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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라면 말이 없음에

        

    날이 궂습니다.  처마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길래 비가 왔나하고 땅을 보니 빗물의 흔적은 없습니다. 하늘을 봅니다. 구름이 잔뜩 끼어 어둡습니다. 이른 새벽 주님께 경배하며 찬송하며 간구하며 누린  두어 시간으로 인해 제 마음은 천국을 누립니다. 눈으로 보이는 현실은 잔뜩 낀 구름같습니다.

 

     그러나 바라는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것들의 증거로 굳게 붙들고 있게 하는 믿음은  구름이 걷혀지고 나면 비추어질 눈부신 빛을 바라보게 해 줍니다.  이 구름이 언제 거두어질지는 아버지의 시간과 때에 맡기고 기다립니다.  땅위에 살며 일어나는 일들과 하늘에서 준비되어지고 있는 일들을 마음으로 분별하며  시기와 때를 알아 늘 깨어있게 되길 간구하고 오늘도 허락하신 하루의 시간에   감사와 경배를 올렸습니다.

 

    십자가에서 내가 죽는것이 어떤것인가를 요즘 제게 가르치시는 주님!  일상의 작은 일들로 어제 다시 제 마음에 깨달음을 주심에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족쇄처럼 손님이 있으나 없으나 멀리 나가지 못하고  가게에 붙박혀 있어야 하는 요즘 주를 위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오늘 난 무엇을 해야할까를 생각하며 믿음의 행함을 이루는 하루가 되길 기도하면서 저희 교회 카페에 올려둔 글들을 훝어보는 중 ... 어느분이 올려둔 연주곡 찬양방의 글에 붙여진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곡이라고 이 곡을 들으시는 목사님께서 이 찬양을 올려준 분이 참 이쁘다고  더 많이 올려달라고 하신다는....

 

     그 글을 읽는 순간 제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이 ' 참 아름다운 곡이다.그런데 이런 곡들을 그동안 내가 계속 많이 올려 왔는    목사님은 그동안 내게는 한번도 칭찬의 말씀이 없으시더니 .....무심하신 우리 목사님...'  그러고는 퍼뜩 따라오는 또 다른  마음!   ' 아직 내가 살아있구나...이게 내 본 모습이구나......버린다고 늘 읊조리는 내 고백은   공허한 말이구나....십자가에 죽었다면 이 마음이 어디서 나온다는 말인가.... 죽은자는 말이 없음에...'

 

    얼마전에도 그랬었습니다  교회에서 집회 세미나를 하면서 진행 순서중에 제 간증글을 낭독하는 순서를 넣어야 겠다고  빨리 글을 하나 쓰라고 밤 늦은 시간에 명령을 받았습니다. 올려둔 글 중에 하나를 읽으면 안될까요 했더니 안된다고... 지난 번에 집회에 참여 하면서  받았던 은혜들을 쓰라고 하셔서 순종을 하여 늦은 시간까지 기억을 더듬어 써서 제출을 하고  그 다음날 진행을 봐 가면서  내 순서가 되면 앞에 나가서 주님 주신 은혜를 증거하게 하시는   감사함에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눈치를 보며 기다리는데 간증을 하시는 분이 하시는 말씀이  제 간증글이 너무 길어서 시간상 어쩔수 없이 뺐다고 이번엔 저보고 하라 하셨으니  집사님은 다음에 하시라고....ㅎ~

 

    진행 위원이나 글을 쓰라고 명하신 분들 중  어느 한 분도 제게 아무런 설명 없이 이게 먼 상황이지 하고  의아하기도 하고 뜨악하여 잠시의 그 시간이 갖가지 생각이 교차하였습니다. 죽어지지 못한 나의 육신의 생각들은 마음에서 분노가 일어났었습니다. 어쩌면 이럴 수가....상황이 그러한 것은 충분히 이해 한다고해도 설명 한 마디는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늦은 시간에 급히 쓰라고 하실 때는 언제고  다른 분을 세워서 진행을 하시게 되었다면 이러한 사정이 생겼으니 어떻게 되었노라고  한 마디 말씀은 해주셔야 하는것이 아닌가....  그 시간까지 바보같이 난 혼자서  짐짓 마음에 준비까지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바쁘다고는 하지만 사람을 이리 무시를 하는것인가...거참...이 무슨 찝찝한 기분인지....

 

    이 생각을 따라가며 심령에 불편함이 가득해지고 맥박이 빨라지고 성냄의 마음이 머리까지   스멀스멀 기어 오르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헐!~ 이게 지금 내가 먼 상황이지....내가 지금 사단의 밥을 주고 있네...  주께서 시험을 허락하심이로구나..... 십자가에 죽어지지 못한 나의 이 못난  꼴이라니... 십자가에 죽은자가 어찌 입이 있으며 생각이 있으며 할말이 있으련가....아직도 나의 마음에 시기와 질투와 분냄과 성냄과 자랑과 교만이 가득함이라... 이것을 심령에 안고서 어찌 주를 모시고 산다고 할수 있음일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십자가에 날마다 죽노라하였던  바울사도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살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여도 또 다시 살아나는 나 라는 자아! 그랬습니다. 죽어 장사지낸바 된 사람이라면 성냄도 분함도 자랑도 시기도 질투도 없어야 함입니다.  주님 십자가에 죽으실 때 이 내 몸도 함께 장사지낸바 되어짐을 진정 믿는다면  주님이 다시 부활하셨을 때에 살아난 것은 내 영이요 속 사람 뿐이어야 함에  오히려 속사람은 날마다 죽어있고 겉사람이 살았다하고 나요!! 함에   이러한 내 안의 부끄러움이 드러남에야.....  한 번 두 번 거듭되어져 드러나 보여지는 이 내 모습이 나라는 진정한 자아 임이여든.... 그것을 깨닫게 되자 바로 구하였습니다.

 

    "더러운 사단들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안에 분냄과 교만과 자랑으로  육이 살아 있게 만드려는 정욕의 욕심을 거절하며 십자가에 던져 버리노라.  나는 이미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못박혀 죽고 없음을 선포하노라!  주님의 보혈로 나의 더러움을 씻노라!

 

     내 귀에 들리게 사탄들의 귀에 들리게 성령님께 들리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내가 이렇게 죽어지지 못하고 시퍼렇게 살아있습니다. 죽어지지 못한 이 내 모습으로 어찌 그리스도의 신부된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도와주소서.... 나는 다시 죽고 주님이 살게 하소서.... 이번에도 또 십자가에 나를 매달아 죽어 나는 없어지고 주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십소서!!

 

    기도하자 그러한 마음은 눈이 녹듯이 사그러들고 내 부끄러운 맘이 보여 탄식을 하였습니다. 아! 십자가에 죽는다는것이 이것이구나. 내 악한 모습을 보게 되어지고 깨닫게 될 때에 나를 다시 또 십자가에 달아버리고  죽어버리면

죽은자로서는 무어라 할말이 없음에 그러한 분노와 자아는 순식간에 사그러들고  신기하게 평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주님 뵈올 때까지 이 육신의 정욕과 더러움은 다시 고개를 들고 나를 더럽히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내 모습의 실체를 때마다 보게 하시면서 오늘도 또 한번 십자가에 나를 못박게 하시며  정하게 깨끗하게 거룩하게 하시려는 주님의 은혜가 있음에 담대히 다시 주님을 바라봅니다.  이전에는 그러한 분이 올라올 때 그것에 매여 품어내고 터뜨리고 성내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이나마 참고 다스리며 죽어짐으로 달라지는것을 볼 수 있음은   성령님께서 이러한 일들을 허락하심으로 나를 가꾸시고 만들어 가심을 보게 하심에  감사와 경배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오랜 이전에 저는 무척 혈기가 탱천한 자 였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흑과백을 나누기 좋아하며 옳고 그름은 분명하게 살아야 하는게 맞다고   굳게 믿으며 나 자신을 정죄하며 남도  정죄하고 판단하기를 즐기는 자였습니다. 남편과의 사소한 다툼에 더욱 그리하였음에 조그마한  농담조차도 내게 말하지 못했던 남편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 까를 생각합니다.  요즘은 그나마 많이 나아지고 부드러워 졌다고 조금 바뀌긴 했다고 웃는 남편.....

 

    그러나 지금도 다 버려지지 않은 모습임에 이러한 나를 또 보게 해 주시니 주님의 은혜 입니다.  나를 날마다 이렇게 새롭게 하시는것을 믿으며 넘어짐은 언제나 있을테지만   실패 하였다 할지라도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주께서 나를 간섭하시고 참견해주시니 내일이면 또 조금 더 새로워지리라고.... 

 

    아무리 내가 거룩을 사모한다 하여도 누군가가 나를 삶의 이모양 저모양으로 찌를 때에 아프고 고통스럽고 괴로우면 내가 아직 십자가에 죽어지지 않았음입니다. 죽은자는 건드려도 아무런 느낌도 없음에 할 말이 없음입니다. 십자가에 내가 죽었는지 아직 죽지 못함인지를  깨닫게 하시는 방법이 이렇게 한 번 씩  사단으로 내게 시험을 허락하심인것 같습니다.

 

   오직 주님을 의지하며 그분안에 있을 때에 정죄함에 매여 있지 않고   담대히 다시 일어 설 수 있음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놓치 않으시는 아버지의 구별하심의 은혜임에 감사를 드립니다.

 

 

[로마서]12~15]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아버지!

나를 늘 간섭하시고 참견해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내게 썩어질 것으로 부요치 않게 하시고 부족할지라도

구함으로 기다리게 하시며 그늘 뒤에 감추어 두신 빛을 바라보는 눈을

허락하심을 감사하나이다.

내가 진정  어떠한 자인지를 늘 깨우쳐 주심을 감사하오며

이러함에도 주의 사랑에서 끊쳐지지 않고 더욱 사랑해 주시는 은혜를 

알게 해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날마다 죽고 또 죽어야할지라도 땅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며

크고 높으신 여호와를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해 주심에 감사하오며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신랑으로 창세전에 미리 아신자가 되게 해 주신 

은혜를 감사하나이다.

연약한 이 내 모습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시는 성령님을

내 안에 임재케 해주심에 감사하나이다.

 

주님 오실 때가 심히 가까워져 갑니다.

조금씩이라도 날마다  십자가에 죽고 또 죽어

그 분을 맞이할 때에 입을 신부의 예복을 깨끗하게 준비 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님!

어서오시옵소서!!

마라나타!!!!

아멘!!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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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할 때 나타나는 증상  


 

 

교만한 마음이 생기면 남을 비난하고 헐뜯으며 그들이 잘못한 이유를 지적한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올바른 삶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교만은 우정을 지속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아니라 논쟁에서 이기는 데 초점을 맞추게 한다.

 


우리는 교만에 빠지면 ‘제가 잘못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고백이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요구하는 마음이 생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을 요구하는 마음이 생긴다.

현재에 만족하기보다는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게 된다.

교만은 분열을 일으킨다. 우리가 교만할 때는 내 교회, 내 그룹,

내 교단이 다른 사람들의 그것보다 훨씬 낫다고 자랑한다.

 


교만한 생각이 들면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생각을 구하지 않게 된다.

일이 잘못되면 교만한 사람은 가장 먼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

 


교만은 계속된 자기 연민을 낳게 한다.

교만의 기초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닌 ‘나는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윗은 어떤 일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다.

다윗은 자신이 부서지거나 깨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절망이나 비탄에 빠지기보다는

교만하지 않은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 그 때문에 마음이

낙심되는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중요한 교훈들을 얻을 수 있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고 그분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길 원하신다면

다윗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우리의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께 그 이유를 묻거나 아니면 마음을 굳게하여

교만한 태도를 취하거나 할 것이다. 결코 중간은 없다.

 


다음은 실망스런 사건을 당하거나 마음이 낙심될 때 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1.하나님 당신은 이 상황을 통해 제게 무엇을 가르치시길 원하십니까?

저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저의 반응은 어떠해야 합니까?

이 상황에서 제가 위반한 성경의 원칙은 무엇인지요?

 


2.이 상황과 관련된 행동이나 관계된 사람들,

방법 등에 있어서 제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이 있습니까?

 


3.제게 이런 실망감을 안겨 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까?

 


4.이 상황에서 저를 도와 줄 영적인 사람의 조언을 구할 필요가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그 영적 조언자에게 내 삶과 나의 필요와 나의 반응에 대한 영적인 통찰력을 주셔서

이 사건을 통해 제가 배워야할 교훈들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5.하나님, 제가 이 상황을 너무 영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어서

이 사건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지혜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요?

 


6.제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고 훈련되어져야 합니까? 제가 따라야 할 단계들을 알려 주십시오.

 


7.지금 이 시간에 제 자신에 대해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 대신 섬겨야 할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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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모바일 DTS’강의를 하러 갔다. 파타야는 날씨와 풍광이 여전했지만 DTS 팀은 심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학생들 몇 명이 뎅기열(급성 열성 질환의 일종)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중 한명은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갔다.

강의만 할 수 없어서 함께 기도하면서 영적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학교는 학생들과 간사들의 믿음으로 안정감을 찾고 있었다. 잠깐 드는 느낌이 원수가 가정을 공격할 것 같았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보, 깨어 있어야 해요.”
답장이 없다. 원수가 건드리면 늘 그렇다. 잘 되던 연락도 갑자기 안 된다. 결국 저녁에 아내와 통화하면서 서로 긴장감을 느끼는데 그날 저녁부터 아들이 열나기 시작한다.

아들은 어려서 열성경련을 했기 때문에 열이 나는 것은 늘 우리를 불안케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일이 없었는데 갑작스럽다.‘하나님, 성식이 열이 내리게 해주세요.’기도하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다. 원수가 공격하면 모든 기도가 차단되는 느낌을 받는다.

원수가 마음대로 활개치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 원수가 나를 공격해도 좋으니 아이들만큼은 건들지 않게 해달라고 오랫동안 기도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했다.

기도가 되지 않을 때는 기도를 바꾸어야 한다. 무언가 하나님의 뜻 한가운데서 기도하고 있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이때는 조이 도우슨이 알려준 질문을 해야 한다.
‘하나님, 제가 이 일을 통하여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하나님이 마음을 주신다.‘성식이가 열에 대해서 강해지도록 기도해라. 네 아내나 딸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강해지도록 기도해라.’ 비로소 마음에 확신이 선다.

나는 다시 기도한다.‘하나님, 우리 성식이가 열에 대해서 강해지도록 도우소서. 아내와 희락이가 이 문제에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강건한 마음으로 이길 수 있도록 도우소서.’

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기도한다. 새벽에 공항에 도착해서 연락하니 아내가 성식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단다. 딸과 통화한다.

“희락아 뭐할 거야?”
“응, 말씀 묵상하려고!”
“그래? 좋은 생각이구나. 그럼 묵상하고 아빠한테 나눠줘.”

집에 도착해서 청소를 하고, 딸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차분하게 기다린다. 아들은 확진이 되지 않았지만 타미플루를 먹고 열이 내렸다. 결국 신종플루 확진을 받았다. 그래도 강하게 열을 이기고 넘어간다.

◈전쟁은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이 원수의 성질머리와 능력을 쫓아내는 것을 말한다. 원수는 그의 성질머리로 가정을 공격한다. 온갖 안 좋은 것들로 가정을 파괴하려는 것이다.

가족끼리 돈 때문에 서로 비방하게 하거나, 서운한 감정으로 미워하게 하거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관계를 끊어놓는 것이다. 그런 악한 감정들은 결국 가정이 즐겁고 행복하지 못하는 쪽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원수를 기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원수가 이를 갈며 슬퍼하며 쫓겨나게 해야 한다. 원수가 가정을 공격한다는 느낌이 들면 즉각 전쟁 모드로 전환해서 가정을 지켜야 한다.

악한 자는 우리 믿음이 약해지도록 불화살을 쏜다. 믿음의 방패가 필요한 것은 악한 자의 불화살을 소멸하기 위함이다. 악한 자의 공격은 우리가 믿음을 견고히 할 때 물리칠 수 있다.

두려움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마음을 강하게 먹고 혹 원수가 공격해온다면 믿음으로 대적하는 것이 성경이 권면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견고하게 서 있으면 원수는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

- 김길, 사명

† 말씀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 야고보서 4장7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 베드로전서 5장8절,9절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 에베소서 6장16절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 누가복음 10장19절

† 기도
주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지킬만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믿음으로 마음을 지키고, 믿음으로 가정을 지키겠습니다. 원수의 공격이 불화살처럼 쏟아질때도 마음을 지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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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은 다스리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에릭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보면 인간이 그렇게 자유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의사 결정을 남에게 맡기길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스리는 존재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다스리는 모습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종입니다.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판단을 내려야 됩니다. 다스려야 됩니다. 말씀에 비추어보아 생각하고 행동하고 판단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는 방법입니다.

◈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는 존재입니다
자기가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정보를 모으고,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해도, 우리가 반드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게 돼 있습니다.

인생 가운데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예를 들어서 대학 입시 앞두고 어느 대학을 가야 될지 결정을 해야 될 때, 자기 직장의 진로의 문제를 놓고 내가 어느 길로 가야 될지 갈등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그러나 군중심리는 생각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생각이 없으니깐 남들에게 끌려 다니고, 세속의 물결에 끌려 다니고, 남들이 하는 대로 하니깐 생각이 없으니깐 기도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이고, 또 하나님의 형상됨을 부인하는 행동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면서 무엇이 하나님의 길입니까? 무엇이 지혜로운 길입니까? 생각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때 자기 결정에 책임지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 엎드려야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가 가능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할 조건은 내 안에 교만이 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교만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입니다.

마리아하고 마르다 보십시오. 마리아는 예배하는 자였습니다. 겸손하게 엎드렸습니다. 마르다는 내 능력을 가지고 예수님을 대접해보겠다는 교만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을 보셨습니다.

교만이 죽어야 겸손의 그릇에 하나님의 은혜가 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능력과 은혜를 받았다 할지라도 겸손함 가운데 엎드릴 줄 아는 믿음의 종 되기를 바랍니다.

-전병욱 목사(삼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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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큰 슬픔이 지나가고 ...
도미니카(공) 최광규/선자 목사 선교소식


주님의 이름으로 동 역자님께 안부 인사 올립니다.

큰 슬픔이 지나가는 아이티의 하늘과 바다는 너무도 맑고 푸르며 밤 하늘의 별은 이제껏 보지 못한 크기로 밝게 빛납니다. 아이티 형제들의 슬픔, 절망 그리고 아픔을 외면이라도 하듯이 영롱한 별빛입니다.

지난 6월 29일, 허리케인 알렉스(Alex)가 지나가는 시기에 우리는 예정된 아이티 구국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준비하는 기간 동안 서로 다른 의견과 목적 그리고 문화차이로 저희 부부가 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어야 했습니다.
지진으로 폐허간 된 아이티는 같은 섬에 위치한 이웃나라이지만 언어가 다르고 문화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더구나 그 나라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큰 행사를 단 기간에 준비하는 데는 장애가 많았습니다.

행사 당일 아침 7시부터 시작되어 오후 1시까지 6시간 동안 진행된 나라를 위한 기도회에는 교파를 초월한 백 여명의 목회자들과 교계 지도자들, 그리고 아이티의 현직 3성장군인 경찰청 차장 등이 참석하였고, 아이티 교회 지도자들이 교대로 순서에 따라 인도하였습니다. 찬양하고 회개하며 주의 은혜를 구하는 순서가 이어졌고 마지막에 최광규 목사와 최선자 목사가 기도회의 목적을 설명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격려하며 도전하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6시간의 집회에 열중하는 성도들

말씀전하는 최광규목사


5천명의 성도들은 장 시간 동안 요동 않고 자리를 지켰으며 주님의 선하심을 기대하며 더 이상 아이티에 재앙이 없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이번 성회를 통해 또 한번 자연의 주인이신 주님의 기적을 경험한 것은 귀한 은혜였습니다.
전 날까지 내리던 폭우는 멕시코 유카탄을 향해 지나 갔고 비가 오지 않으면 삼복의 더위(섭씨 40도이지만 체감온도는 44도)인 아이티에 집회시간 내내 주님께서 시원한 바람으로 더위를 식혀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집회 후 아이티 교회 지도자들은 이번 같은 구국 기도회를 이 나라 공휴일인 11월 2일경에 다시 개최하자고 요청해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집회 때에는 3일간, 오전에는 목회자 세미나를 열고 밤에는 대중 집회를 열자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금년에는 저희 선교 목회 일정이 허락지 않아 내년에 계획하자고 미루었습니다.

지난 6월 15-16일에는 도미니카 각 지역에서 모인 160명의 교계 리더들이 도미니카 기도자 학교(교장 최광규목사)에 모여서 도미니카를 기도로 살리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이 기도운동을 앞으로 도미니카 전역으로 확산하자는데 동의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기도해주시고 헌금해 주시는 동역자님께 마음의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 7월 2일부터 올 여름 단기 선교 팀을 맞아 여름 사역을 시작합니다
단기선교 팀으로 방문하는 교회마다 은혜와 도전을 받고 돌아가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이번 단기선교사역이 우리 교회와 지교회들에게 큰 축복이 되도록 기도부탁 드립니다.

-지난6월 시작한 아이티 교회 건축하는 사역이 잘 진행되도록 기도 부탁합니다.
-저희 부부의 영육간의 강건함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7월16-17일에 있을 알카리소스 교회(가나안교회)의 부흥회를 위해 기도 부탁 드립니다. 강사로 방문하는 아이티 목사님(Rev.Joseph Batalla)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그럼 동역자님의 가정과 교회마다 주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도미니카로 보냄을 받은
최광규/선자 드림

VISION 2020
"Hoy para Dominicana, y Manana para el Mundo"
"Que Se detenga la calamida de Nac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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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160명 기념촬영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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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카테고리 없음 2009. 2. 28. 10:07


 

"사순절(Lent : 四旬節) "
2002-06-07 13:04:20   read : 538



1. 어 원

사순절을 뜻하는 Lent는 앵글로 색슨 족의 언어의 '봄'을 의미하는 Lang에서 유래했으며 독일어 Lenz와 같은 명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40일간의 기념일'이라는 뜻의 희랍어인 '테살코스테'를 따라 사순절로 번역했다. 이 절기는 부활절을 위한 신앙의 성장과 참회를 통한 영적 준비의 시기이며 교회력 중에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때이다. 이 절기는 AD 325년 니케아 총회(council of Nicea) 부터 시작되었는데 특별한 참회일인 속죄일(Ash Wednesday)에서 시작되어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의 제기(劑期) 즉 부활절 전 6주간으로 거룩한 금요일의 슬픔과 비극 가운데 끝난다.

그러나 교회 역사 속에는 40일이 아닌 기간 동안 사순절의 의미를 갖는 절기가 지켜지는 경우도 많았다. 과거 동로마 교회에서는 부활절 준비 기간으로 7주를 지키되 토요일은 제외하고 일요일도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왕으로 입성하신 '성 주일'만을 포함해 36일을 이 기간으로 지켰었다. 서로마 교회도 6주간을 지키되 주일을 제외한 36일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기간으로 정했다. 이런 관습은 니케아 회의 후에도 계속되어 얼마 동안은 오늘날과 같은 40일간의 절기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후 7세기 무렵 서로마 교회가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절의 첫 주일까지의 4일을 포함하면서부터 오늘날과 동일한 40일간의 사순절을 철저히 지키게 되었다.

2. 시 기

올해의 사순절의 시작은 2월 13일 수요일부터이다. 사순절은 언제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데 이 수요일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즉 '속죄일' '성회 수요일'이라고 부른다. 성경에서는 재(Ash)를 슬픔과 죄에 대한 회개를 상징한다. 전년도 종려 주일에 사용한 종려 가지를 태워서 재로 만들어 두었다가 이 재(Ash)를 수요일에 신자들의 이마에 감람나무의 재나 숯덩이로 십자가를 그었다. 이 날부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부활절까지 참회가 계속된다. 이 기간 동안 금식하며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으며 40이라는 숫자는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다. 40년 간의 광야 교회의 생활, 예수님의 공생애를 위한 광야의 40일간의 금식, 시내산의 모세의 40일 금식과 십계명, 무덤 속에서 40시간을 계신 예수님, 부활에서 승천까지 주님의 사역기간, 등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금식으로 준비했다.

3. 유 래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성만찬을 준비하면서 주님이 겪은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가진 금식을 행하던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준비하기 위해 유월절 전에 금식을 행했는데, 초대 교회 성도들도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준비라는 차원에서 구약의 유월절 만찬을 새롭게 해석하여, 주님께서 제공하신 성찬식에 앞서 금식을 행했던 것이다. 40일 동안 금식하였으며 사순절 기간 하루 한 끼, 또는 저녁 식사만 허락하되 육식은 물론 생선 정도의 육식까지도 금하였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하여 새 생명의 탄생을 연상케 하는 달걀이나 우유 등의 음식까지도 규제할 정도로 매우 엄격하게 지켰다고 한다. 그러나 9세기 이후 금식 규정이 완화되기 시작하여 15세기에 와서는 식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 되었으나 의식적인 금식보다는 성령의 열매인 절제와 경건의 훈련을 통한 내적인 자기 정화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접근하여 그리스도의 삶을 맛보며 주님을 본받는데 부적합한 집착들을 제거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는 성도라면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외형적인 형식만을 닮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이면에 숨겨진 내면적인 의미를 맛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사순절이 끝나는 부활절에는 새로 영접한 성도들의 성례식이 있게 되는데, 세례 예비자들이 이 때 세례와 입교(入敎)를 받기 위하여 이들을 추천한 보증인들과 함께 두 주간의 준비 기간을 두고 금식과 기도로 죄의 회개와 신령한 훈련에 참여하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 이때 부활절에 있을 세례식을 준비하는 세례 예비자들은 물론 이미 성도로 영접된 사람들 모두 금식과 기도 생활에 힘썼다. 사순절 행사로서의 금식은 수세기 동안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다. 사순절의 식사로는 저녁 전에 한 끼 식사만이 허용되었으며, 물고기와 고기 등의 육류는 물론 우유와 달걀로 만든 음식까지도 금지되었었다. 그러나 8세기 이후로 가면서 이 규정은 많이 완화되기 시작해 14세기에는 금식 기도 대신에 절식 기도가 행해졌으며 , 15세기에 와서는 정오에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 관습이 되었고, 저녁 시간에도 간단한 식사인 콜레이션(collation)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사순절 기간 동안에 연극, 무용, 연애 소설 읽는 것과 같은 오락 행위는 여전히 금지되었으며, 화려한 옷을 입는 것, 좋은 음식을 먹는 것 등 호화 생활 등도 자제되었다. 대신 자선과 예배 참석, 기도 등이 권장되었다.

4. 관 습

1. 금식 기도
요즘 와서는 우리 개신 교회가 사순절을 지키는 것이 마치 로마 카톨릭의 의식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도 있는데 물론 역사적으로 동방교회는 7주 동안 금식하게 하였으며 서방교회는 6주 동안 금식하게 하여 의식화되어 내면의 깊은 뜻이 퇴색한 것은 인정하나 금식은 사순절의 가장 중요한 관습이었다. 시기와 장소에 따라 금식의 기간과 그 엄격성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구속 사역을 기리고 하늘 나라의 백성 됨을 감사하며 그 백성 된 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돌이키게 하는 금식 기도는 초대 교회 시대부터 행해졌었다. 오늘날 행해지는 금식 기도는 엄격했던 초기의 형태에서 많이 변형되어 절식(節食) 기도의 형태로 행해지고 있다. 작금 은혜를 사모하는 교회들이 신앙의 대 선배들이신 모세(출 24:18; 신 9:9; 10:10) 엘리야(왕상 19:8), 그리고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마 4:2; 눅 4:1-2)의 40일 금식에 대한 믿음의 자세로 이 기간 그리스도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고 그의 고난의 의미를 살피며 남은 고난을 우리의 육체에 채워 가며 그의 죽으심을 선포하고 성도들의 신앙적인 자세를 가다듬고 절제와 단식을 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죄악을 발견하여 자백하고 사함 받는 기회로 삼아 은혜가 더욱 넘치는 기회로 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2. 이마에 십자가 그리기
종려나무를 태운 재 혹은 숯으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는 풍습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Ash Wendnesday)에 행해지던 풍습이다. 이때 사용되는 재는 지난해 종려 주일에 사용했던 종려나무를 태워 만든 것으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대속의 죽음으로 이끌었던 인간의 죄에 대한 참회의 표시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렸다. 이는 또한 아름다운 풀과 꽃이 잠깐 후면 마르고 시들 듯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도 잠시 잠깐 후면 사라지고, 한 줌의 흙에서 왔던 우리도 또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엄숙한 인생의 교훈을 담고 있다. 또한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우리의 삶의 자세를 정비한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가지고 있다.

3. 구제와 자선
사순절에는 범죄한 인류를 위해 고난받으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의미에서 불우한 이웃을 위한 구제와 자선이 행해졌다. 특히 사순절에 행해지는 금식 기도를 통해 주님의 고난에의 동참, 불의한 자신에 대한 회개뿐만 아니라 불우한 이웃의 배고픔과 가난을 생각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실천에 있음을 기억할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사랑을 본받아 이를 실천함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라 할 것이다. 한편 어떤 곳에서는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에 3일 정도의 '사육제'(canival)가 거행되었었는데 이 사육제는 원래 '육이여'(carni), '안녕'(vale)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교적인 영향을 받은 이 축제의 기간 동안에는 금식하는 사순절과는 대조적으로 술과 고기를 먹었으며, 가장 행렬 등의 인간의 쾌락 본능을 자극하는 행사들이 행해졌으며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오히려 더 확산되어 수개월 동안 행해지는 유럽 국가들도 있다. 그러나 1517년 종교 개혁 이후 종교 개혁자들은 형식적이며 지나치게 많은 교회의 의식 절차들을 폐지했는데, 이때 사순절에 관계된 많은 의식들도 간소화 내지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회개의 시기로 지켰던 중세 교회의 사상은 받아들여 공동기도문 중 사순절 기도문의 주제를 회개로 삼는 등, 계속해서 이 절기를 기념하고 있다.

4. 사순절 행사
그러면 교회들은 사순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첫째, 예배를 경건하게 드릴 수 있도록 성결하게 몸과 마음을 준비를 해야 한다. 주일을 범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고, 예배를 드릴 때마다 회개와 헌신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둘째, 사순절은 자기 근신과 금식의 기간, 즉 영적 훈련의 기간으로 죄 자백에 주력하여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 고난과 죽음으로 향해 가는 순례의 기간이며 자기를 부인하고 스스로 죽는 것을 배우는 기간이다. 매일 시간을 정하여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여야 한다. 특별한 기간을 정해서 금식함으로서 자신을 절제하고, 자신을 죽이는 훈련을 한다. 오락을 금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금식과 절제를 통하여 모아진 금액을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한다.
셋째, 원래 사순절이 부활절 세례를 받기 위하여 자원자를 준비시키는 기간인 것을 감안하여 이 기간 동안 성경공부에 빠지지 말고 세례와 학습자는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또한 이 기간 동안에는 전도를 함으로 십자가의 구속의 의미를 친구들에게 전해야 한다. 그리고 온 가족이 모여 가정 예배를 드리고 이웃을 초청하여 음식을 나누는 일도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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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신뢰할 수 있는 목자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아쉬움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위로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의 집에서 영원토록 살겠습니다. (시편 23)


따뜻한 위로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예수께서 입을 열어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함을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마태복음서 5: 1-12)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

아뢰었다.
"내가 고통스러울 때 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스올 한가운데서 살려 달라고 외쳤더니, 주께서 나의 호소를 들어주셨습니다. 주께서 나를 바다 한가운데, 깊음 속으로 던지셨으므로, 큰 물결이 나를 에워싸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내 위에 넘쳤습니다. 내가 주께 아뢰기를 '주의 눈 앞에서 쫓겨났어도, 내가 반드시 주님 계신 성전을 다시 바라보겠습니다' 하였습니다. 물이 나를 두르기를 영혼까지 하였으며, 깊음이 나를 에워쌌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휘감았습니다. 나는 땅 속 멧부리까지 내려갔습니다. 땅이 빗장을 질러 나를 영영 가두어 놓으려 했습니다만, 주 나의 하나님, 주께서 그 구덩이 속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셨습니다. 내 목숨이 힘없이 꺼져 갈 때에, 내가 주님을 기억하였더니, 나의 기도가 주께 이르렀으며, 주님 계신 성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주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저버립니다. 그러나 나는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주께 희생제물을 바치겠습니다. 서원한 것은 무엇이든지 지키겠습니다. 구원은 오직 주님에게서만 옵니다."  (요나서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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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성경 2008. 12. 28. 14:38

○, ×문제.

1. 사도행전은 신약의 역사서다(○)

2.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믿는자들의 핍박자에서 어떻게 전도자로 바뀌게 된 배경인 다메섹 도상의 체험 설명이 3번 나와있다.(9,22,26) (○)

3.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까지 40일을 이 땅 가운데 계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4. 가룟유다 대신 사도의 후보로 오른 자는 요셉과 맛디아인데 기도 후 요셉이 제비뽑아 선출되었다.(×)

5. 말세에 모든 육체에 구분없이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을 예언한 선지자는 아모스이다.(×) 요엘!

6. 오순절 성령강림 시 베드로의 설교의 주제는 예수의 죽으심과 재림이다.(×) 부활!

7. 사도행전 4장엔 베드로의 정기적인 기도가 언급되어 있다.(×) 3장

8. 헌금을 잘못해서 죽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남매지간이다.(×) 5장

9. 예루살렘 교회가 일곱 집사를 뽑은 이유는 전도를 잘 시키기 위해서였다.(×) 구제

10. 복음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사람은 스데반이었다.(○)

11.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헤롯왕에 의하여 순교당했다.(행12:1-2) (○)  

12. 바울은 로마에 와서 한 셋집에 유하며 2년동안 복음을 전했으나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0)



1. 예수님의 승천 후 제자들을 중심으로 120명의 문도가 전혀 힘쓴 일은 무엇인가? 3

1) 말씀,  2) 전도,  3) 기도,  4) 찬양,  


2. 사도행전은 누구에게 보내진 글인가? 4

1) 누가,  2) 사도바울,  3) 베드로,  4) 데오빌로


3. 사도행전 1장에 나온,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     )으로 세례를 받으리라’에서 (    )에 들어갈 말은? 2

1) 하나님,  2) 성령,   3) 예수님,   4) 요한


4.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저으로 올라가다가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을 고친 사건은 성전의 어떤 문에서 일어났는가? 1

1) 미문,  2) 뒷문,  3) 옆문,  4) 중앙문


5. 바나바를 설명하는 말이 아닌 것은?(행4:36,37) 3

1)요셉,  2) 구브로,  3) 유다족,   4) 권위자


6. 사마리아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전도자의 이름은?(행8:4) 3

1) 스데반,   2) 바울,   3) 빌립,   4) 니고데모



7. 사마리아 성의 마술사인 시몬이 빌립에게 세례를 받고 후에 돈으로 사려고 했던 것은? 1

1) 성령,   2) 성경,   3) 마술책,   4) 지도


8. 당시 초대교인들이 어디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불리우게 되었는가?(행11:26)  1

1) 안디옥,   2) 예루살렘,   3) 다메섹    4) 욥바


9. 바울과 바나바는 어느 교회에 의해 이방선교사의 안수를 받았는가?(행13:3) 1

1) 안디옥,   2) 예루살렘,  3) 다메섹,    4) 욥바


10.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출발시 동행인은?(행15:40) 2

1) 바나바   2) 실라  3) 마가   4) 백제


11. 어디교회 성도들인가? 우리들은 매우 신사적이란 말을 들었다. 우리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맔흠을 받고 이 말씀을 날마다 상고하였다. 3

1) 빌립보교회   2) 안디옥교회  3) 베뢰아  4) 고린도교회


12.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며 사역한 기간은? 2

1) 1년,   2) 1년 6개월,   3) 2년    4) 2년 6개월


13. 바울의 직업은? 1

1) 장막 짓는 일,   2) 소설가    3) 과학자    4) 법관


14.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성경을 많이 보았으며, 예수에 관한 것도 잘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잊자, 이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자세히 가르쳐준 사람은 누구인가?

(행18:24-28) 2

1) 루디아   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3) 유두고  4) 아가보


15. 바울이 3년간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곳은? 1

1) 에베소  2) 고린도  3) 루스드라  4) 로마


16. 바울이 로마의 시민권을 얻은 방법은? 1

1) 출생시   2) 학생시절   3) 로마여행 중   4) 선교여행 중

17.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할 때에 그 입을 치라고 명한 사람은? 3

1) 총독 벨릭스   2)  변호사 더둘로   3) 대제사장 아나니아   4) 왕 헤롯

18. 사도행전 27장에 나오는 유라굴로는 무슨 이름인가? 3

1) 배이름,  2) 폭설   3) 광풍   4) 기근


19. 바울의 로마 호송을 맡은 백부장은? 2

1) 고넬료  2) 율리오  3) 벨릭스   4) 베스도


20. 로마로 바울을 호송할 때 배에 탔던 사람의 수는? 1

1) 276명   2) 286명   3) 296명 4) 306명


21. 바울이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된 것을 제외하면 바울은 몇 번의 선교여행을 하였는가? 2

1) 2번,   2) 3번,   3) 4번  4) 5번


-중급-

1.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어디에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그 순서를 기록하라.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


2. 행4:12을 쓰시오!(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3. 초대교회의 일곱집사 중 3사람을 써라!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


4. 스데반이 순교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기도는?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5. 에디오피아 내시가 병거를 타고 가며 성경을 읽었으나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구약성경의 어디 부분을 읽고 있었는가?(행8:26-40) 이사야


6. 예루살렘의 제자들이 사도바울을 의심하고 믿지 않자 누가 바울을 소개하며 중재하였는가? 바나바 


7. 다메섹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울은 사흘동안 보지 못했으나 누구에게 찾아가 안수를 받았는가?(행9:17-19) 아나니아


8. 나는 누구인가? 나는 가이사랴의 이달리아대 군대의 백부장이다. 난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들었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와 구제를 귀하게 보셔서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 나는 베드로에게 세레를 받았다.(고넬료)


9.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내려온 예언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중 누가 온 세계에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는가?(행11:27-28) 아가보


10.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잡힌 베드로를 위해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 집에서 성도들이 기도 중에 있을 때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베드로임을 처음 알게된 사람은?(행12:6-)로데


11. 바울이 1차 선교여행 중 돌에 맞아 죽었던 것처럼 되었던 일은 어디에서 일어났는가?(행14:19)

루스드라


12. 나는 누구인가? 나는 루스드라 출신이다. 나는 바울의 동역자이다. 나의 외할머니는 로이스며, 어머니는 유니게이다. (디모데)


13. 두아디라의 자주장사로 빌립보교회의 초창기 신자는?(행16) 루디아


14.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강론할 때 이적들이 나타났는데 바울의 소지품 중 어떤 것을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며 그 병을 낫게 되었는가?(행19:11-12) 손수건과 앞치마


15.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체포되었을 때 그는 1차 빌라도 총독에게, 2차 벨릭스 총독에게, 3차 베스도 에게 심문을 받았다.(×) 벨릭스, 베스도


16. 로마로 압송되던 바울이 탄 배가 파선하여 한 섬에 도착했다. 그 섬의 이름은? 멜리데

17. 로마로 압송되던 바울일행이 도착한 섬의 추장은? 보블리오

18. 사도행전은 총 몇장인가?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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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어떤 분이시고 어떤 일을 하시는가

성령과 성령의 사역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칠 것이 없다. 성령께서는 성자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사역의 효과를 우리에게 적용시키시고, 우리의 삶에 활기와 능력을 공급하여 구원이 완성되도록 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지금은 성령의 시대’라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늘 있어 왔다. 그러나 성령과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성령을 하나의 특별한 운동력으로 생각하거나, 신약시대에만 역사하는 분인 것처럼 말하거나, 특별한 은사를 주시는 것만이 성령께서 하시는 모든 일인 것처럼 말한다.

이제 성령은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하시는지 살펴보자.

1.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1) 인격체이시다
성경에서 성령을 가리키는 말은 거룩한 “바람 또는 호흡”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령을 대단한 결과를 생겨나게 하는 하나의 특별한 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성령을 특별한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다가 원하는 대로 나누어주거나 받는 귀한 물건에 불과한 것처럼 취급한다. 미친 듯 주문을 외우다가 신에 접한 무당이 하는 것처럼, 자기가 애써 노력하면 성령에 감동을 받아서 희한한 일들을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성령은 신기한 힘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인격체이시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전 2:10).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시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롬 8:26). 우리 안에 거룩한 뜻을 두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시려 하시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빌 1:6). 성령께서는 이처럼 지 정 의의 활동을 하시는 인격체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을 특별한 물건이나 에너지처럼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이시다
성령은 삼위일체 중 제삼위가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성령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성경에 여러 가지 형태로 밝혀져 있다. 성령을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행 5:3,4). 성부 성자 하나님과 더불어 나란히 언급을 함으로서, 성령께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광을 돌렸다(마 28:19). 편재, 영원, 전지, 전능 등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속성을 가지신 분으로 말씀 했다(욥 26:13, 시 139:7,8, 사 40:13, 고전 2:10).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마땅히 하나님으로 알아,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성령을 우리가 필요에 따라 주고받는 우리보다 낮은 대상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다스리시는 높으신 하나님으로 대해야 한다. 성도는 성령을 부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성령의 다스림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할 위치에 있을 뿐이다.

3)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 분이시다
요 15:26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했다. 또 요 16:7은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 할 것이요 내가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성부 그리고 성자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분이시다. 성령께서 성부 성자로부터 나오셨다는 것은, 성부 성자와 구별이 있으면서도 성부 성자와 더불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계심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령은 “하나님 영” “주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불려진다. 아버지 안에 아들이, 아들 안에 아버지가 계시는 것처럼, 아버지 안에 성령이 또 아들 안에도 성령이 서로 내주(內住)하는 형태로 거하고 계시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은 서로 구별되는 인격체이면서도, 서로 분리될 수는 없는 한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관계를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2. 성령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
성자께서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하시면서 열심히 일을 하셨다. 성령께서도 성부 성자처럼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신다. 우리는 성령께서 하고 계시는 많은 일들을 일반사역과 특별사역으로 나누어 설명해 볼 수 있다. 일반사역이란 성령께서 모든 피조물이 창조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시는 사역을 말하고, 특별사역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말한다. 성령의 사역은 어느 경우이던, 일방적으로 임하셔서 아무런 대가 없이 유익을 가져다주려는 사역이기 때문에 은혜로운 사역이다. 그래서 일반사역은 일반은혜, 특별사역은 특별은혜라고도 불려진다. 이제 각 사역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1) 일반사역
생명의 잉태와 유지
성령께서는 동식물과 사람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일을 하신다(시 33:6). 생명은 양성(암수)의 결합으로 생겨난다. 그러나 양성의 결합은 성령께서 생명을 잉태하게 하실 때 사용하시는 수단에 불과하다. 성령께서 생명을 주시지 않으면, 제아무리 양성의 결합이 있어도 생명이 생겨나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은 태의 열매는 여호와의 기업과 상급이라고 했다(시 127:3). 또 성령께서는 잉태된 생명을 유지하는 일도 하신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성령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생명은 죽고 만다. 성령께서는 뜻이 있어 생명을 잉태케 하시고, 그 뜻이 이루어지면 그 생명을 거두어 가신다. 그러므로 생명과 관련한 성령의 사역을 아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위로와 감사와 소망을 가지게 된다.

재능 부여
성령께서는 피조물에게 재능을 부여하여 각기 적절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서, 자연계 안에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하신다. 사람의 지혜, 지식, 손재주, 글재주, 능한 언변, 달리기 등 각종 재능도 다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그래서 남다른 재능으로 회막을 만들고 장식했던 브사렐이나 오홀리압은 성령에 충만한 사람으로 불렸다(출 31:3,6). 

도덕질서 유지
성령께서는 피조세계에 도덕질서가 유지되도록 하는 일도 하신다. 인간은 최초 범죄 이후 점점 더 악하여져서 온갖 악행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극도로 악한 수준에 이르지 않고 지금의 도덕수준 정도라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성령께서 악은 억제가 되고, 선이 증대되도록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양심, 여론, 법률, 자연현상, 섭리적 상벌 등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도덕질서가 유지되도록 하신다.

2) 특별사역
계시, 영감, 조명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계시하시고(벧후 1:21), 계시된 내용이 오류가 없이 기록되어 보존될 수 있도록 영감을 하시고(딤후 3:16),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 바르게 깨달아지도록 조명하는 일을 하신다(요 16:13). 이는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계획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하시는 일이다.

성육신
성령께서는 구원 계획이 성취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에 육체로 잉태되게 하셨다(마 1:20).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는 과정에서 아버지 요셉을 빼고 성령께서 직접 관여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원죄로부터 자유하여 죄가 없는 구세주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히 9:14).

구속의 개인적 적용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구속의 효과가 믿는 사람들 속에 개인적으로 적용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세례(고전 12:13), 충만(행 2:4), 내주(행 14:16,17), 기름부음(요일 2:20), 인치심(엡 1:13), 보증(고후 5:5), 증언(롬 8:16), 중재 기도(롬 8:26,27), 인도(요 16:13) 하는 등의 일을 하신다. 이 때문에 성도는 성령님과 더불어서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교회의 설립, 유지
성령께서는 공적으로 교회를 설립케 하고 유지케 하여 구속의 적용이 넓게 또 오래 계속되도록 하는 일을 하신다(엡 2:22). 그래서 성경은 교회를 “성전의 전”이라고도 부른다(고전 3:16).

3) 영적 은사
성령께서는 특별한 경우 특별한 사람에게 영적인 은사를 주시는 일을 하신다. 고전 12장은 성령께서 주시는 영적 은사들을 지혜, 지식,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의 통역 등으로 소개하고 있다.

영적 은사들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가진 은사를 받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은사들을 동시에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무런 은사도 받지 못하기도 한다. 또 영적 은사는 가졌다가 소멸하기도 하고, 없다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므로 영적 은사는 모든 사람의 구원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다만 복음을 전함에서나 구원의 완성에 이르는 과정, 즉 성화의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부수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해도 구원받을 수 있고, 지식의 은사를 받지 못해도 성경을 통한 구원의 도리를 아는 데는 전혀 부족할 것이 없다. 한편 강도는 방언을 하지 않고도 구원을 받았다. 대부분의 성도는 예언이나 병 고치는 은사를 받지 못했지만 구원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은사를 지나치게 의지하거나, 남다른 영적 은사를 받았다 하여 영적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다스림과 인도함에 순종을 해야 한다. 마치 어떤 물건을 다루듯 성령을 대함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근심케 해서는 안 된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우리 각 사람 안에서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계신다. 성경을 조명하여 바른 깨달음을 얻게 하시고, 충만케 하여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고, 기름을 부어 담대하게 하신다. 때로는 어떤 사람에게 예외적인 영적 은사를 주어, 복음 사역과 구원 완성에 유익이 되게 하시기도 한다. 우리는 이처럼 날마다 성령의 사역 안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더욱 효과적으로 일하실 수 있도록 성령님을 바로 알고 바로 대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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