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이라면

성경 2010. 3. 10. 18:30


오늘 본문은 평범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도 바울의 모습이 너무나 강하게 드러나 있는 감동적인 본문입니다.

| 주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원하라

여러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복된 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원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갈망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인도를 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떠나 외항 겐그레아에서 서원이 있어 머리를 깎고는 에베소로 갔습니다.
유대인들이 서원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던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어떤 서원을 했는지는 본문에 정확히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의 마음에 무언가 간절한 갈망이 있었던 것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제1차 전도여행 초기에는 사울에서 바울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사람이 왜 이름을 바꿉니까? 큰 결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랬을까요?
전도 여행을 가보면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저는 분명히 그렇게 믿어집니다.

“하나님, 제 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한 순간이라도 내 길을 인도해 주시지 않으면 저는 절망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이 저를 인도하신다면 저는 편안합니다.
하나님, 저를 떠나지 않으시고 언제나 제 길을 지켜주시고 주님이 인도해 주세요.”
이런 간절한 갈망이 사도 바울로 하여금 이름도 바꾸고 머리도 깎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도 매사에 선교사라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얻게 됩니다.


|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가아사랴로 가려할 때,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이 더 머물기를 요청해 왔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바울이 전해주는 복음을 듣고 너무너무 좋아 그 말씀을 더 듣고 싶어서 “가지 마시고 여기 더 계시면서 우리에게 말씀을 계속 전해 주십시오.”

그 때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의 요청을 거절하면서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하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한결같은 태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생각, 자신이 좋고 싫은 것, 자신의 감정, 자신의 계획을 이미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뜻 그것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그처럼 간절히 붙잡으면 “그래 있어주자.” 할만도 한데 그는 떠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더 있고 싶다고 있어 본 적이 없고, 자신이 가고 싶다고 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도대체 사도 바울이 어떻게 그런 선교 여행을 할 수 있었을까? 오직 하나입니다.
주님의 뜻이면 있고 주님의 뜻이면 갔던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사도 바울에게 다른 원칙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사도 바울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가 주님을 믿고 영접했다면 이제 우리의 삶에도 똑같은 원칙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마음 중심에 계시지만, 뭔가 내놓을 것이 없다면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말씀은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하는 근본적인 마음 자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평생 씨름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정말 뭔가 거둘 것이 있으려면 사도 바울이 가지고 살았던 유일한 원칙인 “주님의 뜻이라면”으로 여러분도 살아보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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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왜 성경이 필요한가?

Ⅰ. 인류에게 왜 성경이 필요한가?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실존이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종교심을 주셨고 지으신 만물을 통해서 당신을 충분히 이해하고 섬길 수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롬 1:19, 20에,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범죄함으로 마음이 둔해져서 지으신 만물을 보고도 하나님을 몰라보며 죄 아래 사는 비참한 인간이 되고 만 것이었다. 롬 3:10~18에 보니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이태리의 어느 변호사는 목사가 봉독한 여기의 성구를 들어 인권 모독죄로 법정에 고발했지만 담임 목사는 저자가 아니며 저자인 바울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고소사건은 기각판결이 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도리어 조물주 하나님이 배은망덕한 인간을 고발하고 있다. 사 1:2~4에 보니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라고 탄식하셨다.

이렇게 인간의 타락한 종교심 또는 도덕적인 양심으로는 천지만물이 보아도 하나님을 알 수 없는 미련한 인간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러므로 고전 1:21에,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자연계시만으로는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 섬길 수 없게 되었다. 이 말은 자연계시가 불충분하다는 말이 아니고 자연계시 자체는 완전하지만 인간의 죄 때문에 영안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못 보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고 당신을 바로 섬기게 하시려고 예로부터 당신을 나타내 보이신 것을 영감으로 수록한 완전무결한 성경을 주신 것이었다. 히 1:1, 2에,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말은 하나님의 발전적인 게시방법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곧 옛날엔 사람에게 직접 음성을 들려주시기도 하시고 또는 꿈으로, 환상으로 투시하는 방법으로, 상징적인 것으로, 특히 예언 등등으로 당신을 계시해 오시다가 마지막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씀 하셨기 때문에 기록한 성경은 하나님의 최종계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엡 3:5에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다”고 했다. 임 라은 선지 사도들의 이적 특히 성경기록은 단회적이며 또 그들의 기록인 신구약 66권은 절대 가감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란 뜻이다(계 22:18, 9).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들은 옛날과 같이 직접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성경 없이는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과 그 뜻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계시의 기록만이 아니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성경을 볼 때에 구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지금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고 계신다고 믿어야겠다”(김준삼 著 신앙고백서 강해 성경의 필요성에서).

그러므로 이 성경은 확실한 것이며(눅 1:3, 4)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시는 것이고(딤후 3:15) 후대의 신자들을 교훈하기 위함이고(롬 15:4) 특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기 위해 절대 필요한 말씀인 것이다.(딤후 3:16, 7).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 당신이 필요하셔서 영감으로 쓰게 하고 편집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었다.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귀하고 중하신 말씀일세 반갑고 기쁘신 말 많은 중 날 사랑하신 단 말 좋도다 주 예수 날 사랑하시니 즐겁고도 즐겁도다 주 예수 날 사랑하시니 나는 참 기쁘다.


Ⅱ. 왜 인류에게 성경을 주셨는가?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에게는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이것이 짐승과 구별되는 특이중의 하나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독 인간대표인 아담과 행위계약을 맺었다. 이것은 소극적으로는 에덴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것과 적극적으로 생명나무 실과를 먹음으로 영생하는 약속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만이 이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해야할 사람이 사탄의 말을 들으므로 이 행복을 스스로 포기하고 만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해야할 사람이 사탄의 말을 들으므로 이 행복을 스스로 포기하고 만 것이었다.

이 시험의 과정은 사탄의 거짓말을 통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사상을 빼어 버리고 악한 사상을 부식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탄과 인간의 첫 대화에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충동을 일으킨대 대해 하와의 대답은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셨느니라”고 했다. 사탄이 또 여자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했다. 이것이 사탄과 하와의 대화였고 그 후 그들은 타락의 길을 택하고 만 것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타락은 언어를 통한사상의 타락이었다. 이 범죄로 말미암아 행위계약은 파기되고 말았지만 하나님의 본래의 목적은 대표자 아담을 세워 그와 후손들에게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은 실패해도 당신은 그럴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과의 계약을 경신하기를 여인의 후손 중에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허락하시고 그에게 인간이 파기한 행위계약을 준행케 할 뿐 아니라 아담이 어긴 죗값으로 죽는 전 인류의 영원한 형벌을 대신하여 죽으며 살아난 그분을 누구든지 마음에 믿기만 하면 영생을 회복한다는 약속을 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은혜계약인 것이었다. 이 은혜계약 곧 하나님의 구원사상을 인류에게 전달하기 위해 하나님이 말과 글을 사용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성경이란 것이다.


Ⅲ. 왜 특정한 사람들을 통해 성경이 쓰여졌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 곧 인류구원의 사상을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책 중의 책이다. 사상의 전달은 반드시 말과 글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것을 사용하지 않고는 온전한 사상의 표현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주신 말씀을 받아 수록하여 후대에 전할 사람들을 택하셨으니 그들이 바로 선지자와 사도들이었다. 성경의 기자는 약 40명이나 되는데 그들은 왕, 제사장, 학자, 농부, 어부, 세리 등의 직업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실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말씀의 바른 전달을 위해 성령님께서 특별간섭을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성경의 기록은 성령님의 감동 간섭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한마디의 실수도 없는 것이었다.
벧후 1:21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대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고 사 34:16은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고 했고 마 5:18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고, 특히 계22:18,9에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사상을 전담함에 있어서 개인 개인에게 매번 하늘로부터 음성을 들려주시지 않고 왜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시고 기록하게 했는가? 이는 불공평한 일이 아닌가?”라고 하기 쉽다.

우리 이 대목을 바로 깨달아야 하겠다. 그것은 하나님은 실수함이 없이 만민에게 꼭 같이 말씀할 수 있지만 말씀을 받은 인간은 어둡고 둔하고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각양 각색으로 가감하는 과오를 범한다는 것이다.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택하사 영감으로 실수함이 없이 기록하게 하여 후대에 전달케 한 것이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Ⅳ. 왜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할 필요가 있었는가?


왜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할 필요가 있었는가? 성경의 많은 기자 중 베드로 사도를 들어 살펴보자.
그는 행 4:13을 보면, “본래 학문 없는 범인”이었다. 아마 배우고 싶었으나 가난한 환경 때문에 배우지 못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어부노릇을 하는데 학문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고 포기했을 것이다. 아무튼 학문이 없는 사람임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동생 안드레의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믿은 뒤부터는 그의 탁월한 감화력이 있는 말씀으로 참 지식을 배울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늦게나마 그는 선생을 잘 만난 행운아였다. 무엇보다 주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시고 승천하신 뒤부터는 이 모든 것이 구약성경대로 된 줄 믿고 성경연구에 열중했으며 나중엔 글을 통해 복음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나이가 들었지만 말하는 것과 글 쓰는 은사를 받은 것을 깨닫고 복음을 글로 표현했는데 그것이 베드로 전후서였다. 역사가들은 본서의 저작 년대를 64년~68년이요 순교한 해를 68년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 시대는 로마황제 네로의 대 박해 때였다. 그러니 그의 저서활동은 환경이 좋은 때가 아니요 더욱이 연로한 때요 죽음이 임박한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이 정리되면 주의 일을 힘쓰겠다!” “글을 쓰겠다!" 등등으로 말하기만 그 때 가면 ”이젠 늙었어!“하고 체념하고 만다.

주의 종 베드로는 그리스도께 받은 복음의 말씀이 후대에 바로 전달되는 것이 일편단심 소원이었다. 그래서 복음을 말로 전하고 듣는 것이 은혜로운 일이긴 하지만 청중은 제한되어 있고 또 세월이 지니면 잊어버리기 쉬우므로 복음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빼기도 하고 더하기도 하는 염려를 없애기 위해 변하지 않는 글로 전할 필요성을 깨달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작업에 열중한 것이었다. 그것이 벧후 1:15의 말씀이었다. 곧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고 했다.

우리는 다시 한번 기독교 복음이 말로만 전달된 것이 아니라 완전한 기록계시로 전달되었음을 깨달아야 하겠다. 만일 기독교 복음이 말로만 전달이 되었다면 지금쯤은 해괴망측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성경기록은 당대의 신자를 위함이 아니요 후대에 믿는 자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롬 15:4에,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또 후대에 바로 전하기 위해 문서전도에 적극 협조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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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마11:12)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

마11:12는 난해한 성경구절로 유명하다.
개역성경은 "침노"라고 하였고, 공동번역은 "폭행"이라는 단어로 번역하였다.
킹제임스 영어성경은 "Violence"(폭력)으로 번역하였고, NIV 영어성경은 advancing(진입, 전진)으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비슷한 성경구절이 누가복음16:16에 나오므로 우리는 그 구절의 의미를 비교하고 짐작할 수 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16:16)

어떤 학자들은 마11:12의  본문을 천국의 진입이 폭력적인 방편에 의함을 가르킨다고 해석하기도 하였으며, 어떤 학자들은 천국은 열렬한 노력으로 취한다고 하기도 하였다.
이 본문을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면, 예수와 세례요한은 힘으로 천국을 얻은 분들이다.
세례요한은 공격을 시작하였고,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세우셨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실제적인 폭력으로 하나님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자들은 열성당원(Zealots)이라고 불려졌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나라는 인간의 폭력으로 실천되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 또한 실제적인 폭력을 의미하지는 않았으므로, 우리는 그 폭력을 “적극적이며 역동적인 열심”으로 번역하여야 한다.

마태복음이 사용했던 헬라어원문을 보면, “침노하는 자”라는 단어는  “비아스테스”(난폭한 사람, 원기왕성한 사람)이 사용되었고, “빼앗느니라”라는 단어는 “할파조”(잡다. 취하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그러한 단어는 사용되지 않는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는 “비아조”인데, 마태복음은 “침노를 당하나니”(수동태)로 번역되었고, 누가복음에서는 “침입을 한다”(중간태)고 번역되었다.
어느 학자들은 누가복음의 평행구절과 비교하여, 마태복음의 비아조를  수동태가 아닌 중간태로 해석하여, “침입을 당하다”가 아니라, “전진하다, 나아가다”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힘있게 나아가고 있다. 힘을 쓰는 사람들이 천국을 차지한다”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Lenski, Riderbos, Hendricksen)
실제로 NIV 영어성경은 그와 같이 번역되었다.

사실 마태복음에서도 “빼앗느니라”라는 단어 “할파조”도 물론 “잡다, 취하다”는 뜻이 있지만, 성경에서는 영적인 의미로서 “이끌려가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바울이 고린도후서12:12, 14에서 천국으로 이끌려 갔다고 말하였을 때에 그 단어가 “할파조”인 것이다.
또한 살전4:17의 휴거를 의미하는 “구름으로 끌려가다”는 단어도 “할파조”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일하게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선민이었다.
그러나 세례요한 이후 천국은 침노하는 자, 적극적인 자, 유대인들의 유전과 전통과 같은 인간적 전통을 깨트리는 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자, 열렬한 믿음을 소유하는 자만이 취할 수 있으며, 그들만이 천국으로 이끌려 들어 간다.
천국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유가 아니다.
천국은 죄와 속세와 유전과 마귀와 싸워서 이기는 자들의 소유가 되며, 역동적인(dynamic) 믿음으로 고난과 핍박을 이겨가는 자들의 것이다.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던 천국은 이제 세례요한으로부터 시작되어, 예수님으로 인하여 이 땅위에 세워졌고, 앞으로 전진하고 있으며, 종말적이며 궁극적으로 완성되어질 것이다.

[공동번역]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해 왔다. 그리고 폭행을 쓰는 사람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표준새번역] 세례(침례)자 요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힘을  떨치고 있다. 그리고 힘을 쓰는 사람들이 그것을 차지한다.
[현대인의성경]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침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침략하는 사람이 그 나라를 빼앗는다.
[KJV] And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suffereth violence, and the violent take it by force.
[NIV]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has been forcefully advancing, and forceful men lay hold of it.
[RSV]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has suffered violence, and men of violence take it by force.

마시지 아니하리라(마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26:29)

(1) 위 구절은 이미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예견하고 있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는 유월절 식사가 지상에서 마지막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2) 마26:29은 구약성경의 성취를 뜻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사26:6)

즉 아버지의 나라, 즉 천국에서 포도주를 마실 것이며, 그것은 곧 메시야적인 성취를 뜻합니다.

(3) 본문에서 “새 것”은 헬라어로 “카이논”이며 질적으로 “새 것”을 의미합니다.
“새 것”이라는 단어는 네오스와 카이노스의 두가지가 있는데, 네오스는 “시간적으로 새 것”을 의미하며, 카이노스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즉 지상에서 마시던 유월절의 포도주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포도주를 뜻하고 있습니다.

(4) Hendriksen이라는 신학자는 “성찬식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을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예정해 놓은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즉 성찬식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고 상징하는 것외에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마시는 포도주, 즉 종말적인 구원의 성취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눅22:30에서는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마스리게 하려 하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많은 곳에서 종말적인 구원의 성취를 혼인잔치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포도나무는 메시야로 비유되었으며, 특히 포도나무의 열매는 종말론적으로 비유되어 왔습니다. 특히 요15:1-11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였으며, 막12:1-11에서는 유대인들을 포도밭의 불의한 소작인으로 비난하신 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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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사렛 예수가 보여준 기도의 삶

[김영한 교수] 예수의 역사성과 진실 (17)

나사렛 예수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가장 확실한 자료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4복음서에 나타난 복음서 기자들의 증언이다. 이 복음서에 기록된 증언들을 믿는 자가 곧 기독교 신자이다. 믿는 자는 주님의 제자가 된다. 역사적 예수의 사실을 밝힌다는 것은 어떤 새로운 문서를 다시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미발견된 문서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이미 역사적 기독교가 전해받은 복음서의 기록을 넘어설 수 없다. 넘어설 때 그것은 영지주의 이단처럼 다른 예수상이 된다. 다른 예수상은 더 이상 역사적 교회의 예수상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나사렛 예수의 역사성을 밝히기 위하여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삶과 행적을 추적하는 것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역사적 예수가 성육신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역사적 예수는 기도를 통해서 성부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통 속에서 사셨다. 예수도 완전한 인간이었기에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통 속에서 영적으로 새로워져야 했다. 예수는 새벽 미명에 기도했으며, 한적한 곳에서 기도했으며, 구하면 주신다는 믿음으로 기도했으며, 중대한 일을 앞두고 기도했다. 예수가 드린 기도 내용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 진정한 기도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영적 안식과 평강을 누렸다. 역사적 예수가 행하신 기도는 오늘날 우리가 행해야 할 기도의 본이다.

새벽 미명, 그리고 일과가 끝난 후 기도

복음서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 기도하셨다. 마가는 기록한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예수는 “이른 새벽 아직 어두울 때에”(막 1:35)에 일어나 기도하셨다. 그리고 하루 일과가 끝난 후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막 6:46). 예수는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마치셨다. 예수는 기도 속에서 성부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통 속에서 사셨다. 예수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기도의 전형을 보여주셨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

예수는 아주 바쁘셨다. 마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막 1:36-37). 그리고 저녁시간에도 각색 병든 자들이 치유기도를 받으려 물려 들었다. 예수는 쉴 틈 없이 바쁘셨다: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막 1:32-33). 그러나 예수는 일에 파묻히시지 않고 안정과 휴식을 취하시고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를 위하여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서 기도하셨다.

예수가 이방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 데가볼리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를 때 사람들이 소경과 더듬는 자와 눈 먼자를 데리고 와서 고쳐주기를 간구했다. 예수는 그 사람들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위탁하셨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형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막 7:34-5). 예수는 사람들 보는 앞에서 보다는 은밀히 치유하셨다.

예수는 그의 수제자 베드로, 요한, 야고보들조차도 모르는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셨다(눅 9:28). 이 산에서 예수는 그 형체가 변형되는 놀라운 영광스러운 신비를 드러내신다. 이 산에서 베드로와 제자들은 변화된 예수께서 구약의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신비스러운 광경을 체험하게 된다. 이때 제자들은 구름 가운데 말씀하시는 성부의 음성을 듣게 된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눅 9:35). 이 음성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 위로 올라 오실 때의 음성과 같다.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다. 이러한 영적 체험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나사렛 예수의 신비로운 근원을 점차 알기에 이른다.

“구하라 주실 것이다”: 어떠한 일에도 간절히 기도

열두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 예수는 산에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다. 누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 6:12-13).

예수는 간절히 그에게 구하는 자들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딸이 더러운 귀신들린 수로보니게 여인이 다가와 자기 딸을 고쳐달라는 간청을 예수는 처음에는 거절하신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 7:24). 이에 대하여 이 여인은 슬기롭게 간청한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 7:25). 이에 예수는 이 이방여인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시며 말씀하신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막 7:29-30).

여리고로 나가실 때 거지 소경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갈 때 소리를 질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리를 지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한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더욱 소리를 지른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며 그의 소원을 들어주시며 말씀하신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막 10:52).

예수는 하나님에게 구해야 할 것을 가르치신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눅 11:9-10).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는 간절히 구하는 자의 소원을 물리치지 않으신다고 가르치신다.

예수는 어떤 일에 있어서든지 마음과 힘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열심히 꾸준히 기도하였다. 예수는 하나님께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을 비유로써 말씀하신다: 밤중에 친구가 와서 떡을 빌려 달라 할 때 이미 밤이 깊고 침상에 누웠으니 일어나 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친구가 간절히 청하기 때문에 들어 준다: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눅 11:8).

그리고 예수는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치면서 간청하는 과부의 비유를 드신다: 어느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판관이 있었는데 한 과부가 원한을 풀어 달라고 번거롭게 하니 이 재판관은 그 과부의 원한을 풀어준다. 예수는 그처럼 하나님은 간절히 간구하는 성도들의 간구를 들어주신다고 가르치신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 18:6-7).

기도의 내용: 감사, 기원, 중보기도, 교제

예수의 기도는 감사, 기원, 중보기도, 교제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예수는 기도를 통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는 다락방에서 떡을 떼면서 감사하였고, 잔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눅 22:17-26). 그리고 구할 것을 기원하고 제자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셨다. 예수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였다.

변화산에서 예수의 기도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의 얼굴에 영광의 광채가 나타났고 그의 모습이 영광스럽게 변화하게 되었다. 누가는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눅 9:29)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나타나서 예수가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할 것을 말씀한다(눅 9:31). 이에 베드로와 함께 간 제자들이 이 영광스러운 사건을 체험하고 무서워한다. 그리고 이들은 구름 사이에서 들려오는 성부의 음성을 듣는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눅 9:35). 변화산의 사건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본체라는 것을 드러내는 지상에서의 유일의 사건이었다.

진정한 기도: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는 십자가의 대속(代贖)을 준비하기 위하여 제자들과 같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셨다(눅 22:41). 예수는 제자들과 떨어져 홀로 기도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는 땀이 변하여 핏방울이 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신다. 누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의 기도가 간절한 기도였음을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께 간절한 기원을 올렸다. 그러나 그의 기원은 자기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예수는 시몬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셨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32). 예수는 중보기도를 드리신다. 예수는 십자가 상에서도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영적 안식과 평안을 주는 기도

나사렛 예수는 자기에게 몰려오는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며, 마음에 상처받은 사마리아 여인, 니고데모와 같은 종교인들, 아리마대 요셉(마27:57) 같은 부자와 대화하면서 저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그런 바쁜 가운데서도 예수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 속에서 안식과 평안을 찾았다. 그래서는 예수는 탈진(脫盡)하지 않았다. 예수는 아버지 안에서 항상 안식하셨고, 평안을 누렸다. 하나님의 성령이 항상 그의 마음에 충만히 거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수의 삶은 기도가 우리 인간들이 영적 안식과 평안을 얻는 유일한 통로임을 보여주신다.

히브리서 기자는 역사적 예수의 기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히브리서 기자는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오늘도 살아서 이 불신 세상과 택하신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신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 오늘도 나사렛 예수는 기도하는 자의 마음 속에 성령으로 찾아오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안식을 주신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심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와 하나님에 대한 아버지 호칭
[김영한 교수] 예수의 역사성과 진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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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유래

성경 2009. 3. 29. 09:42

1. 성경의 유래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신비스러운 책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것은 흔히 "책"(the Book)이라고도 불립니다. 이같이 칭하는 이유는 그 책 자체가 벌써 하나의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영어로 "바이블"(Bible)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원래 "책"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 성경은 여러 곳에 산재해 있던 40여명의 저자들이 1600여 년 동안에 걸쳐 저술한 것으로서 66권의 책을 편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각 부분의 내용이 서로 모순됨이 없이 오히려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오늘 우리가 이 책을 갖게 된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실지로 우리가 이것을 더욱 깊이 연구해 가면 그것이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올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성경이 기록된 방법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알려진 두개의 큰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구약은 신약에 비해 3배나 분량이 많으며 기록도 그리스도의 탄생 400여 년 전에 완성된 것입니다. 성경의 원본은 동물의 가죽(양피지)이나 파피루스 초목으로 만들어진 종이 위에 손으로 써 놓았다 합니다. 그 당시에는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매 장마다 손으로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되었습 니다. 그러므로 사본들이 드물었고 매우 귀중했습니다.


구약의 39권은 아람어로 된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39 권 중 처음 5권은 주전 1500 년경에 모세가 쓴 것이고, 나머지 책들은 그 후 약 천년동안에 저술된 것인데 주전 400년경 서기관 에스라가 그 책들을 편집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습니다(느헤미야 8:5). 최초의 훌륭한 구약의 번역서는 기원전 3세기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한 것으로 셉투아진트(70이 라는 뜻)라고 불립니다. 그 까닭은 아마 70명의 학자들에 의해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을 희랍어로 번역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가르치실 때 이 번역서를 자주 인용하셨습니다.


신약 27권은 여덟 사람이 희랍어로 원본을 쓴 것인데 그 대부분의 저자가 그리스도의 사도들이었으며, 주후 1세기에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 당시에 일어났던 획기적인 일들과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진 일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 다. 성경 각 권의 원본은 모두 분실되었거나 파손되어 버렸지만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원본의 내용과 동일합니다. 이 원본들의 사본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3개의 사본은 로마의 바티칸에 보존되어 있는 주후 4세기에 기록한 바티칸 사본과, 런던 대영 제국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주후 5세기에 기록된 알렉산드리아 사본, 그리고 역시 대영 제국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주후 4세기에 기록한 시내 사본 등입니다. 이외에도 이만큼 중요하지는 않아도 수많은 사본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사해사본은 1947년에 사해근처의 동굴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주전 1세기나 2세기경에 기 록된 것으로 최근의 구약의 번역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사해사본 보다 먼저 기록 된 사본들과의 원문 대조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구약성경의 저자들의 본래의 메시지를 갖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신약 원본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신약이 저술된 직후에 만들어진 번역서 들인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라틴어로 기록한 불가타(Vulgate)라고 부르는 것으로 주후 405년에 제롬에 의해 완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초대교회 교부들이 만든 수많은 성경 인용문들이 있습니다. 희랍어 원본과 초기 번역서들 그리고 교부들의 인용문들을 학자들은 서로 비교해 가며 신약저자들이 쓴 내용을 거의 정확하게 단정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최 초에 준 그것과 동일한 것으로 필사할 때 다소 애로가 있었 더라도 성경의 뜻과 내용에는 변화가 가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 번역본

처음으로 성경이 영어로 번역된 것은 죤 위클리프가 22년 동 안의 힘든 노력으로 1382년에 완성한 것입니다. 1456년에는 요한 구텐베르그에 의해 인쇄술이 발명됨으로써 성경의 출판 을 훨씬 빠르게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인쇄상의 애로도 거의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구텐베르그가 처음으로 인쇄한 책은 라틴어 성경이었습니다. 윌리암 틴데일이라는 사람은 천주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약을 번역하여 1525년에 인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인쇄한 사본이 대부분 런던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 불태워져 버렸고, 그 자신도 백성에게 성경을 나누어주었다는 이유로 사형대에 올라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는 최후에 "주님 이시여, 영국 왕의 눈을 뜨게 하옵소서"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처음으로 성경전서를 영어로 인쇄하는 일은 역시 영국의 마일스 커버데일이라는 사람이 수행 했습니다. 다른 번역서도 뒤따라 나오게 되었고, 1604년에는 영국 왕의 눈도 띄어져 드디어 당시의 저명한 학자들에게 킹 제임스판(King James Version) 성경전서의 번역을 하게 하였습니 다. 그리하여 54명의 학자들이 이 일을 1611년에 완성시켰습니다. 그것이 수 백년 전에 번역되 었지만 아직도 가장 많이 애독되는 영어 번역본 중의 하나입니다. 1982년에는 뉴 킹제임스판 (New King James Version)이 출판되었습니다.


킹 제임스판(KJV)이 나온 후에 다른 몇 가지 역본들이 나왔습니다. 1885년에는 84명의 영국 과 미국의 학자들이 킹 제임스판을 발간할 당시 발견되지 않았던 사본들을 참조하여 영어개정 판(English Revised Version)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번역판은 1901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이를 미국 표준판(American Standard Version)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개정한 개정 표준판(Revised Standard Version)이 1952년에, 그리고 New American Standard는 1970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번역본들은 고어체를 이해하기 쉬운 현대어로 고치고 최근에 발견된 사본들을 통해 원문의 정확성을 높이려는 의도를 갖고 번역된 것들입니다. 또, 1978년에는 NIV(New International Version) 등 그 후에도 여러 번역본들이 출판되었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도 독 자적인 번역본들을 갖고 있습니다. 라임즈 듀아이 카톨릭판(Rheims Douai Catholic Version)의 역본은 1582년에 출판되었는데 그것은 1970년에 New American Bible로 대체되었습니다. 카톨릭에서 사용하는 성경은 다른 번역판 신약의 책과 똑같고 구약도 같으나 구약에 14권의 책들이 더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여분의 책을 가리켜 외경(Apocrypha)이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근원이 의심스럽다"는 뜻입니다. 이 의심스러운 책들은 희랍어로 쓰여졌는데 구약 히브리어 정경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카톨릭판 이외의 성경에서는 제외 되고 있습니다.


성경의 한글 번역은 스코틀랜드부터 만주에 와서 선교하던 J. 로스가당시 만주에서 몇 명의 한국인과 협력하여 1882년 누가복음을 시작으로 일부분씩 번역하다가 1887년에 이르러 "예수셩교전셔"라는 이름으로 신약이 완역되어 간행했는데 이것을 "로스 번역(Ross Version)"이라고도 합니다. 국내에서의 성경 번역은 1893년 에 공선 성서번역위원회가 조직되어 1900년에 신약이 완역되었으나, 미흡한 점이 많아 1904년에 개역이 완료되었고, 1906년에 재수정하여 공인역으로 출판하였습니다. 그 후 1910년에 구약까지 완역되었고, 1911년에 신약을 포함하여 "셩경젼셔"로 합본, 간행되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애독되는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은 공선 성서번역위원회가 펴낸 위의 번역본을 대한성서공회가 여러번 편집 및 번역을 고쳐 1956년에 펴낸 것입 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성령의 감화로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하였습니다. 성령이 성경을 쓴 사람들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이 가르친 것으로 하니...(고전 2:13)" 이 때문에 성경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 이는 구절도 자세히 살피고 연구해 보면 곧 사라져 버립니다. 성경이 진리라는 것은 그것이 갖고 있는 몇 가지의 특색으로 밝힐 수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과학서적은 아니지만 과학적으로 정확한 책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정확하며 역사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모든 시도가 실패했습니다. 성경이 예언적으로도 정확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성취된 그 많은 예언들에 의하여 증명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공평하며, 모든 사람의 선과 악을 가려주며, 하나님 자신 의 "마음에 합한 자"라도 그의 죄를 묵과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높은 도덕의 표준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의 적들은 이것을 없애 버리려고 수없이 많은 시도를 했지만 결국 불멸의 책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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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성경 2008. 12. 28. 14:38

○, ×문제.

1. 사도행전은 신약의 역사서다(○)

2.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믿는자들의 핍박자에서 어떻게 전도자로 바뀌게 된 배경인 다메섹 도상의 체험 설명이 3번 나와있다.(9,22,26) (○)

3.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까지 40일을 이 땅 가운데 계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4. 가룟유다 대신 사도의 후보로 오른 자는 요셉과 맛디아인데 기도 후 요셉이 제비뽑아 선출되었다.(×)

5. 말세에 모든 육체에 구분없이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을 예언한 선지자는 아모스이다.(×) 요엘!

6. 오순절 성령강림 시 베드로의 설교의 주제는 예수의 죽으심과 재림이다.(×) 부활!

7. 사도행전 4장엔 베드로의 정기적인 기도가 언급되어 있다.(×) 3장

8. 헌금을 잘못해서 죽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남매지간이다.(×) 5장

9. 예루살렘 교회가 일곱 집사를 뽑은 이유는 전도를 잘 시키기 위해서였다.(×) 구제

10. 복음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사람은 스데반이었다.(○)

11.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헤롯왕에 의하여 순교당했다.(행12:1-2) (○)  

12. 바울은 로마에 와서 한 셋집에 유하며 2년동안 복음을 전했으나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0)



1. 예수님의 승천 후 제자들을 중심으로 120명의 문도가 전혀 힘쓴 일은 무엇인가? 3

1) 말씀,  2) 전도,  3) 기도,  4) 찬양,  


2. 사도행전은 누구에게 보내진 글인가? 4

1) 누가,  2) 사도바울,  3) 베드로,  4) 데오빌로


3. 사도행전 1장에 나온,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     )으로 세례를 받으리라’에서 (    )에 들어갈 말은? 2

1) 하나님,  2) 성령,   3) 예수님,   4) 요한


4.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저으로 올라가다가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을 고친 사건은 성전의 어떤 문에서 일어났는가? 1

1) 미문,  2) 뒷문,  3) 옆문,  4) 중앙문


5. 바나바를 설명하는 말이 아닌 것은?(행4:36,37) 3

1)요셉,  2) 구브로,  3) 유다족,   4) 권위자


6. 사마리아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전도자의 이름은?(행8:4) 3

1) 스데반,   2) 바울,   3) 빌립,   4) 니고데모



7. 사마리아 성의 마술사인 시몬이 빌립에게 세례를 받고 후에 돈으로 사려고 했던 것은? 1

1) 성령,   2) 성경,   3) 마술책,   4) 지도


8. 당시 초대교인들이 어디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불리우게 되었는가?(행11:26)  1

1) 안디옥,   2) 예루살렘,   3) 다메섹    4) 욥바


9. 바울과 바나바는 어느 교회에 의해 이방선교사의 안수를 받았는가?(행13:3) 1

1) 안디옥,   2) 예루살렘,  3) 다메섹,    4) 욥바


10.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출발시 동행인은?(행15:40) 2

1) 바나바   2) 실라  3) 마가   4) 백제


11. 어디교회 성도들인가? 우리들은 매우 신사적이란 말을 들었다. 우리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맔흠을 받고 이 말씀을 날마다 상고하였다. 3

1) 빌립보교회   2) 안디옥교회  3) 베뢰아  4) 고린도교회


12.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며 사역한 기간은? 2

1) 1년,   2) 1년 6개월,   3) 2년    4) 2년 6개월


13. 바울의 직업은? 1

1) 장막 짓는 일,   2) 소설가    3) 과학자    4) 법관


14.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성경을 많이 보았으며, 예수에 관한 것도 잘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잊자, 이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자세히 가르쳐준 사람은 누구인가?

(행18:24-28) 2

1) 루디아   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3) 유두고  4) 아가보


15. 바울이 3년간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곳은? 1

1) 에베소  2) 고린도  3) 루스드라  4) 로마


16. 바울이 로마의 시민권을 얻은 방법은? 1

1) 출생시   2) 학생시절   3) 로마여행 중   4) 선교여행 중

17.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할 때에 그 입을 치라고 명한 사람은? 3

1) 총독 벨릭스   2)  변호사 더둘로   3) 대제사장 아나니아   4) 왕 헤롯

18. 사도행전 27장에 나오는 유라굴로는 무슨 이름인가? 3

1) 배이름,  2) 폭설   3) 광풍   4) 기근


19. 바울의 로마 호송을 맡은 백부장은? 2

1) 고넬료  2) 율리오  3) 벨릭스   4) 베스도


20. 로마로 바울을 호송할 때 배에 탔던 사람의 수는? 1

1) 276명   2) 286명   3) 296명 4) 306명


21. 바울이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된 것을 제외하면 바울은 몇 번의 선교여행을 하였는가? 2

1) 2번,   2) 3번,   3) 4번  4) 5번


-중급-

1.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어디에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그 순서를 기록하라.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


2. 행4:12을 쓰시오!(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3. 초대교회의 일곱집사 중 3사람을 써라!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


4. 스데반이 순교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기도는?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5. 에디오피아 내시가 병거를 타고 가며 성경을 읽었으나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구약성경의 어디 부분을 읽고 있었는가?(행8:26-40) 이사야


6. 예루살렘의 제자들이 사도바울을 의심하고 믿지 않자 누가 바울을 소개하며 중재하였는가? 바나바 


7. 다메섹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울은 사흘동안 보지 못했으나 누구에게 찾아가 안수를 받았는가?(행9:17-19) 아나니아


8. 나는 누구인가? 나는 가이사랴의 이달리아대 군대의 백부장이다. 난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들었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와 구제를 귀하게 보셔서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 나는 베드로에게 세레를 받았다.(고넬료)


9.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내려온 예언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중 누가 온 세계에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는가?(행11:27-28) 아가보


10.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잡힌 베드로를 위해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 집에서 성도들이 기도 중에 있을 때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베드로임을 처음 알게된 사람은?(행12:6-)로데


11. 바울이 1차 선교여행 중 돌에 맞아 죽었던 것처럼 되었던 일은 어디에서 일어났는가?(행14:19)

루스드라


12. 나는 누구인가? 나는 루스드라 출신이다. 나는 바울의 동역자이다. 나의 외할머니는 로이스며, 어머니는 유니게이다. (디모데)


13. 두아디라의 자주장사로 빌립보교회의 초창기 신자는?(행16) 루디아


14.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강론할 때 이적들이 나타났는데 바울의 소지품 중 어떤 것을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며 그 병을 낫게 되었는가?(행19:11-12) 손수건과 앞치마


15.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체포되었을 때 그는 1차 빌라도 총독에게, 2차 벨릭스 총독에게, 3차 베스도 에게 심문을 받았다.(×) 벨릭스, 베스도


16. 로마로 압송되던 바울이 탄 배가 파선하여 한 섬에 도착했다. 그 섬의 이름은? 멜리데

17. 로마로 압송되던 바울일행이 도착한 섬의 추장은? 보블리오

18. 사도행전은 총 몇장인가? 28장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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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입었으나 추방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 3:21-24).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금단의 열매를 먹음으로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에 의해 저주를 선고 받았고,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그들은 오직 “작은” 죄로 여기는 현대인들의 마음에 가혹한 처벌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눅 12:48).

아담에게는 많이 주어졌습니다. 그는 집으로 완벽한 낙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에덴동산의 나무들로부터 그가 필요한 모든 음식들이 주어졌습니다. 그에게 생명 나무도 주어졌습니다 ? 그것은 그가 먹었던 것이며 땅에서 그에게 끝없는 생명을 줄 것입니다. 그가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그리고 금단의 열매의 나무 열매를 먹었을 때에 이 위대한 유익들은 그에 의하여 옆으로 던저졌습니다.

아담의 경우는 어린이가 크리스천의 가정에 태어난 것과 같으며 그리고 교회의 보호 속에서 유년기부터 성장하였으며 ? 그는 그 모든 것을 내어 던졌으며 ? 그리고 그의 크리스천 가족과, 그의 교회, 그리고 은혜의 의미들을 떠났으며, 은혜의 설교로부터 떠났고 그의 부모들의 기도로부터 그리고 교회 가족들안에서 좋은 성도들에게서 떠나갔습니다.

우리들은 여론 조사자인 죠지 바나에 의해 말하여 주는데, 그 88%의 복음주의적인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자라난 그들이 동일하게 하는데 ? 그들 중 팔십 팔 퍼센트가 그들의 교회를 떠난다고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죠지 바너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 “복음주의적인” 젊은이들이 아담이 동산에서 했던 것처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같은 것을 행하고, 그리고 그들 자신들에게 엄청난 비극을 가져오고 있으며, 바로 그들의 조상 아담이 했던 것처럼 하고 있습니다. 그 비유는 주목하지 않는 것이 너무 비슷한 것입니다.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눅 12:48).

아담과 같이, 많이 요구되는 것이 그의 타락은 의로움에서 죄속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그리고 비참하고 비천한 타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끝없는 자비로 아직도 아담과 이브를 향한 은혜를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타락한 죄인들을 향해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것이 오늘 밤 저의 설교의 주제입니다. 아담의 무서운 죄에서 불구하고,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2:4-5).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하심이며 그것을 우리들이 본문에서 보는 것입니다.

I. 첫째, 하나님께서 가죽 옷으로 그들을 입히셨다. 일어서서 21절을 큰 소리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21).

여러분 앉으시기 바랍니다.
그들 자신들이 무화과 잎으로 만든 앞치마는 부적당하였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가죽 옷을 그들에게 입히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죄는 피 흘림이 없이는 덮어질 수 없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처음 그들이 배운 것입니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대속”이라고 번역된 히브리말은 그 요절이 “카프하”입니다. 그것은 “덮다”는 의미입니다(스트롱 3722번). 그래서 그들은 덮어졌고, 하나님의 의로, 대속의 피의 지불로 덮여졌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그들에게 선명한 그림인데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 이 가죽옷들을 만드는 데에 피를 흘림은 한 모형이고 예언으로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1:5). 가죽옷은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것은 피를 흘림으로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옷들은 또한 죄의 “덮어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로마서에서,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7).

그것은 또한 주목되는 것으로 히브리 단어는 가죽은 단수이고, 킹제임스 버전처럼 복수가 아닙니다. 히브리 단어는 “가죽”으로 “가죽들”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게 번역된 “가죽”으로 케일과 델리취에 의하여 그리고 루폴드에 의해 번역되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혼자 희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말하기를,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 9:25-26). 히브리서에서 이 요절들을 말하는 것을, 길 박사는 그들이 로마 카토릭들이 대답한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매일 제물로 드림을 예표하고 있는데…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그리스도는 모두를 위하여 단번에 천국에 들어가셨고, 그가 앉아 계시는 곳에서 계속적으로, 그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 길 박사., 신약 성경 주석, 침례교 표준 출판사, 1989 재판, 제 3권, 441면).

그러므로, 단 하나의 가죽은 아담과 이브를 입히는데 사용되었고 우리들의 죄를 위해 대속의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가 혼자 행하신 것의 모형입니다. 그리고 단수의 가죽은 또한 구원의 한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가죽들이 사용되지 않았으며 그러나 오직 하나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 4:12).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딤전 2:5-6).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21).

하나님이 그들을 입히신 가죽은 계속적으로 기억되는 것으로 피는 반듯이 대신하여 흘려야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되자 그리스도가 그 모형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고, 그리고 우리 대신하여 죽으셨으며, 우리 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그리고 우리 죄를 덮으시기 위하여 그의 보혈을 흘리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면전에서 그것을 씻었습니다. 구원을 얻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로 나오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의 보혈로 반듯이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의로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에이. 더블유. 핑크는 말하기를,

어떻게 아름답고 그리고 완변한 것은 모형입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이 가죽을 제공하신 것으로, 우리의 처음 부모들을 입히고 가죽을 그들에게 입히셨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전부하셨습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수동적이었습니다. 동일한 축복의 진리는 탕자의 비유에서 예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방랑자가 [그 자신을 죄인으로 보았을 때에], 아버지의 마음의 은혜는 보여졌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의 종들에게 말하기를, “최고 좋은 옷을 가져오고 그에게 입혀라 하셨습니다” (눅 15:22). 그 탕자는 그 겉옷을 준비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자신이 입지 않았고 모든 것은 그를 위하여 진행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구원을 받는] 모든 죄인에게 일어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우리들이 노래할 것은,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할 것은 내 영혼의 나의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리라; 그분이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셨네, 그분은 의의 옷으로 나를 덮으셨네.” 이사야 61:10 (에이. 더불유. 핑크, 창세기에서 이삭 줍기, 무디 출판사, 1981 재판, 44-45면).

II. 둘째로, 하나님께서 동산에서 그들을 내어 보냈습니다.

일어서서 이십 이절을 큰 소리로 읽으십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 3:22).

여러분 앉으시기 바랍니다. 루터는 말하기를,

읽는 것으로부터 우리들은 해야 하는데 …결론으로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한 다수 (사람들) 이다, 바로 우리들이 1:26절을 읽은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이런 요절들은 신적 근본이 하나이고…그리고 인격으로 복수이시고, 또는 우리가 말하듯이 (거룩한) 삼위일체이심의 둘 다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신비는 (삼위일체) 신약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그래서, 한 신적 근본속에 삼위가 계시고, 그리고 신비는…세상의 바로 시작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것은 선지자들에 의하여 (더욱 자세히) 설명되었고,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 (신약성경에) 으로 완벽하게 밝혀진 것이며…그러므로 이 메시지는 분명하게 성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의 (크리스천) 기사를 지지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한분이시고 그리고 삼위이십니다 (말틴 루터 박사., 루터의 창세기 주석, 젠더밴 출판사, 1958 재판, 제 1권, 87면).

저는 이 요점에서 완벽하게 개혁주의를 찬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삼위일체의 삼위가 서로 인간의 타락에 대하여 서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장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 번역 주석은 이십이절은 콜론으로 이것의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것은 만약에 삼위일체의 사람들이 타락한 인간의 눈앞에 슬픔에 의한 것을 극복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들은 계속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레우폴드는 “그 단어 ‘슬픔’을 마치 하나님의 마음가지심으로 표현합니다” (에이취. 씨. 레우폴드 박사., 창세기 주석, 베이커 출판사, 1984 재판, 제 1권, 180면).

그래서 슬픔으로,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동산으로부터 내어보내셨습니다.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 3:22).

자, 타락후에, 만약에 인간이 생명의 나무로부터 먹었다면 그는 죄로 저주 받은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씨.에프. 케일은 말하기를, “죄의 상태에서 영원한 생명은 영혼의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러나 끝없는 슬픔이고…낙원으로부터 추방되고, 그러므로, 인간의 선에서 심판을 가하는 것이었으며, 계획 되었고, 일시적인 죽음이 그에게 경험하는 동안,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그를 보존하는 것입니다” (씨. 에프. 케일 박사., 구약 성경 주석, 윌리암 비. 에드맨스 출판사, 1973 재판, 제 1권, 107면). 그리고 레우폴드 박사는 말하기를,

그의 타락에서 인간을 위하고 그리고 슬프게 변질된 상태에서 이 죄의 눈물로 영원한 본질의 습득과 죄로 물들어진 몸은 비통한 재난이 될 것입니다. 그는 이 죽어야할 고리를 절대 “끊을 수 없어 끌려 갈 것”입니다. 복구[부활된 몸]됨의 그리스도의 사역은 방해를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에이취. 씨. 레우폴드 박사., 같은 책 181-182면).

만약에 아담이 그의 타락한 상태에서 생명의 나무 과일을 먹었다면, 그는 “죄로 더렵혀진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 마치 드라큘라 몬스터처럼, “죄로 더렵혀진 몸”이 절대 죽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자 이십 삼절의 처음 말씀들의 주석은,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그를 에덴동산으로부터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 말씀은 여기서, “그를 내어 보내셨다.” 그리고 이십 사절을 보세요, “그래서 그는 사람을 이끄셨습니다.” 엉거 박사는 말하기를, “그 처음 히브리 단어는 ‘떠나게 하다…또는 거절하다.’ 두번째 동사는, 그것은 더욱 인상적인 것으로 ‘쫓아 내시고 또는 추방하다’” (메릴 에프. 엉거 박사., 구약 엉거 주석, 무디 프레스, 1981, 제 1권, 21면). 이것은 아담과 이브는 마지못해하는 것을 보여 주며, 힘든 세상 밖으로 동산의 낙원을 떠나는 것을 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동산에서 내어 보내졌고, 그리고 케루빔들은 그들을 오지 못하도록 지키게 되었고, 생명의 나무를 그들로 부터 지켰습니다. 에덴동산은 대홍수가 그것을 파괴하지까지 존재하였는데, 그러나 그때 인간은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청교도 주석가인 요한 트랲은 말하기를,

그리스도는…그의 자원하는 추방에 의해 믿는 자들을 그들의 천국의 본향으로 데려 가시기 위해…그리고 “[그들에게] 생명 나무과를 먹을 수 있도록,” 그것은 하나님의 낙원의 중앙에 있는 것인데, 먹을 수 있도록 하신것입니다 (계 2:7). 우리의 모든 생명이 추방되는 것보다 못한 것으로 아무것도 아닙니다…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그분은 우리들이 있을 장소를 준비하러 가셨고, 돌아오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날에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요한 트랲, 신구약 성경 주석, 트렌스키 출판사, 1997 재판, 제 1권, 22면).

그리스도는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6:33).

크리스천들로서, 우리들은 죄의 세상과 결혼하고 계속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은 불완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마치 아담과 이브처럼, 우리들은 옷 (그리스도의 의로)을 입었는데 그러나 우리들은 쫓겨난 상태에서 살고 있고, 타락한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저 위의 완벽한 낙원으로 데리고 가실 때까지입니다. 그것은 왜 우리들이 예수님이 오실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리고 예수님은 천국에 계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 3:1-2).

그리스도께로 나오십시오. 그의 보혈로 씻음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애착이 위에 있는 것을 찾고, 땅위에 있는 것을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 3:21-24).

(눅 12:48; 엡 2:4-5)

I.   첫째, 하나님께서 가죽 옷으로 그들을 입히셨다,
창 3:21; 레 17:11; 히 9:22; 계 1:5; 롬 4:7; 히 9:25-26;
행 4:12; 딤전 2:5-6; 눅 15:22; 엡 2:8; 사 61:10.

II.  둘째로, 하나님께서 동산에서 그들을 내어 보냈습니다,
창 3:22; 창 1:26; 3:23-24; 계 2:7; 요 16:33; 골 3:1-2.


나뭇잎 앞치마인가 가죽 외투인가?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 3:7).

사탄은 우리의 첫 조상들을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금지된 과일을 먹게하여 죄를 짓도록 유혹하였습니다. 그들이 먹었을 때에, 그리고 하나님을 불 순종하였을 때에, 그리고 사탄이 또 다른 방법으로, 루터는 말하기를, “절망으로 그들을 파괴하는” 것을 시도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눈아 밝아졌습니다.” 이것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을 참조합니다. 깨달음으로 죄인은 그의 죄와 그것을 미워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죄의 자각 아래로 오며, 아담과 이브가 그렇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의 죄를 보게 될 때, 그의 죄의 무서운 것을 깨닫게 되며, 그는 그리고 마귀에 의하여 끌려 내려가게 되며, 마귀는 그에게 그가 지금은 소망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리고 추구하는 것은, 루터는 “실망으로 그들을 파괴 시킨다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이 유다에게 일어났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배반한 악함을 보았을 때에 그는 구원의 감각으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경적인 회개로 그의 마음을 바꾸지 않았는데 그것은 헬라어로 “메타노이아” 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그는 회개하였는데, 그러나 또 다른 헬라어는 “메타메로마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것은 “후회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경우 후회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그리고 그를 다른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유다가 하였던 같은 종류의 “후회”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죄를 슬퍼하였으나, 그러나 그들의 마음들은 새로운 방향으로 가려고 바꾸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처음 부모들의 슬픔 (과 유다) 는 잘못된 “종류의 슬픔”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 7:10).

죄인에게 양심의 가책이 올 때, 그것은 처음에는 자주 세상의 근심[그것]은 사망입니다” 그의 죄에 의해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슬픔의 감정을 느끼는 대신에 죄인이 깨달은 것은 자주 “세상 근심[그것]은 사망입니다.” 그는 영혼의 큰 고통을 느낄 것인데, 그러나 그것은 자신 중심적인 고통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 자신에 대하여 유감스럽게 느낄 것이고, “신적인 유감이 아니며” 그는 그의 법을 깨뜨리고 그리고 그의 마음에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처음의 것과 같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 자신 중심적인 고통 –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담실에서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 중심의 슬픔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죄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소위 말하는 “회개”는 그들 자신들을 위해 슬픔 외에 더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고, 슬픔은 그들이 이처럼 무서운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의 슬픔을 느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그들 자신에 대하여 슬퍼합니다. 상담실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것에 대한 “신적인 슬픔”과 자신의 슬픔 사이에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죄악된 상태를 깨워주실 때에, 그는 자주 그 자신으로부터 슬픔 속으로 끌어 당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를 아무것도 좋은 것이 없는 것이고, “세상의 슬픔은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처음 부모님들의 마음들이 그들의 눈이 밝아지고 그리고 그들이 무엇인가 깨닫게 되기 이전에 사탄은 자기 자신의 슬픔을 가져다 주었던 것입니다. 그 마귀는 그들의 마음 앞으로 자신의 슬픔을 가져왔고, 말틴 루터는 말하기를 “그들을 파괴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의 슬픔은 바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파괴로 인도하는 것이고, 그처럼 그것은 유다가 한 것이고, 그는 죄송하게 여기고 밖으로 나갔고 그 자신을 목메었고, 영원한 죽음의 아들이 되었으며 지옥의 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근심은 사망에 이르느니라.” 여러분의 자신을 위한 불쌍함을 느끼는 대신, 여러분은 반드시 미안함을 느끼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리고 그의 법을 깨뜨리는 것이고, 이처럼 그들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그들의 죄악된 상태를 깨달았는데,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불순종함에 대한 고통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것은 죄의 천박한 죄의 자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반드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은 아주 슬픔을 느낄 것이고, 여러분은 큰 고통을 느낄 수 있는데, 그리고 아직도 경성하지 않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고, 그리고 그의 사랑을 저버려 그의 얼굴로 되돌리고 그럼으로 그것을 가치 없는 것으로 칩니다. 죄인이 깨어있는 이런 표면상의 상태에서 하나님이 그를 도우실 수 없습니다.

아인 에이취. 므레이는 말하기를,

죄의 자각 아래서 개인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행동을 바꾸려고 시도하는데…회심을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부분적인 변화가 아니며, 죄송함의 일시적인 느낌이 아닙니다, 그러나 삶의 전체의 변화입니다 (아이 에이취. 무레이, 옛 복음주의: 새로운 각성을 위하여 오래된 진리들, 진리와 진실의 바너, 2005, 9-10면).

죄인이 마지막에 보는 것은 그가 그 자신으로서 이처럼 완전하게 변화되는 능력이 없는 것을 볼 때에 삶의 “전체적인” 변화는 오는 것입니다. 옛날 찬송이 알기 쉽게 말해주는 것은,


나의 일들이 아니오
나를 깨끗케 할 수 있는 것은,
나병환자가 깊은 병으로 누운 것과 같네.

여러분이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더 노력하여도, 그것이 더욱 더 불가능하게 만드네. 죄는 다시 힘을 얻고 그리고 (희망적으로 여러분은 죽네, 사도 바울처럼 그것을 로마서 7:8-9에 기록하였네, 본문은 저는 내일 밤에 설교 할 계획인데, 설교 제목으로, “위기의 회심과 하나님의 법”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그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두 눈은 어떻게 열렸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죄인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인 에이취. 무레이는 말하기를, “죄의식 아래서 개인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행동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같은 책., 9면). 아담과 이브는 행동의 변화는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 3:7).

그들은 그들 자신들이 일을 함으로 그들의 죄의 결과를 덮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이 만든 앞치마는 한 모형으로, 잃어버린 사람의 사진으로 그의 죄를 숨기려고 그 자신이 무엇인가 시도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일을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말하는 것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 3:5).

무화과 잎의 그 앞치마들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보혈이 없이 그의 죄를 덮으려고 사람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것이 어떤 좋은 것이라도, 여러분이 어떤 결심을 하였을지라도, 여러분이 아무리 열심히 크리스천이 되려고 노력하여도 – 모든 이 인류의 일들은 오직 “무화과 잎”에 불과합니다 – 인간의 종교는 보혈이 없이 구원의 거짓 관점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보혈로, “창세 이후로부터 죽임 당하신 어린양” (계 13:8) 하나님의 목적과 마음속에서. 하나님은 거짓 안전을 벗기시고 그들이 피가 없는 무화과 잎 뒤에 숨어서 그들이 느꼈던 것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이 없는 사람들의 종교의 그림입니다.

우리들은 다음번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들 자신이 구원하려는 그들의 거짓 희망을 어떻게 벗기시는지, 어떻게 하나님이 그들에게 선행의 “무화과 잎들”로는 구원이 없는 것을 보게 하시고, 어떻게 그들이 죄인이고 그리고 그들 죄속에 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숨길 수 없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에 그들의 모든 변명이 사라지고, 그리고 그들은 완전하게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 자신을 그들의 죄를 씻기시고 그리고 가죽옷으로 그들을 입혀 주십니다. 창세기 3:21을 펼치시기 바랍니다. 일어서서 그것을 큰 소리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21).

여러분 앉으시기 바랍니다.

이 겉옷들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그 자신의 의로움으로 그들을 입히시는 것입니다. 티모디 린 박사는, 구약의 권위자인데, 자주 지적하기를 히브리 단어는 단수이고, 가죽이 아니고, 그러나 가죽입니다. 겉옷들은 하나님이 한 동물로부터 그들을 덮도록 만들었습니다 – 상징하는 사실들은 거기에 오직 그리스도가 죄들을 덮을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보혈은 가죽을 벗긴 짐승이 흘린 것입니다. 이것은 죄의 대속하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능력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로부터 씻어내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부여 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그 자신의 의로 죄인을 덮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의 의로움 홀로 옷을 입히시네,

보좌 앞에 흠도 없이 서게 하시네.

   (“굳건한 반석” 에드워드 모테 작, 1797-1874).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의 짐으로 피곤할 때에, 여러분이 “무화과 잎”으로 여러분의 죄를 덮으려고 시도하고 “선행”을 하고 개선함으로 여러분 자신을 구원하려고 시도하는 게임을 통하여 할 때에, 여러분이 하는 것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았을 때에, 또는 미래의 희망을 가질 때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를 씻을 수 있고 덮을 수 있는 것이며, 그리고 나면 여러분은 엘비나 엠. 홀의 유명한 복음송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좋은 것이 하나도 없네
무엇을 당신의 은혜를 선포하나 – 나는 나의 겉옷을 희게 씻으리   갈보리 어린양의 보혈로. (“예수님이 그것을 모든 갚았네” 엘비나 엠. 홀 작, 1820-1899).


그러나 거기에 창세기 3:21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일어서서 그것을 큰 소리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21).

여러분 앉으시기 바랍니다.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입히기 위하여 그들을 위해 피를 흘려야 하였습니다. 지금 출애굽기 17:11을 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절을 큰 소리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보혈입니다…”로 시작되는 말을 읽읍시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대속”이라는 단어에 줄을 그으세요. 가장 자리 다음에 “덮음”이라고 쓰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히브리 말로 “카파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덮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레위기 17:11을 번역할 수 있습니다,

“피가 영혼을 덮어 죄를 속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영원한 과거로부터, 그를 신뢰하는 사람들의 죄를 덮어 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들은 덮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들을 보실 수 없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그 책”이 열려질 때에,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의 기록을 보실 때에, 그는 기록 된 죄를 보지 못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악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여졌기 때문입니다!

한 친구가 한번은 말하기를 그 “덮어짐”은 구약성경의 개념이라고 하면서 신약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아마도 제가 배운 것보다 강력한 분배의 관점의 영향력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육 칠주 동안 때때로 말하였던 것에 대하여 기억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저는 크루덴의 사전을 뽑아서 “덮었다”는 단어를 찾아 보았습니다. 충분하게 그것은 신약에 있었습니다! 로마서 4:7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처음 말을 지나서 “복이 있도다” 부터 시작합시다. 그것을 크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7).

예, 저는 이것이 시편 32:1에서 인용한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성령께서 히브리어 구역으로부터 신약의 헬라어로 인용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헬라어 단어들은 성령에 의하여 히브리어 대신에 가져왔습니다 –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으며” – 구약과 신약 성경 둘다입니다(딤후 3:16). 또한 우리들은 성령께서 말씀하신 헬라어 신약을 봅니다, 그것은 “죄가 가리움을 받은 자가 복이 있도다.” 헬라어 단어는 “덮어짐”으로 번역된 것은 “에피카룹토”이고 그것은 “숨기는 것, 또는 덮는 것” (스트롱).

당신은 구약과 신약 성경 둘 다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는 여러분의 죄를 덮는 것입니다 (레 17:11).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7). 그리고 그 “가리움”은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입힌 것으로 가죽 겉옷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 받는 것은, 여러분이 반드시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덮여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죄들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여야 하며, 그리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보지 않으실 것입니다. 일어서서 “그대 속에 숨기네” 여러분의 노래곡 5장 찬양의 후렴을 부르겠습니다. 이 노래는 그리스도와 그리고 그의 보혈과 의로 연합됨으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숨겨지는 것에 대한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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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요약분석

성경 2008. 12. 7. 10:25

목차
1. 창세기 개관



2. 창세기 내용요약

제1장 천지 창조

제2장 인간 창조

제3장 인류의 타락

제4장 가인과 아벨

제5장 아담의 계보

.

.

(중략)

.

.

제46장 야곱의 애굽이주

제47장 야곱의 유언

제48장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축복

제49장 야곱의 마지막 축복

제50장 야곱의 장사, 요셉의 죽음



3. 창세기의 저자문제



4. 창세기의 기록 시기



5. 창세기의 신학



6. 창세기의 주제



7. 창세기 기록목적



8. 메시아의 예언

(1) 여자의 후손(창3:15)

(2) 아브라함의 씨(창22:17)



9. 창세기 주요 개념들

(1) 창조

(2) 타락

(3) 홍수



10. 노아의 방주를 통해 본 그리스도의 모형


본문요약


1. 창세기 개관

《창세기》라는 명칭은 이 책 2장 4절의 “하늘과 땅을 지어내신 순서는 위와 같다”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헤브라이어 성서에서는 <창세기> 최초의 말씀 ‘처음(태초: 베레시스)에’를 그 명칭으로 하고 있다. <창세기>는 모세의 저서로 알려져 왔으나, 문학적 내용의 분석으로 볼 때는 시대를 달리하는 여러 자료에서 편집된 것임이 명백하다. 즉, 야훼 자료, 엘로힘 자료, 제사자료의 세 가지 자료로 이루어졌으나 다만 자료의 집성에 그치지 않고, 사계의 여러 학자들이 편집하여 거기에는 통일된 의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의 자료는 모두가 훨씬 그 이전에 있던 자료를 사용한 것이다.

<창세기>는 크게 보아 2부로 나눌 수 있다. 제1부는 태고사(1~11장)로서 만물의 기원을 기록하고 있다. ① 세계와 인류의 창조(1~2장), ② 죄의 기원과 낙원 추방(3장), ③ 문명의 기원과 사람의 증가(4~5장), ④ 노아의 홍수 이야기(6~9장), ⑤ 제민족과 헤브라이인의 기원 및 바벨탑(10~11장)이며, 제2부는 족장사(族長史:12~50장)이다. ① 아브라함의 생애(12~25:18), ② 이사악의 생애(25:19~28:9), ③ 야곱의 생애(28:10~36장), ④ 요셉의 생애(37~50장)이다. 이 책은 역사적인 기술이 아니며, 그 편집자가 의도하는 방향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인류 구제사(救濟史)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며, 야곱의 가계가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2. 창세기 내용요약

서론

1.창조와 타락 :1-5

2.홍수 심판 :6-11

3.아브라함의 생애 :12-25

4.이삭의 생애 :25-26

5.야곱의 생애 :27-36

6.요셉의 생애 :37-50

제1장 천지 창조

*(1:1,2)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1.첫날: 빛, 빛과 어두움, 낮과 밤

2.둘째날: 궁창,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

3.세째날: 바다와 육지, 풀과 채소 과목

4.네째날: 광명,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 일월성신

5.다섯째날: 물고기, 새

6.여섯째날: 육축, 사람

*(1:27,28)

제2장 인간 창조

1.일곱째날: 안식일, 복주사 거룩하게 하심

2.흙으로 사람 지으심(7절)

3.에덴동산: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4.네강 :1)비손 2)기혼 3)힛데겔 4)유브라데

*(2:17)선악과는 먹지 말라

5.하와의 창조

*(2:23,24)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칭하리라하리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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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왜 66권인가?

성경 2008. 12. 4. 17:53

 

성경은 왜 66권인가?

어느 책이 성경에 속하는 것인지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Why 66 : How Can We Be Sure Which Books Belong in Our Bible?)
성경(The Bible)은 66권의 낱권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전체의 책들은 신성한 계시인 정경(canon)으로 알려져 있다.[1] 이 책들은 약 2천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약 40명의 서로 다른 저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그러나 오직 한 분의 저자이신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 66권의 책들만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성스러운 책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혹시 더 있거나 덜 있지는 않는가?


구약성경

고대 히브리인들은 명백하고 분명하게 밝혀진 성경 본체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부터 확인되어졌고, 어느 책이 성경에 속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전혀 의심이 없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책들의 순서를 배열하지 않았고, 어떤 책들은 서로 묶여졌었다. 그러나 내용은 동일하였다, 더도 없었고 덜도 없었다.

성경 내에서의 증거들은 구약 책들의 대부분이 그들이 기록했던 사건들이 있던 그 시기에 씌어졌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주어졌던 말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성경 밖의 역사적 기록들은 이 결론을 강화시켜 준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을 인용하실 때, 구약의 기록들이 항상 성경이었음을 확증하셨고, ”기록되었으되”(마 4:4,7,10) 그리고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요 10:35)라고 주장하셨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신탁)”(롬 3:2)을 의심하지 않았다. 현대 신학자인 칼 헨리(Carl F. H. Henry)는 다음과 같이 지혜롭게 결론을 내렸다. 즉 ”교회는 구약성경을 물려받았고, 예수님은 이 기록들을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정경으로서 방어하시고, 고취하시고, 충성스럽게 따르셨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셨다”[2].

한 유명한 유대인들의 종교회의가 AD 100년 경에 잠니아(Jamnia)에서 열렸다. 가끔 잘못 추정되고 있는 것처럼, 그 회의의 목적은 어떤 책들이 유대인들을 위한 성 문서들에 포함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어떤 책들이 이미 받아들여졌는가에 관한 것이었다.[3]. 그 종교회의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구약 정경에 접근할 수 있었다.


신약성경
 
성경 내에서의 증거는 대부분의 신약 성경들이 AD 70년까지 씌어졌다는 결론을 지지한다. 한편 요한의 저서들은 이보다 약간 늦다.[4]. 대부분의 책들은 저자의 이름을 땄고, 모든 책들은 다른 책들에게 유용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우리들이 더욱 정확하게 연대 계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성경에 있는 몇몇 기술들은 신약성경이 사도들에 의해서 씌어졌거나, 사도들에게 승인을 받았음을 가리키고 있다. 베드로는 바울의 편지를 '성경(scripture)'이라고 불렀고(벧후 3:16), 바울은 자기와 다른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말했다고 했다.(살전 2:13). 

1 세기가 끝나기 전에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는 반 이상의 신약성경을 인용했거나 참조하였고, 그것들을 '성경(scripture)'이라고 불렀다. AD 180년까지 리용의 이레니우스(Irenaeus) 주교는 그것들을 성령에 의해 주어진 '거룩한 성경(holy Scriptures)'이라 불렀으며, 1,000구절 이상을 거의 모든 신약성경으로부터 인용하였다. 동시에 북아프리카의 터툴리안(Tertullian)은 '신약성경(New Testament)'으로 언급하며, 그것의 대부분에 대하여 해설했다. AD 240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Origen)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27권을 성경이라고 말했고,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AD 367년에 같은 목록을 사용했다.[5]. 그들은 같은 방식으로 다른 책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2세기 초까지는 4복음서(그 외의 다른 것은 전혀 없었음)와 13편의 바울서신이 전 로마 제국에 걸쳐 모든 교회들에서 아무 문제없이 받아들여졌음이 확실하다.

AD 180년까지 우리의 모든 신약성경(베드로후서만 제외하고) 책들은 교회 지도자들의 글에서 직접 인용되거나 또는 암시로 발견되어진다. 이 해까지, 소수의 교회들은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 2,3서, 베드로 후서, 히브리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그 나머지 모두는 보편적으로 수용되어졌다. 교회 지도자들은 신약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정경이 아닌 책들은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AD 150년 무렵에 최초로 편집된 무라토리 정경(Muratorian Canon)은 성경의 신약정경으로서 확인되어진 책의 형태로 된 가장 초기의 문서적 증거이다. 비록 8세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본은 열악한 상태에 있었고 일부를 잃어버렸지만, 그것은 신약성경에서 4권의 책들을 제외한 모든 책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정경의 내용을 토론하기 위하여 어떤 종교회의도 소집되지 않았다. 정경은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의 보편적으로 인정되어지고 있었다.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의 어떤 책들이 정경의 일부인가를 결정했던 곳으로 잘못 생각되어지고 있는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를 묘사하고 있는 한 성화.

신약성경의 정경 목록을 확정하는데 그렇게 오래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1. 사도들이 권위 있는 책들의 깔끔한 목록을 후대에게 남겨주지 않았고,

2. 어떤 두루마리도 모든 책들을 전부 포함할 수 없었고, 책을 만드는 과정(사본이라 부름)도 4세기까지 로마제국에서는 일반화되지 않았으며,[6]

3. 교회들은 로마제국 전역과 영국에서부터 북아프리카와 페르시아 동부까지 흩어져 있었다. 초기 크리스천들은 아직도 박해를 당하고 있었고, 서로 간에 쉽게 회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교회나 지도자가 다른 교회나 지도자들에게 명령할 권위를 갖지 못했으면서도, AD150년 무렵에 무라토리 정경이 우리의 신약성경 중 4권의 책들 이외의 모든 책들을 목록화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많은 기만자(deceivers)들이 사도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사칭하면서, 가짜 복음서들과 서신서들을 작성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지도자들은 그것들이 가짜이며,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서 퇴출했다.[7] 거짓 복음서들과 서신서들은 늦은 작성 시기와(사도 시대와는 많이 떨어진), 정경과 교회들이 받아들인 교리와는 명백하게 모순되는 가르침 때문에 가짜임이 스스로 드러났다. 


결론

역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분의 전체 말씀을 주셨고, 우리를 위하여 그 말씀들을 보존해 주셨다는 우리의 확신을 강화시켜 준다. 우리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계획하셨던 66권의 책들을 모두 정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Footnotes

1. 이 단어는 '갈대”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κανων(kanon)에서 왔다. 그것은 '자(ruler)” 또는 '측량 막대기(measuring stick)”를 의미하고, 측량 막대기는 '인증된 권위(recognized authority)”라는 개념을 갖는다. 4세기에 교회는 캐논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으로 받아들여진 책들의 목록”을 의미하는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2. Carl F. H. Henry, God, Revelation and Authority, Vol. 4 (Carlisle: Paternoster, 1999), p. 407.
3. 이것은 이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See for example R. Beckwith, The Old Testament Canon of the New Testament Church (London: SPCK, 1985), p.276. Also A. Bentze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Vol. 1 (Copenhagen, 1948), p. 31. Bruce Metzger, The Canon of the New Testamen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p. 110. John Wenham, Christ and the Bible (London: Tyndale Press, 1972), pp.138–139. 
4. 이것은 일반적인 복음주의적 입장이다. 그러나 복음주의자가 아니었던 존 로빈슨(John A. T. Robinson)은 그의 세부적인 학술 저서에서 전체 신약성경을 AD 70년 이전으로 위치시켰다. Redating the New Testament (London: S.C.M. Press, 1976).
5. 아타나시우스는 또한 신약성경 책들의 본체를 위해 캐논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6. 우리의 가장 초기의 거의 완벽한 단행본 헬라어 신약성경(4세기 중엽부터 내려오는 시나이티쿠스 사본(Codex Sinaiticus))의 크기는 16×14 인치이고, 두께는 694쪽이다.
7. 이들은 위서(pseudepigrapha)라고 불려진다.(헬라어로 ‘가짜 문서’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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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교회는 하나님이 성경 66권에 영감을 불어넣으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성경의 인간 저자들을 선택하시고, 이루어진 예언들과 기적들을 통해 그 책들의 신뢰성(authenticity)을 확증하셨다. 19개 이상의 지역으로부터 40명 이상의 인간 저자들이 동원되었지만, 성경의 메시지는 일관되고 상호간에 모순이나 오류가 없다.

유대인들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쓴 책들을 정경(canon, 지금은 구약으로 불려짐)으로 받아들였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자(messengers)들도 신약성경에 포함된 책들에 대해 책임이 있었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온 책은 역사적, 예언적, 과학적 정확성을 포함하여 어떤 기준을 충족시키는, 그리고 권위를 가지고 삶을 변화시키는 메시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사람의 집단들, 도시들, 풍습들에 관한 역사적인 세부 사항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고고학적 발견들은 이런 세부적 내용들이 정확했음을 지속적으로 확인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www.answersingenesis.org/go/archeology 을 보라).

현대의 많은 과학적 사실들이 성경에서 발견되어지거나, 성경으로부터 추론되어질 수 있다. 즉,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사 40:22), 별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사실(창 15:5), 살아있는 것들은 그 종류대로(after their kinds) 자손을 번식한다는 사실(창 1:24,25), 대양에 '해로(paths)”가 있다는 사실(시 8:8) 등이다.

예언의 정확성에 관하여, 구약성경의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 대해 50번 이상 예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하기 400년 전에 씌어진) 모든 예언들은 사실대로 실현되었다.

또한 성경의 각 책들은 딤전 3:16,17절과 벧후 1:21절을 포함하여 여러 구절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여러 곳에서 (인간) 저자는 신적 영감을 받았음을 주장하며,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의 메시지는 삶을 바꾸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죄를 확신시키며, 사람들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삶에서 옮겨, 성령의 권능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바꾸어버린다. 다른 어떤 메시지도 인간에 대해 이러한 일을 한 적이 없다.

성경의 (원)저자가 하나님이라는 것은 성경에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만일 하나님의 감동을 받지 않았다면, 성경은 인간의 글들을 모아놓은 모음집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인간들에게 완전함을 요구하고, 그들의 죄를 확신시키고, 영원한 절망을 선고하며, 그들에게 구원을 베풀 권위를 가졌겠는가? 인간은 누구도 그러한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한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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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경이란 무엇인가?

11-16 권의 외경(Apocrypha)들이 구약의 마감과 신약의 시작 사이 400년 동안에 집필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es)와 그리스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es)는 이들 책들의 일부를 성경으로 취급했지만, 개신교(Protestant Christians)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유대인들은 외경을 결코 히브리 성경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기간(외경이 집필된) 내내 이스라엘에 선지자들의 음성이 없었다고 믿었다. 그들은 '충성된 선지자”가 나타날 날을 대망하고 있었다.(마카비전서 9:27). 유대인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성경 계시는 BC 430년경 말라기서를 끝으로 일단락되었다.  

2. 예수님과 사도들은 외경을 결코 성경의 한 부분으로 여기시지 않았다. 신약성경에는 수백 구절의 구약성경 인용과 암시들이 있지만,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외경으로부터는 결코 인용하지 않으셨다. 성경의 저자들은 우연히 다른 책들을 참조했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그 책들을 성경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유다서 14-15절은 에녹서(book of Enoch)를 참조했는데, 에녹서는 로마 가톨릭의 외경의 한 부분이 아니다.

3. 구약성경의 예언서들과 달리, 어떤 외경들도 결코 신적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

4. 외경의 어떤 부분들은 커다란 역사적인 실수들을 포함하고 있다. 

5. 사해사본(Dead Sea scrolls)을 필사한 공동체는 구약성경에서와 같은 권위를 외경의 책들에 결코 부여하지 않았다.



고고학은 여러 종교 경전들 가운데서,
성경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입증하였는가?
(How does archaeology conclusively demonstrate the Bible to be
reliable and unique among all the holy books of world religions?)

고고학적 발굴들은 신·구약 성경의 역사적 신뢰성을 입증해 주고 있다. 다른 종교 경전들과 비교해 볼 때, 성경에 언급된 장소들, 인물들, 제목들, 사건들, 그리고 성경을 구성하기 위해 사용된 언어와 저술 형식 등에서 검증된 바와 같이, 성경은 가장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유일하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고고학적 발굴들에 근거한 추정들로 인해, 성경 기록들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모순점’들을 자세히 점검해 보면, 문제점들은 성경(the Bible)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고학(archaeology)에 있음을 (예를 들면, 증거들의 잘못된 해석, 증거들의 결핍, 빈약한 고고학적 지식 등) 발견하게 된다.  


인생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진실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고고학이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고고학적 발견은 어떤 사람이 성경의 역사적 진실성에 관해 가질 수 있는 의문을 제거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영적인 메시지와 마찬가지로,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기초가 되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의 진리가 회의론자들에 의해 도전받을 때, 고고학은 성경의 인물들, 장소들, 그리고 사건들이 실제로 발생했었던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증거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어떤 하나의 고고학적 발견은 성경 기록에 대한 신뢰성을 부여하며, 성경과 분리된 대안적 해석들을 거부할 수 있는 증거를 제공한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과 일치하는 많은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더욱 확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들은 3가지 범주로 분류된다 :

1. 고고학적 증거들은 성경의 역사적, 문화적 정확성을 나타낸다.
 
2. 인간의 삶에 개입하시고, 구원의 방법을 제공하고 계시는 사랑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메시지는, 고고학에 의해서 밝혀지고 있는 것처럼, 고대 세계의 이교들과는 첨예하게 대조된다.

3.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사건들이 수백년이 지나서 정확히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들이 평범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성경 밖의 기록에서 성경 사건들에 대한 어떤 확증이 있는가?
(Is there any confirmation of Biblical events from written
sources outside the Bible?)

성경 사건들 중에서 성경 밖의 기록에서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것은 창세기 6-9장에 묘사되어있는 전 지구적 홍수에 관한 기록이다. 똑같은 홍수를 설명하고 있는 많은 바빌론 문서들이 발견되었다.

 
수메르 왕들의 목록을 기록해 놓은 고대의 토판

예컨대, '수메르 왕들의 목록(Sumerian King List)'은(위의 그림) 오랜 기간 동안 통치했던 왕들의 명단을 열거해놓고 있다. 그리고 대홍수가 일어났다. 대홍수 이후로 수메르 왕들의 통치 기간은 훨씬 짧아졌다. 이것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양상이다. 홍수 이전의 인간 수명은 길었고, 홍수 이후에는 짧아졌다. 길가메시 서사시(Gilgamesh Epic)의 11번째 토판은 방주와, 방주에 탔던 동물들, 홍수 동안에 날려 보낸 새들, 산 위에 도착한 방주, 그리고 방주에서 내려와 드렸던 희생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었다.

아다파 설화(Story of Adapa)는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와 유사하게, 먹는 것을 포함하여 불멸에 관한 한 시험을 소개하고 있다.
 
수메르 토판들은 바벨탑에 관한(창 11:1-9) 성경의 설명과 같이 언어의 혼잡을 기록하고 있다. 모든 인류가 같은 한 가지 언어만 사용했던 황금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지혜를 관장하는 엔키(Enki) 신에 의해 혼잡하게 되었다. 바빌론 사람들은 신들이 신전의 탑을 부수고 ”사람들을 멀리 흩어버렸으며, 그들의 언어를 다르게 만들어 버렸다.”는 성경과 유사한 설화를 가지고 있다.


성경 사건들에 대한 성경 밖의 확증들에 대한 몇 가지 사례 :

▶ 애굽(이집트)의 왕(바로)인 시삭(Shishak)이 이스라엘을 침공(왕상 14:25-26)한 사건이 이집트 테베(Thebes)에 있는 아문 신전(Temple of Amun)의 벽 위에 기록되어 있다.

▶ 이스라엘에 대한 모압의 배반(Revolt of Moab) 사건이(왕하 1:1, 3:4-27) 메사 비문(Mesha Inscription)에 기록되어 있다. 

▶ 사마리아가 앗수르(Assyria)의 왕 사르곤 2세(Sargon Ⅱ)에게 함락된 사건이(왕하 17:3-6,24, 18:9-11) 그의 궁전 벽에 기록되어 있다.

▶ 사르곤 2세에 의한 아스돗(Ashdod)의 점령(사 20:1) 사건이 그의 궁전 벽에 기록되어 있다.

▶ 앗수르 왕 산헤립(Sennacherib)의 유다 침공(왕하 18:13-16)이 테일러 프리즘(Taylor Prism, 니느웨의 폐허에서 발견된 육각형의 구운 점토 프리즘)에 기록되어 있다.

▶ 산헤립 왕에 의해 라기스가 포위된 사건이(왕하 18:14,17) 라기스의 양각(Lachish reliefs)들에 기록되어 있다.

▶ 산헤립 왕이 그의 친 아들들에게 피살된 사건이(왕하 19:37) 그의 아들인 에살핫돈(Esarhaddon)의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

▶ 선지자 나훔과 스바냐가 예언한 니느웨의 함락이(습 2:13-15) 나보폴라살 왕의 토판(Tablet of Nabopolasar)에 기록되어 있다.

▶바빌론 왕 느브갓네살(Nebuchadnezzar)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된 사건이(왕하 24:10-14) 바빌론 역대기(Babylonian Chronicles)에 기록되어 있다.

▶유대 왕 여호야긴(Jehoiachin)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사건이(왕하 24:15,16) 바빌론 사람들의 배급 장부(Babylonian Ration Records)에 기록되어 있다. 
 
▶ 메대와 바사(Medes and Persians)에게 바빌론이 패망한 사건은(단 5:30,31) 고레스 실린더(Cyrus Cylinder, 원통 모양의 점토 돌)에 기록되어 있다. (페르샤 제국의 건설자인 고레스는 그가 점령한 수메르의 여러 도시마다 기둥을 세우고 그의 업적을 새겨놓았다).

▶ 바빌론에 포로가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레스(Cyrus) 왕에 의해 방면된 사건이(스 1:1-4, 6:3,4) 고레스 실린더(Cyrus Cylinder)에 기록되어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하심은 요세푸스(Josephus), 수에토니우스(Suetonius), 탈루스(Thallus), 소 플리니우스(Pliny the Younger, 비두니아의 총독), 탈무드(Talmud), 루시안(Lucian) 등에 기록되어 있다. 

▶ 글라우디오(Claudius, AD 41-54)의 통치 기간 중에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강제 퇴거시킨 사건이(행 18:2) 수에토니우스에 의해 기록되어있다.


수메르 왕들의 목록에 대한 더 많은 정보

각기 다른 시기, 다른 장소들에서 발견된 수메르 왕들의 명단에 대한 16개 이상의 파편(fragment)들과 거의 완벽한 한 질의 사본이 존재한다. 첫 번째의 파편은 세기가 바뀔 무렵(19세기 말) 이라크의 니푸르(Nippur)에 있는 신전 도서관에서 발견되어 1906년에 출판되었다. 가장 완벽한 사본인 Weld-Blundell prism(수메르 왕들의 목록)은 1차 세계대전 직후에 고물상에게 팔렸고, 지금은 영국 옥스퍼드에 있는 애슈몰린 박물관(Ashmolean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소장번호: AN1923.444). 수메르 왕들의 목록(Sumerian King List)과 그것의 성경적 의미에 대한 철저한 논의를 위해서는, CEN Technical Journal 12(3) 1998, pp.347-57에서 로페즈(Raul Lopez)가 제시한 '대홍수 이전의 족장들과 수메르 왕들의 목록(The Antediluvian Patriarchs and the Sumerian King List)”을 읽어보라.  <http://www.answersingenesis.org/tj/v12/i3/sumerian.asp>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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