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레스쿠 목사는 어린 아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구타당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다.

그의 육신도 모진 구타와 고문으로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만, 루마니아 경찰이 그의 감방에 굶주린 쥐들을 집어넣은 터라 쥐들의 공격을 당할까봐 벌써 보름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루마니아 경찰은 플로레스쿠 목사에게서 지하교회 교인들의 명단을 입수하여 예수도당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플로레스쿠 목사를 더 이상 구타하고 고문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 열네 살밖에 되지 않은 그의 아들 알렉산더를 잡아다 때리기 시작한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가련한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그 아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고, 지하교회 교인들이 있는 곳을 불지 않으면 소년을 때려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플로레스쿠 목사는 거의 반미치광이가 되어 공산주의자들에게 아이를 때리는 것을 이제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그러고는 아들을 부르며 말했다. “아들아, 저들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겠구나. 네가 구타당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알렉산더의 얼굴은 검푸른 멍으로 퉁퉁 부어 있었고 코와 입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런 아이가 제 아버지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아버지! 그리스도의 배신자를 아버지로 두는 수치를 제게 안겨주지 마세요! 마음을 강하게 다잡으세요! 저들이 저를 죽이면 이 입술로 예수님을 부르며 죽을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소년의 용기에 격노했다. 분을 참지 못한 그들은 그 아비가 보는 앞에서 소년을 때려죽였다. 열네 살 소년 알렉산더는 자신의 믿음을 지켰을 뿐 아니라, 자기 아버지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세상에는 과연 정의가 없단 말인가?
우리는 순결한 사람들이 끔찍한 일을 당하는 것에 대해 읽을 때 경악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악을 행하는 자들이 순결한 그리스도인들을 잔혹하게 고문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믿음의 기가 꺾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자비의 위안을 갈구하지만 응답이 지체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는 낙담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는 정의가 없는 것인가?”이런 우리의 외침에 성경은 두 가지 원칙을 가르친다. 그것은 ‘있지만, 아직 아니다!’이다. 세상에 정의가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악을 행하는 자들 가운데 지금 이 땅에서 정의의 심판을 받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정의를 세우실 하나님의 권능의 손은 아직 이 땅에 임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지막 때를 위해 예비되어 있다. 기다리다가 낙심하지 말라! 아무도 그분을 저지할 수 없다!

- 순교자의 소리(VOM), 주를 위해 죽다

† 말씀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_히브리서 10장23,24절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_이사야 42장4절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_요한계시록 6장9~11절

† 기도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땅에 궁극적인 정의를 세우실 그 날이 어서 속히 오기를 소원합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정의가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주의 이름으로 박해 받는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그들에게 주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을 덧입혀 주셔서 그 험난하고 힘든 상황을 넉넉히 이겨내게 해주소서.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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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목사의 성서 속 도시 이야기]  로마와 서바나
 
바울은 로마에 복음 전파를 간절히 원했고 하나님은 그런 바울을 죄인의 몸으로 로마로 입성케 했다. 그리고 더욱 간절히 가기 원했던 서바나는 결국 가지 못한 채 로마의 아피아 가도에서 목이 잘려 순교했다.

로마는 나라 이름은 물론 수도 이름도 된다. 도시로서의 로마는 현재 이탈리아의 수도이며 옛 이베리아 반도의 중앙에 있던 로마 제국의 수도이다. 제국으로의 로마는 예수님 당시에 동으로는 유프라테스 강,서로는 라인 강,남으로는 지중해,북으로는 동부 유럽에 미치는 광대한 영토를 소유하였다. 전성기에는 유럽 대륙을 대부분 석권하였으며 아프리카와 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한 때도 있었다.

BC 735년에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쌍둥이의 한 사람인 로물루스가 건국하였다는 전설로 출발한 고대 로마는 세계를 지배했다. 로마의 역사가 세계에 준 큰 유산은 법률과 정치,고대 그리스의 문화와 윤리,철학을 서방에 전하는 중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국호를 이탈리아라 하고 그 판도도 유럽의 남부 중앙에 돌출한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와 사르데냐 섬으로 이루어졌다. 로마는 지중해에 접하고 기후가 맑고 온화해 유럽의 낙원이라 불린다. 또한 이르는 곳마다 로마 시대의 유적과 예술품들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로마가 중요한 것은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용하여 그 세계로 통하는 로마의 길을 통해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그때의 도로인 에그나티아(로마 때 포장도로)가 네압볼리 빌립보 등에 아직까지 남아있다. 성서적으로 보면 로마는 바울이 죄인의 몸으로 복음을 전한 곳이며(행 23:11) 순교한 곳이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곳 역시 로마다.

로마는 땅만 파면 유적이 나온다는 말처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유적이 산재해 있다. 그것을 한정된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로마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곳은 역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비참하게 죽음을 당한 콜로세움,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을 들 수 있다. 그밖에 베드로 쇠사슬 교회,바울 무덤 교회,‘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의 배경이 되는 쿼바디스 교회,바울이 목이 잘려 순교한 곳에 세워진 바울 세분수 교회,그리고 바울이 죽기 전에 갇혀던 마메르틴 감옥 등이다. 이 모든 장소들은 오늘 내가 성지를 찾고 그곳에서 받았던 은혜를 함께 나누는 일을 하는 데 새로운 힘을 주기에 충분했다.

로마를 몇 차례 방문한 후에야 어렵게 땅끝 마을인 서바나 지역을 방문할 수 있었다. 서바나(Spain)는 오늘날 포르투갈과 스페인 지역을 가리킨다. 바울이 그토록 가고 싶어했으나 가지 못한 곳이다(롬 15:22∼24). 또한 요나가 욥바에서 배를 타고 도망치려 했던 다시스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 서바나의 맨 끝인 포르투갈의 서쪽 끝 해안가 위에는 십자가 탑이 세워져 있으며 그 탑 밑에는 반도의 최남서쪽임을 알려주는 위도와 경도가 표시돼 있다.

이제 마지막 연재를 마치며 성서의 서바나 지역에 있는 땅끝 마을인 포르투갈 로카 곶에서 로마의 옥에서 쓴 바울 사도의 말씀을 상기해본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그리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주님의 명령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연재를 마친다.

그동안 지면을 통해 성서속 도시들 중에서 찾기 힘든 곳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독자들과 함께 찾아봤다. 아직 소개하지 못한 익숙한 성서속의 도시들과 생소한 도시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런 도시들은 홈페이지(photobible.co.kr)에서 보시기 바란다.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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