은 영적 세계의 대상이다. 육체는 물질로 인하여 욕구를 채울 수 있고 영혼은 물질로 만족할 수 없고 영적 양식으로만이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 고전 15 : 48∼49

넷째 인간을 선하게 창조하셨다

1.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어두움이 없고 오직 선 자체인 것처럼 좋은 것이었다.
(1)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이 비록 우리 인간의 눈에는 나쁘고 악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 나쁜 것이 아니다.
(2) 인간의 눈에 나쁘게 보이는 그것이 진실로 나쁜 것이라면 그것은 선 자체이시고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만드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죄, 질병, 사단의 계략 등이다.

2.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 분의 마음에 만족할 만큼 훌륭하게 창조하셨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오직 선한 것만을 지으셨다.
☞ 창 1 :31

다섯째 인간 창조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왜 인간을 창조하셨을까?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1. 만물을 다스리는 주관자를 삼기 위함이다(26)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후에 그 피조물들이 만물을 다스리고 주관케 하도록 하며, 또 만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사람을 창조하시게 된 것이다.
2.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출 20 : 8, 전 12 : 13, 고전 10 : 31). 요리문답 제1문답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니라"고 하였다.
3. 생육, 번성, 땅위에 충만케 하시려고(28∼)창조하셨다.
☞ 창 1 : 28

맺는말

우리 시조 아담은 하나님의 엄숙한 계획에 의해, 당신의 형상대로 영과 육으로 창조하셔서 만물을 다스리고 주관하시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생육으로 번성하여 땅 위에 충만 하라고 하셨으니 최대의 복 받은 자로 창조된 것이다.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조물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세세토록 돌려 드려야 하겠다.

제 1 과 성경대학문제집

학번 : 제 번 반 성명: (남, 여)
★주여! 고귀하게 창조된 인간이기에 하나님만 의지하게 합소서!

Ⅰ. 다음 물음에 답하시오
1. 하나님이 지으신 첫 사람 '아담'의 뜻은?
2. 하나님의 엄숙한 계획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3.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을 설명하라
4. 에베소서 2 : 10에 의하면 우리는 왜 지음 받았나?
5. 인간창조의 목적 3가지는?
6. 하나님은 어떤 순서로 생물을 창조하셨나?
7. 사람은 왜 특별히 창조되었다고 할 수 있나?
8.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셨나(1 : 28)?

Ⅱ. 다음 물음에 맞는 답의 번호를 ( )안에 써넣으시오
1. 맨 처음 사람이요 하나님의 대표자로 창조된 사람은? ..........( )
① 아담 ② 하와 ③ 가인 ④ 아벨
2. 창조의 원리에 어긋난 것은? ....................( )
① 엄숙한 계획 ② 하나님의 형상대로 ③ 죄, 질병, 사탄 ④ 영과 육으로
3. 인간이 창조된 때는? .........................( )
① 넷째 날 ② 다섯째 날 ③ 여섯째 날 ④ 안식일
4. 인간창조의 원료는? ........................( )
① 흙·생기 ② 흙 ③ 생기 ④ 공기
5. 인간이 세세토록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는? ..............( )
① 인간은 선 그 자체이므로 ② 최대의 복을 받음
③ 흙으로 만들어졌으므로 ④ 번성했으므로

Ⅲ. 다음 물음의 ( )안에 O, X로 표하시오
1. 인간의 신체와 영혼의 기원은 분명히 구별된다 .............( )
2. 처음의 인간은 무죄하게 창조되었다 ..................( )
3. 하나님은 인간 안에 어두운 부분도 창조하셨다 ............( )
4. 하나님의 형상은 외모를 뜻한다 ...................( )
5. 창조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행하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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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로 바쳐진 이삭

성경본문 : 창세기 22 : 1∼19
외울말씀 :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창 22 : 9)
부를찬송 : 535장, 503장, 488장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들이다. 그가 태어날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였으며 그의 어머니 사라의 나이는 90세였다(창 17 : 17, 21, 21 : 5). 사라가 아들을 그에게서 낳게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웃었다(창 17 : 17∼19). 약속을 듣고 있던 사라도 웃었다(창 18 : 10∼15).
이삭이 태어났을 때 사라는 기뻐하며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했다(창 21 : 6). 그래서 '이삭'이라는 히브리어( ) 이츠하크도 '웃음' '웃고 있는 자'란 의미이다. 이삭은 아브라함, 야곱, 요셉 등 4대 족장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180세). 제일 장수했으나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을 정도로 짧다. 그것은 그의 일생이 평탄한 생활이었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이삭의 인물됨

1. 이삭은 어릴 때부터 순종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1∼10).
자신이 제물이 되기 위하여 모리아 산으로 나무를 지고 간 것과 그리고 결박하여 제단에서 죽이려할 때도 순종하였다.

2. 이삭은 기도하며 묵상하는 사람이었다(창 24 : 63).
3. 이삭은 축단의 생활로 복 받은 사람이다(창 26 : 25).
4. 이삭은 온유하고 겸손하며 지구력을 가지고 매진한 사람이다(창 26 : 12∼31).
이삭이 복 받은 것을 시기한(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파기만 하면 빼앗았으나 이삭은 양보하고 다른 곳에서 물을 얻게 되었다. 결국 원수들이 회개하고 화목을 요청해 옴으로 이삭이 승리한 역사를 우리는 본다.
☞ 창 26 : 25

둘째 이삭은 자신이 제물이 되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복된 선물이었고 아브라함에게는 생명보다 더 귀한 독자였으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여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였다(창 22 : 1∼3).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번제로 드리러 모리아 산으로 향해 갔다.
1. 제물이 될 이삭의 신앙자세는 어떠했는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신 예수님처럼 번제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으며 십자가를 자취하여서 생명을 던진 예수님처럼 아버지에게 묶여 제단 위에 바쳐졌으니 온전한 헌신이었던 것이다.
2. 하나님은 이삭의 헌신을 받으셨고 수양을 준비하여 제물이 되게 하셨다(창 22 : 13).
하나님은 100%헌신을 원하신다. 예나 오늘날이나 이삭의 헌신이 하나님의 제단에 꼭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가 조직도 있고 계획도 있지만 그러나 누가 하나님께 바쳐질 제물이 되느냐가 문제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고 번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다. 계획도 아니다. 반드시 희생이 있어야 한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자(롬 12 : 1)
☞ 창 22 : 9

셋째 복된 조상이 된 이삭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면 이삭은 축복의 조상이 되었다.
1. 흉년을 모르는 삶이 전개되었다(창 26 : 12∼13).
이삭의 본업은 목축이었고 농사가 아니었는데 이방 땅에 가서 농사를 지어 100배의 수확을 올렸다. 그리고 그는 파는 곳마다 물이 쏟아졌다. 이삭은 새 은혜를 위한 신앙적 도전이 쉴 사이 없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러했기에 그의 삶에는 흉년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도 기도의 우물을 파자! 말씀의 우물을 파자! 사랑의 우물을 파자! 전도의 우물을 파자! 물이 날 때까지, 흉년은 물러가고 복의 샘물이 쏟아질 것이다.
2. 가장 이상적인 가정을 이룩하였다.
지금으로부터 4천년 전이요 도덕적 암흑시대라 가정제도가 일부일처 주의가 힘든 때 였으나 이삭과 그의 부인 리브가는 천국에 빛나는 모범적 가정을 이룩하였고 기도하여 얻은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선물로 받았다.
3. 자손에게 빈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졌다(창 27 : 27∼29).
4. 속죄 주 예수님을 가장 잘 예표한 축복의 인물이 되었다.
☞ 창 27 : 29

맺는말

이삭의 헌신 제물은 50%가 아니라 100%였음을 우리는 본다. 하나님은 99% 헌신한 100사람보다 100% 헌신한 한 사람을 들어 기적을 일으키고 복을 쏟는다. 우리 모두 이삭 같이 온전한 헌신을 하여 기적을 끌어오고 복을 끌어오자.

제 11 과 성경대학문제집

학번 : 제 번 반 성명: (남, 여)
★주여! 미국의 온전한 헌신을 잘 배워 100% 헌신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소서!

Ⅰ. 다음 물음에 답하시오
1. 아들을 낳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반응은?
2. 이스라엘의 4대 족장은?
3. 이삭의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4. 이삭의 인물됨을 4가지로 표현한다면?
5. 하나님은 어떻게 아브라함을 시험하였나?
6. 제물이 된 이삭의 신앙자세는 어떠했는가?
7. 블레셋 사람이 우물을 빼앗았을 때 이삭의 태도는?
8.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헌신을 바라시는가?

Ⅱ. 다음 물음에 맞는 답의 번호를 ( )안에 써 넣으시오
1.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을 받고 도착한 곳은?..............( )
① 갈멜산 ② 모리아산 ③ 갈릴리 ④ 벧엘
2. 이삭의 본업은 무엇인가? .......................( )
① 어업 ② 상업 ③ 목축 ④ 농업
3. 이삭이 태어날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 )
① 90세 ② 73세 ③ 100세 ④ 99세
4. 하나님은 이삭을 대신하여 무엇을 준비하셨나? .............( )
① 수양 ② 수염소 ③ 비둘기 ④ 황소
5. 속죄 주 예수님을 가장 잘 예표한 복의 인물은? ...........( )
① 야곱 ② 이삭 ③ 아브라함 ④ 유다

Ⅲ. 다음 물음의 ( )안에 O, X로 표하시오
1. 이삭의 우물을 빼앗은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이었다 ..........( )
2. 하나님은 이삭의 헌신을 받으셨다 ...................( )
3. 이삭은 일부다처를 한 사람이었다 ..................( )
4.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이삭은 복의 조상이 되었다 ..........( )
5. 신앙은 희생보다 이론과 계획으로 감당해야 한다 ............( )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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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로드를 가다] 이방인에게 돌아서다,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바오로 대성당 교회터.
모든 이에게 모든 것되게 하소서

말갛게 뜬 해가 얼굴을 감추더니 금세 빗방울이 떨어진다.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도착하자마자 흰 구름과 먹구름이 하늘을 반씩 차지하더니 급기야 천둥마저 으르렁댄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사도 13, 46)”

사도 바오로는 이곳에서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섰다. 즉, 천대받고 멸시받던 이방인에게 돌아섰던 것이다. 이날 나의 사부, 바오로 사도가 이방인에게 돌아서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수사인 나도,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도 없었을 것이다.

사도 바오로가 아꼈던 오늘날 이방인의 의미를 돌이켜본다. 결혼이민자? 이주노동자?
나는 수도자가 되어 브라질에서 7년간 선교를 하러 다닌 경험이 있다. 비행기를 타고 24시간을 거쳐 도착한 그곳에서 나, 김동주 수사는 하루만에 이방인이 됐다.
지구 반대편에서 막 도착한 동양인 수도자. 브라질 바오로 수도회 관할 지역본당에 첫 인사를 갔을 때, 본당 주임 신부님은 들뜬 마음으로 나를 신자들에게 소개했다.

무엇이든지 한마디라도 인사를 건넸어야만 했다. 하지만 부끄러웠다. 입이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선교를 하겠다고 간 그곳에서 나는 ‘오브리가두(Obrigado,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머뭇거리고 머리를 숙여버렸다. 주임 신부님과 신자들의 실망하는 표정이란.

그들은 나를 이방인 취급하지 않았다. 내가 자처해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고유문화를 배워 그들과 더불어 하나가 되겠다며 떠난 수도자의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이방인은 교회 안에도, 작게는 수도회 안에도 있다. 수도회를 처음으로 방문하는 신자들의 기대는 실로 엄청나다. 하지만 자신과는 관계없다하여 무심히 방문객을 대하는 우리 수도자의 모습을 가끔 본다. 알게 모르게 이방인 취급을 하는 것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 환영한다는 눈인사 한번이면 충분할 텐데 말이다. 성당에서, 회사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어색해서, 때로는 무관심해서 외면한다.

오늘날 ‘이방인’이란 소외받고 환영받지 못하는 모든 사람인 것이다. 나와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철저히 소외시킨다.
오직 내 종교, 나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자주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소홀히 한다. 주님을 선포하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신 사도 바오로를 따라 산다는 나의 좁은 태도가 부끄러울 뿐이다.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의 교회 유적지를 돌아본다. 예전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없다. 흉측하게 깨지고 기울어진 옛 교회의 잔해들뿐이다. 이 많은 돌덩이 중 어느 돌덩이 위에는 사도 바오로께서 올라 앉아 설교를 하셨겠지.
아주 오래전, 교회를 지었던 돌 틈 사이로 개양귀비와 토끼풀이 살포시 올라와 앉았다. 착한 아이를 쓰다듬듯 그것을 쓰다듬는다. 칙칙하고 어두웠던 안티오키아의 하늘이 어느새 갰다. 터키의 말간 해가 한국에서 온 이방인인 내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오늘날의 이방인을 묵상하며 김동주 도마 수사(성 바오로수도회)


◎오혜민 기자의 동행 tip/ 바오로 대성당 초석

유다교 회당터에 세운 하느님의 집
사도 바오로는 제1차 전도여행 때 베르게에서 험준한 안티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이코니온, 리스트라, 데르베에서 전도했다.
바오로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두 안식일에 걸쳐 먼저 유다인들에게 전도했으나 배척당하고 이방인들에게로 옮겨갔다.
사도 바오로는 바르나바와 함께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에게 돌아선다고 말한다.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 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사도 13, 47)
이 말을 들은 다른 민족 사람들은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유다인들에게 박해를 받고 다음 목적지인 이코니온으로 향한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사도 13, 52)

도심에는 비잔틴 시대에 지은 바오로 대성당 초석이 남아 있다. 큰 성당을 짓기 전에는 작은 성당이 있었는데, 작은 성당 바닥에서 이곳 주교 옵티모스(357~381년경 재직)의 이름을 새긴 모자이크가 발견됐다. 성당은 본디 유다교 회당 자리에 지어졌다. 터키에서 유다교 회당터에 성당을 세운 사례는 여기뿐이다.
출저:카톨릭신문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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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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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토스 지협의 위성 사진


코린토스 만

코린토스 만(그리스어: Κορινθιακ?? Κ?λπο?)은 펠로폰네소스 반도그리스 본토 사이의 좁고 긴 이다. 서쪽으로는 이오니아 해와 연결되어 있으며, 동쪽은 코린토스 지협으로 막혀 있다. 코린토스 지협에는 코린토스 운하가 건설되어 있어 에게 해로도 연결된다.

코린토스 운하
코린토스 운하(그리스어: Δι?ρυγα τη? Κορ?νθου)는 코린토스 만에게 해사로니코스 만을 연결하는 운하이다. 코린토스 지협을 따라 1881년부터 1883년까지 6.3 km의 길이로 건설되었다

코린토스(그리스어: Κ?ρινθο?)는 고대 그리스도시 국가이자 현대의 도시이다. 그리스 중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하며, 아테네로부터 78킬로미터 남서쪽이고 사로니코스 만코린토스 만을 가르는 코린토스 지협에 있다. 고대에는 이 지협의 해안을 따라 험준한 암초를 피해 선박이 돌아갔으나 지금은 운하가 놓여있다.


파울로스와 코린토스
한글 성서에서는 코린토스를 고린토, 고린도, 코린토로 음역하고 있으며, 사도 바울로의 활동 무대로 유명하다. 사도
파울로스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반유대주의 정책(45년)에 따라 코린토스로 이주한 2만 5천 명의 유대인들에게 전도했으며, 전도 기간 동안 고린도전서고린도후서를 작성하였다. 역사학자들은 사도 바울로가 2년간의 연금 생활을 마치고 로마 교회 등과 더불어 코린토스 교회도 둘러본 것으로 추정한다

아폴로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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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안더 (Περ?ανδρο?) (r.627?585 BC).



코린도 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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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트 헬멧





고대 코린트 동전


고대 그리이스 동전 중에서도 페가수스(표면)/코린트식의 투구를 쓰고있는 아테네의 각인이
새겨진 코린트 동전은 아주 유명합니다, 그런 코린트 적인 성격을 가지는 동전은 많은
코린트계 식민지에 분포 되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한 코린트형 동전은 , 그리이스의 식민지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식민시에는 코린트 등 드리스인계 외에, 이오니어인계나 페니키아인 식민지도 있습니다. 덧붙여서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의 식민시로서
출발한 도시입니다)
그리이스에서는 기원 전 750∼550경 다양한 이유로써 식민 활동이 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구의 증가로 부족한 농산물의 생산을 행하기 때문에, 모국의 번영에 수반하는(금속 등의 ) 물자 부족을 보충하기 위한 교역으로 중계지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코린트의
교역처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그리이스서쪽 연안부, 흑해 연안등에서, 동전으로부터 보면 식민지는 그리이스서쪽 연안부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시칠리아 등에 분포 되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또 시칠리아의 레온티노이는 원래 이오 니어계의 식민시였지만, 페로포네소스 전쟁의 결과 코린트의 경제권에 편입, 코린형의 동전을 발행하는데 이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코린트와 그 식민시에서 발행된 동전은,
명문이나 민트 마크를 제외하면 완전히 같은 통화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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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토스 지협의 위성 사진


코린토스 만

코린토스 만(그리스어: Κορινθιακ?? Κ?λπο?)은 펠로폰네소스 반도그리스 본토 사이의 좁고 긴 이다. 서쪽으로는 이오니아 해와 연결되어 있으며, 동쪽은 코린토스 지협으로 막혀 있다. 코린토스 지협에는 코린토스 운하가 건설되어 있어 에게 해로도 연결된다.

코린토스 운하
코린토스 운하(그리스어: Δι?ρυγα τη? Κορ?νθου)는 코린토스 만에게 해사로니코스 만을 연결하는 운하이다. 코린토스 지협을 따라 1881년부터 1883년까지 6.3 km의 길이로 건설되었다

코린토스(그리스어: Κ?ρινθο?)는 고대 그리스도시 국가이자 현대의 도시이다. 그리스 중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하며, 아테네로부터 78킬로미터 남서쪽이고 사로니코스 만코린토스 만을 가르는 코린토스 지협에 있다. 고대에는 이 지협의 해안을 따라 험준한 암초를 피해 선박이 돌아갔으나 지금은 운하가 놓여있다.


파울로스와 코린토스
한글 성서에서는 코린토스를 고린토, 고린도, 코린토로 음역하고 있으며, 사도 바울로의 활동 무대로 유명하다. 사도
파울로스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반유대주의 정책(45년)에 따라 코린토스로 이주한 2만 5천 명의 유대인들에게 전도했으며, 전도 기간 동안 고린도전서고린도후서를 작성하였다. 역사학자들은 사도 바울로가 2년간의 연금 생활을 마치고 로마 교회 등과 더불어 코린토스 교회도 둘러본 것으로 추정한다

아폴로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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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안더 (Περ?ανδρο?) (r.627?585 BC).



코린도 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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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트 헬멧





고대 코린트 동전


고대 그리이스 동전 중에서도 페가수스(표면)/코린트식의 투구를 쓰고있는 아테네의 각인이
새겨진 코린트 동전은 아주 유명합니다, 그런 코린트 적인 성격을 가지는 동전은 많은
코린트계 식민지에 분포 되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한 코린트형 동전은 , 그리이스의 식민지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식민시에는 코린트 등 드리스인계 외에, 이오니어인계나 페니키아인 식민지도 있습니다. 덧붙여서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의 식민시로서
출발한 도시입니다)
그리이스에서는 기원 전 750∼550경 다양한 이유로써 식민 활동이 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구의 증가로 부족한 농산물의 생산을 행하기 때문에, 모국의 번영에 수반하는(금속 등의 ) 물자 부족을 보충하기 위한 교역으로 중계지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코린트의
교역처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그리이스서쪽 연안부, 흑해 연안등에서, 동전으로부터 보면 식민지는 그리이스서쪽 연안부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시칠리아 등에 분포 되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또 시칠리아의 레온티노이는 원래 이오 니어계의 식민시였지만, 페로포네소스 전쟁의 결과 코린트의 경제권에 편입, 코린형의 동전을 발행하는데 이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코린트와 그 식민시에서 발행된 동전은,
명문이나 민트 마크를 제외하면 완전히 같은 통화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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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요약분석

성경 2008. 12. 7. 10:25

목차
1. 창세기 개관



2. 창세기 내용요약

제1장 천지 창조

제2장 인간 창조

제3장 인류의 타락

제4장 가인과 아벨

제5장 아담의 계보

.

.

(중략)

.

.

제46장 야곱의 애굽이주

제47장 야곱의 유언

제48장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축복

제49장 야곱의 마지막 축복

제50장 야곱의 장사, 요셉의 죽음



3. 창세기의 저자문제



4. 창세기의 기록 시기



5. 창세기의 신학



6. 창세기의 주제



7. 창세기 기록목적



8. 메시아의 예언

(1) 여자의 후손(창3:15)

(2) 아브라함의 씨(창22:17)



9. 창세기 주요 개념들

(1) 창조

(2) 타락

(3) 홍수



10. 노아의 방주를 통해 본 그리스도의 모형


본문요약


1. 창세기 개관

《창세기》라는 명칭은 이 책 2장 4절의 “하늘과 땅을 지어내신 순서는 위와 같다”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헤브라이어 성서에서는 <창세기> 최초의 말씀 ‘처음(태초: 베레시스)에’를 그 명칭으로 하고 있다. <창세기>는 모세의 저서로 알려져 왔으나, 문학적 내용의 분석으로 볼 때는 시대를 달리하는 여러 자료에서 편집된 것임이 명백하다. 즉, 야훼 자료, 엘로힘 자료, 제사자료의 세 가지 자료로 이루어졌으나 다만 자료의 집성에 그치지 않고, 사계의 여러 학자들이 편집하여 거기에는 통일된 의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의 자료는 모두가 훨씬 그 이전에 있던 자료를 사용한 것이다.

<창세기>는 크게 보아 2부로 나눌 수 있다. 제1부는 태고사(1~11장)로서 만물의 기원을 기록하고 있다. ① 세계와 인류의 창조(1~2장), ② 죄의 기원과 낙원 추방(3장), ③ 문명의 기원과 사람의 증가(4~5장), ④ 노아의 홍수 이야기(6~9장), ⑤ 제민족과 헤브라이인의 기원 및 바벨탑(10~11장)이며, 제2부는 족장사(族長史:12~50장)이다. ① 아브라함의 생애(12~25:18), ② 이사악의 생애(25:19~28:9), ③ 야곱의 생애(28:10~36장), ④ 요셉의 생애(37~50장)이다. 이 책은 역사적인 기술이 아니며, 그 편집자가 의도하는 방향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인류 구제사(救濟史)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며, 야곱의 가계가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2. 창세기 내용요약

서론

1.창조와 타락 :1-5

2.홍수 심판 :6-11

3.아브라함의 생애 :12-25

4.이삭의 생애 :25-26

5.야곱의 생애 :27-36

6.요셉의 생애 :37-50

제1장 천지 창조

*(1:1,2)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1.첫날: 빛, 빛과 어두움, 낮과 밤

2.둘째날: 궁창,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

3.세째날: 바다와 육지, 풀과 채소 과목

4.네째날: 광명,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 일월성신

5.다섯째날: 물고기, 새

6.여섯째날: 육축, 사람

*(1:27,28)

제2장 인간 창조

1.일곱째날: 안식일, 복주사 거룩하게 하심

2.흙으로 사람 지으심(7절)

3.에덴동산: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4.네강 :1)비손 2)기혼 3)힛데겔 4)유브라데

*(2:17)선악과는 먹지 말라

5.하와의 창조

*(2:23,24)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칭하리라하리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니라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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