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성도간의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성을 가지고 있어서 구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것을 뛰어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 나타날 때 가능합니다. 성도 간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에베소 교회를 향해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_계 2:4 

서로 간의 뜨거운 사랑을 나눈 에베소교회인데, 그 부분을 책망받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겨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기도생활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_엡 1:16

생활의 달인에서 나타난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삶의 현장에서 수없이 반복하면서 체득된 삶의 모습입니다.기도의 달인이 배출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실 때,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_렘 33:2-3

When we work, we work. When we pray, God works.

모든 일이 나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일하고 모든 일이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처럼 기도하자(윌리엄 부스)

셋째, 성령님을 구해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를 향한 사랑을 기도로 표현했습니다.무엇보다 그는 기도하면서 본질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열매를 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님 자체를 구하는 것입니다.

다시 꿈꾸기를 원합니다. 사랑을 회복시켜주시길 원합니다.나에게 사랑을 주시옵소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격려의 입술이 내 안에 흘러넘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정이 회복되기를 원하는데, 본질을 구하기를 원합니다.

Posted by 설록차향
,

땅(地)과 인간(人) 그리고 하늘 나라(天)

일곱 개의 '자연 비유'와 이미지 네트워킹

I. 들어가는 말
일군의 예수 비유들은 (1) 땅과 (2) 씨 또는 그것이 자란 나무(식물) 그리고 (3) 인간을 기본적인 요소로 등장시킨다(은밀히 자라는 씨, 겨자씨, 씨 뿌리는 자, 곡식과 가라지). 씨의 소재는 변주되어, 그 자리에 보화가 놓이기도 하고(밭에 감추인 보화) 씨 없이 나무만 놓이기도 한다(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또는 씨든 나무든 아예 생략된 채 땅을 차지하기 위한 끔찍한 싸움을 소개하기도 한다(포도원의 악한 농부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모든 자연 과정 및 인간 문화를 통해 설명된다. 이 논문이 "자연 비유"라 부르는 예수의 일곱 비유는 그 문학적 요소들과 구성 그리고 제시하고자 하는 주제에 있어 어떤 통일성을 보이고 있다. 나아가 예수의 사유에서 땅의 일(地: 自然)과 인간의 일(人: 文化)이 무엇과 같은지, 하늘 나라(天)는 이 둘의 관계에 따라 어떻게 정의되는지 그 단서를 제공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우주의 세 바탕(三才)이 되는 하늘 나라(天), 땅과 자연(地), 및 인간(人)이 서로 어떤 관련을 갖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이 논문은 개별적 비유에 등장하는 제반의 문학적 요소들에 대한 상징성을 연구할 것이다. 각 요소들의 상징성은 적어도 (1) 범종교적 및 문화적 차원에서의 보편적 용례 그리고 (2) 비유 및 아포리즘 등 예수의 '진정한' 말씀 전승의 두 차원에서 비교 및 보완적 관계에서 추구될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일곱 개 자연 비유에서 각각 하늘(天)과 땅(地)과 인간(人)의 세 영역에 나타나는 문학 요소의 이미지와 상징을 통합적으로 고찰할 것이다.
 이 논문은 몇 가지 전제 위에서 연구를 수행한다. 우선, 화자(예수)의 한 작품(비유)에 나타나는 특정한 상징과 이미지는 동일한 화자의 다른 작품에서도 동일한 의미와 가치로 나타날 수 있다고 전제한다. 두 개 이상의 비유나 혹은 다른 '진정한' 예수전승에서 어떤 동일한 문학적 요소가 나타난다면, 그 요소는 동일한 의미의 이미지와 상징을 공유한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수의 시적(詩的) 상상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타나는 새는 겨자씨의 비유에 등장하는 새와 동종(同種)의 새고 예수의 다른 가르침(경구)에 나타나는 새와 다르지 않은 존재라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자는 일곱 개의 자연 비유들을 개별적이기보다는 통합적으로 관찰할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만일 개별적 비유의 경계를 넘어 이미지와 상징의 '네트워킹'을 시도할 수만 있으면, 해석자는 한 비유를 해석하기 위해 다른 비유에서 확인된 이미지와 상징을 끌어올 수 있다. 나아가 일곱 개의 자연 비유들을 '연속적으로' 읽어 예수의 사유 안에서 우주의 삼재(三才: 天地人)와 관련된 어떤 '서사적 구조'라도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지속적으로 생태학적 조망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특히 인간의 행동 곧 '문화'(文化)와 우주의 법칙 곧 '자연'(自然)을 대조적인 개념으로 사용할 것이다. 물론 땅은 자연을 대표하고 인간은 문화의 대표자가 된다. 예수의 자연 비유에서 하늘 나라는 이 둘의 관계 속에 표현된다

II. 자연 비유와 상징의 네트워크

A. 일곱 개의 비유들

현대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예수전승 가운데 진정성을 가장 높게 평가받는 비유와 아포리즘(警句)은 하나같이 자연계와 그 일부인 인간의 경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한다.1)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나라(하늘 나라)를 '하늘'(天)로 상징화하고 또 그 이야기 소재를 구성하는 자연계와 인간 경험을 각각 땅(地)과 사람(人)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예수의 비유야말로 하늘과 땅과 사람의 삼재(天地人)가 만나는 가상 무대라 볼 수 있다. 예수의 일곱 개 자연 비유는 대부분 천지인의 삼재를 균형 있게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땅과 인간 사이의 역동적 관계에 관한 이야기든지 혹은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행위와 관련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일곱 개의 자연 비유 가운데 네 개의 비유는 각기 씨와 땅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다룬다(겨자씨, 은밀히 자라는 씨, 씨 뿌리는 자, 곡식과 가라지). 만일 겨자씨의 비유에서 마가 본문의 구도가 더 원형에 가깝다면, 이 비유는 아예 인간 존재를 등장시키지 않는 셈이다. 인간을 등장시킨 세 개의 비유는 명시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파종과 추수를 인간의 역할로 설정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 비유는 한결같이 인간의 역할을 부수적인 요소로만 설정한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농부는 씨를 뿌린 후 무대에서 사라지고, 은밀히 자라는 씨의 비유에서 농부는 파종 후 아무 일도 안 하다가 땅이 모든 일을 끝내자 낫을 들고 장면에 복귀한다.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만 예외적이어서, 인간의 악한 동기나 혹은 그에 따른 반응 양식을 다룰 뿐이다.

어떠한 경우든 네 개의 비유 모두에서 땅은 씨를 품고 있다. 씨가 농부의 손을 떠난 후, 씨의 발아와 성장 그리고 결실의 여부에서 결정적인 것은 예외 없이 땅의 역할이다. 농부의 추수란 인간이 땅으로부터 얻는 일정한 혜택일 뿐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땅이 인간에게 베푸는 신적 은총에 대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이상 씨를 품은 땅에 관한 네 개의 비유 가운데 특이한 것은 겨자씨의 비유다. 이 비유만 농부의 역할을 설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직 이 비유에서만 씨가 성장한 결과 하늘의 새들이 찾아와 "그 그늘 아래" 깃을 들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새들이 땅에 둥지를 트는 것이다. 결국 땅은 죽은 씨를 살리고 성장케 하는 자신의 능력으로써 그 작은 겨자씨를 살리고 또 자라게 하여 새를 부르되 자신에게로 부르는 셈이다. 만일 하늘에서 오는 새들이 여느 종교적 전통이나 시적 상상 혹은 문학적 표현에서처럼 신성과 초월의 상징이라면, 땅은 자신에게로 하늘을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온전히 땅의 사건인 것이다.

씨를 품은 땅에 관한 위 네 개의 비유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겨자씨의 비유와 유사한 것은 보화의 비유다. 이 비유는 하늘 나라가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다고 한다. 첫째, 위 비유들에서 땅이 그 귀한 씨를 품듯이 이 비유에서 땅은 보화를 품는다. 씨의 비유들에서 씨가 땅과 결합할 때 땅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땅이 보화를 품을 때에는 그 땅은 어떤 놀라운 잠재력을 갖는 듯하다. 둘째, 겨자씨의 비유에서 새가 "그 그늘 아래" 깃을 들이고 하늘이 땅에 깃드는 것처럼, 하늘 나라는 보화와 같되 그것은 땅 속에 감취어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땅에서 경험된다.
보화의 비유는 이렇게 겨자씨의 비유와 동일한 의미 구조를 가지면서도 씨의 비유들과는 다른 문학적 모티프를 소개한다. 보화의 발견자(소작농)는 주인(땅의 소유자)으로부터 보화를 감추는데, 이는 주인을 향한 기만이다. 기본적으로는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에서처럼 땅 위에서 발생하는 인간들 사이의 갈등이 암시되어 있다. 그는 또한 전재산을 매각하고 땅을 매입하는데, 이는 주인으로부터 보화를 얻고자 하는 목적 아래 그 소작인이 감행하는 일생일대의 모험이라 할 수 있다.

포도원의 악한 소작인들이 주인으로부터 포도원을 빼앗고자 일생일대의 모험을 감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판적 물음은, 그가 땅을 사고 소유할 수는 있을지언정 땅 속의 보화를 과연 소유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보화의 비유는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 비유는 동일한 문학적 주제를 소개한다고 볼 수 있다. 보화의 비유에서 하늘이 깃든 신성한 가치를 그 소작농이 자본 가치와 부동산 가치로 전락시키고 '투기'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이 비유에서 포도원의 소작농들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피의 '투쟁'을 벌인다. 하나님의 나라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땅 위에서 땅의 소유와 관련하여 인간들이 벌이는 일련의 사건들 및 과정과 관련된다.

이상 여섯 개의 비유들과 동일한 연장선 위에서 구연되는 이야기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다. 비유의 구도에서 씨와 파종은 없었지만 땅 위엔 나무가 있다. 다른 비유들에서처럼 땅은 독립변수로 존재한다. 그 비유들에서처럼 나무가 결실하는지의 여부가 온전히 땅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땅 위에서 혹은 땅을 사이에 두고 투기와 투쟁을 일삼는 다른 비유들과 달리, 인간(과원지기)의 역할은 거름(희랍어 κ?πρια는 문자적으로 '똥 더미'를 뜻한다)으로써 다시 땅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예수의 일곱 개 자연 비유는 그 함축하는 주제와 의미가 어떤 유기적 관련성 안에 공통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예수의 모든 비유들 가운데 이들은 하나의 독특한 범주를 형성하며 의미의 모체(matrix)가 된다.

B. 문학요소와 상징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상 세 가지 범주에 속하는 일곱 개의 비유들은 공통된 주제를 다루지만 그러나 어느 정도 다른 주제로 발전시킨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각 비유가 공통된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유사하지만 조금씩 다른 문학요소들을 자유롭게 동원하기 때문이다.
이 요소들은 하늘(天)과 땅(地) 그리고 인간(人)의 세 가지 영역에서 다채롭게 나타난다.

첫째, 하늘과 관련된 요소들은 어떠한가?
이 비유들 가운데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과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제외하고는 "하늘 나라"(하나님의 나라)를 명시적으로 언급한다.
하지만 예수의 언어와 메시지 그리고 그의 교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의심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나라다.2)
그리고 예수의 언어와 가르침 가운데 그 나라의 의미에 대한 가장 우선적인 담론은 말할 것도 없이 비유다. 위 두 비유가 하나님의 나라를 명시적으로 언급치는 않는다 하여도, 그 비유들의 이야기 사건조차 틀림없이 그 나라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수의 자연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나 혹은 하늘 나라를 직접 언급하기도 하지만, 하늘에 '새들'이나(겨자씨, 씨 뿌리는 자) '해'를(씨 뿌리는 자) 등장시키기도 하고 혹은 '밤과 낮'의 순환을 제시하여 배경을 이루기도 한다(은밀히 자라는 씨).

둘째, 인간과 관련된 요소들은 복합적이다.
겨자씨의 비유만 제외하면 이들은 모두 인간 존재를 등장시킨다.
이들 비유에서 인간은 1인 '자영농'인 듯한 비교적 단순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은밀히 자라는 씨, 씨 뿌리는 자). 혹은 2인 이상이 특정한 관계를 형성한 채로 등장한다. 이를테면 그들은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로 나타나기도 한다
(보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아니면 땅의 주인과 그 밖의 다른 이('원수')가 적대적인 관계 속에 나타나기도 한다(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에 대한 도마의 본문에서는 땅의 주인과 '원수' 2인이 적대 관계 속에 있다).
이 적대 관계는 집단 간의 갈등으로 규모가 커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땅의 주인은 종들을 둠으로써 '주종관계'를 이루며, 다른 한편으로 이들과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소작농)도 둘 이상이다(포도원의 악한 농부들. 곡식과 가라지 비유의 마태 본문도 도마의 경우와 달리 이런 구도 속에 전개된다).

그들의 행위(文化)는 어떠한가?
씨와 땅의 결합을 다루는 비유들 가운데 세 개의 비유에서 그들은 '파종'과 '추수'의 일을 한다(은밀히 자라는 씨, 씨 뿌리는 자, 곡식과 가라지). 은밀히 자라는 씨의 비유에서 농부의 행위는 특기할 만하다.
파종 이후부터 추수 직전까지 그 긴긴 시간 동안 그는 단지 "밤낮 자고 깨곤" 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자연은 자연대로 밤과 낮으로 순환하되, 농부는 무위(無爲)의 생활 가운데 밤에 자고 낮에 깨는 생활의 리듬을 지키는 것이다. 자연의 리듬에 생활의 리듬을 실었고, 그러는 동안 땅에 떨어진 씨앗은 성장의 리듬을 보인다.
이와 유사한 것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다. 과원지기는 땅의 지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려 한다. 인간의 행위가 문화(culture)라면 이들의 문화는 땅의 일 곧 자연(nature)과 조화로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의 비유들에서 인간의 행위는 훨씬 더 '작위적'이다.
보화의 비유에서 발견자(소작농)는 밭의 주인이 보지 못하도록 보화를 다시 묻는다. 급히 소유물을 매각한 후 밭을 매입한다('매매'). 행위의 동기는 물론 보화에 대한 '소유욕'이며, 그 과정은 주인을 향한 '기만'과 '배반' 그리고 '투기'라 할 수 있다.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인간은 원한관계에 의하여 좋은 씨 가운데 나쁜 씨(가라지 종자)를 덧뿌린다. 마음의 동기는 단지 적대자에게 음해를 가하는 것뿐이다('가해'). 추수는 가라지를 모아 불태우는 과정으로 끝이 난다('인내'와 '심판').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 비유에서 이익을 향한 지주의 집착과('영리') 땅을 소유하기 위한 농부들의 집착('소유욕')은 끝없이 부딪힌다. 이들 사이의 갈등은 끝내 아들의 살해라는 극단적 행위를 통해서만 진정된다('투쟁'과 '폭력적 살해'). 인간의 문화는 땅의 일 곧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가장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도 정교하게 발전시킨 것은 땅과 자연에 관한 문학 요소들이다. 일곱 개의 자연 비유가 예외 없이 명시적으로 제시하는 문학적 요소는 오직 '땅'이다 많은 경우 그냥 땅으로 표현한다(겨자씨, 은밀히 자라는 씨. "땅"은 마가가 선호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밭'이나(보화, 곡식과 가라지. "밭"은 물론 마태적 표현이기는 하다) 혹은 '포도원'(포도원의 악한 농부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니면 '길,' '돌,' '가시떨기,' 혹은 '좋은 땅' 등의 다양한 토양으로 기호화되기도 한다.

모든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 요소가 땅이라면, 자연 비유에서 땅과 관련하여 자연계의 매우 중요한 요소는 '씨'와 '파종'이다. 씨와 파종을 다루는 비유는 모두 네 개인데, 이들 모두에서 땅은 어김없이 씨를 품는다. 물론 농부의 역할이 개입되기도 한다. 씨와 땅 그리고 농부는 여러 가지 방식의 조합을 보인다.

(1) '씨와 땅의 결합'에서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은밀히 자라는 씨의 비유에 나타난다. 무슨 씨든 어떤 땅이든 상관없이 단지 하나의 씨가 땅에 심겨진다: "하나님의 나라는 한 사람이 하나의 씨를 땅 위에 뿌림과 같다"(막 4:26).
(2) 이 기본적인 구도로부터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슬며시 구도의 변형을 시도하였다. 씨와 농부를 고정시키고 땅의 종류를 다양화한 것이다. 동일한 농부가 동일한 씨를 뿌리지만 씨가 어느 종류의 땅과 결합하였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 그리고 좋은 땅은 각기 흙을 함유하는 양과 성장의 환경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3) 겨자씨의 비유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 구도를 발전시켰다. 땅을 그대로 둔 채 단지 씨의 종류를 특성화한 것이다. 그 씨는 아주 작은 것으로서 '겨자씨'다: "그것
[하나님의 나라]
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 위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막 4:31).
(4)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는 이러한 구도를 한층 더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땅은 그대로 두었으나, 인간 존재와 함께 종자를 다양화한 것이다. 땅의 주인(혹은 그의 종들)은 '좋은 씨'를 뿌리고 원수는 '가라지'를 뿌린다(물론 마태는 도마와 달리 주인이 종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 결과 같은 밭에서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란다(도마는 "밀"이라 하고 마태는 "곡식"이라 한다).

(5) 이상 네 가지 씨의 비유와 유사한 것은 보화의 비유다. 그러나 땅이 품은 것은 씨가 아니라 '보화'고, 더 이상 파종도 없고 씨의 발아와 식물의 성장도 없다. 따라서 식물도 없고 결실도 없다. 오직 보화를 소유하기 위하여 재산을 팔고 밭을 사는 인간 행위만 있을 뿐....
(6) 소유를 위한 인간의 행위를 다룬다는 면에서 이와 유사한 것은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 비유다. 여기서도 씨와 파종 그리고 성장과 추수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결실도 없다. 단지 땅의 소유를 위한 투쟁만 있을 뿐이다.
(7) 그러나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식물이 땅에서 자라고 결실의 문제가 쟁점화 된다는 점에서 위 네 가지 씨의 비유들과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씨와 파종의 모티프를 생략한 채 땅과 식물의 관계를 다룬다. 물론 땅의 형태는 포도원으로 구체화된다. 땅 위에서 자라는 것은 더 이상 밀과 같은 일년생이 아니라 몇 십년을 버티며 존재하는 '나무'가 되어 있다.

씨와 땅이 결합한 결과는 무엇인가?

땅 위에서 식물이 다 자란 결과는 무엇인가?
첫째, 씨를 특성화한 겨자씨의 비유에서, 씨를 품은 땅은 '겨자식물'을 낸다.
이 식물은 '겨자열매'를 맺을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늘'을 드리운다. 겨자식물은(궁극적으로 땅은) 열매와 그늘로써 하늘의 새들을 부른다. 그러면 새들이 날아와 그 그늘 아래 '둥지'를 튼다.
둘째, 씨와 땅의 결합을 제시하는 비유들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은밀히 자라는 씨의 비유를 보자. 이 비유에서 땅이 씨를 품은 결과는 땅 위의 장면으로만 묘사된다.
씨는 "나서 자라되," "처음에는 싹으로 다음에는 이삭으로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으로 성장한다"(막 4:27, 28). 성장의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을 서술하는 것이다.

셋째,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성장과 그렇지 못한 경우의 단계를 지표 아래와 지표 위의 장면으로 정교하게 묘사한다. 식물의 성장은 땅의 종류에 따라 등급이 달라지고 그 운명도 각각의 단계에서 달라진다.
씨를 품은 땅은 지표 아래로는 함유하는 흙의 양이 많을수록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린다. 지표 아래로 뿌리가 튼튼하면 지표 위로는 '싹'을 틔우고 '이삭'을 낸다.
그 중에서도 성장의 환경이 좋아 경쟁적인 식물('가시')이 없는 경우에는 온전히 자라고('성장') 무성해져서('증가') 결실을 낸다('추수'). 그렇지 않으면 씨의 상태에서 새들에게 먹히거나('먹음'), 싹의 상태에서 해가 태우거나('태움'), 혹은 이삭의 상태에서 가시에 찔려 죽는다('질식').

자연 비유들 중에서도 땅과 관련하여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다. 이 비유는 과원지기의 말을 통하여 지력을 상실한 땅의 회복을 위하여 "두루 파고 거름을 주는" 문학적 동기를 소개한다. 여기 거름이라 번역된 코프리아(κ?πρια)는 '똥 더미'를 뜻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똥 더미에 관련시키는 이유는 유기물이 땅을 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일곱 개 자연 비유는 다음의 중요한 문학적 요소들이 다양하게 조합을 이루며 나름대로 이미지와 상징의 네트워킹(networking)을 형성하고 거기서 의미를 발생시킨다.

천(天)--"하늘 나라"(하나님의 나라), 해, 하늘의 새들
인(人)--인간: 농부, 주인-소작농, 주인-과원지기, 주인-원수,주인과 종들-악한 농부들
문화: 파종, 추수, 밭 갈기, 발견과 감춤, 팔기와 사기, 자고 깨기,
불태움, 투기, 투자, 투쟁, 살인, 위탁과 경작, 땅 살리기
지(地)-- 땅:  땅, 좋은 땅, 흙, 밭, 포도원, 길, 바위
식물: 식물(겨자식물, 곡식, 가시나무, 밀, 가라지, 무화과나무),씨(씨, 겨자씨), 성장(씨, 싹, 이삭, 열매)
열매(열매, 겨자열매, 무화과)
기타: 보화, 가지 그늘, 둥지, 배설물


이상과 같이 일곱 개 자연비유의 문학 요소와 주제를 파악하였으면, 예수의 가르침에서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은 각각 무엇과 같고 또 그 삼재(天地人)의 관계는 무엇이었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작업이 요청된다.

첫째는 각각의 비유를 생태학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며,
둘째는 각각의 문학적 요소들이 예수의 어느 특정한 비유 뿐 아니라 다른 비유들에서도 보편적으로 어떤 이미지와 상징을 갖는지 살피는 일이다.
전자가 씨줄과 같은 작업이라면 후자는 날줄과 같은 일이다.
특히 후자를 위해서는 위 도표에서 보듯 개별적 문학 요소의 이미지와 상징을 '횡으로' 읽어야 한다.
비유의 경계를 넘어 이미지와 상징을 이렇게 횡으로 읽노라면 많은 비판적 물음을 접하고 또 창의적인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겨자씨의 비유에 나타나는 하늘의 새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타나는 그 새와 동일(同一)한 새일까, 아니면 최소한 동종(同種)의 새이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다.
동일 인물(역사적 예수)에게서 나온 동일한 범주(자연 비유)의 화두(하나님의 나라와 자연)라면, 동일한 문학 요소는 동일한 (최소한 유사한) 범주의 의미함축을 갖는다고 전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도표는 일곱 개의 자연비유들이 각각 어떤 중요한 문학 요소들을 갖는지 종(縱)으로 배열하였고, 또 다른 비유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들은 동렬에 놓이도록 횡(橫)으로 위치시켰다. 예를 들어, 하늘의 새는 겨자씨의 비유에도 나타나지만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도 나타난다. 이 경우 이들은 동렬에 놓인다.

 구분

보화

겨자씨

은밀히

자라는 씨

 뿌리는 자

가라지

포도원의

농부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하늘()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하늘나라"

 

 

하늘에

 속한 것

 

새들:둥지

밤과 낮 

: 태움

새들: 먹음

 

 

 

사람()

주인

사람/소작

 

농부

농부

主人-원수

 종

主人-원수

 종

주인

과원지기

인간 행위

(문화도구)

발견, 감춤,

팔고, 사고

 (소유물)

 

파종, 추수

자고, 깨고

   (낫)

파종(추수)

파종, 추수

불태움

투자, 집착,

폭력, 살해

위탁, 경작

식물

 

(겨자열매)

 겨자식물

싹, 이삭,

곡식, 열매

곡식, 뿌리,

가시: 찌름

밀-가라지


 

(무화과)

무화과나무

땅에

 속한 것

 

그늘

   둥지

(밤과 낮)

 

 

 

배설물

땅()

 밭/땅

길, 바위,

좋은땅, 흙

밭/땅

포도원/땅

포도원/땅

 씨

보화:

감취어있음

겨자씨:

      작음

씨-씨

 

 

기타

 주요 개념

 및 이미지

人: 기만

    배반

    투기

自然: 작음

      성장

 먹고 먹힘

天: 내려옴

  둥지틀기

人: 무위,

    무지

地: 스스로

自然:

손실과결실

먹임, 먹힘

文化:

원한, 악행

혼합, 분리

文化:

소유욕,

상속, 집착,

기다림,

투자, 투쟁

地: 지력↓

人: 심기

   (찍기)

   기다림

地: 지력↑





작업중..
Posted by 설록차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