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왜 66권인가?

성경 2008. 12. 4. 17:53

 

성경은 왜 66권인가?

어느 책이 성경에 속하는 것인지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Why 66 : How Can We Be Sure Which Books Belong in Our Bible?)
성경(The Bible)은 66권의 낱권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전체의 책들은 신성한 계시인 정경(canon)으로 알려져 있다.[1] 이 책들은 약 2천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약 40명의 서로 다른 저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그러나 오직 한 분의 저자이신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 66권의 책들만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성스러운 책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혹시 더 있거나 덜 있지는 않는가?


구약성경

고대 히브리인들은 명백하고 분명하게 밝혀진 성경 본체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부터 확인되어졌고, 어느 책이 성경에 속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전혀 의심이 없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책들의 순서를 배열하지 않았고, 어떤 책들은 서로 묶여졌었다. 그러나 내용은 동일하였다, 더도 없었고 덜도 없었다.

성경 내에서의 증거들은 구약 책들의 대부분이 그들이 기록했던 사건들이 있던 그 시기에 씌어졌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주어졌던 말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성경 밖의 역사적 기록들은 이 결론을 강화시켜 준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을 인용하실 때, 구약의 기록들이 항상 성경이었음을 확증하셨고, ”기록되었으되”(마 4:4,7,10) 그리고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요 10:35)라고 주장하셨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신탁)”(롬 3:2)을 의심하지 않았다. 현대 신학자인 칼 헨리(Carl F. H. Henry)는 다음과 같이 지혜롭게 결론을 내렸다. 즉 ”교회는 구약성경을 물려받았고, 예수님은 이 기록들을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정경으로서 방어하시고, 고취하시고, 충성스럽게 따르셨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셨다”[2].

한 유명한 유대인들의 종교회의가 AD 100년 경에 잠니아(Jamnia)에서 열렸다. 가끔 잘못 추정되고 있는 것처럼, 그 회의의 목적은 어떤 책들이 유대인들을 위한 성 문서들에 포함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어떤 책들이 이미 받아들여졌는가에 관한 것이었다.[3]. 그 종교회의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구약 정경에 접근할 수 있었다.


신약성경
 
성경 내에서의 증거는 대부분의 신약 성경들이 AD 70년까지 씌어졌다는 결론을 지지한다. 한편 요한의 저서들은 이보다 약간 늦다.[4]. 대부분의 책들은 저자의 이름을 땄고, 모든 책들은 다른 책들에게 유용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우리들이 더욱 정확하게 연대 계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성경에 있는 몇몇 기술들은 신약성경이 사도들에 의해서 씌어졌거나, 사도들에게 승인을 받았음을 가리키고 있다. 베드로는 바울의 편지를 '성경(scripture)'이라고 불렀고(벧후 3:16), 바울은 자기와 다른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말했다고 했다.(살전 2:13). 

1 세기가 끝나기 전에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는 반 이상의 신약성경을 인용했거나 참조하였고, 그것들을 '성경(scripture)'이라고 불렀다. AD 180년까지 리용의 이레니우스(Irenaeus) 주교는 그것들을 성령에 의해 주어진 '거룩한 성경(holy Scriptures)'이라 불렀으며, 1,000구절 이상을 거의 모든 신약성경으로부터 인용하였다. 동시에 북아프리카의 터툴리안(Tertullian)은 '신약성경(New Testament)'으로 언급하며, 그것의 대부분에 대하여 해설했다. AD 240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Origen)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27권을 성경이라고 말했고,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AD 367년에 같은 목록을 사용했다.[5]. 그들은 같은 방식으로 다른 책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2세기 초까지는 4복음서(그 외의 다른 것은 전혀 없었음)와 13편의 바울서신이 전 로마 제국에 걸쳐 모든 교회들에서 아무 문제없이 받아들여졌음이 확실하다.

AD 180년까지 우리의 모든 신약성경(베드로후서만 제외하고) 책들은 교회 지도자들의 글에서 직접 인용되거나 또는 암시로 발견되어진다. 이 해까지, 소수의 교회들은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 2,3서, 베드로 후서, 히브리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그 나머지 모두는 보편적으로 수용되어졌다. 교회 지도자들은 신약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정경이 아닌 책들은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AD 150년 무렵에 최초로 편집된 무라토리 정경(Muratorian Canon)은 성경의 신약정경으로서 확인되어진 책의 형태로 된 가장 초기의 문서적 증거이다. 비록 8세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본은 열악한 상태에 있었고 일부를 잃어버렸지만, 그것은 신약성경에서 4권의 책들을 제외한 모든 책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정경의 내용을 토론하기 위하여 어떤 종교회의도 소집되지 않았다. 정경은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의 보편적으로 인정되어지고 있었다.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의 어떤 책들이 정경의 일부인가를 결정했던 곳으로 잘못 생각되어지고 있는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를 묘사하고 있는 한 성화.

신약성경의 정경 목록을 확정하는데 그렇게 오래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1. 사도들이 권위 있는 책들의 깔끔한 목록을 후대에게 남겨주지 않았고,

2. 어떤 두루마리도 모든 책들을 전부 포함할 수 없었고, 책을 만드는 과정(사본이라 부름)도 4세기까지 로마제국에서는 일반화되지 않았으며,[6]

3. 교회들은 로마제국 전역과 영국에서부터 북아프리카와 페르시아 동부까지 흩어져 있었다. 초기 크리스천들은 아직도 박해를 당하고 있었고, 서로 간에 쉽게 회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교회나 지도자가 다른 교회나 지도자들에게 명령할 권위를 갖지 못했으면서도, AD150년 무렵에 무라토리 정경이 우리의 신약성경 중 4권의 책들 이외의 모든 책들을 목록화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많은 기만자(deceivers)들이 사도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사칭하면서, 가짜 복음서들과 서신서들을 작성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지도자들은 그것들이 가짜이며,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서 퇴출했다.[7] 거짓 복음서들과 서신서들은 늦은 작성 시기와(사도 시대와는 많이 떨어진), 정경과 교회들이 받아들인 교리와는 명백하게 모순되는 가르침 때문에 가짜임이 스스로 드러났다. 


결론

역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분의 전체 말씀을 주셨고, 우리를 위하여 그 말씀들을 보존해 주셨다는 우리의 확신을 강화시켜 준다. 우리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계획하셨던 66권의 책들을 모두 정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Footnotes

1. 이 단어는 '갈대”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κανων(kanon)에서 왔다. 그것은 '자(ruler)” 또는 '측량 막대기(measuring stick)”를 의미하고, 측량 막대기는 '인증된 권위(recognized authority)”라는 개념을 갖는다. 4세기에 교회는 캐논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으로 받아들여진 책들의 목록”을 의미하는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2. Carl F. H. Henry, God, Revelation and Authority, Vol. 4 (Carlisle: Paternoster, 1999), p. 407.
3. 이것은 이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See for example R. Beckwith, The Old Testament Canon of the New Testament Church (London: SPCK, 1985), p.276. Also A. Bentze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Vol. 1 (Copenhagen, 1948), p. 31. Bruce Metzger, The Canon of the New Testamen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p. 110. John Wenham, Christ and the Bible (London: Tyndale Press, 1972), pp.138–139. 
4. 이것은 일반적인 복음주의적 입장이다. 그러나 복음주의자가 아니었던 존 로빈슨(John A. T. Robinson)은 그의 세부적인 학술 저서에서 전체 신약성경을 AD 70년 이전으로 위치시켰다. Redating the New Testament (London: S.C.M. Press, 1976).
5. 아타나시우스는 또한 신약성경 책들의 본체를 위해 캐논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6. 우리의 가장 초기의 거의 완벽한 단행본 헬라어 신약성경(4세기 중엽부터 내려오는 시나이티쿠스 사본(Codex Sinaiticus))의 크기는 16×14 인치이고, 두께는 694쪽이다.
7. 이들은 위서(pseudepigrapha)라고 불려진다.(헬라어로 ‘가짜 문서’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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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교회는 하나님이 성경 66권에 영감을 불어넣으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성경의 인간 저자들을 선택하시고, 이루어진 예언들과 기적들을 통해 그 책들의 신뢰성(authenticity)을 확증하셨다. 19개 이상의 지역으로부터 40명 이상의 인간 저자들이 동원되었지만, 성경의 메시지는 일관되고 상호간에 모순이나 오류가 없다.

유대인들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쓴 책들을 정경(canon, 지금은 구약으로 불려짐)으로 받아들였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자(messengers)들도 신약성경에 포함된 책들에 대해 책임이 있었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온 책은 역사적, 예언적, 과학적 정확성을 포함하여 어떤 기준을 충족시키는, 그리고 권위를 가지고 삶을 변화시키는 메시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사람의 집단들, 도시들, 풍습들에 관한 역사적인 세부 사항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고고학적 발견들은 이런 세부적 내용들이 정확했음을 지속적으로 확인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www.answersingenesis.org/go/archeology 을 보라).

현대의 많은 과학적 사실들이 성경에서 발견되어지거나, 성경으로부터 추론되어질 수 있다. 즉,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사 40:22), 별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사실(창 15:5), 살아있는 것들은 그 종류대로(after their kinds) 자손을 번식한다는 사실(창 1:24,25), 대양에 '해로(paths)”가 있다는 사실(시 8:8) 등이다.

예언의 정확성에 관하여, 구약성경의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 대해 50번 이상 예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하기 400년 전에 씌어진) 모든 예언들은 사실대로 실현되었다.

또한 성경의 각 책들은 딤전 3:16,17절과 벧후 1:21절을 포함하여 여러 구절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여러 곳에서 (인간) 저자는 신적 영감을 받았음을 주장하며,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의 메시지는 삶을 바꾸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죄를 확신시키며, 사람들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삶에서 옮겨, 성령의 권능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바꾸어버린다. 다른 어떤 메시지도 인간에 대해 이러한 일을 한 적이 없다.

성경의 (원)저자가 하나님이라는 것은 성경에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만일 하나님의 감동을 받지 않았다면, 성경은 인간의 글들을 모아놓은 모음집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인간들에게 완전함을 요구하고, 그들의 죄를 확신시키고, 영원한 절망을 선고하며, 그들에게 구원을 베풀 권위를 가졌겠는가? 인간은 누구도 그러한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한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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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경이란 무엇인가?

11-16 권의 외경(Apocrypha)들이 구약의 마감과 신약의 시작 사이 400년 동안에 집필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es)와 그리스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es)는 이들 책들의 일부를 성경으로 취급했지만, 개신교(Protestant Christians)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유대인들은 외경을 결코 히브리 성경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기간(외경이 집필된) 내내 이스라엘에 선지자들의 음성이 없었다고 믿었다. 그들은 '충성된 선지자”가 나타날 날을 대망하고 있었다.(마카비전서 9:27). 유대인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성경 계시는 BC 430년경 말라기서를 끝으로 일단락되었다.  

2. 예수님과 사도들은 외경을 결코 성경의 한 부분으로 여기시지 않았다. 신약성경에는 수백 구절의 구약성경 인용과 암시들이 있지만,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외경으로부터는 결코 인용하지 않으셨다. 성경의 저자들은 우연히 다른 책들을 참조했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그 책들을 성경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유다서 14-15절은 에녹서(book of Enoch)를 참조했는데, 에녹서는 로마 가톨릭의 외경의 한 부분이 아니다.

3. 구약성경의 예언서들과 달리, 어떤 외경들도 결코 신적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

4. 외경의 어떤 부분들은 커다란 역사적인 실수들을 포함하고 있다. 

5. 사해사본(Dead Sea scrolls)을 필사한 공동체는 구약성경에서와 같은 권위를 외경의 책들에 결코 부여하지 않았다.



고고학은 여러 종교 경전들 가운데서,
성경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입증하였는가?
(How does archaeology conclusively demonstrate the Bible to be
reliable and unique among all the holy books of world religions?)

고고학적 발굴들은 신·구약 성경의 역사적 신뢰성을 입증해 주고 있다. 다른 종교 경전들과 비교해 볼 때, 성경에 언급된 장소들, 인물들, 제목들, 사건들, 그리고 성경을 구성하기 위해 사용된 언어와 저술 형식 등에서 검증된 바와 같이, 성경은 가장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유일하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고고학적 발굴들에 근거한 추정들로 인해, 성경 기록들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모순점’들을 자세히 점검해 보면, 문제점들은 성경(the Bible)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고학(archaeology)에 있음을 (예를 들면, 증거들의 잘못된 해석, 증거들의 결핍, 빈약한 고고학적 지식 등) 발견하게 된다.  


인생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진실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고고학이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고고학적 발견은 어떤 사람이 성경의 역사적 진실성에 관해 가질 수 있는 의문을 제거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영적인 메시지와 마찬가지로,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기초가 되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의 진리가 회의론자들에 의해 도전받을 때, 고고학은 성경의 인물들, 장소들, 그리고 사건들이 실제로 발생했었던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증거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어떤 하나의 고고학적 발견은 성경 기록에 대한 신뢰성을 부여하며, 성경과 분리된 대안적 해석들을 거부할 수 있는 증거를 제공한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과 일치하는 많은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더욱 확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들은 3가지 범주로 분류된다 :

1. 고고학적 증거들은 성경의 역사적, 문화적 정확성을 나타낸다.
 
2. 인간의 삶에 개입하시고, 구원의 방법을 제공하고 계시는 사랑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메시지는, 고고학에 의해서 밝혀지고 있는 것처럼, 고대 세계의 이교들과는 첨예하게 대조된다.

3.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사건들이 수백년이 지나서 정확히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들이 평범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성경 밖의 기록에서 성경 사건들에 대한 어떤 확증이 있는가?
(Is there any confirmation of Biblical events from written
sources outside the Bible?)

성경 사건들 중에서 성경 밖의 기록에서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것은 창세기 6-9장에 묘사되어있는 전 지구적 홍수에 관한 기록이다. 똑같은 홍수를 설명하고 있는 많은 바빌론 문서들이 발견되었다.

 
수메르 왕들의 목록을 기록해 놓은 고대의 토판

예컨대, '수메르 왕들의 목록(Sumerian King List)'은(위의 그림) 오랜 기간 동안 통치했던 왕들의 명단을 열거해놓고 있다. 그리고 대홍수가 일어났다. 대홍수 이후로 수메르 왕들의 통치 기간은 훨씬 짧아졌다. 이것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양상이다. 홍수 이전의 인간 수명은 길었고, 홍수 이후에는 짧아졌다. 길가메시 서사시(Gilgamesh Epic)의 11번째 토판은 방주와, 방주에 탔던 동물들, 홍수 동안에 날려 보낸 새들, 산 위에 도착한 방주, 그리고 방주에서 내려와 드렸던 희생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었다.

아다파 설화(Story of Adapa)는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와 유사하게, 먹는 것을 포함하여 불멸에 관한 한 시험을 소개하고 있다.
 
수메르 토판들은 바벨탑에 관한(창 11:1-9) 성경의 설명과 같이 언어의 혼잡을 기록하고 있다. 모든 인류가 같은 한 가지 언어만 사용했던 황금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지혜를 관장하는 엔키(Enki) 신에 의해 혼잡하게 되었다. 바빌론 사람들은 신들이 신전의 탑을 부수고 ”사람들을 멀리 흩어버렸으며, 그들의 언어를 다르게 만들어 버렸다.”는 성경과 유사한 설화를 가지고 있다.


성경 사건들에 대한 성경 밖의 확증들에 대한 몇 가지 사례 :

▶ 애굽(이집트)의 왕(바로)인 시삭(Shishak)이 이스라엘을 침공(왕상 14:25-26)한 사건이 이집트 테베(Thebes)에 있는 아문 신전(Temple of Amun)의 벽 위에 기록되어 있다.

▶ 이스라엘에 대한 모압의 배반(Revolt of Moab) 사건이(왕하 1:1, 3:4-27) 메사 비문(Mesha Inscription)에 기록되어 있다. 

▶ 사마리아가 앗수르(Assyria)의 왕 사르곤 2세(Sargon Ⅱ)에게 함락된 사건이(왕하 17:3-6,24, 18:9-11) 그의 궁전 벽에 기록되어 있다.

▶ 사르곤 2세에 의한 아스돗(Ashdod)의 점령(사 20:1) 사건이 그의 궁전 벽에 기록되어 있다.

▶ 앗수르 왕 산헤립(Sennacherib)의 유다 침공(왕하 18:13-16)이 테일러 프리즘(Taylor Prism, 니느웨의 폐허에서 발견된 육각형의 구운 점토 프리즘)에 기록되어 있다.

▶ 산헤립 왕에 의해 라기스가 포위된 사건이(왕하 18:14,17) 라기스의 양각(Lachish reliefs)들에 기록되어 있다.

▶ 산헤립 왕이 그의 친 아들들에게 피살된 사건이(왕하 19:37) 그의 아들인 에살핫돈(Esarhaddon)의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

▶ 선지자 나훔과 스바냐가 예언한 니느웨의 함락이(습 2:13-15) 나보폴라살 왕의 토판(Tablet of Nabopolasar)에 기록되어 있다.

▶바빌론 왕 느브갓네살(Nebuchadnezzar)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된 사건이(왕하 24:10-14) 바빌론 역대기(Babylonian Chronicles)에 기록되어 있다.

▶유대 왕 여호야긴(Jehoiachin)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사건이(왕하 24:15,16) 바빌론 사람들의 배급 장부(Babylonian Ration Records)에 기록되어 있다. 
 
▶ 메대와 바사(Medes and Persians)에게 바빌론이 패망한 사건은(단 5:30,31) 고레스 실린더(Cyrus Cylinder, 원통 모양의 점토 돌)에 기록되어 있다. (페르샤 제국의 건설자인 고레스는 그가 점령한 수메르의 여러 도시마다 기둥을 세우고 그의 업적을 새겨놓았다).

▶ 바빌론에 포로가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레스(Cyrus) 왕에 의해 방면된 사건이(스 1:1-4, 6:3,4) 고레스 실린더(Cyrus Cylinder)에 기록되어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하심은 요세푸스(Josephus), 수에토니우스(Suetonius), 탈루스(Thallus), 소 플리니우스(Pliny the Younger, 비두니아의 총독), 탈무드(Talmud), 루시안(Lucian) 등에 기록되어 있다. 

▶ 글라우디오(Claudius, AD 41-54)의 통치 기간 중에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강제 퇴거시킨 사건이(행 18:2) 수에토니우스에 의해 기록되어있다.


수메르 왕들의 목록에 대한 더 많은 정보

각기 다른 시기, 다른 장소들에서 발견된 수메르 왕들의 명단에 대한 16개 이상의 파편(fragment)들과 거의 완벽한 한 질의 사본이 존재한다. 첫 번째의 파편은 세기가 바뀔 무렵(19세기 말) 이라크의 니푸르(Nippur)에 있는 신전 도서관에서 발견되어 1906년에 출판되었다. 가장 완벽한 사본인 Weld-Blundell prism(수메르 왕들의 목록)은 1차 세계대전 직후에 고물상에게 팔렸고, 지금은 영국 옥스퍼드에 있는 애슈몰린 박물관(Ashmolean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소장번호: AN1923.444). 수메르 왕들의 목록(Sumerian King List)과 그것의 성경적 의미에 대한 철저한 논의를 위해서는, CEN Technical Journal 12(3) 1998, pp.347-57에서 로페즈(Raul Lopez)가 제시한 '대홍수 이전의 족장들과 수메르 왕들의 목록(The Antediluvian Patriarchs and the Sumerian King List)”을 읽어보라.  <http://www.answersingenesis.org/tj/v12/i3/sumerian.asp>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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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르단 오지의 성읍들  

 


오늘날 요르단 지역에 있는 성경의 도시들은 이스라엘 다음으로 많다. 성경에 언급된 도시는 대체로 480곳 이상으로 이스라엘에 절반이 넘는 264여 곳이 있으며 다음으로 요르단에 67여곳이 있어 두번째로 많다. 그리고 이집트 35여곳,그리스 시리아 레바논과 기타 지역 순으로 소재해 있다. 지금까지 ‘성서속 도시 이야기’를 통해 현대 국가별로 비교적 생소한 도시들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본인이 답사한,요르단 지역의 생소한 도시들을 사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도피성 중의 하나인 길르앗 라못

이곳은 다메섹 남쪽 약 112㎞ 지점,오늘날 이르비드 동쪽 약 24㎞쯤 되는 곳에 있다. 라못 길르앗으로 부르기도 하는 이곳은 요단강 동쪽에 있던 베셀,바산 골란과 함께 도피성(逃避城) 중 하나이다(신 4:43,수20:8). 가나안 정복 후 레위 지파 므라리 자손에게 할당되었으며(수 21:38) 솔로몬 왕에 의해 행정중심지가 되었다(왕상 4:13). 이후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200여년이 넘도록 전투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이곳은 낮은 언덕에 베두인 가정이 양을 치고 있을 뿐 전쟁의 흔적은 흙속에 묻혀버렸다.

아담 근처의 요단 계곡에 있는 사르단

이곳은 현재 텔 에스 사이디야(Tell es-Saidiyah)로 요단 계곡 동쪽의 아담과 숙곳 사이,곧 아담 북쪽 19㎞ 지점에 있다. 오늘날 텔(tell·언덕) 형태로 남아 있으며 언덕 꼭대기에 서면 요단 계곡이 남북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사울이 장사된 길르앗 야베스

야베스(Jabesh)는 벧산 남동쪽 15㎞ 지점에 있는 요단강 유역 동북쪽 지방의 가장 비옥한 지역에 있다. 성경의 그릿 시내로 주장되는 와디 야비스(Wadi el-Yabis)의 북안에 있는 텔 아부 카라즈(Tell Abu Kharaz)와 동일시되는 이곳은 길르앗 야베스라고도 한다. 사울은 이곳 사람들을 암몬의 나하스왕으로부터 구했으며(삼상 11:1∼11) 후에 이곳 사람들은 사울의 은혜를 기억하여 사울 왕 부자가 블레셋과의 길보아산 전투에서 전사해 목이 없는 시체가 벧산 성벽에 못 박혀진 것을 알고 이곳 사람들이 길르앗 야베스에 가져와 매장하였다(삼상 31:11∼13).

압살롬이 죽은 마하나임

마하나임은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군대)를 만나 붙인 지명이다(창 32:1∼2). 지금은 유적과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한 가정집이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압살롬이 상수리 나무에 걸려 죽임을 당한 것(삼하 18:9∼15)을 보여주듯 주위는 온통 상수리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요단강물이 넘쳤던 아담

아담(Adam)은 요단 동쪽의 얍복강이 요단강으로 유입되는 계곡에 위치한 읍으로 현재 텔 엣 다미예(Tell ed-Damiyeh)이다. 이곳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여리고 앞의 요단강을 건널 때 요단강이 멈춰 강물이 이곳까지 넘친 곳이다(수 3:9∼17).

음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은 아벨싯딤

요단강 하류 동쪽 10∼13㎞ 지점인 텔 엘 케프레인(Tell el Kefrein)으로 추정되는 아벨싯딤(Abel-Shittim)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최후로 진을 쳤던 곳이다(민 33:49). 이스라엘은 이곳에서 모압 여인과 음행을 하다가 2만4000명이나 죽었다(민 25:1∼9). 이후 여호수아는 이곳에서 여리고에 정탐꾼을 보냈다(수 2:1).

에돔의 북쪽 요새 도시인 보스라

오늘날 부세이라(Buseira)인 성경의 도시 보스라(Bozrah)는 사해 남동쪽 약 32㎞,페트라 북부 약 56㎞ 거리에 위치해 있는 에돔의 중요한 요새 도시로 에돔 왕 요밥(Jobab)의 고향이며 수도이다(창 36:33,대상 1:44). 보스라는 에돔의 북쪽 지역에서 가장 견고한 도시였다.

오늘은 잘 접하지 못하는 요르단 지역의 여러 도시들을 화보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아쉽지만 요르단 지역의 도시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치고 다음부터는 터키 지역의 도시들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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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목사의 성서 속 도시 이야기]  로마와 서바나
 
바울은 로마에 복음 전파를 간절히 원했고 하나님은 그런 바울을 죄인의 몸으로 로마로 입성케 했다. 그리고 더욱 간절히 가기 원했던 서바나는 결국 가지 못한 채 로마의 아피아 가도에서 목이 잘려 순교했다.

로마는 나라 이름은 물론 수도 이름도 된다. 도시로서의 로마는 현재 이탈리아의 수도이며 옛 이베리아 반도의 중앙에 있던 로마 제국의 수도이다. 제국으로의 로마는 예수님 당시에 동으로는 유프라테스 강,서로는 라인 강,남으로는 지중해,북으로는 동부 유럽에 미치는 광대한 영토를 소유하였다. 전성기에는 유럽 대륙을 대부분 석권하였으며 아프리카와 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한 때도 있었다.

BC 735년에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쌍둥이의 한 사람인 로물루스가 건국하였다는 전설로 출발한 고대 로마는 세계를 지배했다. 로마의 역사가 세계에 준 큰 유산은 법률과 정치,고대 그리스의 문화와 윤리,철학을 서방에 전하는 중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국호를 이탈리아라 하고 그 판도도 유럽의 남부 중앙에 돌출한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와 사르데냐 섬으로 이루어졌다. 로마는 지중해에 접하고 기후가 맑고 온화해 유럽의 낙원이라 불린다. 또한 이르는 곳마다 로마 시대의 유적과 예술품들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로마가 중요한 것은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용하여 그 세계로 통하는 로마의 길을 통해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그때의 도로인 에그나티아(로마 때 포장도로)가 네압볼리 빌립보 등에 아직까지 남아있다. 성서적으로 보면 로마는 바울이 죄인의 몸으로 복음을 전한 곳이며(행 23:11) 순교한 곳이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곳 역시 로마다.

로마는 땅만 파면 유적이 나온다는 말처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유적이 산재해 있다. 그것을 한정된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로마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곳은 역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비참하게 죽음을 당한 콜로세움,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을 들 수 있다. 그밖에 베드로 쇠사슬 교회,바울 무덤 교회,‘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의 배경이 되는 쿼바디스 교회,바울이 목이 잘려 순교한 곳에 세워진 바울 세분수 교회,그리고 바울이 죽기 전에 갇혀던 마메르틴 감옥 등이다. 이 모든 장소들은 오늘 내가 성지를 찾고 그곳에서 받았던 은혜를 함께 나누는 일을 하는 데 새로운 힘을 주기에 충분했다.

로마를 몇 차례 방문한 후에야 어렵게 땅끝 마을인 서바나 지역을 방문할 수 있었다. 서바나(Spain)는 오늘날 포르투갈과 스페인 지역을 가리킨다. 바울이 그토록 가고 싶어했으나 가지 못한 곳이다(롬 15:22∼24). 또한 요나가 욥바에서 배를 타고 도망치려 했던 다시스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 서바나의 맨 끝인 포르투갈의 서쪽 끝 해안가 위에는 십자가 탑이 세워져 있으며 그 탑 밑에는 반도의 최남서쪽임을 알려주는 위도와 경도가 표시돼 있다.

이제 마지막 연재를 마치며 성서의 서바나 지역에 있는 땅끝 마을인 포르투갈 로카 곶에서 로마의 옥에서 쓴 바울 사도의 말씀을 상기해본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그리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주님의 명령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연재를 마친다.

그동안 지면을 통해 성서속 도시들 중에서 찾기 힘든 곳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독자들과 함께 찾아봤다. 아직 소개하지 못한 익숙한 성서속의 도시들과 생소한 도시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런 도시들은 홈페이지(photobible.co.kr)에서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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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설교문 2008. 11. 27. 08:16

예수님

예수(기원전 약 7~2년 - 기원후 약 26~36년) 또는 나사렛 예수기독교를 포함한 여러 종교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물이다. 그리스도인 또는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 교리에 따라 그를 '인간의 부른다. 예수의 생애와 행적은 사복음서를 비롯한 신약성서에서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다. 이슬람과 같은 다른 종교에서도 예수를 선지자로서 존경한다.모습으로 나타난 신(성육신)'으로 여기고, 메시아라는 뜻의 존칭인 그리스도를 붙여 예수 그리스도



예수를 묘사한
라벤나의 산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에 있는 6세기경의 모자이크.


비기독교계 사료

역사가 타키투스는 110년경에 쓴 《연대기》(Annalia) 15권 44장 2절에서 예수가 티베리우스 황제가 로마 제국을 다스릴 때 폰티우스 필라투스 총독에게 처형당했다고 기술하였다. 이 내용의 배경은 64년 7월 19일 네로 황제가 로마 시내에 화재가 나자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지목하고 박해한 것이다. 이 내용을 기술하면서 타키투스는 '그리스도인'(타키투스는 이를 라틴어: Chrestiani로 기록하였다.)의 이름의 기원을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때 폰티우스 필라투스(본티오 빌라도) 총독에 의해 처형된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이 사악한 미신'은 계속 번져나가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비티니아의 총독으로 재직중이던 플리니우스 2세112년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티니아 지방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처럼 여기면서 성가를 불렀다는 내용이 존재한다.[1][2]

전기 작가인 수에토니우스는 120년경 《황제들의 생애》(De vita caesarum)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의 한 부분인 〈클라우디우스의 생애〉 편에서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49년에 크레스투스의 사주로 인하여 분란을 일으키는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크레스투스가 예수를 뜻하는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갈릴리 지방의 유대인 독립군 사령관으로 있다가 전세가 기울자 로마군에 투항한 요세푸스는 《유대 전쟁사》(De bello Judaico)에서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를 돌로 치는 형벌에 대해서만 기술하였다. 유대교의 《탈무드》 〈산헤드린〉 43a에는 예수는 마술을 써서 이스라엘을 미혹시켜 배교하게 하였으므로 유월절 전날에 처형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3]

기독교계 사료

예수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는 기독교계 사료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신약성서이다. 기독교에서는 이중 공관 복음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은 공관 복음서가 예수의 언행을 가장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 다음으로 예수의 정체나 행적에 대한 명상을 담은 요한 복음서를 중요하게 여긴다. 예수의 언행은 한 세대 또는 두 세대 동안 구전 과정을 거쳐 기록되었다.[1] 복음서는 단순히 과거의 예수의 역사가 아니며, 그를 구세주로 믿은 원시교회의 관점이 크게 반영되어있다.[3][4] 그래서 같은 사건을 언급하는데도, 복음서마다 다르게 묘사하는데, 이를테면 베드로가 "너희는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예수의 질문에 답했다는 이야기의 경우, 마태오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네 믿음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라며 크게 칭찬하셨다고 매우 좋게 묘사하는데, 예수께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셨다는 메시아 비밀사상을 갖고 있던 복음사가 마르코[5]는 "주님은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아무에게도 이를 말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다며 간락하게 묘사한다. 또한 예수께서 하혈병에 걸린 부인을 고쳐주셨다는 기적이야기도 마태오는 부인께서 부인의 믿음을 강조하는반면, 마르코는 부인이 얼마나 질병으로 고통받았는지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이렇듯 복음서는 예수전승을 그대로 받아적거나, 예수의 행적을 직접 보고 쓴 게 아니라, 예수 전승을 자신들의 신학에 따라 편집한 복음서 저자들의 신학자로서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6] 복음서에는 예수에 관한 전승 그러니까 교회를 통해 내려온 예수 이야기가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어있기는 하나, 그것의 내용이 교회의 여러 활동에 적합하도록 형성되어온 것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교회의 여러 활동뿐만 아니라 전승 담당자의 사회적 상황이 복음서 형성에 영향을 끼친 일에도 주목하고 있으며, 따라서 복음서를 예수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3]

예수의 이름

예수(Jesus)는 고대 그리스어 이에수스(?ησου?)의 라틴어 표기이며, 이에수스는 다시 히브리어 여호수아(Jehoschua) 혹은 예슈아(Jeschua)를 고대 그리스어의 코이네로 옮긴 말이다. Jehoschua는 어원학적으로 접두어 Je- (JHVH/YHWH:Jahveh, 하느님)와 Hoshea(구원, 구세라는 뜻을 가진 호산나)를 덧붙여 이루어진 말이다. 역사적 실존 인물로 예수를 가리킬 때에는 흔히 그가 자란 고장의 이름을 덧붙여서 "나사렛(Nazareth) 예수"라 부른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의 부모의 이름을 앞에 붙여 부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요셉의 아들 예수"(루가 복음서 2, 21), 나사렛 요셉의 아들 예수(요한 복음서 1, 45) 또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마르코 복음서 6, 3, 마태오 복음서 13, 55).

예수에 따라 붙는 그리스도(Christus)라는 낱말은 또한 고대 그리스어의 "기름을 부은" 이라는 크리스토스(Χριστ??, 한국어로는 크- 대신에 그-의 발음을 쓰고 있다)라는 말을 라틴어로 표기한 것이다. 크리스토스는 다시 히브리어로 "maschiach"에서 풀이한 것이다. "기름을 부음 받은 사람"이라는 뜻은 유대인의 종교적 예법에 따르면 드높은 사람, 다시 말해 왕이나 선지자, 제사장, 메시아에게 주어지는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메시아 예수라고 풀이될 수 있다.

또한 예수를 한자로 음역하면 耶蘇(어조사깨어날 )라고 한다.

예수가 태어난 때와 장소

 출생 시기

'기원후'의 의미로 사용하는 'AD(Anno Domini)'는 예수의 출생 이후의 시대를 의미한다. 이는 6세기경의 신학자 디오뉘시우스 엑시구우스(Dionysius Exiguus)가 부활절의 날짜를 계산하면서 사용한 것이 후에 그레고리력율리우스력에 반영된 것이다. 이 때에 계산된 예수 탄생 연대의 기준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예수의 출생에 관한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오늘날에는 복음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예수의 출생일과 태어난 장소를 미루어 짐작하고 있으며, 대체로 역사상의 예수는 기원전 약 6 ~ 4년 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된다.[7]

마태오 복음서(2장 1 ~ 16절)에는 예수가 태어난 해에 하늘에 '동방의 별'이 나타나고 헤롯왕이 갓난 아이들을 살해하도록 명을 내려 그 가족이 이집트로 피신하는 내용이, 루카 복음서(2장 1 ~ 2절)에는 아우구스투스가 호적을 명하여 요셉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을 찾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보다 5 ~ 6개월 먼저 태어난 동갑내기이며 헤로데스 1세는 기원전 4년에 사망하였다. 이로부터 마태오 복음서의 시기는 그 이전으로 추측된다.

루카 복음서에 언급된 인구조사는 기원후 6년에 있었다. 예수가 태어났을 때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명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인구조사가 실시되었으며 당시 시리아 지방의 총독이 퀴리누스(Quirinus)였다고 루카는 기록하고 있다(루카 2장 1 ~ 7절). 퀴리누스는 서기 6년에서 서기 9년까지 총독으로 있었으며, 인구조사는 그의 부임 초기(서기 6년)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루카에 따르면 예수는 서기 6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방의 별'은 이후 '베들레헴의 별'로 알려졌다. 천문학자 케플러는 이를 800년 주기로 목성토성이 분점에 대해 같은 위치에 놓이는 현상과 연관된 것으로 주장하였고, 이로부터 그 시기를 기원전 7년으로 계산하였다.[8]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이 정확히 일치하는 연대를 찾기는 어려우며, 이를 상징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태어난 곳

신약성서 시대의 팔레스틴 지방

예수가 태어난 곳은 4복음서 가운데 루카 복음서마태오 복음서에 베들레헴이라고 쓰여져 있는 반면, 마르코 복음서요한 복음서에서는 다만 나사렛이 예수의 출신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성탄절의 구유에서의 출생 이야기는 오로지 루카 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으며,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예수가 태어나게 된 동기를 루카는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인구조사 때문에 예수 가족은 고향 갈릴레아 지방의 나사렛이라는 마을을 떠나 팔레스타인의 남쪽 지방인 유대의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베들레헴으로 갔다고 말하고 있다. 그 까닭은 요셉성모 마리아다윗 왕의 후손이기 때문에 다윗 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호구 등록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루카의 설명과는 약간 달리 마태오는 메시아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는 예언자 미가(5,1)와 이사야(7,14)의 예언대로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으며,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예수 가족은 헤로데스 1세의 위협을 피해 이집트로 가서 살다가 헤로데스 1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이 아니라 나사렛으로 돌아와 그 곳에서 살았다고 쓰고 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 작가인 엔도 슈사쿠는 《예수의 생애》(가톨릭출판사)에서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마태오의 주장은 예수가 예언자 미가가 예언한 그리스도임을 설명하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다며 편집비평을 하였다.[9]

  • 해석
  1. 이 두 기록들은 언뜻 읽기에 서로 모순이 없는 것 같지만, 복음사가들의 편집 의도가 담겨 있다. 자세히 분석해 보면, (1) 예수를 다윗 왕의 후손으로 소개하려는 복음서를 쓴 사람들의 편집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2) 이에 따라 갈릴래아에서 지리상 완전 동떨어진 유대로 예수 가족이 이사를 한 것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이며, (3) 예수의 첫 활동 무대가 나사렛이었던 관계로 그의 고향을 다시 나사렛으로 삼은 것으로 추측된다. 사도 성 바울로나 다른 사도 그리고 교부학자들은 예수의 고향을 나사렛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신학계에서는 예수의 베들레헴 탄생설을 구약성서에 맞춘 기독교의 교리로 해석하기도 한다.
  2. 마가복음 1:9에, '예수께서 갈릴리의 나사렛으로부터...'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예수의 출생지가 나사렛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요한복음 1:45에,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되어 있으나, 이것이 출생지라고 근거할 수 있는 논거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복음서 내의 전반적인 문맥을 따라서, '출신지'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개신교에서는 예수의 탄생지는 베들레헴이나, 나사렛에서 오래 전부터 살아왔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로 불린 것으로 보고 있다. 

     공생애 이전

    가계

예수의 가계에 대한 사실은 현재 남아 있는 문서 가운데 마태오 복음서루카 복음서에 기록되어 전하는 것이 전부이다. 두 복음서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는 성모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예수의 양아버지 요셉은 목수였다고 하며, 어머니 마리아는 어떤 집안에서 자랐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루카 복음서의 기록을 참조했을 때, 그의 가계가 세례자 요한을 낳은 엘리사벳과 친족 관계였던 것은 분명하다(루카 1,36). 예수의 잉태 및 탄생과 관련된 기록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기 전에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아이를 낳을 것을 고지 받았다(루카 1,26-38) 그러고 나서, 약혼한 몸으로 동거하기 이전에 성령에 의해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신앙심이 두터운 약혼자 요셉에게 고백하자, 아마 요셉은 적지 않은 심적 갈등을 겪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요셉은 나중에 꿈에 나타난 대천사 가브리엘의 계시에 따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였고, 예수를 낳았다고 한다.(마태 1,18-25)

마태오 복음서루카 복음서는 또한 예수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요셉은 다윗 왕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서(1,2-17)는 요셉의 선조를 아브라함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반면, 루카 복음서(3,23-38)는 심지어 아담까지 족보를 까마득히 펼치고 있다. 두 복음서는 여기서 약간의 계보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마태오는 다윗에서 요셉까지 28대를 손꼽고 있는 반면, 루카는 요셉이 다윗의 42대 자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이 부분에 대해서 역대기 상 3:10-24를 참조하라). 이러한 족보의 차이는 이들이 입수한 족보들이 한 쪽은 아버지인 성 요셉의 가계도를, 다른 한쪽은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가계도였기 때문이라고 신학자들은 설명한다. 교부들은 마리아도 다윗의 후손이라고 말하였으며, 교회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마리아를 다윗의 후손이라고 가르친다.

가족

예수에게 성 마리아성 요셉 이외의 다른 가족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평생동정설을 성서적인 근거 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성공회개신교에서는 그의 직접적인 형제가 있었다고 성서를 해석하고 있다. 반면, 성모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믿는 로마 가톨릭동방 정교회에서는 성서에 언급된 자들은 그의 사촌 동생들이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어린 시절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러나, 예수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려는 복음사가 루가의 편집의도가 들어 있는 루가의 복음서의 몇 구절이 조금이나마 예수의 어린 시절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예수의 12세 때 유월절에, 유월절을 지키려고 부모와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전례를 마치고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물렀지만 부모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하룻길을 갔다가, 방황하면서 아이를 찾았다고 한다. 예수를 찾은 지 사흘 뒤에 다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만났을 때, 예수는 유대교랍비, 곧 율법교사들과 율법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두가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겼다고 했다. 이에 부모가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묻자, 예수는 '제가 제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는 예수 자신과 온 인류의 아버지가 하느님이라는 것을 이 때의 예수가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보여 준다(루카 2,41-51)

그 뒤에, 계속해서 나사렛에서 자란 예수는 요셉의 직업을 이어 목수 일을 배우며 자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루카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느님과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고 (루카 2,52) 간단하게 적고 있다.

세례자 요한

예수는 어느 정도 성장한 이래 나사렛을 떠나 출가하였다. 그 이후에 당시 먼저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먼저 광야로 나가 세례를 베풀고 있었던 세례자 요한에게로 나아갔다. 예수를 본 세례자 요한은 오히려 자신이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왜 받으러 왔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를 통하여 '모든 의를 이루기를' 바랐고, 마치내 세례를 받기로 했다. 세례를 받은 뒤에 물에서 올라오자마자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왔고, 하늘에서 한 소리가 있어 말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했다(루카 3,22). 이러한 예수의 세례 장면에 대한 언급은 세례자 요한을 추종하는 종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투쟁에서의 우위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신학자들은 설명한다. 교회력을 신앙 전통으로 지키는 교회들은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 공적인 생애를 시작한 날을 '주의 세례주일'로 기념한다.

고행과 유혹

예수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뒤에, 홀로 광야로 들어가, 40일 동안 금식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에, 높은 곳에 올라가 마귀에게서 세 가지의 유혹을 받았다고 한다.

  • 첫 번째 시험: 들을 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하여 예수는 '사람이 떡으로 살 것이 아니요, 하느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신명기 8,3)'라는 성서 말씀으로 대적하였다.
  • 두 번째 시험: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게 하는 것이었다. 사탄은 이번에는 특이하게 성경 구절(그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시편 91,11-2))을 들어 그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신명 6,16)는 말로 사탄의 유혹을 꺾었다.
  • 세 번째 시험: 천하 만국을 보여주며, '나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들을 나에게 주겠다고 한 것이었는데, 예수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신명 6,13)라는 성경 구절을 들며 이를 거절하였다.

이러고 난 뒤, 사탄은 그를 떠났고, 천사들이 나아와 그를 도왔다고 하였다. 하지만 사탄의 유혹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신약성서 학자들은 예수가 받은 유혹을 고난의 그리스도가 아닌 영광의 그리스도의 길을 가라는 유혹으로 해석한다. 다시 말해, 유혹 내용들이 모두 명예욕을 채울 수 있는 조건들이었기 때문에, 모두 사람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는 그리스도의 길을 가라는 유혹으로 해석하는 것이다.[10]

공생애

 첫 기적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처음 행한 기적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이다.(2,11)

당시 유대인들은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대접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 혼인 잔치에 갔다가 예수와 제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가 생겼다. 이를 안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아들인 예수에게 이에 대해 문제를 해결해 주도록 일렀고, 예수는 하인들에게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붓게 했다. 하인들이 시키는 대로 모든 물을 가져오자, 예수는 잔치를 맡은 이에게 그대로 갖다 주게 했는데, 물은 어느새 포도주로 바뀌어 있었다. 이를 본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된다(요한 2,1-11).

 산상수훈

이 부분의 본문은 산상수훈, 팔복, 주기도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초기에 사람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모이자,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산 위에서 이들에게 설교하였다. 이를 담은 내용이 마태오 복음서 5장부터 7장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설교 내용은 마태오 복음서 5,3-12, 즉 팔복 부분으로, 어떤 사람이 행복한지에 대한 가르침이다.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공동번역)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11][12]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이 밖에도 다소 파격적인 내용(악인을 대적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 은밀히 구제하라, 비판하지 말라)이 있다. 현재 전체 기독교에서 쓰이는 유일한 예수의 기도인 주기도문도 여기에 씌여 있다.

비유들

예수의 청중들이 알기 쉬운 비유를 통해서 가르침을 행했다. 이를테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르코 복음서 4,3-20)는 밭을 갈지 않고 그대로 뿌리던 이스라엘 농부들의 농사 방법을 소재로 하고 있다.

병 고치는 기적들

복음서에는 예수가 수많은 병을 고쳤다는 기적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까닭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변증하고자 하는 복음서 편집자들의 신학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예수가 병을 고친 사건은 단순한 기적이 아닌,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명한 자기 증명인 것이다.

 율법학자들과의 논쟁

복음사가 루가에 의하면 예수는 이미 12살 적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그리스도는 율법학자와 토론을 벌였는데, 착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전승도 율법학자와의 토론에서 유래한 것이다. 어느 율법학자가 그리스도에게 "진짜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자, 예수는 예시를 들어, 강도 만난 사람이 길에 쓰러져 있는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를 보고도 지나쳤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간호하고 여관에 맡겨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돌보아달라고 부탁하여 보살폈다는 비유를 말한다. 그러면서 누가 참된 이웃이냐고 묻자, 율법학자는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운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사로(나자로)를 살리다

예수는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와 친분이 있었는데, 이들의 오빠가 나자로였다. 나자로가 세상을 떠나자 예수는 그를 살렸다

예루살렘 입성과 마지막 만찬

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간다.(마태 20:17-19, 루카 18:31, 마르 10:32)예루살렘에 도착한 예수는 민중들의 환대를 받는데, 이는 예수를 정치적 혁명가로 생각해서였다. 실제로 마태오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 놓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아 놓기도 하였다.'라고 하는데, 여기서 나뭇가지는 당시 유대교 종교 권력의 횡포로 소작농으로 전락한 이들이 재배하던 종려나무의 가지였다.[13] [14]가 하지만 예수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죽음을 위해서 왔기 때문에, 이들의 인기에 편승하지 않고,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떼어 감사 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죽음이 뜻하는 바를 설명하였다.(마태 26,26-28) 이를 그리스도의 성체제정이라고 하는데, 성공회, 정교회,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체성사, 성찬례, 성체성혈성사, 개신교에서는 성만찬이라고 부르는 성사성직자가 집전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을 기념한다.

 십자가에 박히기까지

자신들에 대해 비판적인 예수를 위험 인물로 본 유대교의 대제사장들은 가리옷 사람 유다와 결탁하여 그를 체포하였다. 체포된 그는 유대인들의 자치기구인 의회에서의 재판을 거쳐 빌라도의 재판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해서 루가 복음서는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여 풀어 주고자 하였으나, 유대인들의 압력으로 십자가형에 처해진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루가 23,14-25). 하지만, 빌라도의 총독으로서의 위치를 생각해 본다면, 예수를 그의 의지에 따라 십자가형에 처한 것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실례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그의 십자가에는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민족 지도자를 뜻하는 '유대인의 왕(INRI)'라는 죄패가 달렸으며 예수를 처형한 세력은 로마 제국의 공권력이었다. 더구나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환호를 받을 만큼 민중들의 지지를 받는 유명 인사였으므로 빌라도에게 그는 위험 인물이었다. 다시 말해, 루가는 교회가 로마 제국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여,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지지했으나 마지못해 십자가형에 처한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예수는 두 명의 강도[15]들과 함께 잔인한 처형 방법인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가상칠언과 죽음

가상칠언은 그리스도께서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형으로 죽어갈 때 십자가 위에서 언급한 일곱 개의 말들을 모두 이르는 말이다.

  1.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 누가복음 23:34
  2.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 - 누가복음 23:43
  3.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 요한복음 19:26-7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마태복음 27:46
  5. '목마르다.' - 요한복음 19:28
  6. '이제 다 이루었다.' - 요한복음 19:30
  7.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 누가복음 23:46 

     부활과 승천

그리스도교 교리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부활한 뒤에 하늘에 오름을 받았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장사한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며 11제자들을 축복하시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강요할 수 없으며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예수의 가르침과 그리스도교
 초기 그리스도교

복음서

복음서는 마태오의 복음서, 마르코의 복음서, 루가의 복음서, 요한의 복음서를 말한다. 전통적으로 저자들은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으로 여겨지는데, 모두 유대 사람이었을 것이다. 19세기까지는 역사성이 있는 것으로 곧, 예수의 행적을 보고 쓴 것으로 여겨왔으나, 20세기 초에는 역사성이 가장 있는 것으로 여겨져 온 마르코의 복음서조차 역사성이 희박하며, 성격도 그리스도교 독자들을 위한 신학문서나 설교문서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복음서는 실제로 예수의 행적을 보고 쓴 게 아니라, 예수에 대한 교리를 전하기 위해 예수 전승을 편집한 신학문서인 것이다. 이는 요한이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요한 20:31)"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또한 복음서는 저자들이 독창적으로 쓴 게 아니라, 서로 의존하여 마태오와 루가는 첫 복음서인 마르코의 복음서를 의존하였다.

 사도 바울로와 예수상

사도 바울로는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역사 속의 예수를 직접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는 개종 후, 사도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예수 전승)를 들었으며, 이를 근거로 지중해 지역에서 활발히 선교 활동을 하였다.

 연구 및 관점

기독교적 관점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 교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하나님)의 외아들인 동시에, 피조되지 않고 하느님에게 나신 하느님이며, 성모 마리아에게 혈육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고 믿는다.(니케아 신경/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 그 외, 사도신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칼케돈 신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인 동시에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칼케돈 신경에페소 신경에서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었다는 네스토리우스에 반대, 성모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는 호칭을 붙임으로서 예수를 하느님이자 인간으로 고백한다. 일부 신학자들은 초대교회에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한 것에 대해서 로마제국의 황제숭배에 반대해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로마제국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는데,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여 황제 숭배에 반대했다는 것이다.[16]

유대교적 관점

유대교에서는 신은 야훼 뿐이라는 유일신 교리에 따라서, 예수를 하느님의 외아들 또는 하느님으로 보지 않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러 온 예언자라고 본다.

 이슬람교적 관점

이슬람교에서는 에서 예수를 이샤(????)라고 하며,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예수를 신의 외아들 혹은 하느님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신은 알라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슬람교도은 예수를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고 부르며, 신이 보낸 가장 중요한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성사(聖使)로서 존경한다.

 힌두교적 관점

예수는 Easa라는 이름으로 힌두교 성전에 등장한다. 예수는 칼리 유가가 삼천 살이 되던 때에 후나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예수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자로서 신의 아들로 여겨졌다. 힌두교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Easa Maseeha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힌두교에서 예수에 대한 믿음은 다양하다. International Society for Krishna Consciousness (ISKCON)는 예수를 크리슈의 사랑을 받은 아들로서 신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해여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여긴다. Contemporary Sant Mat movements는 예수를 Satguru로 여긴다. Ramakrishna는 예수를 신이 육화된 것으로 여긴다. Swami Vivekananda는 예수를 찬미하고, 그를 힘의 원천과 완벽함의 전형으로 생각한다. Paramahansa Yogananda는 예수를 Elisha의 재육화이며, Elijah의 재육화인 세례 요한의 학생이었다고 가르친다.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를 그의 주된 스승중 하나로 여겼으며 예수로부터 비폭력 저항 운동의 영감을 얻었다.

 불교적 관점

불교도들이 예수를 보는 관점은 통일되어 있지 않으며 서로 다르다. 제14대 달라이 라마텐진 갸초를 비롯한 일부의 불교도들은 예수를 자신의 삶을 인류의 행복을 위해 헌신한 보살로 여긴다.

 실존 여부에 관한 논란

예수가 실존인물인가 아닌가 하는 실존성에 관해서 기독교의 성립 초기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다. 논란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진다. 1) 생물학적으로 예수라는 인간이 존재하였는가 하는 점 2) 신약성서의 기록이 사실인가 하는 점

현재까지 이런 논란에 대해서 어떠한 입장을 취하느냐는 종교인 사이에서도 견해가 갈리며, 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종교적 견해를 살펴보면 첫째로, 예수가 실존하였고, 신약성서가 사실이라는 기독교도의 정통적인 견해가 있다. 둘째로, 예수라는 인간은 존재하였으나, 신약의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는 견해가 있다. 이런 견해는 종교적으로는 유대교도나 이슬람교도의 전통적인 입장이며, 일부 기독교 종파에서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서술된 서적으로는 《예수는 신화다》가 있으며 반기독교적인 견해에서 서술된 서적으로는 《성혈과 성배》(ISBN 8954403425)가 유명하다.

역사학과 과학계에서는 예수의 실존을 부정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 논거는 다양하나 몇가지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1) 예수에 대해서 동시대에 다른 인접국가에서 기록이 전무하다는 점 (교차검증의 불가) 2) 신약성서의 기사가 모순되며,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점 (기사의 신뢰문제) 3) 신약성서의 기적은 물리법칙과 모순되며, 단지 주장에 불과하다는 점 (증거와 기록의 부족) 4) 다양한 복음이 정치권력에 의해 배제되었다는 점 (후대의 조작문제) 5) 예수의 생애와 기존 종교 또는 신화와의 유사성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예수라는 인간이 존재하였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견해가 갈린다. 역사적으로 그 당시 다수의 남자가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하였고, 역사적으로 다수의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가 예수라는 이름과 메시아를 자처하며 활동하였기 때문에 단순히 예수라는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라고 보거나, 갈리리 지역에서 활동하던 예수라는 사람은 있었을 수도 있다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기적이나 전반적인 활동은 사실과 다르다고 보는 것은 같다.


 주석

  1. 1.0 1.1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편, 〈예수 그리스도: I. 사료〉 《한국 가톨릭 대사전》, Vol. 9,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94~2003, pp. 6337~6339, ISBN 8985215361
  2. 《타르수스의 바오로》/박태식 지음/생활성서
  3. 3.0 3.1 3.2 學園出版公社 事典編纂局 편, 〈예수그리스도〉, 《學園世界大百科事典》, Vol. 21, 서울: 學園出版公社, 1993, 496~498쪽.
  4. 이영호, 〈공관복음의 기원〉, 《敎授論叢》, Vol. 10, 군포: 한세대학교, 1997, p. 53.
  5. 《복음서와 시간》/박태식 지음/생활성서
  6. 《복음서신학》/김득중 지음/컨콜디아
  7. James D. G. Dunn, Jesus Remembered, Eerdmans Publishing, 2003년, p.324
  8. 케플러는 이러한 행성의 합(合)이 초신성을 생성하며, 당시에도 그러한 초신성이 있었다고 추측하였다. 하지만, 행성의 합과 초신성은 관련이 없으며, 실제로 당시 두 행성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이 알려져 있다.
  9. 《예수의 생애》/엔도 슈사쿠 지음/이평아 옮김/가톨릭출판사
  10. 《메시아 예수》/도널드 거스리 지음/아가페
  11. 에큐메니컬 공동체 떼제 공동체를 설립한 로제 수사는 마태오 복음서의 산상수훈을 예수께서 단순함을 가르치신 것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인은 단순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보았다.
  12. 가난한 자들의 복음서라고 불리는 루가 복음서에는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는 그들의 것이다.'라고 되어 있고, 마태오 복음서에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해 신약성서학자 김득중 선생은 《주요 주제를 통해서 본 복음서들의 신학》(한들출판사)에서 루가교회 교우들은 가난한 농촌교회 신자들이었던 것에 반해, 마태오교회 교우들은 부유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즉, 마태오가 루가의 복음서 내용을 사목(목회)적인 필요에 따라서 수정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13. 《우리가 모르는 것들, 성경에는 있다.》/오경준 지음/홍성사
  14.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으로써 예루살렘에 입성한 사건으로 해석하여, 성지주일(종려주일)을 지킨다.
  15. 하지만 예수와 같이 십자가형으로 죽은 자들이 강도였는가는 이견이 있다. 실제로 가톨릭 작가인 엔도 슈사쿠는 《예수의 생애》에서 예수의 양옆에서 처형 당한 사형수들이 로마제국에 반대하는 정치범이었을 것으로 보았다.
  16. 《미래에서 온 기독교》/정강길 지음/에클레시안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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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예수

설교문 2008. 11. 26. 09:51

역사적 예수

역사적 예수(歷史的-, 영어: Historical Jesus)는 역사적 방법론으로 바라본 나사렛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론(기독론)이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론은 근대의 서구 신학계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등장하였다. ‘교리적 그리스도’(케리그마(Kerygma)의 그리스도)가 사도신경, 니케아신경 등의 신경(信經, Creed) 또는 복음서 저자들의 신학으로 해석된 교리적 그리스도인 반면에, 역사적 예수는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던 인물로서 예수의 삶을 주목하여 바라본 예수를 말한다. 다시 말해,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역사적 인물로 실재했던 ‘예수’가 누구인지를 밝혀내려고 시도하는 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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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의 예수 이미지

예수

역사적 예수는 누구인가

1세기 팔레스타인의 사회·문화적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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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

1세기 팔레스타인의 문화는 전통적인 유일신 신앙인 유대교(Judaism)와 외래문화인 헬레니즘(Hellenism)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기서 헬레니즘이란 그리스 문화가 기원전 4세기 후반부터 띠기 시작한 새로운 형태로서, 그 시기에 동부 지중해 세계의 판도를 바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이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이수스 전투, 가우가멜라 전투 등의 정복 전쟁으로 정복하고 인도로 향하는 길을 연, 그의 원정의 뒤를 따라서 헬레니즘 문화가 생겨났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그의 장군들이 정치적 암투를 벌이면서 제국은 분할되었지만, 헬레니즘 문화는 지중해 동부 세계에서 7세기 아랍 제국의 정복이 있기까지 지배적인 문화로 남아 있었다.[1]

예수가 살던 시대의 팔레스타인에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강조하는 개인주의는 매우 낯선 사고방식이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족이나 가문 같은 친족 집단끼리 서로 연결되어 사는 공동체적 문화와 유대교 전통을 존중하는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었다. 따라서 개인의 사적 이익보다는 가문의 명예를 더 중요시했고, 유대교적 가치가 경제적인 가치보다 중요하였다. 예수 시대에는 소위 모세 율법 또는 모세 5경이라고 불리는 율법(Torah)과 종교적 관습법이 유대인의 규범이었다. 또한 그들의 우주관은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신화적이었다. 그들은 천상이 세 가지 층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2] 그래서 사도 바울로고린토(코린토스) 교회에 보낸 서신서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자랑해서 이로울 것은 없지만 나는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나는 주님께서 보여주신 신비로운 영상과 계시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내가 잘 아는 그리스도 교인 하나가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까지 붙들려 올라간 일이 있었습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고린도후서) 12:1~2 / 공동번역)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356~323년)이 죽은 뒤 제국이 분할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집트와 함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기도 하고, 북쪽으로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전반적으로 이 시기에 걸쳐 기원전 2세기 초까지 외국의 왕들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였다. 물론 이 시기에는 적어도 종교의 자유는 허락되었다. 그러다 기원전 168년부터 167년 사이에 셀레우코스 왕조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는 유대인을 헬라주의자로 만들기 위해 강제적인 반유대주의 정책을 폈다. 음식법과 안식일 준수, 성전에서 야훼에게 올리는 제사 같은 유대교의 특성을 외국의 왕인 에피파네스가 제거하려 하자,[3] 유대 민중은 안티오쿠스에게 저항했고 짧은 기간 자치 정부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자치 정부인 하스몬 왕조(Hasmonean Kingdom)는 헬라적 왕조의 모습을 닮아갔고, 그것은 종교적 자유를 향한 유대인의 근본적인 기대와 어긋났다. 결국 불안정한 정치 상황은 기원전 1세기 중엽 유다로마의 침략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4]


신약성서시대의 팔레스타인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추진한 강압적인 헬라화 정책이라는 위기 속에서 유대교는 새롭게 형성되었다. 옛 귀족 계층은 다양한 당파로 갈라져 각축을 벌였고, 하스몬 왕조는 유대교 사제(제사장) 중심의 잔류 귀족(사두개파)과 결탁해 새로운 지배층을 형성했다. 이 새로운 지배층은 원래 동맹을 맺었던, 바리사이파 즉 율법학자와는 등을 돌리고, 자신들 스스로 멀리했던 옛 귀족 계층과 새로운 종교적 세력을 가진 동맹관계에 돌입했는데, 이것이 에세네파로 나타났다. 따라서 유대교의 고전적인 종파는 모두 기원전 200년경에 모습을 드러냈고, 예수 시대의 유대교에까지 영향을 끼쳤다.[5]

기원전 1세기 중엽에 로마 제국은 동방정벌을 감행한다. 이로 인해 제2의 헬레니즘화, 더욱 지속적인 헬레니즘화의 물결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밀려 왔다.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는 팔레스타인을 정복했다. 유대인은 하스몬 자치 정부를 상실했고, 로마 군대의 군사력에 힘입어 헬레니즘 문화는 지중해 동부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팔레스타인의 헬레니즘화는 이때 처음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헤로데 대왕(헤로데스 1세, 기원전 40~4년)의 통치는 그러한 헬레니즘화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헤로데가 사망한 뒤 곳곳에 강압적인 헬레니즘화 정책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다. 폭동이 일어나고 위기가 찾아왔으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대인은 로마 제국과 66년부터 74년까지, 115년117년, 132년부터 153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유대-로마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으로 유대교는 연쇄적인 파국을 맞았고, 특히 70년의 성전 파괴는 가장 치명적인 타격이었다.[6] 왜냐하면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에게 제사(예배)를 드릴 장소가 없게 됨을, 즉 유대인이 종교적으로 단결할 장소가 없게 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대 독립 전쟁을 진압함으로써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유대교의 성격이 바뀐 계기가 되기도 했다.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여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면서, 제사·예루살렘 성전·제사장 중심의 종교에서 율법·유대교 회당(시나고그(Synagogue))·[율법학자 중심의 종교로 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7]

고대 갈릴래아 지역

게르하르트 렌스키(Gerhard Lenski)는 1세기 지중해 세계가 산업화 이전의 발전된, 전형적인 농업 사회였다고 보았다. 이런 사회는 소수 엘리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복잡한 계급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농업 생산을 그 경제적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당시 팔레스타인의 사회경제적 조직의 기초에는 농민이 있었다. 이들은 전체 인구의 약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으며, 조상 대대로 내려온 생활 방식을 유지하였다. 이들 중 일부는 가뭄 같은 일시적인 농업 재난으로 인해 자신의 농지를 잃고 소작인으로 전락했는데, 성전세를 명목으로 자영농의 토지를 수탈하고, 그 자리에 당시 인기 작물이었던 종려나무를 심은 예루살렘 성전의 탐욕도 소작인 전락의 원인이었다.[9]

팔레스타인 농민들의 가장 주된 관심사는 그들보다 상위의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몫을 가져간 후에도 과연 생활을 유지할 만큼의 식량(물품)이 남아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농민과 유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시골 프롤레타리아’(rural proletariat)로서, 떠돌이 일당 노동자, 떠돌이 기술자, 산적 등이 해당했다. 이들은 이전에는 농민이었다가 경제적으로 몰락한 사람들로, 농민 계층과 정서가 통했으며, 경제적 사회적 압박으로 말미암아 농민보다 더 불안정한 삶을 영위해야 했다. 또한 농민과 유사한 수준의 계층에 속한 사람으로 지방의 장인(匠人)이 있었다. 이들은 전 인구의 약 3에서 7퍼센트를 차지했고, 기본적인 농기구와 가재도구를 공급했다. 그중 특별한 기술을 보유한 일부는 도시 엘리트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 수 있었지만, 대부분 장인의 고객은 최저 생계를 겨우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복음서는 나사렛 예수가 이러한 시골 장인 중 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마르코 복음서 6:3 / 공동번역)[10][11]

농민 계층 바로 위에는 상인 계층이 있었다. 상인들은 대부분 노예 및 해방 노예였고, 이들은 엘리트 계층의 사람들과 옛 주인-평민 관계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엘리트 계층은 과세와 관련이 없는 상업의 대부분을, 그들의 노예 또는 해방된 노예를 통해 경영하여 수익을 얻었다.

다른 사회 계층은 렌스키(Lenski)가 ‘가신(家臣)들’이라고 부른 관료, 공무원, 직업 군인, 직업 종교인들로, 이들은 엘리트 계층의 권력을 확장하는 도구 구실을 한 계층이었다. 예수 시대에 이러한 가신들은 거의 모두 유대인이었고, 지방 재판관 및 행정가, 하급 세리들, 땅주인 대신 땅을 관리하던 청지기 등으로 성서에 등장하는데, 대부분의 가신은 사회 하층민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으며,[12] 식민지 수탈 행위로 로마 제국의 부를 유지시키는 로마의 하수인에 불과했다.[13] 실례로 복음서에서 언급된 세리들은 지배자인 로마 제국을 위해 많은 세금을 거두어 같은 동족을 착취하는 로마 제국의 하수인 노릇으로 부자가 된 식민지 수탈 행위 때문에 동족들에게 경멸을 받은 자들이었다.[14][15][16][17] 즉, 로마 제국은 그들의 하수인인 식민지 세리들의 착취 행위로 부를 유지했던 것이다.[18]

팔레스타인 사회의 최상위 계층은 도시 엘리트로, 전체 인구의 3퍼센트에 불과했으며, 이들의 신분은 팔레스타인이 헬라적으로 도시화된 것과, 약 50년 전에 헤로데 대왕(헤로데스 1세)이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준 결과로 얻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유대인 동족보다는 에돔 사람(에돔은 이두메아를 일컫는 헬라어이다.)인 헤로데 왕과 로마 제국에게 많은 유익을 제공해야만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의 수입은 주로 토지세에서 나왔고, 관료 계층을 이용해 농민을 착취하였다.[19]


 1세기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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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린 예수상(십자고상)

1세기 팔레스타인은 로마 제국식민지이었다. 로마 제국은 군사력으로 유지되는 사회였다. 레기온(legion)으로 불리는 로마의 군단은 지중해 연안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였다. 로마 제국의 레기온은 로마 시민만으로 구성된 중무장 보병이었다.[20]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는 1만 2천 명의 유대인학살하고, 3개월 동안의 포위 작전 끝에 예루살렘을 점령하였다. 점령 후에 폼페이우스는 이방인의 출입이 금지된 성스러운 공간인,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갔다. 이후 로마에 병합된 팔레스타인은 로마 제국의 폭압적인 통치와 그로 인한 민중 반란, 그리고 민중 반란에 가담한 자들에 대한 보복으로 십자가형이 공개적으로 집행되는 정치적인 혼란을 겪었다.[21]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 보면, 헤로데 대왕(헤로데스 1세) 사후에 벌어진 유대 민중의 봉기를 당시 시리아의 로마 총독인 바루스가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유대인을 무차별하게 학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유대의 초대 총독이었던 코포누스(Coponius)는 효율적인 세금 징수를 위해 호구 조사를 실시하다가 유대인이 저항하자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예수를 ‘유대인의 왕,’ 즉 로마 제국에 반대한 자로 규정하여 십자가에서 처형한 필라투스야훼 하느님을 모시는 성전의 재산을 탈취한 자신에게 저항하는 군중을 학살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론(Philon)은 로마 총독 빌라도에 대한 아그리파 1세(헤로데 대왕의 손자)의 인물평을 기록하였다. “잔인하고 고집스러우며 동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가 다스리던 시대의 유대는 뇌물과 폭행, 쟁탈, 압박, 능욕, 재판 없는 처형, 제한 없는 잔인성이 지배했다.”[22] 루가 복음서(누가복음)에도 제사를 드리던 갈릴래아 사람을 학살했는데, 그 피가 제물에 흐를 정도로 끔찍했다는 내용이 나온다.[23]

카리스마적 존재 예수

예수는 카리스마적 존재였다. 그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영향력이 발휘되어 추종자들을 매료시키고, 적대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예수 때문에 가장 당황한 것은 그의 가족이었고, 이들은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했다(마르코 복음서 3:21). 그렇지만 예수는 자신의 가족 덕분에 약간의 카리스마를 더할 수 있었다. 예수의 가족은 스스로 다윗의 후손, 즉 메시아라고 주장했고, 이것은 예수가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재건할 다윗의 자손일 것이라는 기대를 부추겼다. 물론 예수는 이런 기대에 대해 냉담했던 것으로 보인다.[24][25]

예수는 재치 있는 경구를 통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예를 들어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당시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는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야훼를 유일신으로 믿는 유대인으로서 적절한 행동인지를 시비하여 예수를 곤란한 지경으로 몰아넣으려 했다.[26] 이에 재담가 예수는 데나리온 한 닢을 보여 달라고 하면서,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그들이 돈을 가져오자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라고 물었다. “카이사르의 것입니다.”라고 대적자들이 대답하자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마르코 복음서 12:17, 마태오 복음서 22:21, 루가 복음서 20:25 / 공동번역)라고 대답한다. 이런 식의 경구는 짧고 독특한 표현으로 말미암아 민중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래서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예수의 아포리즘, 즉 짧은 경구에 주목하여 역사적 예수의 본래 발언을 찾아내려고 한다. 예수의 아포리즘은 전통적인 속담과 격언이 담아낼 수 없는 놀라운 재치와 참신한 감각을 담고 있다. 전통 사회의 격언이 통속적인 지혜로서 문화 자체의 집단적이고 관습적인 세계관을 반영한다면, 예수의 아포리즘은 특정 개인의 색다른 관점이나 개념을 나타낸다.[27] 정승우에 따르면, 진부한 일상적 세계관에 얽매여 새 시대의 징조를 읽지 못하는 기득권 세력에게 대항하는 예수의 가장 중요한 무기가, 바로 그들의 상식을 뒤집는 풍자의 아포리즘이었다.[28]

 예언자 예수

예언자로서, 즉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로서 예수는 종말론적 선포를 했는데, 하느님의 나라, 즉 하느님의 통치로 번역할 수 있는 ‘βασιλε?α του θεου’(바실레이아 투 테우)에 대한 구원의 메시지가 그의 종말론적 선포의 중심이었다.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 즉 하느님의 통치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함과 함께 사람의 아들은 생각하지 못할 때에 올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설교(마태오 복음서 24:33-44)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성부 외에는 알지 못하는 때에 올 것이라고 선포한다. 팔레스타인 외부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가 구원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만 활동한 역사적 예수만이, 하느님의 나라를 종말론적인 가르침, 즉 마지막 때에 대한 가르침의 중심에 놓을 수 있었다. 이 세상이 끝날 때가 되면 하느님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동시에 심판하신다고, 예수는 말한다.[29]

치유자 예수

하느님 나라, 즉 하느님의 통치가 예수 설교의 중심이라면, 치유와 귀신 축출은 예수 활동의 중심이다. 예수는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기이한 일을 일으켰다. 그 당시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예수를 연구했던 근대의 역사 연구가들은 예수의 기적에 대해 곤혹스러워 했다. 예수의 기적을 다룬 전승은 수없이 많은 옛 전승층에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마이어(J.P. Meier)가 지적하듯이, 만일 예수의 기적 전승을 모두 비역사적인 것으로 취급할 경우에는 다른 전승 모두를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르트 타이센은 예수의 기적이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도움, 질병을 치유하는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 것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항거로서 기존의 모든 ‘고통’ 경험의 유효성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한다.[30]

기적의 행위와 예외적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유대교와 비유대교 문헌 모두에서 볼 수 있다. ‘마법의 파피루스’라고 불리는 문서에는 치유 및 귀신 축출, 저주를 위한 마법과 주문이 기록되었다. 마법은 이상한 조리법이나 제의적인 행위, 다양한 신의 이름이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나 외국어를 길게 나열한 표현을 포함했다. 비유대교 세계에서 치유는 다양한 사당(祠堂, shrines)에서 일어났다. 청각장애인, 중풍병자, 그리고 지체장애인이 치유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요한 복음서 5장에서 예수가 38년 된 병자를 만났던 연못 베데스다도 실제로는 병원이었으며, 천사가 와서 물을 휘젓는다는 전승도 신약학자 요아킴 예레미야스에 따르면 베데스다의 북쪽 저수지에 일정한 양의 이 찰 때마다 병자들이 대기하고 있던 남쪽의 목욕장으로 흘려보낸 것이다.[31]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베스파시아누스가 의사와 상담한 후에 어떻게 침을 사용하여 시각장애인을 치유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역사》 4.81). 유대 자료에도 치유 행위 등의 기적을 행한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원을 그리는 사람 호니(Honi, 기원전 1세기)와 하니나 벤 도사(Hanina Ben Dosa, 기원후 1세기)라는 두 랍비가 그들이다. 하니나는 독사에 물렸다가 살아났고, 먼 거리에서 병자를 치유했다. 호니는 가뭄 때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여 비가 내렸다. 또한 요세푸스는 자신의 눈으로 엘레아자르(Eleazar)라는 유대인 무당이 솔로몬의 마법을 이용해 귀신을 축출하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하였다.[32]


 시인 예수

예수의 말 중 인상적인 것은 ‘비유’로, 짧고 시적인 이야기이다. 학력이 낮은 사람도 이 비유를 잘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비유를 통해서, 예수는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무한한 책임을 지니고 있고, 모든 사람이 그 책임을 의식하면서 자신의 삶 전체를 던지는 결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 결단을 지금 촉구하는 이유는 구원과 심판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33]

스승 예수

예수가 가르친 윤리적 교훈은 하느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그의 모든 가르침은 유대 율법인 토라의 기반 위에 있었고, 그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계명을 토라의 핵심이라고 보았다.[34] 그런데 예수는 그 계명을 적들과 이방 사람들과 종교적으로 소외된 자들에게까지 적용되는 것으로 발전시켰다. 안식일의 준수에 있어서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규범에 대한 예외조항의 확대를 주장하였다. 즉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경우에는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허용하자는 것이다.[35] 또한 예수는 거룩한 것과 더러운 것에 대한 구별에 회의적이었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가족이나 소유, 고향, 안정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급진적인 윤리를 요구하였다.[36] 이로써 예수는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일상의 의무로 사람을 길들이는 사회적인 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37]

제의 창시자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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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이른 바 “최후의 만찬[38]이라고 불리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에서, 예수는 새로운 제의(祭儀)가 창시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유월절 축제가 시작되기 전날에 나누었던 조촐한 식사에서, 예수는 포도주를 나누며 이를 ‘새 언약’의 축제로 해석하였으며, 사도들에게 이를 행하라고 하였다.[39] 예수와 제자들은 이 식사가 공식적인 제의를 대체하는 의식으로 여겼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후, 사도들은 예수의 죽음을 피의 제물, 즉 새로운 언약을 세우기 위한 제물로 해석하였고, 그 해석이 성만찬의 토대가 되었다.[40] 실제로 모든 기독교 교파들은 이러한 사도들의 해석에 따라 성만찬을 집전한다.

순교자 예수

스파르타쿠스

역사적인 차원에서 볼 때, 예수의 죽음은 로마 권력의 물리적 폭력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예수가 두 명의 강도와 함께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는 사실은 로마인의 눈에 그가 위험한 인물로 보였음을 뜻한다. 당시 로마 제국의 십자가 처형 대상은 정치적 반란자와 반항적인 노예, 두 유형으로 나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스파르타쿠스는 검투사 출신으로 기원전 70년경 로마 제국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였는데, 그의 추종자 6천 명은 로마로 향하는 아피아 가도 위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였다. 기원전 3년경에는 팔레스타인의 갈릴래아 지역에서 유다라는 이름의 랍비가 로마 제국에 대한 납세 거부 운동을 벌이다가, 로마군에게 진압되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3천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한다. 예수의 처형이 일어난 이유도 당시 지배 질서에 반대하는 사회적 예언자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었다.[41] 실제로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십자가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을 매달아서 예수를 로마 제국의 통치 질서에 반대하는 자로 규정했다.


부활한 예수와 그리스도론의 태동

부활하는 예수


십자가에서 죽은 뒤, 예수는 가장 먼저 베드로 혹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났다. 그 뒤로 다른 제자들에게도 나타났다. 제자들은 예수가 살아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결정적으로 개입하실 것이라는 희망이 예상했던 바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취되었다. 제자들은 예수라는 인물과 그의 삶을, 그들의 부활 체험 이후에 새롭게 해석하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가 메시아였음을 인정했다. 다만 예수는 제자들이 전혀 예견하지 못했던 메시아, 즉 고난 받는 구세주였다. 생전에 예수는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거부하면서, 자신을 ‘사람의 아들’(인자(人子))라고 표현했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가 ‘사람의 아들’, 즉 다니엘서 7장 13절부터 14절에 나오는 “인자(사람의 아들) 같은 이”로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넘겨받은 ‘사람의 아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42] 제자들은 예수가 이제 하나님의 오른편으로 옮겨갔다고 여겼기 때문에, 스데파노(스데반) 부제는 순교 직전 하느님의 오른편에 계신 예수가 보인다고 말했다.[43]

이처럼 기독교 신앙은 유대교의 한 형태, 즉 예수메시아로 믿는 메시아적 유대교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기원후 1세기, 기독교는 점차 유대교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44] 유대교와 기독교의 분리 과정을, 신학자에 따라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기도 한다. 기독교는 초기에는 나사렛 사람, 나사렛 도둑들, 나사렛파 등으로 불리던 유대교 분파였으며, 율법 등의 유대교 전통을 강조하는 히브리파 기독교와 율법으로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해석, 믿음을 통한 구원을 강조하는 헬라파 기독교로 양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실례로 사도행전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기독교인’들이었던 반면(사도행전 20:21~22), 이방인의 사도(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갈라디아서) 2:7)라고 불리는 사도 바울로는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을 통한 구원을 강조하고 있다(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2:16). 이들은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대립했는데,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은 바울로를 ‘모세의 가르침을 본받지 말라고 선동하는 자’라고 생각했고, 사도 바울로는 모세 율법을 지키는, 즉 유대교와 단절하지 않은 히브리파 기독교인그리스도 안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거짓 형제, 가짜 신도라고 생각했다.[45] 모세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가르친 예루살렘 교회의 교사들과 안티오키아 교회의 사도 바울로, 바르나바가 논쟁을 벌였다는 사도행전의 보도도 이들의 대립을 잘 말해준다. 하지만 85년부터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기독교도는 유대교에서 축출되기 시작했고, 기독교도를 ‘나사렛 도둑’이라고 비난하는 기도문까지 발표되면서 결국 기독교는 유대교의 분파에서 유대교에서 독립된 종교로 성격이 바뀌게 되었다.[46][47]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기독교 정체성의 토대가 된다.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예수는 유대교에 속해 있다. 또한 유대인들은 그들이 믿었던 예수를 기독교의 터전으로 삼았다. 이로써 오늘날 예수는 자신의 사후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독립적인 발전을 한 두 종교에 속하게 된다. 유대교와 기독교 모두, 유일한 한 분 하느님과의 대화 속에서 살아가는 삶, 이 세상과 공동체를 위한 윤리적 책임을 공통 주제로 삼고 있다.[48]

연구의 역사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복음서사도들 특히, 사람으로 오신 예수를 본 적이 없는 바울로 사도의 바울로 서신예수에 대한 교리를 전할 뿐, 하느님의 나라(복음서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하느님 나라, 천국, 하늘나라, 앞으로 오게 될 아버지의 나라, 그분의 나라로도 묘사한다.), 곧 앞으로 오게 될 나라의 임박성을 선언했던 역사 인물로서의 예수(역사적 예수)를 전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49] 따라서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복음서사도들의 서신 속의 교리적 예수가 아닌,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추구한다. 이를테면, 예수의 죽음에 대한 관점의 경우 교리적 예수는 세상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된 제물이라면, 역사적 예수는 로마 제국에게 위험인물로 규정되어, 십자가형으로 숙청된 순교자이다.[50] 20세기 이후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는 마커스 보그, 로마 가톨릭 수사 출신으로 환속한 도미닉 크로산 등의 예수 세미나 운동 시작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신학자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해 비판적이어서, 독일루터교회 신학자인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년~1976년)은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찾으려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찾아야 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루돌프 불트만의 제자인 에른스트 케제만귄터 보른캄 등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질문을 다시 제기하였다.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이후 하느님(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가 된 예수는 이미 이 땅 위에서의 삶 속에서 부활 이후의 고양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을 것이라고 보고, 그 ‘발판’이 무엇인지를 묻는다.[51]

대한민국에서는 한국 기독교 연구소에서 크로산 등의 신학 문서들을 출판하여,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 성과들을 소개하고 있다.

역사적 예수 연구사는 크게 네 시기로 분류할 수 있는데, 옛 연구(Old Quest), 연구 포기(No Quest), 새로운 연구(New Quest), 세 번째 연구(최근, Third Quest)이다.[52]


제1기 옛 연구

함부르크 대학교의 극동 언어학 교수 헤르만 사무엘 라이마루스(Herman Samuel Reimarus, 1694년-1768년)는 예수에 대한 교리가 아닌, 임박한 종말을 가르친 예수의 삶을 보아야 한다며 ‘역사적 예수’ 문제를 제기하면서 역사적 예수 연구 방법론에서 기여하였다. 그는 실제 예수와 복음서에 묘사된 교리 속의 예수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예수는 스스로를 정치적 메시아로 여기고 유대교를 개혁하려고 했을 뿐, 새로운 종교를 창시할 생각은 없었다는 것이다.[53] 그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이다.

  1. 사도들이 믿은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교리적 예수)와 실제 역사적 예수의 선포는 구분해야 한다.
  2. 예수의 선포는 그 시대 유대교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3. 예수의 선포와 사도들의 그리스도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객관적 사기-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시체를 훔쳤고, 거짓말로 부활을 선포했다는 이론이 가운데 1, 2의 주장만 신학자이 계승하고 있다.[54]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슈트라우스는 1835~1836년 《예수의 생애》를 펴냈다. 그의 근본적인 논제는 예수 전승이 신화적으로 변형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 구약성서 연구에서 통용되던 신화 개념을 복음서에 적용하였다. 복음서의 보도 가운데 자연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기적, 전승끼리의 모순, 예수가 구약성서의 모티브를 활용하는 부분에서는 언제나 신화, 곧 “특정한 목적 없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전설”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복음서 중에서 요한 복음서가 가장 역사적으로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 최초의 학자이다. 슈트라우스는 이러한 신화적 접근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역사적인 인물 속에서 모든 이념 가운데 최고의 이념인 ‘하나님-인간성’의 이념이 실현되기 때문이다.[55]


제2기 연구 포기

예수의 매장과 부활

라이마루스 이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에게서 교리적 그리스도를 분리하겠다.”라는 시도에 따라 숱한 예수전을 쏟아냈지만, 예수를 도덕적인 모범으로 이상화하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그리스도론이 투시되는데 그쳤으며,[56] 수백 개나 되는 예수전을 분석한 신학자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예수전 연구의 첫 시작자는 알베르트 슈바이처 신학박사이며, 루돌프 불트만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예수 연구는 방법론적 회의와 신앙적 불필요성으로 말미암아 사실상 붕괴되었다. 특히 루돌프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 연구가 방법론적으로 불가능하며 신학적으로 필요가 없음을 강력히 주장하여, 그의 신학이 신약 신학계를 지배한 시기 동안 어떠한 역사적 예수 연구서도 출판되지 않았다. 방법론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는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서 본문이 역사적 예수의 생애를 재구성하려는 목적에서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신학적으로 필요 없는 이유는 역사적 예수는 신약신학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57]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예수의 생애 연구사》(1913년작, 원제 : 《라이마루스에서 브레데까지》)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예수전들이 사실은 글쓴이가 갖고 있던 생각과 당시 시대 배경을 역사적 예수에게 투사한 것이라고 규명했다. 그리하여 예수전에 나타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은 초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생각하던 도덕적으로 이상적인 인간의 이미지일 뿐, 실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음이 밝혀졌다. 슈바이처에게 예수는 묵시적 종말론자, 곧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언한 인물이었다.[58]

신학자
브레데마르코 복음서가 당시 초대 교회가 갖고 있던 믿음의 내용을 표현한 것임을 밝혔다. 다시 말해, 예수가 고난 받는 순교자적 메시아라는 신앙이 메시아적이지 않은 예수의 삶을 메시아적으로 쓰게 만들었다는 것이다.[59] 슈미트는 원래 작은 조각들로 나뉜 자료로부터 공관 복음서를 누군가가 편집하여 긴 이야기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원래 복음서는 예수의 수난 이야기라는 단편적인 예수 전승이었으나, 복음서 저자들이 내용을 추가하였다는 주장이다. 이로써 복음서를 연구해 역사적 예수를 알 수 있다는 희망이 붕괴되었다.

종교사 연구는 예수가
유대교인이며, 기독교는 예수 부활 사건 이후에 유대교를 모태로 시작되었다고 규명했다.[60] 루돌프 불트만은 이를 바탕으로 기독교 신학은 예수의 가르침이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그 사실과 그 사실을 믿는데 있다고 보았다.[61]


제3기 새로운 연구

불트만의 제자들은 역사적 예수와 부활 이후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역사적 예수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제기했다. 에른스트 케제만1953년 마르부르크에서 ‘역사적 예수의 문제’라는 강연을 통해, 역사적 예수 연구 제 3기가 시작되는 길을 열었다.[62] 그는 옛 스승에 반대하여 초대 교회가 예수의 생애에 대해 정말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의 생애에 대한 내러티브(Narrative)들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학자들도 하느님(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던 ‘나사렛 예수’와 교회에 의해 선포되었던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63] 따라서 이 시기는 소위 후기 ‘불트만 학파의 시기’로도 불리며,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선포 사이에 연속성이 강조되었다.[64] 이들의 주장은 크게 다음과 같다.

  1. 모든 원시 기독교 문헌은 역사적 예수와 부활 이후 신앙의 그리스도가 동일하다고 전제한다. 이 점은 복음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신앙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역사적 예수에 대해 물을’ 책임이 있다.
  2. 유대교와 원시 기독교에서 유래한 모든 것을 배제한다면, 진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담은 전승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차이의 기준’이라 한다. 방법론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의 (과거) 역사적 예수 연구는 예수에 대한 가장 오래된 자료를 문학 비평적으로 재구성하려 했으나, 이제 그 자리를 종교사 그리고 전승사적 비교 연구가 차지하게 되었다.
  3. 예수 부활 이전 기독교 교리의 발판에 대한 추구는 예수가 그리스도론적 칭호(사람의 아들 / 人子,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를 사용했느냐의 여부와는 별개의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자기주장은 예수의 행위와 선포에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함축되어 있다. 예수는 지금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임재에 직면하여 사람들에게 결단하라고 촉구한다. 그는 모든 고대종교의 기초를 뒤흔드는 것으로서 ‘자유의 선언’ 즉 율법 비판을 감행한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전능에 참여함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을 갖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4.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싹을 예수의 케리그마에서 찾아내려는 신학적 의도는 ‘차이의 기준’과 연결되어, 필연적으로 예수와 유대교가 ‘대립 관계’에 있다고 인식하게 한다.[65] 


     제4기 세 번째 연구

영국 성공회 신학자 니콜라스 토마스 라이트(Nicolars Thomas Wright, 약칭 N.T 라이트, 톰 라이트) 주교1992년 ‘새로운 연구’에서 ‘세 번째 연구’를 분리했다. 그의 구별은 세 번째 연구가, 예수가 종말론적인 예언자(預言者), 즉 하느님 나라의 임재를 알린 예언자였으며, 당시의 유대교에서의 위치를 강조한다는 데 바탕을 두었다.[66] 그러나 ‘새로운 연구’와 ‘세 번째 연구’를 시대나 내용별로 엄격하게 분리하기가 힘들고, 제3기의 연구가 더 낡은 연구도 아니다. 따라서 이 연구의 분리는 단순한 시간상의 분리라고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67]

1970년대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세 번째 연구이다.[68] 대부분 역사적 예수 연구가 독일 내지는 유럽 대륙에서 진행되어 왔었으나, 최근에는 미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제3기의 연구자들은 역사적 예수를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 이단으로부터 분리시켜서 그 예수에 기초한 기독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고 했다. 하지만 제4기의 연구자들은 예수 당시의 사회적 환경에 주목하면서, 당시 이단으로 규정되었던 영지주의 자료도 역사적 예수 연구에 활용하려고 했고, 각각 그 주장이 서로 달라 일반화하기 어렵다.

이 연구가 이전 연구와 다른 것은 역사에 대한 변화된 인식이다. 현대에 들어서 정치, 종교적 경험, 경제 같은 분야들이 서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점점 모든 분야를 사회적 실존의 통합된 측면들로 보게 되었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보도와 역사 내러티브를 쓰는 것은 점차 해석적이며 신학적인 작업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를테면, 역사적 예수 연구를 위한 복음서 연구에서, 과거에는 역사적인 핵심을 찾기 위해 본문에서 나타나는 신학적인 단층들을 밝히고 제외시키는 작업을 했지만, 세 번째 연구에 이르러서는 복음서 본문의 어떤 층위에도 역사와 신학이 함께 담겨 있으며 그 둘은 분리될 수 없음을 당연히 여긴다.[69]

신학자들의 모임인 예수 세미나의 복음서에 대한 학문적인 비평이 주목받기도 했다. 예수 세미나로버트 펑크(Robert W. Funk)와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이 공동 회장으로 있는 캘리포니아의 웨스타 연구소(Westar Institute)와 관련된 신약학자 74명으로 이루어진 단체이다. 이들의 작업은, 기독교 신앙이 교회의 케리그마가 아니라 예수의 언어와 행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신앙의 기초는 예수의 비유 및 격언, 지혜말씀, 그의 전복적 행위이며, 복음서의 형태는 기록 당시의 교회가 처한 삶의 정황을 우선적으로 반영하지만, 그 속에는 교회적인 정황과 상반되는 역사적 예수의 언어와 행동이 숨겨져 있다.[70]

그러나 예수 세미나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학자들이 주로 참여한 데다가 대다수가 자유주의 신학자였기 때문에 대표성과 신학적인 형평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래서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의 신학자들과 독일 신학자들은 예수 세미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예를 들어, 예수의 유대적 배경과 행동 양태를 강조하는 입장의 학자들은 예수 세미나에서 말하는 전복적 지혜교사로서의 예수상(像)에 동의하지 않는다. 옥스퍼드 대학교수를 역임한 베르메스(Geza Vermes)는, 역사적 예수를 철저하게 유대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예수는 카리스마적 권위를 지닌 인물로, 율법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치유한 갈릴래아의 랍비였다. 예수 당시의 유대 사회에는 기적 수행자로 이름 난 사람들이 있었는데, 예수도 갈릴래아 지역에서 그들과 같은 기적 수행자였다고 본다.[71]



십자가에 달린 예수

제4기 연구자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들은 역사적 예수를 당시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맥락 안에서 설명하려 한다.[72] 한 유대인으로서 예수는 제2 성전 시기의 유대교 신앙과 관습의 다양성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자를 가르치는 한 선생으로서 예수는, 그의 주변에 모아지고 십자가 처형 이후에도 지속되었던 공동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갈릴래아 사람으로서 예수는 일상생활의 문화적 현실 안에서 또는 그것에 반해서 활동하였다. 그의 메시지는 당시 1세기 팔레스타인 세계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종교적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러한 것을 고려하면서 세 번째 연구는 “예수가 왜 십자가에 달렸는가?”라는 한 가지 가장 우선적인 질문을 제기하였다. 세 번째 연구에 따르면 로마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처형한 것으로 결론짓지 않으면서 사회·역사적이며 신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역사적 예수의 생애에 대한 어떠한 해석도 잘못된 것이다.[73]

자료와 평가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사용하는 자료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기독교 자료로서, 복음서가 대표적인 예이다. 다른 하나는 비기독교 자료로, 그 당시 역사가나 문필가들이 남긴 예수에 대한 글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자료들에 대한 평가와 분석은 그 동안 신학자들이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 축적한 방법론적 전제들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신학자마다 인정하는 전제의 내용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독교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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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성서(1407년)

역사적 예수에 관한 자료의 평가에서는 두 가지 관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역사적 예수와의 ‘역사적 근접성’이고, 다른 하나는 자료들 사이의 ‘상호독립성’이다.[74]

첫째, ‘역사적 근접성’은 단순한 연대 추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신약성서 가운데 가장 빨리 기록된 것은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바울로가 서기 51년경에 데살로니카 교회에게 보낸 것이다.[75] 그러나 바울로 서신서들은 저자 바울로가 역사적 예수를 본 적이 없는 관계로,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복음서바울로 서신보다 후대에 기록되었으나, 역사적 예수에 관한 가장 풍부한 내용의 전승을 보존하고 있다. 따라서 복음서는 바울 서신서에 비해 역사적 근접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76]

둘째, 자료들 사이의 ‘상호독립성’은 기독교 자료의 평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준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역사적 실재와의 직접적인 비교를 통해서 역사적 예수와 관련된 자료를 평가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자료들과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다. 비교 대상인 두 자료가 같은 부분이 많으면, 두 자료는 서로 의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복음서 중에서 가장 일찍 등장한 마르코 복음서마태오 복음서루가 복음서가 공통 자료로 의존하고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비교 대상인 두 자료가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면, 하나 또는 둘 다가 역사적으로 가치 없는 자료이거나 실제(實際)를 심각하게 왜곡하였다고 가정할 수 있다. 최상의 경우는, 자료들 사이의 차이가 각 자료 간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면서도, 그 자료들이 하나의 동일한 역사적 실제(實際)에 대한 증거로서 일관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 때이다.[77]

기독교 자료에 관한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외경이 지니는 역사적 가치의 문제이다. 토마 복음서(도마복음)나 유다 복음서(유다복음)를 비롯한 외경들은, 초대 교회에서 이단으로 여겨졌던 영지주의 계통에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일부 학자들은 신학적으로 정통 교리와 다른 내용을 가진 외경 자료라도, 역사적인 가치에 있어서는 정경과 동등하다고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토마 복음서의 경우, 2~3세기경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이 남긴 문서로서, 공관 복음서에 나타난다고 추정되는 예수의 어록, 소위 Q 자료와 마찬가지로 114개의 예수 어록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이나 쾨스터(Helmut Koester) 같은 학자들은 토마 복음서가 공관 복음서와는 확연히 다른 전승 계보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토마 복음서이 공관 복음보다 더 이른 시기의 예수 어록을 담고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을 가능케 한다.[78] 또한 신약성서학자 브래드 스캇도 겨자씨가 가장 작으나 나중에는 가 깃들 정도로 자란다는 겨자씨 비유가 토마 복음서에도 언급되어 있다고 주장한다.[79]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전통적인 주장’을 따라 정경에 속한 복음서만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닐카(J. Gnilka)와 슈낙켄부르크(R. Schnackenburg)는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정경이 외경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슈낙켄부르크에 따르면, 정경 복음서 네 개는 2세기 초반의 것으로 그 연대를 알 수 있지만, 외경은 모두 정경 복음서보다 후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정경이 더 신빙성이 있다. 정경은 역사적으로 비교적 믿을 만한 내용이지만, 외경은 전설이나 부분적으로는 공상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실제 신약외경인 토마 복음서에는 예수가 어린 시절부터 진흙으로 새를 만드는 초능력을 보였다고 주장한다.[80] 셋째, 사도적 전승을 담은 정경이 더 정통성이 있다는 것이다. 외경은 후대에 순수한 기독교 전승을 왜곡시킨 가르침에서 생겨났다고 본다.

이런 반론에 대해 외경의 역사적 가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정경이나 외경 같은 주요 텍스트의 연대를 추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 외경도 정경만큼 오래 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정경에도 외경과 마찬가지로 ‘전설’이나 ‘공상적인 이야기’가 있고, 정통과 이단은 같은 시대에 공존하면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신들의 전승을 형성해 나간 종교적인 공동체로서, 원칙적으로 두 집단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81]


비기독교 자료



요세푸스

역사적 예수 당시에 기독교도가 아닌 이들이 기록한 자료로서, 역사적 예수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에는 비(非)기독교 자료에 해당한다. 비기독교 자료는 그 가치나 그 가치에 대한 평가에서 이중성을 띤다. 역사적 예수를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비기독교 자료는 원시 기독교 전승에서 역사적 예수와 관련된 개별적인 사건의, 객관적인 연대 추정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에 대한 오늘날 학자들의 관심을 충족시켜 주기에는 자료의 양이 부족하고, 역사적 근접성도 미흡하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에 비해, 기독교가 밀라노 칙령 등의 종교적 자유 허용 법안 등으로 로마 제국의 보호를 받는 종교가 되어 그 세력을 떨치기 이전에 기록된 비(非)기독교 자료가 예수에 대해 보이는 관심은 매우 적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주후 37/38~100년 이후)는 유대 민족의 역사를 다룬, 두 권의 책 중 한 권에서만 두 번 예수를 언급한다. 두 번의 언급 중 한 번은 학자들에게 그 진정성이 의심을 받고 있으며, 후대의 기독교도가 가필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격렬하게 벌어져 왔다. 나머지 한 번은 예수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아니고, 율법 위반을 이유로 야고보라는 사람이 돌에 맞아 죽었는데, 그는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의 형제’였다고 적고 있다.[82]

참고 자료
도올. “[도올의 도마복음] 예수는 누구인가? 21. 역사적 예수에 관하여” (HTML), 《중앙SUNDAY》, 2007년 9월 23일, pp. 25쪽. 2008년 6월 28일 확인.

주석
  1. 캐롤리안 오시에크 (김경진 옮김) (1996). 《신약의 사회적 상황》. 기독교문서선교회, 21~22쪽.
  2. 정승우 (2005).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책세상, 79~80쪽. ISBN 9788970134888.
  3.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왕은 또 사신들을 예루살렘유다의 여러 도시에 보내어 다음과 같은 칙령을 내렸다. 유다인들은 이교도들의 관습을 따를 것. 성소 안에서 번제를 드리거나 희생제물을 드리거나, 을 봉헌하는 따위의 예식을 하지 말 것. 안식일과 기타 축제일을 지키지 말 것. 성소와 성직자들을 모독할 것. 이교의 제단과 성전과 신당을 세울 것. 돼지와 부정한 동물들을 희생제물로 잡아 바칠 것. 사내아이들에게 할례를 주지 말 것. 온갖 종류의 음란과 모독의 행위로 스스로를 더럽힐 것. 이렇게 하여 율법을 저버리고 모든 규칙을 바꿀 것. 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구약외경 마카베오상 1:44~50 / 공동번역)
  4. P.J. 악트마이어, J. B. 그린, M. M. 톰슨, 《현대적인 방법을 적용한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소기천, 윤달원, 이달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4, 40~44쪽.
  5.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202~203쪽. ISBN 9788985061292.
  6.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202~203쪽. ISBN 9788985061292.
  7. 복음서 신학》- 제1부 마태복음의 신학 / 김득중 저 / 컨콜디아, 78쪽.
  8.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걸어가시다가 베드로라는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요한 형제를 보셨는데 그들은 자기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갔다. (마태오 복음서 4:18~22 / 공동번역)
  9. 우리가 모르는 것들, 성경에는 있다》 / 오경준 지음 / 홍성사.
  10. 캐롤리안 오시에크 (김경진 옮김) (1996). 《신약의 사회적 상황》. 기독교문서선교회, 57~59쪽.
  11. 성서학자들에 따르면 복음서에 나오는(마태오 복음서 13:55, 마르코 복음서 6:3) 목수(헬라어 ‘테크톤’)는 나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목수가 아니라, 토목 공사 기술을 갖고 있는 건축 기술자를 뜻한다. 《복음서와 시간》 / 박태식 지음 / 생활성서, 101쪽;《어, 그게 아니네? - 내가 잘못 알았던 127가지 성경이야기》 / 이진희 지음 / 쿰란출판사.
  12. 마르코 복음서 12장 2~8절에 보면, 밭을 일구는 농부들이 땅의 주인이 보낸 종(땅을 관리하던 청지기)들을 잡아서 때리고 죽이는 내용이 나타난다. 청지기 또는 주인에 대해 당시 소작인들은 가혹하다고 여기고 불만을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루가 복음서 18장에 언급된 불의한 재판장 비유, 즉 과부가 사람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는 재판장을 졸라서 겨우 판결을 얻어냈다는 비유도 예수 시대의 가신 중 하나인 판관이 얼마나 하층민을 멸시했는지 보여준다. 만약 판관이 하층민을 사랑했다면 과부가 조르지 않아도, 판결을 공정하게 해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3. 기독교 사상2005년 10월호, 제국의 질서와 그 대안 - 마가복음 10장, 양권석, 대한기독교서회.
  14. 루가 복음서 19장을 보면, 세관장 자캐오가 그리스도를 자신의 집에 모시자, 사람들이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구나!”라고 수군거렸다는 내용이 있다. 당시 세리들은 동족에게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정도로 착취를 심각하게 했었다.
  15. 예수께서 예리고에 이르러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거기에 자캐오라는 돈 많은 세관장이 있었는데 예수가 어떤 분인지 보려고 애썼으나 키가 작아서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길을 앞질러 달려가서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나무(한글개역판에는 뽕나무) 위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그곳을 지나시다가 그를 쳐다보시며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자캐오는 이 말씀을 듣고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자기 집에 모셨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구나!”라며 못마땅해 하였다. (루가 복음서 19:1~7 / 공동번역)
  16. 바리사이파 사람은 보라는 듯이 서서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 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 분의 일을 바칩니다.’ 하고 기도하였다. (루가 복음서 18:11~12 / 공동번역)
  17. 바리사이파의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한 자리에서 음식을 나누심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저 사람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같이 음식을 나누고 있으니 어찌 된 노릇이오?” 하고 물었다. (마르코 복음서 2:16 / 공동번역)
  18. 기독교 사상2005년 10월호, 제국의 질서와 그 대안 - 마가복음 10장, 양권석, 대한기독교서회.
  19. 캐롤리안 오시에크 (김경진 옮김) (1996). 《신약의 사회적 상황》. 기독교문서선교회, 59~61쪽.
  20. 레기온은 마르코 복음서(마가복음)에서도 언급되어 있다. 마르코 복음서 5장 9절을 보면, 예수가 로마 제국의 군사적 요충지인 게르게사에서 귀신 들린 사람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귀신 들린 사람은 “군대라고 합니다.”라고 답했다. 여기서 언급된 군대가 바로 레기온, 즉 로마의 중무장 보병 군단이다.
  21. 기독교 사상2005년 10월호, 제국의 질서와 그 대안 - 마가복음 10장, 양권석, 대한기독교서회.
  22. 정승우 (2005).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책세상, 86~88쪽. ISBN 9788970134888.
  23. 바로 그 때 어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빌라도가 희생물을 드리던 갈릴래아 사람들을 학살하여 그 흘린 피가 제물에 물들었다는 이야기를 일러드렸다. (루가 복음서 13:1 / 공동번역)
  24.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345쪽. ISBN 9788985061292.
  25. 예수께서 베푸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이시다.” 하고 저마다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달려들어 억지로라도 으로 모시려는 낌새를 알아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피해 가셨다. (요한 복음서 6:14~15 / 공동번역)
  26. 이는 마르코 복음서의 설명이며, 루가 복음서에는 율법학자들과 대제사장들이 밀정을 보내 시비를 걸었다고 나와 있다.
  27. 조태연·차정식·유승원, 《뒤집어읽는 신약성서》, 대한기독교서회, 1999, 68쪽; 정승우,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책세상, 2005, 124~125쪽에서 재인용.
  28. 정승우 (2005).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책세상, 125쪽. ISBN 9788970134888.
  29.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352~353쪽. ISBN 9788985061292.
  30.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410~411, 455~456쪽. ISBN 9788985061292.
  31. 김성. “[新 성서의 향기] (17) 베네스다와 아스클레페이온”, 《국민일보》, 2001년 2월 28일. 2007년 12월 26일 확인.
  32. P.J. 악트마이어, J. B. 그린, M. M. 톰슨, 《현대적인 방법을 적용한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소기천, 윤철원, 이달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4, 275~276쪽.
  33.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807쪽. ISBN 9788985061292.
  34.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마태오 복음서 22:37~40 / 공동번역)
  35. 예수께서 그(바리사이인과 율법학자)들에게 “너희에게 한 가지 물어보겠다. 율법에 어떻게 하라고 하였느냐?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악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사람을 살리라고 하였느냐? 죽이라고 하였느냐?” (루가 복음서 6:9 / 공동번역)
  36.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가 복음서 14:26~27 / 공동번역)
  37.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808쪽. ISBN 9788985061292.
  38. 기독교 교파에 따라 소위 최후의 만찬을 주님의 만찬, 성만찬, 주의 성체 제정 등으로 해석한다.
  39.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고린도전서) 11:23~25 / 공동번역)
  40.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625~626쪽. ISBN 9788985061292.
  41. 정승우 (2005).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책세상, 159-162쪽. ISBN 9788970134888.
  42. 표준새번역에서는 “인자”라고 옮겼으나, 공동번역에서는 “사람 모습을 한 이”로 옮겼다.
  43. 이 때 스데파노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편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그래서 그는 “아, 하늘이 열려 있고 하느님 오른편에 사람의 아들이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외쳤다. (사도행전 7:55~56 / 공동번역)
  44.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809~810쪽. ISBN 9788985061292.
  45. 그런데 가짜 신도들이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고 몰래 들어와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엿보고 있었으므로 실상 디도할례를 강요당할 위험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의 진리를 보존하려고 우리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2:4-5 / 공동번역)
  46. 개신교 신학자 정용섭 박사의 갈라디아서 해설.
  47. 《주요 주제를 통해서 보는 복음서들의 신학》 / 김득중 저.
  48.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810쪽. ISBN 9788985061292.
  49.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복음서를 예수에 대한 교리의 집산이라고 했다. 정강길 (2007년 3월 30일). 〈교리적 예수에서 〈역사적 예수〉로〉, 《미래에서 온 기독교》. 에클레시안. ISBN9788995905241.
  50. 신약성서학자 마커스 보그의 해석.
  51.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38쪽. ISBN 9788985061292.
  52. 연구 기간의 단계 구분과 소제목은,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교수인 서중석의 분류 및 번역을 따랐다. 다만, 제4기(Third Quest)에 해당하는 ‘세 번째 연구’는 직역한 것이다. 서중석, 《복음서의 예수와 공동체의 형태》, 이레서원, 2007, 268~270쪽.
  53. 정승우 (2005).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책세상, 29쪽. ISBN 9788970134888.
  54.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31~32쪽. ISBN 9788985061292.
  55.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32~33쪽. ISBN 9788985061292.
  56. 《복음서신학》 / 김득중 지음 / 컨콜디아.
  57. 서중석 (2007년 6월 5일). 《복음서의 예수와 공동체의 형태》. 이레서원, 269쪽.
  58. 《미래에서 온 기독교》, ‘교리적 예수에서 역사적 예수로’ / 정강길 지음 / 에클레시안.
  59. 김득중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도 마르코복음서의 예수의 수난 이야기 속에 예수는 고난 받는 하느님(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곧, 마르코십자가에서 처참한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받으며 하느님의 존재 여부에 대한 회의로 고뇌한 예수를 묘사하여, 로마 제국의 박해를 받는 마르코 교회의 교우들과 십자가의 예수를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60. 성공회 사제인 박태식(요한) 신부는 《타르수스의 바오로》(바오로딸)에서 85년 유대교 라비(랍비)가 기독교인들을 나자렛 도둑이라고 단죄했다는 문헌을 인용하였다. 교회사학자 유재덕도 《5시간만에 읽는 쉽고 재미있는 교회사》(작은행복)에서 90년 유대교가 나자렛 사람들을 유대교에서 추방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언급한다. 다시 말해, 유대교인에게 기독교인은 나자렛 도둑 또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리는 유대교의 소종파였다고 여겨진다.
  61.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34~37쪽. ISBN 9788985061292.
  62.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각주 14, 다산글방, 38쪽. ISBN 9788985061292.
  63. P.J. 악트마이어, J. B. 그린, M. M. 톰슨, 《현대적인 방법을 적용한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소기천, 윤철원, 이달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4, 84쪽.
  64. 서중석 (2007년 6월 5일). 복음서의 예수와 공동체의 형태. 이레서원, 270쪽.
  65.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38~39쪽. ISBN 9788985061292.
  66. N. T. Wright, Quest for Historical Jesus, 《Anchor Bible Dictionalry 3》, pp.796~802.
  67. Mark Allan Powell, 《Jesus as a Figure in History》, WJK press, p.22.
  68. P.J. 악트마이어, J.B. 그린, M.M. 톰슨, 《현대적인 방법을 적용한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소기천, 윤철원, 이달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4, 86쪽.
  69. P. J. 악트마이어, J. B. 그린, M. M. 톰슨, 《현대적인 방법을 적용한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소기천, 윤철원, 이달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4, 86쪽.
  70. 서중석 (2007년 6월 5일). 《복음서의 예수와 공동체의 형태》. 이레서원, 270~271쪽.
  71. 정승우 (2005).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책세상, 41~42쪽. ISBN 9788970134888.
  72.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역사적 예수》, 손성현 옮김, 다산글방, 2001, 43쪽.
  73. P.J. 악트마이어, J.B. 그린, M.M. 톰슨, 《현대적인 방법을 적용한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소기천, 윤철원, 이달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4, 86~87쪽.
  74.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50쪽. ISBN 9788985061292.
  75. 켈빈 J. 로첼 지음, 《최근의 바울서신 연구》, 이억부 옮김, 은성, 1998, 122쪽.
  76.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50쪽. ISBN 9788985061292.
  77.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50~51쪽. ISBN 9788985061292.
  78. 정승우 (2005).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책세상, 38쪽. ISBN 9788970134888.
  79. 버나드 브랜든 스캇 (김기석 옮김) (2006년 2월 10일). 《예수의 비유, 새로 듣기》. 한국기독교연구소. ISBN 9788987427614.
  80. 정진호 (2003년 6월 1일). 《예수는 평신도였다》. 홍성사. ISBN 9788936506483.
  81.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54~55쪽. ISBN 9788985061292.
  82. 게르트 타이센, 아테네 메르츠 (손성현 옮김) (2001년 3월 20일).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112~113,142쪽. IS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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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병자를 고치심

성경 2008. 11. 25. 12:12

중풍병자를 고치심

마태복음 9장 1∼8절,마가복음 2장 1∼12절,누가복음 5장 17∼26절

공관복음서에는 중풍병자를 고친 사례가 세 차례 등장한다. 구약성경에도 있다. 그러나 죄의 용서와 치유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킨 것은 크게 두 곳 뿐이다. 요한복음 5장 2∼18절과 본문과 그 평행구절이다.


구약성경을 보면 죄와 질병,용서와 치유가 서로 연결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먼저 용서가 있고 그 후에 치유가 따른다. 유대교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죄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메시아가 불경건한 자들을 진멸하고,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그의 백성을 구원하지만 죄를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 뿐이라고 믿었다.

마태복음 본문에 보면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을 때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말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마 9:6)고 했을 때 그것은 당시 상황으로서는 혁명적 선포였던 것이다. 성자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으신 분이라는 것(마 28:18)을 저들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면 죄와 질병의 관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은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육과 영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관계다. 따라서 육체의 질병은 우리의 영혼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때 그 사람은 건강해지고 온전해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단순히 용서가 가능하다고 선포한 것이 아니란 점이다. 실제로 주님은 병자를 용서해주셨고,죄의 결과로 다가온 그의 질병을 고쳐주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모든 병은 다 죄의 결과라고 믿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질병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죄의 결과로 온 경우도 있고,바울처럼 자고(교만)하지 않게 하려고 주시는 경우도 있고(고후 12:7),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질병을 주시는 경우도 있다(요 11:4). 그러므로 병든 사람들을 향해 ‘뭔가 숨은 죄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는 병자를 고치신 장소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마가복음에는 가버나움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가의 기록을 보면 너무나 많은 병자가 모여들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접근할 수 없어서 지붕에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다고 했다(2:4).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복음의 기록이다. 누가복음 5장 17절에 보면 “그곳에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아 있었다”고 했다. 또 누가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고 강조하고 있다.

마태복음에는 죄의 용서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마가와 누가복음에서는 병자가 지붕을 뚫고 들어가는 다소 특이한 방법을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네 사람이 지붕을 뚫고 침상을 들어내렸다. 유대인들의 지붕은 가벼운 덮개로 덮혀 있고 그 위에 흙을 발랐기 때문에 지붕을 뚫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많은 사람은 이 방법에 대해 비판해왔다. 사람들이 집안에 가득 찼는데 어떻게 사람에게 부상을 입히지 않고 들어내릴 수 있었는가? 또 지붕을 뚫었다면 주인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그러나 문맥으로 보면 베드로의 집이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이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베드로의 집이었다면 많은 방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방마다 사람들이 가득 찼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런 질문은 흥미 이상의 의미가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인도에서는 죽은 사람들을 지붕으로 들어내리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지붕의 구멍을 뚫고 들어내리면 귀신들이 도망을 간다고 믿기 때문에 병자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헬라와 로마의 세계에서는 죽음을 앞둔 사람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집에 들이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곳에 주님이 계셨다는 것과 또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라며 치유했다는 점이다.

그러면 ‘저희의’ 믿음이란 누구의 믿음인가? 물론 병자를 들어내린 네 사람과 병자의 믿음이다. 네 사람의 믿음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병자가 반대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셨을 때 마가복음에서는 즉각적으로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절)고 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구절에 “안심하라”는 말이 덧붙여 있다. 병자에 대한 예수님의 칭호도 약간 다르다. 마태와 마가복음에는 “소자야”,누가복음에는 “이 사람아”(원문에는 “친구여”)라고 돼 있다. 모두 애칭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님께서 믿음과 용서와 치유의 세 가지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마가복음 2장 1∼12절은 기독론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면 저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첫째는 예수님께서는 고쳐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었고 둘째는 지붕을 뚫고 병자를 들어 내린 것으로 보아 행함과 사랑이 있는 믿음이었다. 셋째는 병자의 경우 예수님께서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했을 때에 ‘곧’(즉시) 순종하는 믿음이었다.

사실 당시 분위기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율법의 교사들이나 모두 주님께 적대적이었다. 따라서 주님의 명령에 따라 상을 들고 집으로 가는 것은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그들이 뒤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곳에 ‘서기관’(마태와 마가복음) 혹은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누가복음)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이 예수님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을 듣고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막 2:7)고 수군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까지 아시는 주님께서 “너희 마음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고 물으셨다. 문맥으로 보아 그들의 답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자문과 함께 즉시 자답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주님은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가라”고 했는가? 첫째, 병자로 하여금 그가 확실히 치유됐다는 것을 확인케 하고 둘째,‘이런 권세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마 9:8) 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는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심으로 구약의 메시아 예언이 성취되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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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의 산 소망으로 믿음안에 굳게서는 삶   ♣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50-58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승리로 인해
오늘도 기쁨으로
부활의 산 소망으로 하루를 엽니다

더욱 믿음안에 견고히 서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전혀 헛됨이 없는 주 안에서의 수고를
하며 일상을 엮어가렵니다

내게 주신 모든것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오늘도 찬양의 꽃다발
주님앞에 올려드립니다

할렐루야 !


늦기 전에 ..이 말씀 믿고 주님앞에 나아오십시오
가까운 교회를 찾으십시오
믿는자에겐 이 땅에서의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마지막 나팔 울릴때 우리 몸은 새롭게 변화되어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셨습니다
당신을 위해 십자가를
죄의 짐을 다 대신 져 주셨습니다
믿고 나아오십시오
세상이 알 수없는 평안과 기쁨의 선물
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약한 나로 강하게



좋은글이므로---옮겨왔습니다---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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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는 부자가 드물다는 것을 명심하라. - 거짓축복을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3)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에 가는 것을 기정사실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기억하여야 할 것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은 천국의 시민이 되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 다만 필요조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고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 조건만 가지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미래의 신분을 확신하기에는 성경에 다른 조건들이 너무도 많다.


   마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이 위에서 말씀하신 이 사람들이 자신을 구세주로 믿고 따랐음을 추호도 의심할 수 없다. 이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굳게 믿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온갖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행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이 정작 천국 문 앞에서 쫓겨나게 된 일은 누가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들은 그냥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온갖 이적과 기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표적을 행치 않았는가? 그런데 어찌해서 이렇게 허망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그 해답은 바로 앞에서 말하신 근거에 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는 자들에게 이 성경말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요건이지만, 이 조건뿐만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는다면 천국시민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토록 받고 싶어 하는 복의 주된 내용이며, 이 땅에서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복 받은 자의 표징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사실을 성경은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가?


   마 19:23~2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모두가 인정하기 싫어하는 말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늘의 복을 받아 이 땅에서 성공하고 형통하게 살며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고 수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설교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이게 도대체 말이 될법한 것인가? 우리가 그동안 들어왔고 알고 있던 사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기복신앙을 외치는 삯꾼목자의 사탕발림에 불과하였다면 이처럼 허망한 일이 어디 있을까? 그렇지만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생각해보자.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아직 오늘은 심판의 날이 아니며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천국 문 앞의 심판대가 아니다. 아직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고 잘못되었다면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우리가 잘못을 자복하고 회개하면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인 사실을 다시 기억하며 다행스럽게 여기자.


성경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 없지만, 부자가 가난한 자에 비해 현저하게 들어갈 확률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즉 천국에는 우리가 기대한 만큼 부자를 만나는 일이 그만큼 드물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가난하게 살았다면 천국으로 가는 길이 그나마 넓은 편이지만, 부자라면 경쟁이 치열하고 좁디좁은 길을 위태롭게 가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부자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부자가 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좀처럼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면 돈이 주는 즐거움과 손쉬운 쾌락을 얻을 수 있는데 굳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겠는가? 가난하고 고생스럽게 살 때에는 시도 때도 없이 하나님을 찾았겠지만, 부자가 되면 돈 쓰는 즐거움과 대접받는 기쁨에 빠져 하나님을 잊을 때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이다. 게다가 부자가 되면 목이 뻣뻣해지고 거들먹거리기 십상이며, 누군가 자신의 돈을 빼앗아 갈까봐 의심의 눈초리를 번득이고 돈이 주는 즐거움을 잃을까봐 가난할 때보다 불쌍하고 불우한 이웃에게 매몰차게 굴며 냉정하게 대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부자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는 자를 기뻐하시고 불쌍한 이웃을 도와주는 손길을 기뻐하시기에, 돈이 많은 부자가 응당 그 일을 맡아 해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의 처지를 동정할 줄 알며 땀 흘려 힘들게 버는 이들이 돈의 귀중함을 알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넘치는 부를 갖게 해준 부자들에게서 더욱 배신감을 느끼시는 것은 아닐까? 교만하고 목이 뻣뻣한 것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데 하나님이 공급해 주신 돈을 자기 것인 양 여기고 자신만의 욕구와 쾌락을 만족시키는 데만 사용하는 대부분의 부자들이 정작 죽어 천국 문 앞에서 내어 쫒기는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복신앙만을 성경의 참된 하나님의 말씀인양 퍼뜨리며,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복을 받는 당연한 권리라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하며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기복신앙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진대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복을 주실 리가 없으며, 더더욱 이를 틀림없이 믿고 확신하고 살다가 천국 문 앞에서 내어 쫓긴다면 이처럼 불행하고 허망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미련하고 불쌍한 사람이 될 뿐이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라.


   잠 23: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안전하게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부자 되는 것을 포기하면 된다. 세상풍조가 돈에 미쳐있고 세상 사람들이 돈에 눈이 멀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쫓아다닐지라도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한번하고 부자의 환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면 된다. 물론 생각만큼 쉽지는 않겠지만 영원한 생명과 이 땅에서의 평안한 삶을 위해서 포기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부자를 포기한다고 해서 가난하게 사는 것도 아니며 부자를 꿈꾸며 산다고 해서 꼭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부자가 되었지만 그동안 단란한 가족의 행복한 시간과 즐겁고 평안한 인생을 잃어버린 것도 억울한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이처럼 허망한 일이 없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생각으로 인한 삶이 아니라 삯꾼목자의 거짓축복에 속아 살아왔다면 땅을 치고 통곡한 일이 아닌가? 그렇기에 황금만능의 물질주의를 좇아 끝없는 숫자놀음에 만족하지 못하고 부자의 환상에서 허우적거릴 바에야 깨끗이 손을 놓아 버려라.


   전 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가난뱅이가 말하기를, 부자가 된다 해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면 모두가 코웃음을 칠 일이다. 부자가 되지 못한 핑계를 댄다고 여기며, 부자가 되어보지 못했으니 뭘 알겠느냐는 냉소 섞인 반응을 보일게다. 그렇지만 국내 최고의 재벌회장이 그런 말을 하면 진지하게 들으며, 믿기지 않지만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세계최고의 부자였으며 아직도 그 부의 기록이 깨지지 않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 것이다. 바로 그 사람이 솔로몬이다. 솔로몬은 그 시대 최고의 왕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소유했으며 수 천 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떵떵거리고 살았으며 재산이 어찌나 많았던지 금이 아니면 기구나 그릇으로 사용하지도 않고 은은 쳐다보지 않았다고 할 정도이다. 성경에는 이 사람의 재산보다 많은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돈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만족하지 않으며 부자가 된다고 행복하지 않다고 기록한 어록이 말년에 지은 전도서에 나와 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외롭고 고달프며 힘든 것이지만 투자한 시간이나 노동만큼 만족한 결과가 없다면 굳이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것일까? 어른이 읽은 동화책인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주인공인 줄무늬 애벌레는 다른 애벌레들이 긴 막대를 애쓰며 올라가는 것을 보고 저기 올라가 보면 무엇인가가 자신이 찾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뒤처지지 않으려 기를 쓰며 올라간다. 오랫동안 힘쓰고 올라간 후에 꼭대기에 올라가자 기대와는 다르게 아무것도 없어서 실망하고 허망해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남들이 하니까 뒤질세라 경쟁적으로 따라하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네 모습이다. 남들이 중형차를 타니까 전세방에 살아도, 죽으면 죽었지 소형차는 못 탄다. 휴대폰도 새 기종이 나오면 따라 바꾸고, 고화질의 디지털카메라가 없으면 원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자가 되려는 욕망도 이와 다르지 않다. 특별히 부자가 되어 무엇이가를 이루고 싶기보다는 다른 모든 세상 사람들이 부자를 지향하고,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모든 언론매체를 통해 내보내는 광고에서 부자가 되어 무엇이든지 소유하며 사는 것이 최고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날마다 세뇌시키니까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실제는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누군가가 넣어준 생각을 자신의 생각인양 착각하고 살아간다. 마치 줄무늬 애벌레가 기 쓰고 올라가는 막대기의 끝처럼 허망함뿐일지라도 모두 오르므로 따라 올라가는 것처럼 인생을 살아간다.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 그렇지 못한 평범한 주변사람들과 자신을 격리시켜 인생을 더욱 외롭게 만들며, 비록 고생 끝에 부자가 되었다 할지라도 가진 재물을 누리기보다 모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남은 인생을 허비한다면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나 지혜로운 자들의 충고를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자들은 값비싼 대가를 단 한번뿐인 인생에서 지불하게 된다.


   전 5:13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부자가 되고 싶다면 좁은 길을 각오하라.


히말라야의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을 올라가는데 동네 뒷산을 올라가는 것처럼 가벼운 등산복장에 배낭만 달랑 메고 가는 이는 없다. 살을 에는 추위에 중무장한다 할지라고 가벼운 동상쯤은 피할 수 없을 테고, 희박한 산소에 휴대용 산소 호흡기를 지내고 있다하더라도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고생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아무리 단단히 준비하고 충분한 훈련으로 체력을 비축했더라도 예상치 못한 날씨와 등산로 곳곳에 지뢰처럼 벌어진 크레바스, 눈 깜짝할 순간에 덮치는 눈사태는 순간순간 생명이 위급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산악인이라도 피할 수 없는 위험이 존재함을 알고 있기에 산행을 떠나기에 앞서서 죽음에 대비한 일처리로 가족과 친지들에게 슬프고 엄숙한 분위기를 안기기도 한다. 이번 산행이 마지막 산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타인은 물론 자신도 각오하고 떠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주 드문 일이며, 이 땅에서 부자로 사는 것이 겉에 보이는 화려한 모습에 비해 외롭고 고단한 삶이라는 것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필자가 알고 있는 지인은 젊은 시절 빼어난 외모에 탁월한 대학성적 게다가 견고한 신앙을 지녔다. 그래서 수천억의 재산을 자랑하는 가문에서 청혼해 와 화려한 처녀시절과 알콩달콩한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주위에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안은 채 결혼을 했다. 그렇지만 그의 시집살이는 고난으로 점철된 눈물의 세월이었다. 평범했지만 상대적으로 가난한 친정과 비교해 열등감으로 주눅이 들게 하는 시어머니의 매서운 시집살이는 예상을 뛰어넘었고, 마마보이인 부잣집아들이자 남편은 결혼을 하고나서도 돈을 물 쓰듯이 뿌리며 외도를 밥 먹듯이 했다. 이렇게 엄청난 부자의 성에 사로잡힌 그녀의 고달픈 삶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돈의 위력으로 인한 상처는 나날이 깊어갔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을 가까운 지인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했다. 이야기해보았자 호기심의 대상이 될 뿐이지 해결책이 없는 푸념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혼과 자살도 수없이 생각해 보았지만 홀로 남겨질 불쌍한 자식의 인생을 생각해서 꾹 참고 버틴 세월이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젠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중년을 넘어가면서 걸어 온 삶을 되돌아보면서 젊었을 때 자칫 잘못 선택한 결정이 평생 지울 수 없는 고난의 길을 초래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러한 인고의 세월을 견고한 신앙으로 버텨냈다. 비록 이 땅에서의 삶은 고단했지만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소망하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주 희귀한 일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고 부자를 꿈꾸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세상에서는 부자가 인생 최고의 목표라고 말하고 있고, 교회에서도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기복신앙이 판치고 있는 마당에, 부자가 위험한 인생의 길이며 천국에 들어가기가 아주 어려운 신분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모른다고 해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성경에 수없이 반복해서 경고해 놓았기에 말이다. 어째든, 이 같은 위험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부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였다면 철저하게 준비하고 조심스럽게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무사히 살아서(?) 귀환할 테고 천국에서 기쁘게 다시 만나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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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사론

설교문 2007. 11. 20. 13:37
리차드 개핀의 《성령은사론》  

Ⅰ부 내용 정리
Ⅰ. 성령선물
신약의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다루어지는 성령에 대한 설명의 중점이 다르다. 성령의 현재적 사역을 놓고 볼 때 전반부(복음서)의 중점은 예수님 자신과 그의 활동에 있다. 즉 성령께서 예수님에게 집중적으로 역사하셨고, 제자들에게는 미래에 받을 선물, 즉 약속의 문제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사도행전과 서신서)의 중점은 교회와 신자들에게 있다. 이러한 중요한 차이는 왜 발생하는가? 그것은 오순절 사건(Pentecost)을 계기로 이런 전환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1. 오순절과 그리스도(기독론적 차원)
(1) 약속의 관점
세례 요한은 자신과 오실 메시아를 대조하면서, 자신은 물세례를 주기 위해 보냄을 받은 반면에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기"위해서 오실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예수의 사역 전체는 요한의 예비사역이 실제로 성취되어 나타난 성령과 불세례로 요약되는 것이다. 메시아의 성령/ 불세례는 세상이란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대분리작업인 것이다. 이렇게 메시아의 성령, 불세례는 종말론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의 불세례가 드디어 실현이 되었는데, 그 것이 메시아의 백성에게 멸망의 세례가 아니라 축복세례가 되기 위해서는 메시아 자신이 그들의 죄를 담당하신 대속자로서 먼저 그들과 동일시되어야 하고 또 성령을 받으셔야 했었다. 그래서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메시아 세례가 있기 전에 예수님 자신이 요한의 물세례를 받으시고 바로 뒤이어 성령을 받으신 사건이 선행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들이 성령을 선물과 축복으로 받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먼저 그들 위에 덮여 있는 저주를 제거하셔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먼저 성령을 받으셔야 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십자가로 절정을 이룬 예수님의 사역 전체를 하나의 "세례 시련"으로 보는 것은 정당하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사역 전체는 메시아세례(성령, 불세례)를 베푸시기 위해 친히 종말심판(정죄)을 당하신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2) 성취의 관점
①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행 2: 14-39)
그의 설교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이다. 베드로는 먼저 부활사건을,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으로 상고한 다음, 성령은 성부가 약속하신 성령이요, 따라서 구약에서 대망하던 약속 성취의 핵심인데, 이 성령을 부어주신 사건은 그리스도의 획기적·절정적 사건들, 특히 부활승천과 직결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오순절 사건은 이런 제사건들의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획기적인 사건이다.
요단강 사건은 성령이 성부에 의하여 성자에게 내린 사건(눅 3:22)으로, 예수님 앞에 놓여 있는 메시아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한 성령 부여, 즉 교회의 구원성취를 인한 성령 부여이다. 이에 비해 오순절 사건은, 성부로부터 받은 성령을 성부의 약속된 선물로 교회에 주신 사건이다. 이것은 이미 완성된 구원 사역에 대한 보상으로 받으신 선물이다. 이렇게 두 사건을 비교해 볼 때, 오순절 사건의 삼위일체적 의의가 명백하게 밝혀진다.
요한의 예언(눅 3: 16-17)은 오순절 사건을 통해 "이미" 성취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시행하실 마지막 심판의 불세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가지더 곁들여 생각할 것은, 오순절날 임한 혀 모양의 불은 멸망의 불을 가리키거나 세례의 불이 교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키거나, 아니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제련 내지 정화사역을 가리킨 것이다.
② 바울의 해석(고전 15: 45)
이 구절은 바울의 해석이 담긴 구절이다. 고전 15장 전체의 문맥을 보면, 바울은 신자들의 미래의 육체적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에 대해 그 육체적 부활을 논증하였다. 이 논증 전체를 꿰뚫는 주제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신자의 부활의 상호 연합성이다.
고전 15: 45의 문맥은 부활체의 성질에 관한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부활체(영적인 몸)의 최초 모형이시다. 신자들은 부활 때에 이런 부활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 여기에서 46절의            과 45절의       는 각기 성령의 사역과 인격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런데 바울이 그리스도를 "살려주는 영"(성령)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삼위일체를 혼동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바울이 그리스도와 성령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은 경륜적, 기능적, 종말적 동일시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심으로써 성령을 100% 영구적으로, 100% 완전하게 소유하셨으므로 그리스도와 성령은 그 사역에 있어서 동일시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들은 재림 때, 육체적으로 부활하면서 이 생명을 얻을 것이다.
③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와 바울의 해석을 종합
그리스도께서 오순절에 성령 선물을 교회에 쏟아 부어 주셨다는 점과 그리스도께서 "살려주는 영"으로서 교회에 직접 임하신 사건이 바로 오순절 사건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 한 것은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은 절대적·전폭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셔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밝히 보여 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종말 생명의 근원으로서 교회 안에 살아 계셔서 활동하심을 밝히 보여 준다. 이렇게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계속 살아 계심을 보여주는 "공개된 비밀", "계시된 신비"이다.
성령 선물은 교회에 주어진 그리스도의 선물이다. 그리스도는 고난과 죽음과 승귀를 통하여 살펴주는 영이 되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선물(성령세례, 성령강림)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절정적 성취이다. 그것은 승귀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에 오신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구원의 단회적 완성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진행된 구속역사의 절정이다.

2. 오순절과 교회(교회론적 차원)
오순절은 바로 하나님의 새 언약민이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창설을 의미한다. 오순절 성령은 하나님께서 영으로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몸(엡 2: 22),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몸(고전 3: 16)을 이루었다. 따라서 성령세례 받은 그 몸 속으로 연합되어 들어가 거기에 참여하는 자들은 누구나 성령선물을 누린다(고전 12: 13).
교회 전체가 성령선물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 선물이 개인별로 나타나는 현상은 다양하다. 바울은 이 성령선물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받게 될 완전한 기업의 "보증"(고후 1: 22 ; 5: 5 ; 엡 1: 14)과 "첫 열매"(롬 8: 23)라고 하였다. 이런 용어들은 교회가 현재 성령을 소유한 것인 장차 완전하게 소유할 것을 내다보는 부분적인 것임을 핵심적으로 표현해 준다. 이 용어들은 또한 성령선물이 종말적인 것이며, 교호의 모든 구성원들이 현재 경험하는 성령의 활동이 종말적인 것임을 보여 준다.

3. 오순절과 개개신자(경험적 차원)
(1) 오순절 사건은 근본적으로 120명 신자들의 특수하며 특이한 경험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중생 후 제2의 축복으로 받게 되는 성령체험을 보여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또한 그것은 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매 시대마다 추구해야 할 표본적 성령체험도 아니다.
여기서 본인(저자)의 장은 오순절 사건은 "구원의 서정"(Ordo salitus)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구속 역사"(historia salitus)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오순절 성령 세례는 오늘날도 계속 적용되는 사건의 일부가 아니라, 단회적으로 성취된 구속역사의 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구원의 서정과 구속역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그리스도의 사역의 절대 충분성과 완전성을 위태롭게 한다. 오순절 성령 세례는 구속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이고 독특한 사건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시 반복될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은 개개신자의 경험의 표본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죽음·부활·승천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것이 반복될 수도 없고 경험의 표본이 될 수도 없기 때문에, 오순절 사건도 역시 반복될 수도 없고 경험의 표본이 될 수도 없다.
행 8: 14이하 ; 10: 44이하(11: 15-18)와 19: 1이하를 전형적인 예로 삼고 제2의 축복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누가의 행전은 신앙생활 표본집이 아니다. 그것은 복음이 사도적 전파 기록을 목적으로 하고, 새 언약 교회의 최초 단회적 설립을 기록한 책이다. 행 1: 8처럼 누가는 사건들이 예수님의 약속대로 진전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이다. 즉 행1: 8이 시간과 공간과 관계없이 모든 신자들에게 차별 없이 하신 말씀이 아니라, 다만 사도들에게 직접 하신 말씀이라는 것과 복음을 예루살렘으로부터 로마까지 전파하는 창설사역을 사도들이 완성했다는 것을 1: 8이 보여준다는 점을 유념해야 된다. 행1: 8이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것은 단지 파생적으로 이루어질 뿐이다. 사도행전 8장, 10장(11장), 19장에 기록된 사건들은 무한히 계속될 사건 시리즈의 하나, 즉 오순절 사건의 반복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독특하고 반복 불가한 사건 복합체의 일부인 것이다.
(2) 사도행전 2, 8, 10, 19장을 성령세례의 표본으로 보게되면, 신앙과 성령세례, 물세례와 성령세례, 안수와 성령세례의 순서적 관계에 대한 큰 혼란이 빚어지게 된다. 이것을 보더라도 그것을 성령세례의 표본으로 보는 것은 누가의 의도 속에 없는 것을 억지로 집어넣어 해석하는 것이 됨을 알 수 있다.
(3) 한 성령으로(with) 혹은 성령 안에(in) 세례 받는다는 표현이 신약성경에 일곱 번 나온다. 그중 여섯 번은 오순절 사건복합체와 구체적으로 관련된 말이다. 일곱 번째의 경우는 고전 12: 13에 나오는데, 여기서는 오순절을 신자들의 경험과 관련시킨다. 즉 그것은 구속의 계속적인 적용면에서 성령세례가 차지하는 위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장 전체에서 바울은 성령의 사역, 특히 신자들 속에 역사하는 영적 은사들의 다양성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내용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깊은 근본원리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는 원리이다. 한 성령의 사역의 다양성은 유기적으로 조화 있게 상호 작용하는 다양한 여러 지체를 가진 한 몸의 표현 내지 기능과 같다.
13절에서, 성령으로 세례 받은 자는 누구인가? 바울의 대답은 명료하다. 즉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 "모두"는 한몸인 교회의 모든 구성원을 가리킨다. 즉 교회 전체, 몸 전체가 성령으로 세례 받았다는 말이다. 바울은 보편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언제 성령을 받았는가? 그것은 전치사    를 통해 알 수 있다. 성령세례의 경험은 각 지체가 한 몸 속으로 하나되어 들어가는 때, 즉 언약민 속에 구원적으로 포함되는 때에 일어난다. 이것은 구원적 연합 이후의 어떤 때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경험(그의 몸 속으로 하나 되어 들어가는 경험)은 그가 오순절에 교회에 세례주었던 성령선물을 경험적으로 누리는 것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 연합이 그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경험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과 같다.
결국 고전 12: 13은 성령세례를 부가적인 회심 이후의 제2의 축복 경험으로 보는 모든 이론들을 부숴 버리는 단단한 반석이다. 그리고 13절 하반절에서는, 모든 신자들은 예외 없이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됨으로써 성령선물을 받고 교회에 쏟아 부어진 오순절의 갈증 해소의 강물을 마시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4) 모든 신자들이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신자의 성령사역 경험에 있어서 계속적인 성장과 개인적인 변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 후에 회심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주는 성령의 변화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다는 말도 아니다. 성령이 개인에 따라 다르게 계속 역사 하신다는 사실이 신약성경이 말하는 성령 충만이다. 엡 5: 18에서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현재 명령형은 계속해서 충만 받을 것을 명령한 것이다. 이것을 볼 때 성령 충만은 성령 세례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성령 세례는 회심 때 단회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지만, 성령충만은 신자의 생활에서 계속되는 과정 혹은 활동이다.  이 명령은 죽을 때까지 혹은 재림 때까지 모든 신자들이 이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성령충만은 어떤 이상한 어마어마한 경험문제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매일매일의 기본적인 대인관계와 생업에서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충만 사역은 생명을 주는 성령인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더불어 계속 풍성하게 역사하는 것을 가리킨다.
고전 3: 1-3에는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신자들, 즉 육적인 신자들과 신령한 신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이 두 종류의 신자로 구분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도 성령 밖에 있는 "자연인"과 "신령한 사람"을 나누고 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이류신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신자가 아닌 자들처럼 행동하는 것, 즉 그 행동이 신자들로서의 신분과 고백에 모순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5) 신약 신자들은 생명을 주는 성령인 그리스도와 신령한 연합을 누리고 있으며,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신자들과 연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전에는 이 연합을 누릴 수 없었다. 구약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미래의 사역에 근거하여 중생·칭의·성화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체험한 언약적 교제의 방식은 잠정적인 것이었다. 고로 그것은 영화된 그리스도와의 최종적·영구적 연합이 없는 것이다. 이 연합은 과거에 없었던 중대한 연합이므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 연합은 언약을 체결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내포한다. 이 연합은 그리스도 안에서 최종적으로 나타난 왕국 축복들의 핵심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구약 신자들은 아주 대조적으로 종과 미성년자의 위치에 있었다.(롬 8: 10-17 ; 갈 3: 23-4: 7)
그러나 이 연합이 경험상 더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점을 초래하는가? 여기에 대해 성경은 입을 다물고 있다. 신약시대에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파악하고 그것을 강조하려는 나머지 구약시대에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역사 하신 것을 무시하거나 부인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구약시대에는 신정국가에 성령을 주셨고, 신약시대에는 개개 신자 속에 성령이 내주하신다는 식으로 신구약의 차이점을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릇된 이론이다. 다만 신구약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성령은 구약시대에는 예변적으로(proleptically), "미리" 약속 면에서 역사하셨으나, 신약시대에는 "때가 되매" 실제적인 성취에 근거하여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신약 시대의 성령은 보편적인 성령이다. 구약과 대조적으로 성령은 현재 모든 육체에게 쏟아부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전례없는 성령의 범세계적인 지배가 오순절의 기능이다. 오순절의 성령은 선교의 성령이다.

4. 요한복음 20: 22에 관하여
요 20: 22은 행 2장과 관련하여 난제로 취급된다. 요 20: 22에서는 부활하신 바로 그날에 성령을 주신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요 20장과 행 2장의 기록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점이다. 요한은 공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성령강림 약속보다 더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요한이 자기의 글에서 승천 이후에 약속된 성령이 오실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의 승천 이전에 기록된 20: 22의 기록을 "요한복음의 오순절"로 보는 것은 요한으로 하여금 누가는 물론 요한 자신과도 모순을 일으키게 하는 것일 뿐이다.
제자들이 이미 중생한 자들이었다는 전제(요 6: 68 이하)와 요 20: 22이 행 2장과 다른 사건을 묘사한다는 전제에서 볼 때, "제 2 축복설"이 이 구절(요 20: 22)에도 걸려 넘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이 사건은 매 시대 신자들이 반복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모델의 하나가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 당시에 살았던 자들의 독특한 경험의 한 측면인 것이다. 즉 초창기 교회의 첫 시대의 독특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Ⅱ. 성령은사 개요
성령은사론에서 가장 두드러직 나타나는 구절들은 롬 12: 3-8 ; 고전 12-14장 ; 엡 4: 7-13이다.
1. 성령선물과 성령은사
성령선물과 성령은사는 다음 두 가지 의미에서 차이가 있다.
(1) "보편 수여"의 원리에 의해서 주어지는 성령, 즉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체험하는 성령사역(성령선물)은 "상이분배"의 원리에 의하여 주어지는 성령, 즉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르게 분배되는 성령의 역사들과 구분되어야 한다. 이 두 원리는 고전 12장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2) 성령선물(단수)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경험(생명에 이르는 회개, 행 11: 18)에 필수적인 것이다. 그것은 종말 생명의 실제적 시식이며, 미래의 부활 추수를 기대하는 첫 열매이며, 최후에 얻을 기업이 예약금이다. 반면에 성령은사(복수)는 여러 가지 사역에 관한 구체적인 역사들로서(고전 12: 4-6) 그 자체가 잠정적·반(半)종말적이다. 즉 성령은사는 천국에 가서도 계속되는 것이 아니고 already-not yet의 기간에만 존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새 언약의 본질은 어떤 특수은사나 혹은 은사들의 결합이나 혹은 모든 은사들의 종합 속에서 혹은 그와 불가피한 연관 속에서 찾으려는 일체의 신학사상을 배제하고, 새 언약의 특징을 그러한 은사면에서 규정하는 일체의 신학사상을 배제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성경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어떤 은사들 혹은 적어도 그 은사들과 관련된 독특한 현상들은 신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도 있다. 다양하게 분배되는 성령의 역사들은 잠정적이고, 어떤 경우에는 표징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개개 은사는 그 구체적인 목적과 교회 안에 그것이 있게 된 구체적인 여건을 바로 파악하기 위해서 연구되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성령은사를 과소 평가하거나 무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균형 있게 바로 보기 위한 것이다.
2. 은사적 은사와 비은사적 은사
롬 12장, 고전 12장, 엡 4장에 열거된 은사들과 활동들을 은사적 은사들이라고 하여 교회의 비은사적 은사 및 기능과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 되는 용어인        라는 용어는 바울이 중요한 신학 용어로 만든 것이다. 이 말은 롬 12: 6과 고전 12: 4 이하에 쓰여지고 있는데, 여기서 이 말은 교회의 회중 속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가지의 구체적인 은사들을 가리키고 있다. 그 은사들은 회중의 유익을 도모하는 데 그 기능이 있다.
그러나 롬 1: 11의 "신령한 은사"는 롬12장이나 고전 12장의 은사들 중 하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로마의 신자들 전체를 강하게 하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고전 1: 17의 용법도 이와 마찬가지인데, 고후 1:11에서 이 말은 구체적인 사건, 즉 바울이 심각한 위기상태에서 구출 받은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 말의 보다 일반적인 의미가 롬 5: 15-16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구절에서는 비슷한 말들이 의도적으로 쓰였는데, 카리스마는 "선물"을 가리키는 다른 말들과 상호교체적으로 쓰였으며, 의미상 "은혜"(     )와 중첩되어 있다. 롬 6: 23에서도 역시 카리스마는 "영생"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요컨대 은사(       )는 신축성이 강한 용어로서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의미들의 밑바닥에는, 모든 은사는 은혜의 현현이며 또한 은혜의 현현은 어느 것이나 은사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교회 전체, 즉 그 모든 방면과 활동에 있어서 교회는 은사적이라고 봄이 합당하다. 그러므로 교회의 어떤 은사는 은사적이고 어떤 은사는 은사적이 아니라고 봄으로써 은사적 은사와 비은사적 은사를 구분하는 것은 바울의 관점을 왜곡 내지 제한하는 위험을 범한다.
3. 은사와 삼위일체의 관계
(1) 롬 12장과 고전 12장, 엡 4장에 열거된 은사만을 신령한 은사라고 하는 말은 단지 일리가 있을 뿐 숲 전체를 보지 못한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승귀하심으로부터 성령과 그리스도는 사역적으로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성자와 성령의 사역은 분리할 수 없다. 더욱이 성령은 아버지의 약속으로서 모든 활동을 하신다. 은사는 성령의 것만이 아니라 성자의 것이요 성부의 것이다. 이 포괄적인 관점을 깨달을 때에 교회에서 은사문제를 다룰 때 성령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현대의 경향을 시정할 수 있다.
(2) 그러나 고전 12-14장에서 특히 성령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도 잘못이다. 은사를 주심은 성령의 나타남이다. 성령은 "자기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타남"이다(12: 11). 신령한 은사란 표현은 바울이 성령과 교회에 주어진 은사들을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시켰나를 보여 주며, 성령의 은사들을 성령의 사역 면에서 묘사하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적절한가를 보여 준다.
4. 은사와 봉사
은사는 철두철미하게 교회봉사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은사의 목적이 이렇게 교회 봉사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 특히 고린도전서 12: 4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8-10절에 열거된 은사들은 교회 봉사의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령께서 다양하게 여러 방면으로 나타나시는 것은 "공동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모든 은사의 목적이 무엇이며 그 은사들을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방향에서 생각해야 한다.
5. 성령세례와 은사
개별은사(가령 방언)가 성령세례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것으로서 그 은사가 성령세례를 증명하는 것이라는 견해, 즉 성령세례는 회심 이후에 별도로 겪는 경험인데 그 은사가 바로 이런 성령세례를 증명해 준다는 견해는 신약성경에서 세워질 수 없는 견해일 뿐 아니라 성령세례(성령선물)에 관한 신약의 교훈에 배치되는 견해이다.
6. 은사와 직무
성령선물과 직무가 서로 알력을 일으키거나 서로 대치된다는 견해는 신약의 교훈과는 거리가 멀다. 성령이 구조를 벗어난 자유와, 형식을 벗어난 자발성의 원리로서 기존 질서·안정구조와 충돌하는 원리라는 학설은 신약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학설로서 대개의 경우 계몽사조, 칸트 이후의 본체론과 인식론의 문제들을 반영해 주는 학설이다. 이런 문제는 성경에는 없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성령선물과 직무간의 조화를 보여준다. 목회서신에 보면 카리스마가 "직무"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딤전 4: 14 ; 딤후 1: 6 ; 딛 1: 5). 은사와 직무는 적극적으로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교회생활에 있어서 중요하고 아주 실제적인 문제이다. 동일한 한 성령은 열정의 성령이자 질서의 성령이다.
7. 은사목록(롬 12: 6-8 ; 고전 12: 8-10 ; 엡 4: 11)
본문들에 열거된 은사목록은 모든 은사를 다 열거한 완전한 목록이 아니고 대표적인 은사만을 선택해서 열거한 목록이다.
(1) 이 많은 은사들은 칼로 두부를 베듯 딱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가령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예리하게 구분해 내는데 성공한 주경학자는 없었던 것이다. 신약전체의 교훈에 비추어 볼 때, 고전 12: 28의 목록은 일종의 계층을 암시하는 듯하다. 여기서 계층이란 말은 뒤의 두 은사는 앞의 은사의 한 측면이라는 것, 즉 예언은 사도의 기능이요, 또 교육은 예언자와 사도의 기능이라는 의미에서의 계층을 가리킨다.
(2) 은사목록은 얼른 보기에는 되는 대로 열거되어 있는 것 같아도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말씀 은사와 행위 은사가 그것이다. 이 두 범주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며 교회생활에 있어서 상호보완적이다. 이렇게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해서 말씀은사와 행위은사의 구분을 무시하거나 등한시해서도 안 된다. 개별은사는 어느 것이나 말씀봉사 혹은 행위봉사이다. 그 중에 어떤 은사, 특히 사도직은 말씀봉사와 행위봉사를 다 포함한다.
8. 내가 무슨 은사를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선 은사문제에 있어서 추상적·기계적 방법은 피해야 한다. 그것은 롬 12장, 고전 12장, 엡 4장에 비추어 신령한 자기 점검을 한 다음 그 중에 원하는 은사나 부족한 은사를 위해 기도하는 식의 접근방법을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신약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영성(spirituality)보다는 현대 서구인이 좋아하는 전문적 영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신약성경에 비추어 보면 잘못된 태도이다. 어떤 은사는 일시적인 것으로서 사도시대만 있었던 것도 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하면서도 우리가 배우기에 가장 힘든 교훈은, 영적은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힘과 재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연약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바로 그것이라는 교훈이다.

Ⅲ. 예언과 방언
1. 고린도전서 14장 개요
(1) 14장 전체에 예언과 방언이 의도적으로 대조되어 있다. 은사론 전체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방언과 예언이다.
(2) 14장의 두드러진 대조를 통해서 볼 때 예언은 주요 요소이며 방언은 종속 요소이다(14: 1, 5, 39절). 14장 전체를 통해서 방언은 예언의 상대적 중요성을 보여주고, 반대로 예언은 방언의 상대적 열등성을 보여 준다. 결국 14장의 요점은 방언에 대한 예언의 상대적 우월성을 보여 주는 데 있다.
(3) 예언은 방언보다더 우월한 것이며 더 사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은사를 행사할 때 교회의 유익을 위해 행사해야 한다는 대원리에 비추어 볼 때 그렇다. 그런데 다른 교우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예언이다.
(4) 방언은 통역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방언이 일단 통역되고 나면 교회에 유익을 준다는 점에서 기능상 예언과 동등하다. 방언이 예언보다 못하다고 하는 말은 통역되지 않은 방언에만 해당된다. 방언이 일단 통역되면 예언보다 못하지 않다.
(5) 예언과 방언은 같은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서 그 기능이 상호 보완적이다. 바울이 다소 융통성 있게 예언을 "마음으로" 하는 모든 말(19절)과 연결시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육은사를 예언은사와 바꾸어 썼을 경우 혹은 교육은 교회에 유익을 주지만, 통역하지 않은 방언은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식으로 표현을 바꾸어 썼을 경우에도 바울의 의도 전달에는 사실상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바울의 관심사는 예언과 방언, 그 위치와 행사 그리고 그 상호관계를 다루는 데 있었다.
방언은 예언과 연결되어 있다. 방언은 마치 예언의 그림자와 같다. 방언이 예언과 공존 내지 상호관계 속에서만 교회 안에서 행사된 것이라는 점을 14장에서 넌지시 비치고 있다. 방언과 예언의 공존을 부인하는 논리가 14장에서 밝히 드러나 있지 않은 점을 보더라도 방언과 예언은 밀접한 관계 속에 공존하고 있다.
(6) 그러면 방언과 예언이 어째서 이렇게 밀접하게 비교·대조되어 나타나는가? 그것은 방언과 예언이 둘 다 말씀 은사이기 때문이다.

2. 예언(신약의 예언자)
(1) 고전 12-14장에서 바울이 말한 것은 예언 전체, 즉 예언의 모든 국면에 적용되는 것으로서 예언이 고린도에서 어떤 기능을 발휘했나를 보여준 것이다.
(2) 신약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본 특징을 가진 은사 내지 기능이다.
첫째, 예언은 교회 안에서 모두 받는 것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이 받는 은사이다. 그것은 상이분배(相異分配)의 원리에 의해 주어지는 은사이다.
둘째, 예언은 계시은사이다. 즉 예언은 교회에 일차적, 본원적 의미의 하나님 말씀을 전해주는 은사이다. 예언은 이미 존재하는 영감된 본문 내지 구전의 해석이 아니라, 그 자체가 영감된 일차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예언의 필연적 특징 중의 하나이다.
신약의 예언은 계시로서 의미를 지닌다. 문제는 예언의 계시가 전에 숨겨졌던 내용을 펴보임에 있어서 "새로운 계시"인가 아닌가, 혹은 어느 정도로 "새로운 계시"인가 하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누가복음의 한 구절이 그보다 먼저 쓰인 것으로 보이는 마가복음에도 병행구로 나오니까, 즉 "새"것이 아니니까 완전한 계시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신약의 예언은 구약에서 나오지 않는 "새"것이 아니면 완전한 예언이 아니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여기서 핵심은 예언은 성령의 역사에서 나온 영감된 것, 그래서 권위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예언자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이에 합당하게 받고 반응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예언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신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과 "각종 지혜"를 교회에 계시한다는 점에서 사도들과 연결되어 있다(엡 3: 5, 8-10). 이 신비에 관한 예언계시는 "밝히 말함"(행 15: 32 ; 고전 14: 3)과 "미리 말함"(행 11: 28 ; 21: 10)을 포함하고 있다. 이 두 가지의 광범위한 기능이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예언이라고 생각할 만한 근거는 없다. 가령 전자는 완전 영감된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식의 주장을 할 수 없다. 이 두 기능이 실제로 나타나는 과정에 있어서 경우에 따라 전자가 강하게 나타날 때도있고 후자가 강하게 나타날 때도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의 자료를 볼 때 신약에 언급된 여러 교회(안디옥, 에베소, 고린도, 데살로니가 등)에 하나의 통일된 예언활동이 있었으며, 그것은 구약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이제 설교(교육)와 예언의 근본적인 차이 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비예언적 선포는 기존 본문(TEXT)에 근거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문화된 말씀 - 경우에 따라서 신약성경이 쓰여지고 있던 시기에는 권위있는 사도들의 구전 - 의 적절한 해석인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예언적 선포는 성령으로부터 나왔으므로 권위가 있는 성령의 역사로 나타난 말씀인 것이다. 예언과 설교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예언자에게는 기존 본문이 없다는 점이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하고 설교자는 그 말씀을 해설하는 것이다.

3. 방언
(1) 방언의 기원
방언의 기원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구절은 14: 14이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방언은사를 행사할 때는 방언하는 자의 마음은 무시되고 만다. 적어도 그의 마음이 방언을 하는 과정에서 사용되고 있지 못하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즉 그의 마음으로 그것을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바울의 방언관은 방언자의 말이 성령의 말씀이라는 면에서 방언의 기원이 완전영감에 있음을 보여 준다. 성령께서 방언자의 언어 능력을 완전히 장악하여 그의 음성을 사용하시고 있을 뿐이고, 실제의 말씀은 그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말씀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감은 성령 저자들의 영감을 "초월하는" 영감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저자들의 영감은 인간 주체를 완전하게 전체적으로 이용하는 것이지만 방언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방언과 예언이 병행하는 것을 볼 때, 14장은 성령의 동작에 의한 인간의 일면(영혼, 비사고적)의 표현과 성령의 동작에 의한 인간의 다른 일면(마음, 사고적)의 표현을 대조시킨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말씀(성령의 말씀)이 예언의 경우에는 그 예언자의 현존하는 언어(사고) 능력을 이용하지만, 방언의 경우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대조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2) 방언의 내용
방언이 영감된 계시라는 점은 방언의 내용 면에서도 확인된다.
첫째로 생각할 것은 방언자가 발설하는 것을 해석(통역)할 수 있다는 점이다(12: 10, 30 ; 14: 5, 13, 26-28). 통역은사란 어떤 교인의 무의식적 발설을 다른 교인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종의 직감적 이심전심의 능력이라고 보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해석한다"는 말의 성경적 용법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미 우리가 비성경적이라고 하여 거부한 방언관을 전제하는 것이다. 듣는 자들이 방언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단지 그들이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석은 이러한 이해의 장벽을 제거해 준다.
성령에 의해 "방언을 말하는 자는.... 비밀을 말한다"(14: 2)는 사실에서도 방언의 영감성과 계시성을 찾아볼 수 있다. 계시성은 방언의 핵심이며 방언 은사와 계시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고전 14장에 예언과 방언이 나란히 언급된 것은 궁극적으로 둘 다 계시적인 말씀은사이기 때문이다. 예언과 방언의 기능이 같다는 것은 비단 둘 다 교회에 유익을 준다는 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14: 5), 오히려 둘 다 영감된 계시라는 점에 있다. 방언은 인격의 비사고적·비이성적 부분의 자발적인 발성이지 계시가 아니라는 식의 주장은 고전 12-14장이나 신약 다른 부분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주장이다.
(3) 오순절의 방언은 분명히 당시에 통용되던 언어였다(행 2: 6, 8, 11). 그러나 고린도의 방언도 역시 당시의 언어였는가? 고린도의 방언은 사람들이 모르는 천국언어였는가? 이에 대하여 우선 고전 12-14장에서 고린도의 방언현상이 당시의 통용어가 아니었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방언이 전에 없었던 어떤 새로운 천국의 언어라고 강력하게 지적하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도행전도 예언과 방언을 한 짝으로 연결시켜 언급하고 있는데 이 점 역시 고린도전서와 같다. 이 말이 암시하는 점은 사도행전의 방언 언어현상과 바울 서신의 방언 언어현상이 동일한 현상(알려진 인간의 언어)이었다는 점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방언이 곧 예언이었다. 이 점은 고전 14장 해석에서 우리가 누차 언급한 점과 연결된다. 즉 예언과 통역된 방언은 그 기능이 같은 것이다. 예언의 본질을 바꾸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예언의 의미를 조금만 확대해서 생각하면 방언은 예언의 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방언은 개인 경건을 위해 사용되는 것인가? 고전 14장에서 바울은 공식모임에서의 방언의 공용성을 다루기도 하면서, 동시에 방언이 사적으로 행사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방언이 개인의 경건 생활을 위한 것이라는 선입관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방언을 사용(私用)으로 이용한 때는 대개 기도 방언이나 찬송 방언일텐데(14-15절), 이 경우도 역시 통역하라는 바울의 반복된 명령에 적용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된다. 방언의 주목적은 신자 개인의 기도생활에 있는 것이고 교중의 공적 유익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는 고전 14장의 바울의 방언관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잘못된 견해이다. 방언을 개인 경건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회중 전체의 유익을 위하여 공적으로 사용해야 할 방언은사에 첨가되어 있는 것이다.
방언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일에 있어서 또 생각할 점은 상이분배의 원리이다. 즉 누구나 다 방언은사를 받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공용 방언은 교회 안에서 몇 사람만 받고 사용 방언은 교인 전체가 받는다는 것은 고전 14: 5, 18, 23의 말씀을 왜곡한 것이다. 다 방언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부족하거나 은사를 구하지 못해서 못 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은사를 서로 다르게 분배하기 때문이다(11절).
오늘날은 방언 은사를 받으면 무엇보다 그리스도에게 더 헌신하게 되고 더 뜨겁고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도고, 전도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신약성경 어디에서 이것이 방언의 목적이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고전 12-14장의 전체적인 논조는 이와 같은 견해와 정반대의 방향이다. 특히 방언에 있어서 더 그렇다.
방언을 포함하여 교회 안에 다양하게 분배되는 은사 중에 그 어느 은사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서 찾고 계시는 예배와 전도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방언을 포함하여 그 어느 은사도 진정한 영성의 본질이 아니다. 성령의 은사는 개인이 은혜 안에서 거룩하게 되고 자라 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와 기도와 같은 "은혜의 방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은사를 주시는데, 그렇다고 해서 어떤 은사받은 자는 그렇지 못한 자보다 더 거룩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Ⅳ. 예언과 방언이 지금도 있는가?
신약성경의 교훈을 종합해보면, 예언과 방언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중지되도록 된 것이며 사실 이미 중지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1. 사도직의 일시성
사도는 교회에서 특수한 임무를 위해 잠정적으로 선발된 대표자를 가리킨다(고후 8: 23 ; 빌 2: 25 ; 행 14: 4, 14). 그리고 고전12: 28-29과 엡 4: 11에 나타난 대로 사도란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가리킨다. 이 사도들은 숫자가 제한되어 있고, 교회사의 첫 세대에 국한되어 있다. 사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목격자여야 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마지막 사도라고 칭했으며, 자기의 후계자인 디모데에게 켤코 사도라 지칭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서 사도권의 계승은 그 용어 자체가 모순이다. 교회에서 사도들의 활동은 "단회적"이며 "일시적"이었다.
이와같이 사도직이 교회에 주어진 여러 은사들 중의 하나라면, 바울이 언급한 모든 은사가 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계속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은사들 중의 하나가 없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성경의 권위와 계속적 적용성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2. 사도적 증거의 창설성
사도들의 활동 중에 가장 중요한 활동은 이미 암시한 대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의 기본적인 사실들을 선포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도로든 기록으로든 사도들의 설교와 교육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사도적 설교와 교육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사도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의 초석이라고 한 것은 교회의 유일한 기초인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최종성을 흐리게 하거나 부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사도들과 그들의 활동을 특수한 의미에서 교회창설 사역에 포함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단회적 창설사역은 그의 죽음과 부활로 완성되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창설사역에 그 사역을 증거하는 사도들의 창설사역이 결합된 것이다. 마 16: 18에 이미 사도들의 창설사역이 예상되었다. 거기서 예수께서는 사도들의 대표인 베드로, 신앙고백하는 베드로를 그 위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울 반석이라고 하셨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교회의 기초는 사도들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사도적 증거인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들이 교회의 기초라고 하는 말을 그들의 인격에서 분리된 사역이나 그들의 사역에서 분리된 인격에서 이해하는 것은 해석상 잘못된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교회의 기초는 증거하는 사도들이라는 의미에서의 사도들, 계시를 받아서 전했다는 점에서의 사도들이다.
3. 예언의 창설성
엡 2: 20에서 예언자들이 창설적 증거활동 내지 말씀사역에 있어서 사도들과 연결되어 있다. 바울은 엡 4: 7-16에서 그리스도께서 그 몸에 주신 서로 다른 은사들간의 조화를 지적하면서 교회론을 더 전개하였다. 그렇다면 4: 11은 2: 20과 3: 5에 언급된 예언자들이 사도들과 나란히 언급되었지만 사도들과 구분되며, 승귀하신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사 중의 하나임을 밝혀주는 것이다. 교회의 기초라고 언급된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교회를 "세우는" "사도들"과 "예언자들"과 다른 자들인 것은 아니다. 전체 문맥에서 볼 때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창설사역(증거사역)이 4: 11-16에서 포괄적으로 언급한 교회 창설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기여하는 사역임을 알 수 있다.
엡 2: 20 연구에서 내릴 수 있는 중대한 결론은 신약의 예언자들이 사도들과 함께 교회의 기초라는 점이다. 예언자들은 창설사역자들이다. 즉 교회사상 계속되지 않은 일시적 기능적으로서 하나님의 의도에 의해 사도직과 함께 중단된 것이다.
예언은 다음 두 가지 면에서 창설적인 말씀은사이다. 첫째, 마침내 정경으로 인정된 책(요한계시록)을 산출함에 있어서 그렇다. 둘째,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서 교회 창설기에 특수하게 나타난 정경형성기와 관계된 그 당시 교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면에 있어서 그렇다. 사도직도 역시 이 경우에 해당된다. 바울을 위시하여 몇몇 사도들이 신약정경의 일부로서 영속적으로 교회에 봉사할 문서계시를 산출함에 있어서 탁월한 역할을 한 반면에, 예언자들과 함께 대다수의 사도들은 그 창설시기에만 교회에 필요했던 계시들을 받았다.
엡 2: 20은 예언자들을 사도들과 긴밀하게 연결시켜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사돋관에 융통성과 균형을 보일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사도들은 "초특제 은사를 받은 자들"이었다. 이 말은 사도들이 롬 12장, 고전 12장, 엡 4장에 열거된 은사들 중 많은 은사, 아마 모든 은사를 받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교회의 창설기를 유별나게 "사도시대"라고 하는 것도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예언자들과 같은 사람들은 사도들과 연결된 자들로서 그 은사들 중에서 한 두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도직과 어떤 은사들을 형식적이거나 기계적으로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사도의 구체적인 지시나 사도들의 안수로 은사를 받은 것처럼 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에 어긋나는 입장이다.
4. 방언은 중지되었다.
신약의 방언은 항상 예언과 직결되어 있고, 일단 통역된 방언은 교회에 유익을 주는 하나님의 계시 기능을 발휘한다는 면에서 기능상 예언과 같다고 하였다. 실상은 방언은 예언의 한 방식이다. 방언도 역시 교회창설을 위한 은사다. 따라서 방언은 예언과 함께 교회생활에서 철수되었다. 방언은 사도직과 연결되어 있던 모든 다른 창설기의 은사들과 함께 철수되었다.
예언의 경우도 그렇지만 방언의 경우도 방언의 기능을 사도시대에 중지된 기능과 그 이후에 계속되는 기능으로 나누어 생각할 만한 성경해석적 근거가 없다. 예언론에서 이미 살핀 대로 정경과 정경의 완성 문제와 방언과 방언의 계속 문제는 반드시 직결되어 있다.
바울은 고전 14: 20-25에서, 방언이 불신자들에게 표적이 된다고 하였다(25절a). 바울이 여기서 고린도 교인들의 오해("방언은 우리가 신자들인 것과 성령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적이다"라는)를 시정하고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그가 불신자들에 대한 표적으로서의 방언의 의미를 분명히 부정적인 의미에서 말한 것이다. 즉 방언은 불신자들에 대한 표적이다.
바울은 방언이 하나님의 심판의 표적이라고 가르친다. 특별히 알아들을 수 없는(통역되지 않는) 방언은 불신자들을 고발하는 표적이다. 즉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신앙 속에 버려두셨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불신앙을 확인해 준다. 다시 말해서 통역되지 않는 방언은 복음의 명백한 메시지를 무시하고 거절한 자들로부터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려 멀리 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바울은 방언은사의 이런 측면을 환기시키면서도(21-22절), 결신자들이 있는 데서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도록 경고한 것이다.
방언은 불신자들에 대한 표적으로서 주로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관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견해가 너무 교묘하게 꾸민 것이라 하여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그렇게 쉽게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는 적어도 방언이 불회개를 고집하는 자들에게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 바울의 의중에 있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예언과 그 성취의 포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고린도전서 14: 21-22의 바울의 요점은 방언이 새 언약의 개시와 교회창설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의 표시라는 것이다. 방언은 이와 같이 기초를 놓는 활동과 연관된 표시로서 주로 유대인의 불신앙과 그에 대한 종말 심판을 유발하는 것이다. 방언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시므온이 재확인한 바대로,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다"(눅 2: 34)는 예언의 성취로 나타난 것이다.
이와같이 고전 14: 20-25의 바울의 의도, 특히 구약인용의 의의를 바로 분석해보면, 그것은 방언이 사도들, 예언자들과 함께 교회에서 철수된 일시적 은사였다는 결론에 대한 뒷받침도 된다. 그리스도가 오실 때부터 예루살렘의 멸망 때까지 계속된 언약사의 창설기 내지 전환기에 나타났던 다른 현상들과 아울러 방언은 천국이 완악하고 불신앙적인 이스라엘로부터 그 열매맺는 백성에게로 옮겨진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시였다. 더욱이 표적으로서의 방언의 의의가 무엇이든 간에 표적으로서의 방언의 기능이 방언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나타난 방언의 본질적 특징 중의 하나였다는 것이 바울의 분명한 교훈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5. 고린도전서 13: 8-13
이 구절, 특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는 10절 말씀은 예언과 방언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교회에 계속된다는 교훈의 결론적인 근거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런 저런 주장을 다 내세워도 이 구절을 갖다 대면 예언과 방언이 폐지되었다는 견해가 흔들리는 것 같다.
물론 10절의 "완전한 것"이 올 때와 12절의 신자들이 완전한 지식을 가지게 될 "그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구절이 예언과 방언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계속 되는 것을 가르친다는 결론도 역시 너무 헤픈 결론으로서 바울을 현대은사론의 관점에서 읽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본문(고전 13장)에서 바울은 창설기로서의 사도시대와 사도 이후 시대를 구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도 재림 때까지의 기간 전체를 염두에 두었다. 그 기간에 무엇이 계속되고 무엇이 폐지되는가 하는 것에는 상관하지 않고, 믿음과 소망과 특히 사랑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8, 13절).
은사는 신자의 현재의 일시적인 지식편에 속하는 것이다. 은사 자체가 그 대조의 한쪽 편이 아니라 더 큰 그림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따라서 8절(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의 구체적인 초점은 신자의 현재의 지식의 일시성과 잠정성뿐 아니라 그와 관련하여 신자의 인식방법의 일시성과 잠정성을 강조하는데 있다.
예언과 방언은 신자의 현재의 지식과 관련된 계시의 방도인 것이다. 예언과 방언을 계시의 방도로 골라낸 이유는 분명히 넓은 문맥에서 볼 때, 바울이 고린도의 상황을 다루었고, 14장에서 특히 예언과 방언의 올바른 행사원리를 제시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언과 방언을 계시의 방도로 골라낸 것을, 13: 8에서 바울은 특별한 계시은사들의 폐지에서 일차적인 강조점을 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지식의 일시성과 단편성에 일차적인 강조점을 둔 것이다.
만일 이 분석이 옳다면, 신자의 현재의 지식을 주로 다루어 오다가 바울이 계시의 방도로써 성문화도 언급했을 것으로 보는 것은 합당하다. 그런데 성문화(성경기록)가 끝났다. 성경기록이 끝났다면 이 구절에 언급된 예언과 방언 등 계시방도가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교회에서 계속 기능을 발휘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견해이다. 바울은 어느 특수한 계시방법이 끝날 시기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가 주장한 것은 "완전한 것"이 오면 일시적인 계시방도에 근거한 신자의 현재의 파편적인 지식이 끝난다는 점이다.
6. 은사의 중지문제 개관
성령의 활동 중에 어떤 것이 교회의 창설기에 있었고, 또 어떤 것이 그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가?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가? 우선 우리는 거의 기계적으로 롬12장, 고전12장, 엡4장의 은사목록 중에서 특수은사는 중지되었고, 보통은사는 계속되고 있다든지, 더 심하게는 초자연적 은사는 중지되었고 자연은사는 계속되고 있다는 식으로 구분할 수는 없다. 이런 구분은 성령의 유기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말씀 은사가 계속된다는 면에 있어서 주요 원리는 "성령께서 말씀과 함께 역사하신다"는 원리다. 성령은 사도들의 기초적 전통 내지 교훈과 함께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정경과 함께 깨닫게 하고 조명하는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7. 신유와 그 관련 은사들
고린도전서 12: 9-10, 29-30에 열거된 대로, 또 사도행전의 기록에서 보는 대로 이 은사들은 특별히 일정한 개인에 의해 정규적으로 행사되었을 때는 교회창설의 일부였던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은사들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넓은 의미에서 "사도의 표시"에 속했기 때문에 교회 생활에서 지나가버린 은사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능력을 특히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병을 고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장해야 한다. 성경에는 그것을 부인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그러나 이 점을 강조하면서도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고후 12: 7-9체 나타난 바울의 "육체의 가시"에 대한 경험은 확실히 그가 사도로서 받은 독특한 계시들과 관계되어 있다. 그러나 이 육체의 가시의 기능이 모든 신자들의 생활에 나타나는 육체적인 고통의 귀감이 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유는 오늘날을 위한 것, "하나님은 모든 질병이 고쳐지기를 원하신다."는 등의 손쉬운 슬로건은 성경교훈을 피상적으로 왜곡한 것으로서 이미 영육간에 고통당한 자들의 신앙을 망가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견해는 혼란을 가져온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육체의 고통을 포함한 고난의 때에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는 위해한 축복을 잃게 한다. 그 축복은 바울이 발견한 것을 체험하는 축복이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하니라"(고후 12: 10)

Ⅴ.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이상에서 내린 결론대로 예언과 방언은 교회 창설기, 즉 사도시대에 일시적으로 주어진 계시은사들이다. 예언과 방언은 사도들의 사역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며 사도들이 사라짐과 함께 교회 생활에서 영구적으로 철수되었다.
이제 몇 가지 오해의 유형들을 알아보기로 하자.
1. 소위 은사운동(Charismatic movement)이란 것은 대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의 관심사와 체험을 대변하는 자들이다. 이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은사자들과 비은사자들의 차이점은 주로 신자들간의 차이점, 즉 그리스도의 한 교회 안에 있는 차이점이다.
비은사자들은 간혹 소위 은사경험이라는 것이 말과는 다르다는 것을 들어서 은사체험이란 다 사단이나 귀신들의 영향을 받아 생긴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통탄할 만한 일이다. 이런 태도는 비성경적인 뿐만 아니라 분열과 분쟁을 고조하여 신자 상호간의 타협이 불가능한 자리까지 몰고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몸 전체의 연합과 평안이며 그 모든 지체들, 은사자들과 비은사자들 모두의 건강인 것이다.
2. 그러나 은사자들과 비은사자들간에 신자의 사랑과 관심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이런 사랑의 관심이 성경을 무시하거나 제쳐놓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랑의 관심의 본질은 성경에만 의존하고 있다. 말씀에 의존하는 한 성령에 속한 사랑의 관심이 된다.
종교개혁의 진전을 보면 우리가 늘 명심할 중요한 교훈이 있는데, 그것은 오늘날 은사운동으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에도 역시 해당되는 교훈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양면 공격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왜냐하면 카톨릭과 재세례파가 서로 다른 입장이면서도 성경의 존엄성에 대해서는 공동의 위협을 가해 오고 있다는 것을 개혁자들이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로마 카톨릭이 은사운동에 그토록 쉽사리 적응하는 것을 보아도 종교개혁 당시의 형편과 흡사함을 알 수 있다.
3. 그렇다면 예언과 방언이 교회에서 철수되었다는 결론은 "성령을 거스리는 것"도 아니고, 성령의 자유를 소멸하는 것도 아니라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기 위하여 주권적으로 선택하신 그 계시방법을 중시함으로써 신자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은사운동은 그 독특한 강조점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은사운동은 적어도 해석학적으로 그런 강조점이 주요한 점에서 성경교훈에 배치되는 신학에 의해 뒷받침을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방언은 행2장과 고전12-14장에 묘사된 성령의 은사는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방언현상에 뒤따르는 해방감과 하나님과의 강렬하고도 깊은 교제감과 아울러 이런 방언현상을 지지할 만한 성경의 근거가 없다고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4. 많은 사람들이 은사운동의 적극적인 측면을 지적해왔다. 이런 점에서 은사운동을 하는 신자들이 교회 전체가 모든 신자에게 유익하고 모든 신자가 참여하는 예배와 교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성령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은사자들과 비은사자들간의 차이를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확대되는 것은 교회에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복음은 승귀하신 그리스도,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복음이다. 교회가 오순절 사건을 두고 이 점만은 꼭 명심해서 살펴야 한다. 즉 교회는 오순절의 첫열매의 능력으로서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롬 8: 18-25),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확신 속에서 기다리며(벧후 3: 13) 활력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Ⅱ부 평가
1. 성령선물에 대한 단회성과 영속성의 문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 대한 누가의 기록과 요한복음 20장 22절의 기록을 비교하면서, 개핀은 성령 선물이 매 시대의 신자들에게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또 반복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모델이 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 당시에 살았던 자들의 독특한 경험의 한 측면이며, 초창기 교회의 첫 세대의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개핀의 성령론은 기본적으로 구속역사적 관점에 서있다. 성경 속의 사건이 나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 구원서정적 관점이다. 그리고 성경의 어떤 사건이 그리스도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구속역사적 관점이다. 성경 본문을 해석할 때, 그것이 오늘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알아보기 이전에,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알아보는 것이 구속역사적 관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을 연구할 때, 구속역사적 관점을 먼저 보고, 그 이후에 구원순서적 관점을 보아야 한다. 구속역사적 관점에서 성경을 볼 때, 오순절 성령강림은 단회적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오순절 성령강림을 개인에게 적용되는 구원서정적 관점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 부활 - 승천에 연결되는 일련의 구속사적 사건의 한 나뉠 수 없는 부분으로 이해하는 구속역사적 관점은 역사적 개혁교회가 지지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오순절 사건이 모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단회성이며 독특성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결국 오순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제2 축복설"은 이러한 구속역사적 관점으로 볼 때 그 근거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분명 개혁주의적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에 개혁주의 내에서는 이러한 구속역사적 관점에 대해서 수정하는 태도가 대두하고 있다. 즉 오순절 또는 신오순절교회에서 강조하는 성령운동을 적극적인 방법으로 수용하려고 하는 움직임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성령강림을 회심후 신자들의 체험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고려신학대학원의 안영복 교수님에 의하면 오순절 성령강림은 단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령강림의 신령한 역사가 계속된다고 주장하고, 또한 오순절 성령강림은 중생 이후에 주어진 하나의 사건으로 그 시초가 성령세례요, 성령충만은 성령세례의 결과라고 했다. 또한 그는 중생과 성령 세례가 일반적으로 시간의 간격을 두고 나타난다고 하여 중생 이후 신자가 자기의 직물르 능력있게 감당하기 위해 위로부터 능력을 힘입는 최초의 경험을 성령세례라고 지칭하고 그 결과 계속 반복되는 동일현상을 일컬어 성령충만이라고 말한다.
차영배 교수는 주장하기를, 오순절 성령강림은 그 주체자가 승천하신 그리스도이신 데, 믿은 자에게 믿은 후에 오늘도 계속적으로 위로부터 오는 체험이요, 동시에 믿음을 가진 자가 구하여 받아야 할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체험은 신자가 중생 한 후 한 번뿐만이 아닌, "영속적으로" 위로부터 강림하는 "동질의 성령"을 각양 은사들과 더불어 받아 누려야 할 것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차 교수가 믿음 후에 구하여 받는 성령세례를 넓은 의미의 중생과 동일시하는데, 넓은 의미의 중생이란 "성령세례와 동시에 깨끗하게 된 심령에 거룩한 영이 충만하게 넘치기 시작하여 향후 계속하여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모두 개핀과 같은 전통적인 개혁파 교회에서 말하는 구속역사적 관점보다는 오순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구원서정적 관점에서 오순절 사건을 조명하고 그 입장을 수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성령 세례에 대한 이해의 그 중심은 하나님의 경륜의 방식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 세례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게 된다. 따라서 기독론 중심의 이해는 성령세례를 이해하는 전제가 된다. 성령세례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의 방식 속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개혁신학은 중생이 성령세례이므로 더 이상 성령세례를 반복적으로 받을 수 없다고 본다. (물론 개혁신학자들 가운데서도 차영배 교수나 이재범 교수, 로이드 존스등의 오순절적인 관점을 수용한 이들도 있기는 하다) 중생은 성령의 역사로 예수 믿음에서부터 시작되고 성령을 받는 것이 된다. 중생은 예수의 사역과 인격을 믿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 따라서 중생은 칭의와 연관된 것으로, 칭의의 시작은 예수 믿어 성령을 받는 중생에서부터 시작된다. 예수 믿음이 중생이며 곧 성령세례인 것이다.
오순절 사건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요15: 26 ; 16: 7)과 명령(요20: 22 ; 행1: 5)에 전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오순절 사건은 구속역사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오순절 사건은 그리스도의 사역, 즉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귀하심의 연장선에서 그리스도의 영으로 오시는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 오순절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볼 때 반복성의 근거가 없어진다. 그래서 오순절 사건은 개인적인 구원의 사건(구원서정적 관점)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구속 역사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오순절주의와 개혁교회 내부의 오순절주의가 개인적인 구원서정의 관점으로 오순절 사건을 이해하였기 때문에, 예수 믿고 중생한 이후에 방언이 따르는 성령세례를 덧입어 증인의 능력을 행한다고 하는 것은 바르지 못한 주장이 된다. 오순절 사건은 개인에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구속역사적으로 단번에 이루어지고 반복되지 않는 것이다. 오순절 사건은 기독교의 출범과 교회의 창설이라는 하나님의 구원사적 대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므로 그것들이 역사적으로 반복될 수 없는 전무후무한 사건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오순절주의자들의 성령론은 오순절 성령강림에 대해서 지나치게 영속성을 강조하여 단회성을 간과한 경향이 있다. 물론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에서 말하듯, 성령은 오늘도 위로부터 계속적으로 내려오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과다하게 제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동시에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말씀과 더불어 역사 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 우리의 마음이 열려야 하는 것 또한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전통적 개혁주의자들에 대해 쉽게 오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개핀 교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개핀 교수가 성령의 단회성만 주장하고, 영속성은 부인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개핀 교수는 오순절 성령 강림에 대하여 구속역사적 관점의 우선을 강조하고, 그 단회성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된다. 즉 개핀 교수는 오순절 성령강림의 기독론적, 성령론적, 교회론적 의미를 강조하면서도, 구원서정적 측면 즉 개개의 신자에게 미치는 구원 순서의 측면을 무시하지 않고 있다. 개핀 교수에 따르면, 오순절 성령강림은 구원의 순서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구속 역사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오순절 사건에서 개인에게 적용되는 구원 순서의 측면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개개의 신자에게 적용되는 구원의 순서까지도 먼저 구속역사적 관점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적 영역과 현재의 체험적 영역이라는 두 측면 모두를 한편으로는 각각의 독특성 안에서, 또 한편으로는 상호 의존성 안에서 강조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체험적 측면은 단번에 드려진 역사적 측면이 그것의 의미와 효력이 신자의 실제 삶 속에서 구현되는 방식을 적절하게 강조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사고를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 대하여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에 적절한 강조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만이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영역 속에서 여타의 역사적 사건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단번에 수행하신 사건의 대속적 의미를 부인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다.

2. 성령은사의 영속성 문제 - 방언과 예언
오늘날 은사들 가운데서 가장 흔하게 언급되는 것은 신앙치유와 귀신들의 추방, 그리고 특별히 방언이나 외국어로 말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방언이 가장 현저하기 때문에 개핀 교수는 이 부분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방언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방언을 사용하는 것이 성경 어디에서도 금지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은사의 적절한 사용을 책망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의 남용을 책망했다고 하는 주장이다.  사실 그는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 18)라고 했다. 그리고 방언의 지지자들은 더욱 큰 은사와 신령한 은사들(고전 14: 1)을 방언과 동일시하면서, 방언을 말하는 은사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능하며 또한 바람직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방언과 유사한 현상들이 다른 종교들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은 오순절적 의미에서의 방언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실제로 부두교의 마녀 의사들에게서 방언이 나타나며 불교에서도 이런 것을 한다고 한다. 심리학도 역시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세뇌나 전기충격 요법에 의해 야기되는 강회된 암시 감응성의 어떤 사례들 가운데서 유사한 것을 발견해 낸다. 결국 방언을 지지하는 쪽의 주장에 어느 정도의 문제와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적 개혁교회 내에서는 "방언이 끝났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워필드와 서철원 교수, 그리고 개핀 교수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를 다루기 위해서는 성령의 세례문제에서부터 다루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중생과 성령의 세례는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개혁주의에서는 예수 믿어 성령을 받은 자들은 다 은사를 받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성령이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합당한 은사를 배분하였기 때문이다. 은사들은 몸의 지체들에게 주어졌다. 믿는 개별 그리스도인들에게 은사가 주어진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교회를 세우기 위한 목적에서 그렇게 작정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은사는 다 교회를 세우고 바로 자라가게 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은사들은 교회의 지체들에게 주어졌으므로 각각 상이한 은사를 받아 서로 보충하게 되어있다. 바울은 고전 12장에서 3차에 걸쳐, 그리고 롬12:6-8과 엡4:11에서 은사들의 목록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과 교회의 봉사, 위로와 구제, 교회의 치리는 항속적이지만, 나머지 은사들은 다 사라졌다. 오용하기 때문에 부패하고 중단하였다. 특히 계시 전달의 성격을 갖는 예언과 방언과 방언의 통역은 신약 성경의 완결로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므로 중단하였다. 기적들을 행함도 계시의 전달과 관계가 깊으므로 중지되었고, 병 고치는 은사들도 은사의 지속적 소유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방식의 신유도 중단하였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가 가르치는 대로 믿음과 기도로 병이 고쳐지는 것은 교회사에 계속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세기의 방언 현상은 성령으로부터 온 초자연적 은사라기 보다는 자연적 언어 기관의 특별한 반응이라고 해야 맞다. 자연적 능력이 환경과 분위기에 의해 방언이 형성되고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심리적인 열망에 의해 그와 같은 다른 방언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와 열망이 방언 현상을 일으켰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서철원교수의 성령신학은 오순절 신학을 염두에 두고 적은 글이다. 이 배경을 생각해야 된다. 방언이 끝났다고 말할 때, 이 때의 방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다. 워필드의 말에 의하면, 사도행전 2장의 방언과 고린도전서 12장의 방언을 다르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약학자들은 2장의 방언이 외국어이고 12장의 방언은 못 알아듣는 방언이라고 했다고 말하는데, 이 두 기록은 같은 시대에 같은 장소에 있었던 바울과 누가가 했다는 것을 유념한다면, 사실 모순이 있는 것이다.
예언은 끝났다. 계시가 끝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예언이라는 말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 오순절파는 예언을 영감된 발언으로서 지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선포라고 정의하며 이 예언 은사의 항속적 가치와 이 은사 사용의 보존의 교회의 책임이라고 한다. 오순절파의 이러한 주장은 성경이 최종 계시가 아니고 지금도 성령이 새 구원계시를 계속하므로, 성령의 교제 속에서 받은 계시는 성경 계시와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완전히 거짓 가르침이고 성경의 궁극적 계시를 허는 길이다. 계시는 끝났다. 그래서 방언도 끝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방언이 계시인가? 물론 그렇다. 방언이 통역되면 계시의 성격, 예언의 성격을 갖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계시는 끝났다. 그래서 방언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에도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방언은 마귀의 것인가? 아니면 언어의 장난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상황이 많은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그냥 인정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나의 판단에 의하면, 현대의 카리스마적인 현상이 실제적으로 성령의 은사들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확실히 결정짓기는 힘들다. 또한 롬12장, 고전12장, 엡4장의 은사 목록 중에서 어떤 은사가 중지되었고 어떤 은사는 계속되고 있는지 구분하는 것도 힘들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자체의 장점들에 근거하여 평가하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성령의 일하심에 대한 특별한 체험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이 실제로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성령은 그의 은사들을 교회에 대하여 현명하고도 주권적으로 나누어주신다. 그래서 자랑이나 유감의 근거는 없다. 성령의 은사는 나의 간청이나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한가지 은사도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어떤 한 사람도 모든 은사들을 다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것이 개인의 영적 성숙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교제는 개별적인 신자들의 완전한 영적인 발전을 위하여 필요하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힘과 재질,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바로 그것이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 9). 승귀하신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바울에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인데, 이 말씀이 영적 은사문제를 포함하여 모든 신자의 존재에 기본률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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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유래

성경 2007. 11. 20. 02:04

십자가의 유래
기독교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 된 십자가! 이 십자가는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죽임을 당하셨고, 그 방법은 바로 십자가 형이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십자가가 알려지기 훨씬 이전부터 십자가 형은 고대 근동의 국가에서 시행되던 사형방법이었다. 페르시아제국과 헬라제국에서는 강도와 산적들을 주로 이 형으로 다스렸다. 이들 제국이 로마 제국에 복속되면서 십자가 형은 로마제국 내에서 비 시민권자들을 위한 처형 수단이 되었다.




십자가는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가르쳐 준다. 동시에 십자가를 지라는 새 계명을 주고 있다.
예수님 시대에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을 보면 이는 바로 사형을 당하러 가는 사람을 보는 것이었다.
때문에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막8:34)”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죽으라!”는 명령이다.
나의 죄와 과거와 고집과 교만과 나 자체를 죽이고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라는 말씀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볼 때마다 인류를 위해 피 흘리신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동시에 그 속에서 우리 모두를 제자로 부르는 그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십자가의 영적 의미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롬6:6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53:5 )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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