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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30 존 헤론(1856년~1890년)-의료선교 펼치다 이질로 소천

존 헤론(1856년~1890년)-의료선교 펼치다 이질로 소천

헤론의 생애-
‘의료품과 의료기를 준비할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떠나겠습니다.
조선에 제일먼저 도착하는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최초로 묻힌 존 헤론.

그는 미국 동 테네시주 메리빌대와 뉴욕 종합대 의과대학을 개교 이래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촉망받는 청년이었다.
그는 보장된 미래를 뒤로하고 1884년 4월, 미국에서 최초의 한국인 선교사로 정식 임명을 받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 결혼한 해티 깁슨과 함께 조선땅으로 오게된다.이들 부부가 우리 민족을 만나기까지는 많은 장벽이 있었다.
조선에 갑신 정변이 일어나 1884년 4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일본에 머물다가 그토록 소망하던 조선땅을 밟을수 있게 된다.
이후 알렌의 후임으로 광혜원2대 원장과 고종 임금의 시의가 됐다.
헤론은 왕족과 양반계급을 위한 ‘광혜원’을 서울 을지로 2가로
이전하면서 ‘제중원’ 으로 이름을 바꾸도록 하는데 이는 모든 천민에게까지 의료혜택을 주기 위해서였다.

헤론 선교사 부부는 선교사들이 모두 피서를 떠난 뒤에도 남아서 환자들을 돌보는 등 자신의 몸을 아끼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헤론은 600여리나 떨어진 시골 마을에 가서 병자를 치료해 주다 이질에 걸려 1890년 7월 26일 소천하게 된다.
그의 나이 33세 한국에 온지 불과 5년만의 일이었다.

그는 의료선교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병원사업과 성서 번역 사업을 비롯해 기독교 문서 사업에 기여했으며 1890년 창설된 ‘기독교서회’ 창설자였다.
또한 헤론의 부인인 해티는 남편이 소천한 뒤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편이 못다 한 선교를 계속하고자 조선에 남았다.

조선의 첫 선교사가 되길 소망했던 헤론의 묘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The son of God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라고 쓰여 있다.
그와 모든 활동을 함께했던 해티는 결핵으로 1908년 3월 8일
서울에서 소천, 헤론이 묻힌 뒷자리에 안장됐다.


Posted by 설록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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